♠예 화

마음에 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30. 19:16

마음에 관한 예화 모음

 

마음과 건강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밝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잿빛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보고서를 게재, 눈길을 끌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조사된 건강실태의 경우, 북부 칼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부 피레네에 사는 주민들보다 소화계통의 암이나 간경변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건수도 햇살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어디 환경뿐일까. 마음이 밝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먹기 나름
 
 죄수들은 타에 의해 감옥이라는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 속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둘 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고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죄수는 내내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깊은 진리를 찾아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식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되고, 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년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성경잠언11:29)

 
 마음보가 문제라
 공자가 세상을 한바퀴 돌아와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하늘도 문제가 아니고 땅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보가 문제다."
 그의 춘추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속 행복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고대 설화 중 한 토막이다.
 행복은 찾는 자만이 누릴 수 있도록 은밀한 곳에 두라는 창조주의 명을 받는 천사들이 '긴급회의'를 가졌다.
 바다 깊은 곳에 두자는 주장, 높은 산에 두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교활하고 야망있는 인간이 그 정도는 쉽게 찾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와 무산됐다.
 한 천사가 인간의 마음에 두자고 했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잘 볼 수 없으리라는 것 이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이때부터 행복은 마음 깊은 곳에 있게 되었다.


마음속에 계신 '구세주'

 할아버니와 어린 손녀가 두레박을 내려 물을 뜨기 위해 우물 곁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손녀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의 볼을 쓰다듬은 후 번쩍 들어 우물 안을 보여 주며 "저 우물밑을 내려다 보아라"라고 말했다. "무엇이 보이니?""할아버지, 우물에 비친 제 모습이 보이잖아요."
 할아버지는 다시 손녀를 우물 곁에 내려 놓고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거야.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단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네 안에."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심

 옛날 스페인에 페르디난도 5세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쳤으며 또한 그 점괘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하루는 왕이 점을 쳤는데 점쟁이가 “마르디칼에 가지 마십시오. 그곳에 가면 반드시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왕에게 있어 .마르디칼.은 더없이 두려운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왕은 전국의 여러 지방을 순시하게 되었다. 어느 이름 모를 지방을 지나던 왕은 무심코 신하에게 이 지역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네. 이곳은 .마드갈레.입니다.” 그 순간 왕은 20년 전의 점괘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왕은 그 즉시로 몸져누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영문을 모르는 신하들이 서둘러 유명한 의원들을 불렀으나 왕은 이삼 일이 못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점괘의 예언은 .마르디칼.이었으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온 왕은 .마드갈레.라는 비슷한 이름 앞에서까지 두려워했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는 공포에 싸여 죽어갔던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 왕과 같이 어떠한 문제에 심각한 두려움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그로 인해 심히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바울을 보라. 모든 사람들이 광풍이 대작하는 위기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바울 혼자만은 “두려워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도 요동치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두려운 위기 상황 속에서 그분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더욱 분명히 느끼고. 그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드리고 봉사를 한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온전히 계시지 않는다면. 그래서 어긋나고 편협한 사고나 행동을 하고 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수 없다. 오히려 회칠한 무덤과 같아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질책을 면할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마음속의 거인
 민 13:30; 롬 4:20;
 
 모세는 열 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보냈다. 그들 중 열 명은 성곽 도시와 거주민을 보고는 자신들의 왜소함을 느꼈다.
 "저 거인들을 쳐부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지!"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성곽도 방해가 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자신들이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도 허영이라는 거인이 있다.
 "너의 작은 집에서 정말로 성경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안됐지만 몹시 붐빌거야. 안그래?"
 혹은 의심이라는 거인도 있다.
 "이번 달에는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게 좋겠어. 돈이 충분치가 않아."가나안의 거인들처럼 우리 속의 거인도 그대로 놓아둔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섬기는 일을 제대로하지 못하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거인을 물리칠 수 있다. (샐리 레이라드)
 

 

마음속의 평화
 
 외국의 잡지에 이런 실화가 있었읍니다.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를 잃은 여인이 전사 통지서를 쥐고 비오는 날 저녁 동리 강에 있는 큰 다리를 실의 속에 거닐게 되었읍니다. 이 여인은 끝내 약혼자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막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 한 중년남자가 나타나 팔을 급히 잡더니 "여기는 추우니 우리 다리 지키는 조그만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난로가 있는 그 사무실로 가 자초 지종을 이야기하며 통곡하는데 그 사람이 아무 말하지 않고 두 손을 잡더니 "하나님, 이 여인에게 실의를 딛고 일어설평화와 소망과 용기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읍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여인은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삶의 소망과 의욕을 느꼈읍니다. 조금 후 이 사람이 인자하게 웃으며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새 출발하십시오"라고 말했읍니다. 이후 이 여인은 집에 돌아왔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 다리지기가 너무 고마와 다시 인사하러 그 곳에 갔더니 사무실도 그 사람도 보이지 않았읍니다. 이여인은 비로소 그 다리지기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새 출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의 평화 -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이 평화를 얻고 모든 정신적 곤고를 극복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읍니다.

 

마음에 번뇌를 없게
 
 달마대사가 벽을 향하여 9년 동안 참선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문 밖에 신광이란 자가 찾아와서 도를 배우고자 간청하였다. 그러나 달마는 거들떠보지도 아니하였다.
 신광은 문 밖에서 밤을 새우며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따라서 공교롭게도 눈이 펑펑 쏟아져 무릎까지 쌓였다. 그런데도 달마는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신광은 죽을 각오로 왼쪽 팔을 베어서 달마에게 내밀며 구도의 굳은 결의를 보였다. 그러자 비로소 달마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무엇을 구하려느냐?"
 "마음이 불안해서 안심을 얻고자 하나이다."
 신광은 솔직히 심중을 털어놓았다.
 사실 신광은 학문에 깊은 조예가 있었으나 항상 마음에 번뇌가 떠나지 아니하였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안심케 하리라."
 달마는 연민에 찬 눈동자로 신광을 바라보았다.
 몸의 한 구석에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줄 생각하던 신광은 졸지에 마음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내어 보일 수 없는 이 마음!
 신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지를 못하겠나이다."
 떨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너를 위해 이미 안심시켰노라."
 달마는 고요히 눈을 감고 신광은 고개를 끄덕 였다. 신광은 이후로 혜가란 법명을 얻었다.
 한 마음이 생기지 아니하면 만 가지 법도에 허물 할 것이 없다.
 불가에서는 말한다. '자기 중심으로 좋다 싫다 밉다 곱다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아니하면 번뇌가 일어날 이치가 없다.'
 장자는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아가 없다.}라고 했다. 도통한 사람은 사심이나 사욕이나 자기 과시욕이나 아집이 없다는 말이다.
 과연 공자(公子)는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 함이 없고, 고집함이 없고, 내라는 것이 없었다 한다. 사사로운 생각이 일어나면 꼭 이루고자 하고, 꼭 이루고자 하면 억지로 고집하게 되고, 고집하게 되면 나를 내세우게 되는 법이다.
 공자는 이런 일이 없었다 하니 성현다운 면모가 확연하지 아니한가? 누구라도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3)
 


마음에 화장하기
 
 화장은 얼굴을 가꾸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가꾸기 위한 것이기도 해.
 화장을 하려고 거울앞에 앉으면 허겁지겁 스킨부터 바르려 하지말고 우선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다 봐야 해.
 화장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예쁘게 가꿔야 얼굴도 예뻐지거든.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 마음속의 왕자님을 그리는 거야.
 마음이 예쁘고 평화로워 졌으면 화장을 시작해.
 먼저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이 자신의 마음속에 스며 들기를 기원하면서 스킨을 발라.
 그 다음에 이 세상의 향긋한 꽃향기가 가슴속에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로션을 바르지. 천천히 말야.
 그리고 나서 아이의 새살을 돋아나게 해 주십사 하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안고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진실만을 말하는 예쁜 입술이 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루즈를 칠하는거야.
 홍재규 의 <야인> 중에서 한구절
 

 

마음에는 찬란한 아침해가
 
 그날도 이씨는 새벽 일찍이 일어나 아현동 주택가 골목길로 향했습니다. 먼동이 트기 전, 참으로 조용한 아침이었습니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쓰레기 뭉치를 하나씩 꺼내 실었습니다.
 어느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컴컴한 쓰레기통 위에서 서류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봉투를 열어 가로등 불빛에 비춰 보았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120만 원의 현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앞 수표 등 모두 5억여 원의 유가증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만져 보는 돈이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그의 뇌리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쓰레기통 주인집의 벨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더러운 쓰레기를 가득 실었지만, 그날 새벽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날보다 상쾌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아침해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혔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밝음'

 한 소녀가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이 소녀 곁으로 달려갔다.
 소녀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소녀는 앞을 못보는 소경이었던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데 왜 연을 날리니?"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마음 속에서는 보이는 걸요."
 소녀는 이렇게 대답한 다음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연을 날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요. 또 연이 나는 동안 팽팽한 연줄을 잡고있으면 저 자신이 연이 된 기분이에요. 믿음과 자유를 느끼지요."

 

마음을 다스리라 (운전)
 
 운전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이 핸들만 잡았다 하면 공격적이 돼 난폭 운전에 법규위반을 남에 뒤질세라 한다. 그 동안 잘 쌓아왔던 권위가 차안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는 가장도 많다. 보통때는 하지 않던 거친 말이나 욕설이 거침없이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도 처음엔 질타를 하다가도 어느때는 같이 험한 말들을 내밴는다. 사실 차를 운행하다 보면 속 상하는 경우를 많이 겪는다. 특히 초보나 여성운전자들이 당하는 고초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많은 차량이 법규를 잘 지키며 가는데도 공연히 경적을 울려대거나 전조들을 번쩍이며 혼란을 주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삿대질 끝에 멱살잡이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갖은 험한 꼴을 보기도 한다. 지난 2일 일어난 추월 시비끝 살인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차를 몰고 가다 앞차가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자자를 끌어내 때려 숨지게 했다. 이 사건에 더욱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서로 인내하지 모해 일을 저질렀고 두 차 모두에 가족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우가 없어도 유분수지, 어찌 이런 일이 백주 대로 상에서 일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심성이 차만 타면 왜 그리 거칠어지는 것일까. 분냄과 욕설이 터짐은 남의 탓만도 아닌것같다.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물댄동산 같다면 그처럼 세상이 황막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16:32)고 했다. 차를 운전할 때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면 그 는 정말 문화인이다.
 


마음을 막대기 위에
 
 곡예용 그네를 타는 방법을 몹시 알고 싶어하는 어떤 젊은이가 한 노련한 써커스 단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마음을 막대기 위로 던져라, 그러면 너의 몸이 뒤따를 것이다." 경험을 가진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마음을 던지십시오. 일을 명랑하게 열성적으로 하십시오. 일에 마음이 먼저 갈 때 신체는 훨씬 더 쉽게 수행한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마음을 예수님께 바쳤기에
 
 클레멘트스톤이란 분은 말하길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읍니다.
 오늘날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의 혁명을 받는 일이야말로 모든 문제에 앞서서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와서 이른바 "양심혁명"(Revolution of Conseiou-sness)내지 "의식혁명"이 고조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학교 유치부에 다니는 한 어린 소녀가 어느날, 교회 학교에서 급히 돌아와서 몸무게를 달고 있었읍니다.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도 또 몸무게를 다니?"라고 어머니가 묻자, 그 소녀는 대답했읍니다. "엄마, 오늘 아침에 내가 나의 마음을 예수님께 바쳤기 때문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나 알아보고 싶어서예요. 그런데 엄마, 몸무게가 꼭 같아요"

 

 마음을 유혹하는 창
 
 플라톤의 제자인 토로킬러스는 바다에 배를 띄워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한번은 배를 타고 바다에 가서 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집은 바로 바닷가에 있었는데 바닷가로 향하는 창을 다 막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와서“이 좋은 바다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창들을 왜 이렇게 다 막았느냐?”고 묻자,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지난번 배를 타고 나갔다가 꼭 죽을 뻔하고 살아왔는데 다시는 배를 타지 않기로 결심을 했지만 이 창을 그냥 두었다가는 따뜻한 봄날이 되어 이 창으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면 다시 바다로 나갈 생각이 들까봐 아예 바다가 보이는 창을 막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마음을 시험하는 창이 있습니다. 이 창을 내다보면 우리가 언제 어떤 시험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약점, 시험의 창을 미리 알아서 아예 그 방면을 단단히 막아 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언제든지 나를 죄의 유혹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을 아예 미리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서적을 피하고, 오락을 피하고, 우리를 더러운 데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으면 끊어버리십시오. 또한 유혹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마음의 광명

 유대인의 스승을 랍비라고 부른다. 어느날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부남이라는 랍비가 시력을 잃어 앞을 못보게 되었다. 그의 됨됨이를 알고 있던 피셀이 그를 찾아갔다. 피셀은 병 고치는 기적을 베푸는 유명한 랍비였다. 「나의 치료에 맡기십시오. 광명을 찾아주겠습니다] 피셀이 말하자 부남은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볼 필요가 있는 것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B.S.라즈니시의 「죽음의 예술」에 나오는 이야기다.

 

마음의 만족
 
 텍사스 휴스톤의 알렌 박사는 마음에 만족을 가져오는 다섯 단계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로,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분수에 넘치게 탐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적은 소득이라도 조금씩 저축해 가며 살아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꿈과 모험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만족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로, 최선을 다하면 항상 길이 열리는 것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이 있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거기에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시련과 역경이 도리어 축복으로 변해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렌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족이라는 것은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 자세에 따라서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무게
 잠 23:26; 마 15:8; 막 12:30
 
 유치부에 다니는 소녀가 어느 날 주일학교에서 급히 집으로 돌아오더니몸무게를 달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물었다.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 또 다니?"
 "오늘 아침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내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나 알아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엄마, 몸무게가 어제와 똑같아요."
 


마음의 민감성(감사)
 
 만약 나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먼저 눈으로 찾다가 다시 서투른 손으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을 찾아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한다. 서투른 손으로 찾는 것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자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의 바탕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하루는 서로 싸우고 있읍니다. 큰 소리가 들리기에 톨스토이가 나가서 보니까, 종 둘이서 서로에게 별명을 붙인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하였던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좀 홀쪽하게 생긴 종이 뚱뚱하게 생긴 종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읍니다. 그러자 곧 뚱뚱하게 생긴 종이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곰, 원숭이하면서 서로 티격태격 언쟁을 합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서로의 불화를 중재시켜 갔읍니다. 그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너가 저 사람을 곰이라 불렀지. 너는 저 사람이 곰이기 때문에 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다. 네 마음 속에 곰과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을 곰이라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곰이란 별명을 가진 뚱뚱한 종에게는 “너가 저 사람을 원숭이라고 불렀지. 저 사람이 원숭이이기 때문에 원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원숭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네겐 원숭이처럼 보여진 게다”라고 말했읍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던져 주는 교훈이 있읍니다. 믿음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세계로 더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선한 사람이거나 악한 사람이거나 거짓된 사람이거나간에 바로 이들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생각을 더 깊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사람을 보느냐에 따라서 헐뜯을 수도 있고 그를 격려할 수도 있고, 그를 일깨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부담
 
 나는 주님과 퍽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혹은 뭘 청하기도 하고, 혹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혹은 챤양하기도 하고, 혹은 감사드리기도 하고.. 그러나 늘 나에게는 이런 찜찜한 느낌이 있었다. 내가 그분의 눈을 들여다보기를 그분이 바라고 계시다는.. 그리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나는 곧잘 말씀을 여쭙곤 하면서도 그분이 날 바라보고 계시다고 느껴지면 그만 그 눈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그 눈길을 멀리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그 눈길 속에서 뭔가 뉘우치지 아니한 죄에 대한 나무람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요구가 있으리라고, 뭔가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으리라고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기어이 용기를 내어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 책망도 없었다. 아무 요구도 없었다.
 그 눈은 그저“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살피듯 바라보았다. 그래도 역시 그 눈길이 전해주는 말씀은 한마디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나와서 울었다. 닭 울기 전 주님을 세번 부인하고 나와서 울었던 베드로처럼.
 


마음의 생각
 
 최면술 연습 시간에 호기심에 찬 학생 몇 명이 스스로 시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여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인 듯한 한 학생을 지목하여 교단에 서게 하였습니다. 교실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습니다. 학생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 압력계를 들고 손으로 힘껏 쥐어 보십시오." 강사가 그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압력계를 있는 힘을 다해 거세게 쥐었습니다. 계기에는 압력 101 파운드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최면술을 걸어 아까 했던 것을 다시 시키겠습니다." 학생은 최면 상태에서 다시 압력계를 잡았습니다. 강사는 그에게 힘이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있는 힘을 다해도 29 파운드 이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최면술 강사는 그 학생에게 최면술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힘이 다시 돌아와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암시했습니다. "이제 다시 압력계를 잡아 보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압력계 계기가 142 파운드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안됩니다. 또한 할 수 있다고 굳게 확신하면 결국 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23:7)
 


마음의 쉼터

 미국 과학원회보는 최근 사람의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란 물질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훨씬 낮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다고 발표했다.
 이 회보에 기고한 캐나다 몬트리올 신경연구소 미르코 딕식 박사는 여성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감정에 관여하는 세로토닌이란 화학물질의 분비기능이 남성보다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걸린다고 발표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문제. 평안을 주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누구든지 '쉼'을 얻는다.

 

마음의 작정
 
 나의 친구 한 사람이 겪은 일화이다. 사업차 여행을 떠날 일을 앞에 두고 친구 부부는 교회에 갔는데. 그때 마침 그의 아내는 생활비가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금 시간 직전에 그는 아내의 손에 얼마의 돈을 쥐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돈이 주일 헌금인 줄로 생각하고 헌금함에 모두 넣어 버렸다. 사실 그 돈은 일주일 동안의 생활비로 준 것이었다. 내 친구는 말하기를 “잘 됐어. 그 돈을 주님께 드렸으니까. 주께서 그 액수만큼 계수하셨을거야.” 이때 목사가 “원래 얼마를 드리려고 .작정. 했었읍니까.”라고 묻자 내 친구는 원래 작정 액수를 말했다. 그러자 그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액수만큼만 계수하셨읍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마음의 작정을 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양(量)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비율(比率)을 보신다. 더 드릴 수 있었는데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목하신다. 만일 더 드리기를 원했는데 더 드릴 수 없었다면. 그것도 또한 하나님께서 주목하신다. 얼마를 소유하고 있든지 기꺼이. 자원해서 드리게 될 때 우리는 은혜 베풂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조율

허드슨 테일러(1832-1905)는 중국 내지 선교에 힘쓴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회가 끝난 뒤에는 피아노를 조율하지 않습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조율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조율하십시오."
 테일러는 고아원도 경영했는데, 항상 그날 아이들에게 먹일 양식을 걱정해야만 했다.
 그는 아침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기도드렸다.


마음의 파수꾼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부지런히 차를 몰고 잠수교를 건널 때였습니다. 쏟아지는 비 속에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노란 운전 기사복을 입은 사람이 몹시 다급한 듯 손을 흔들며 차를 태워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급한 길이긴 하였기만 비를 맞아가며 간청하는 그 분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차를 세워 태워드린 후 그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영업용 택시 운전 기사인데 그만 차에 휘발유가 떨어져 잠수교 한가운데에서 멎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유소로 휘발유를 사러가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어처구니가 없어 “차가 멎게 되도록 몰랐느냐”고 짓궂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다 떨어져가는 줄은 알았지만 적어도 잠수교는 무사히 건너 주유소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기 나름대로의 인격과 교양. 수양과 신앙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 인생을 이끌고 가는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뜻밖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만 당황하여 쓰러지고 마는 경우를 봅니다. 다시 한번 각자의 인격과 신앙의 상태를 재정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는지, 아니면 인격적인 면으로나 신앙적인 면에 수양과 성령의 은사가 좀 더 필요한지를 말 입니다. 잠.4:20―27에서는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더욱더 네 마음 을 지키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파수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평안
 
 유치원에 다니는 딸 하나를 키우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원인 모르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먹구름이 그 가정을 덮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린 딸이 엄마를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시작하여 방, 부엌, 응접실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두사람의 눈에는 모든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어두운 방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딸을 침대애 눕히고 기도해 주면서 편히 자라고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얼마 후 딸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가 가 보았더니 "아빠! 무서워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타이릅니다.
 "아무리 어둡고 무서워도 아빠가 있으니 무서워 말고 조용히 자거라" 그런데 어린 딸이 눈을 감고 한참 있더니 아빠! 아무리 어두워도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라고 하며 안심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하나님! 딸의 입술을 통해서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것 감사합니다. 나의 주변이 아무리 어두워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므로 실망치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가정에 먹구름이 엎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이 느껴지지만 내가 딸을 사랑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고 힘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의 마음에 있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을 그는 느꼈습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면에서 만세반석이 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을 그때에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
 
 어떤 사람이 프란시스 크라아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과 어려움의 뜻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눈에서 한없이 침착하고 고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토록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있었을까요? 그가 죽은 뒤에 한 조그마한 종이 쪽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사야 26:3의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위의 사실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알고져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학자에게 그가 장래에 바라는 모든 것을 적어주고 그것을 점검하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믿는 바 모든 것을 적었는데 한결같이 재물과 성공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나이든 학자는 그것을 읽고 모두 지워 버리고 “마음의 평화”라는 다섯 자를 적어 놓았습니다. “마음의 평화” 얼마나 좋은 선물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돈에서, 성공에서 구하려 합니다. 결국 그들은 실망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엉뚱한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성경 말씀에 자신을 나타내어 보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만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기고 주의 향기를 풍겨내게 되면, 주님은 성령의 열매를 우리에게 맺게 하시고, 따라서 평화가 깃드는 것입니다.


 마음의 행복은 양심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제자 한 사람이 어느 날 가게에서 신발을 한 켤레 사고 난후 주인에게 "돈은 내일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이 제자가 돈을 들고 찾아가니 주인이 죽어 있었다. 그는 신발을 공짜로 갖게 되었다고 속으로 좋아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 양심에 걸려 매일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렇게 좋아 보이던 신발이 '흉측한 가시'같았다. 결국 그는 돈을 들고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된 그 가게를 찾아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었지만 제제는 살아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노름 재수가 좋다
 마 5:1-12; 딤후 3:15-17; 엡 1:13
 
 성경을 번역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토인들에게서 적당한 말을 물어 가지고 그대고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가않다.
 한 선교사가 마태복음 5:1-12에 나오는 "복이 있다."라는 표현을 본토인에게 물어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번역된 말씀의 의미는 이러하였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노름 재수가 좋다. ...슬퍼하는 자는 노름 재수가 좋다."
 그 선교사가 활동하던 지역인 라틴 아메리카의 인디언에게는 "복이있다."라는 표현이 "노름 재수가 좋다."라는 표현밖에는 달리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예로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계 13:15)를 그 나라 말로 직역하면 "우상을 악취가 나게 만들었다."라는 의미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 26장에서 회개한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예수의 머리를 부딪쳐 깨뜨렸다."라는 의미로 잘못 번역된 성경 말씀을 읽고는 본토인은 예수의 참을성에 감동했다고 한다.

 사랑은 바윗돌같은 마음도 녹인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한번은 열살된 딸이 큰 소리로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한 소년에게 막대기로 심하게 얻어맞은 딸은 화를 내며 톨스토이에게 호소했다.

“저 심술꾼 녀석이 막대기로 나를 때렸어요.제발 저 아이를 좀 혼내주세요” 톨스토이는 빙그레 웃으며 딸을 꼭 껴안고 속삭였다. “아빠가 그 아이를 때려주면 소년은 너와 원수가 될텐데….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단다.너의 사랑이 전해지면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을거야” 톨스토이는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 딸에게 들려주며 말했다. “얘야.이것을 그 소년에게 갖다주렴” 그후 딸은 소년과 사이좋은 친구가 됐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사랑은 바윗돌같은 마음도 녹인다.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삶 속에서 매일 행복을 발견한다.

 

마음속의 평화
 외국의 잡지에 이런 실화가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를 잃은 여인이 전사 통지서를 쥐고 비 오는 날 저녁 동리 강에 있는 큰 다리를 실의 속에 거닐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끝내 약혼자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마악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나 팔을 급히 잡더니 "여기는 추우니 우리 다리 지키는 조그만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난로가 있는 그 사무실로 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통곡하는데 그 사람이 아무 말하지 않고 두 손을 잡더니 "하나님, 이 여인에게 실의를 딛고 일어설 평화와 소망과 용기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여이는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삶의 소망과 의욕을 느꼈습니다. 조금 후 이 사람이 인자하게 웃으며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새 출발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 여인은 집에 돌아왔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 다리지기가 너무 고마와 다시 인사하러 그 곳에 갔더니 사무실도 그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비로소 그 다리지기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새 출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의 평화 -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이 평화를 얻고 모든 정신적 곤고를 극복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첫사랑의 마음으로
몇 년 전, 양로원에서 총무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새해 첫날 시무식을 마치고 강당에 모인 70여분의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자녀들을 대신하여 세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했다. 그때 그 지역내에서 규모가 큰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 기관장 일행이 방문하셨다. 이들은 방마다 방문하며 어르신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린 후 소정의 금액을 난방비로 기부하시고, 다른 시설에 계신 외로운 분들을 만나기 위한 계획으로 그 일행은 떠났다. 한 해를 시작하
면서 소외된 자를 우선으로 문안하는 정성어린 사랑이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교회에는 형편에 따라 구제를 위한 예산이 있고 또 이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형식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후원금품을 전달하는 장면을 촬영해 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소외된 환경에서 쓸쓸히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복만을 확인하고 이기적인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남은 인생을 소외된 자들을 돕는 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갚겠다며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첫사랑의 마음을 회복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어떤 동기에서 시작하든지 이러한 방문이 외로운 어르신들에게는 크나큰 위안과 기쁨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미리 예고된 방문객이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자식 기다리는 마음으로 방문객을 기다리시는 모습은 아마도 전국 어느 양로원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는 IMF 한파로 인한 실직자 대책 마련으로 각계 각층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필자가 있는 기관에서도 이들을 위한 후원자들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과거보다는 후원금 모금이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하게 된다.
교회를 방문해서 후원을 부탁드리는 경우, 교회에 들어서면 사무실에 있는 사무원은 『목사님과 시간 약속하고 오셨나요?』하는 질문에 머뭇거리면 『시간 약속하시고 다시 찾아오세요』하며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운이 좋은 경우 부목사님이나 구제 담당자를 만나 사업계획을 말씀드릴 기회가 있는데
『목사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하고 얘기하면 그만일 때가 많다.
필자도 모태신앙인이고 주위에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통해 교회의 입장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뒤돌아 나오는 순간, 조금전 방문한 곳이 교회였는지 대기업의 경비실이었는지 잠시 혼란함을 느끼게 된다.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새해 첫날 시설방문으로 한 해를 시작하셨던 그때 그 목사님 일행이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교만한 마음
일본 동경 중심부에다가 한국 유학생과 재일동포 학생들을 위해서 기숙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돈많은 실업인들을 초청해서 그 계획을 설명했더니 “아.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인재는 키워야 합니다”하고 모두 동의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인 20여 명의실업인들에게 “20분의 일씩 자금을 헌납하지요” 했더니 모두들 “아니요.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내가 혼자 몽땅 지어드리지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숙사는 십 년이 넘도록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혼자 하겠다는 겁니다. 이 영웅심, 이 썩은 영웅심, 누구의 이름이 나면 무엇합니까. 교회에서까지 이런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교포들이 멸시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구제할 줄 몰라서 입니다. 각 부인회에서 전부 돕는데 한국 사람만 유독 땡전 한 푼 안 내려고 듭니다.
흑인들에게도 미움받는 것, 그들의 지역에서 실컷 돈 벌어서 전혀 그들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백인 지역에서 호화롭게 산다고 흑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이 구제는 어느 누구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힘들이 많이 모아져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서 구조적인 불행을 우리가 구조적으로 도와야 하고 구조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영국 트렌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꼭 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눅 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 14:1-25).

 

관용의 마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 빈치는 그림을 구상하면서 가롯 유다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가롯 유다를 삼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자기가 미워하여 가롯 유다로 그린 그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서 그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내가 실상은 당신의 얼굴을 가롯 유다의 얼굴로 그렸는데,나머지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왔소." 그러면서 친구에게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할 때는 위대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 니다.

 

마음의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9,10.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사 48:4.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 3:7,8.

당신은 "곰"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 "미련하다"라는 말이 떠오르시지는 않습니까 ? 실제로 곰은 무척 고집스럽고 미련합니다. 때문에 사냥꾼들은 곧잘 곰의 미련함을 이용해 사냥을 합니다. 곰은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닙니다. 이러한 습성을 아는 사냥꾼들은 곰이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맹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곰은 어김없이 그 길로 지나 가다가 커다란 돌맹이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도 곰은 결코 옆으로 돌아가거나 고개를 숙이고 그 길을 통과하려 하지 않습니다. 미련하고 고집 센 곰은 다시금 뒤로 물러섭니다. 그리고는 먼저보다 더 거센 속도로 달려와 머리로 돌을 들이받습니다. 결국,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곰은 죽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목이 곧고 강퍅하고 미련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련한 고집을 얼마나 많이 내세워 왔던가요 ! "주님, 목이 곧고 마음이 강퍅한 저희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며
1971년 부흥회 인도를 위해 워싱턴 주의 시애틀로 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착륙 준비를 하
던 기장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비행기의 앞바퀴가 제자리에 정착이 되면
불이 들어와야 되는데 불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종사들은 앞바퀴가 잘나와 있는
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장은 연료가 거의 떨어질
때까지 상공을 돌다가 비상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구급차들이
줄을 지어 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고 승객들은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기장
의 마지막 점검을 들었습니다. 만일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의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승객들은 그 절박한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며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그의 영향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우리의 생각, 동기, 인간 관계, 우리의 꿈까지도 간섭하시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마음의 비타민
명나라때 주권이 저술하여 14세기말에 간행된 양생서인 ‘구선활인심방’의 기록을 보면 “옛적에 신성한 의사들은 미리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병이 나지 않게 하였는데, 요즈음 의사들은 단지 사람의 병만 치료할 줄 알고 마음을 다스릴 줄은 모르니,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쫓는 것이며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나타난 증상만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일”이라고 꼬집고 있다. 또 태백진인은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니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아야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염려와 헛된 잡념과 불평을 다 없애버리고 평생 저지른 지난 날의 죄과를 뉘우치게 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면 마음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깨닫고 모든 문제가 다 풀리게 되면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지고 병도 낫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스스로 낫게 된다. 이것은 진인이 수양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려서 병을 치료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했다.
병들기 전에 고치는 것을 치심(治心) 또는 수양(修養)이라 하고 병든 다음에 치료하는 것을 약이(藥餌) 또는 폄설이라 한다. 때로 육신의 보약이 필요하듯 마음의 비타민도 필요하다. 흘러가는 강물을 들여다보듯 마음을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명약은 ‘마음의 즐거움'
고혈압의 원인 물질인 리닌을 최초로 분리시킨 무라카미 가즈오 교수는 과학을 낮의 과학과 밤의 과학으로 구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이성적으로 논증이 가능한 분야를 낮의 과학이라 했고 논증이 불가능한 감성적 분야를 밤의 과학이라 했다. 즉 직관과 영감의 비중이 높은 의철학 분야도 과학의 범주에서 논했던 것이다. 일각에서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한의학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한의학은 미과학이 아닌 비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가즈오 교수의 과학적 논리로는 밤의 과학에 해당하는 것이다.실험실의 현미경만 과학적 도구는 아니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예측하며 자연의 움직임을 관조하는 망원경도 과학적 도구임에 틀림없다. 부분과 전체의 차이이다. 동서의학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때이다.
동양의학이든 서양의학이든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학문 영역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신개발 의약품이 쏟아져도 삶을 연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질병의 끝은 죽음이다.그래서 모든 인간이 질병을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성경은 건강안내서나 의학서적은 아니지만 진리이기 때문에 삶의 둘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코슨 교수는 마음의 즐거움이 좋은 약이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불치병이었던 자신의 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웃음생리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교회를 위하는 마음

성경: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26절)

흔히 가까이 있을 때는 그리운 것을 모르다가도 떨어지면 그리운 것을 느끼는 것이 인정인가 봅니다.
얼마 전에 동료 목사님들과 함께 특별히 성장하는 세계의 여러 교회를 심방하는 기회를 만들어 50일간의 여정으로 본국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 여행이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목회생활의 하나의 새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면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뿐더러 한국교회를 위한 다소의 기여가 된다면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어떤 때는 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가정을 더 생각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한국도 복음이 들어온 지 100 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받기만 하던 교회에서 주는 교회가 되어야겠는데 우리의 사명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문자 그대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해야 하겠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의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교회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말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위치는 땅에 내버려져 짓밟히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서로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서 자신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 달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마음
성경: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갓난아기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만 의지합니다. 그 순진한 눈으로는 오직 어머니만 바라봅니다. 젖을 빨 때는 마치 생명의 물을 먹듯 온 정성을 다합니다. 아기는 결코 자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마음이요, 벌거벗은 인간 본연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 생각과 뜻에 하나님이 따라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천국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마치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겐 천국이 주어지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 기도: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감사하는 마음
1860년 9월 어느 날 미국 미시간 호수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 4백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누가 좀 도와줘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근처 대학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스펜서는 소란스러움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던 그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수로 달려나갔다.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호수는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는 용감하게 호수로 뛰어들어 열일곱 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한 뒤 온몸에 힘이 빠져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너무 무리한 탓에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누운 지 7년 뒤 그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한 신문사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물었다.

"그 날 당신이 구조해 준 열일곱 명의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십니까 ?"

창백한 얼굴의 스펜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에 가볍게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열일곱 사람 중에서 내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한 소녀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내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감사의 카드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 받으며 해마다 기쁨으로 기다리고 지냈습니다. 나머지 열여섯 사람에 대한 원망도 잊은 채..."

 

천사를 부린 마음의 기도
[피난처를 쓴 화란의 유명한 코리텐 붐 할머니가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한번은 공산권에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공산권을 기독교를 철저히 박해 했으므로 공항에서의 검색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녀는 성경책이 가득 들어있는 큰 가방을 가지고 검열 대열의 맨끝에서 두 번째 줄에 서 있었습니다.

검색원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소지품을 뒤지기도 하면서 한사람 한사람 통과시키고 있었습니다. 점차 그녀가 검색당할 차례가 다가왔고 그녀의 마음은 뭐라고 대답할까? 주님을 위해서 거짓말을할까? 아니야 거짓말은 하면 안돼 ! 그럼 어떻게 하나 ?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천사를 보내어 저를 도와 주옵소서" 그녀가 기도하고 있는동안 자기 뒤에 서있던 사람이 새치기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맨끝에 서게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검색당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검색원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아이구 할머니 ! 힘드시겠네요 할머니가 마지막 이시니까 제가들어다 드리겠어 요 " 그리고는 그 가방을 검색원이 직접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20세기에도 천사는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보십시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게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여 기도 하셨을 때에도 천사가 나타나 그분을 도왔습니다.
"사자가 하늘로 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눅22:43).
소돔성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때 천사들이 롯에게 나타나 롯을 재촉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창19:17).

다니엘이 사자를 속에 던지움을 받았을 때에도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다."(단6:22)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사합니다.

@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감사의 마음
「일본의 테레사수녀」로 불리는 다마키여인은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남편의 마음

지난 해 5월 결혼한 저는 모든 여자가 그렇듯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한 달만에 남편의 직장, 카드대금, 게으른 성격 등 남편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속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고도 빨리 직장을 옮겨 빚 먼저 갚을 생각은 않고 덜컥 결혼을 한 남편, 또 그걸 모르게 하려고 카드로 대출한 돈으로 생활비를 갖다 준 그가 너무 한심했습니다.
그 뒤 우리 부부 사이엔 싸움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전 남편의 잘못을 하나하나 끄집어냈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심했다 싶으면서도 그래야만 남편이 정신을 차린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잦은 싸움에도 남편은 한 번도 술에 취하거나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화가 폭발한 저는 제발 무슨 말이든 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때 껏 아무 말 않던 남편이 이야기를 쏟아 냈습니다.
남편이 다니고 있는 회사는 외삼촌이 경영하는 회사로, 건설 경기가 안 좋아 직원 다 내보내고 지금은 남편 혼자 공무며 총무까지 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것과 그만두더라도 외삼촌이 잘 되는 걸보고 그만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지요. 그날 저녁은 수건 한 장이 다 젖도록 펑펑 울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정신차리게 한다는 핑계로 내뱉었던 그 말들이 왜 그리 후회되고 미안하던지...
이런 철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평생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우리 신랑. 그 맹세를 아주 잘 지켜 주고 있는 우리 신랑 이동운 씨. 정말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
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호소한다. 어쩌면 우리 문제의 핵심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데 있다.내가 알고 있는 한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냥 들어주는 일’이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이 잘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세심하고 주의 깊게 받아들여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는 일’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의 위력을 과소평가 하거나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참 안됐군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 한마디의 위력이 사실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야 내 자신 깨닫게 됐다.
내가 상담했던 어떤 분은 그 분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이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도리어 상대의 얘기만 듣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불평했다.
대개의 경우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고통 그 자체보다도 그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고통이 격감되어졌다고 고백한다. 단지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눈물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종종 대하게 된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 티슈를 건네주는 일조차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오는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된 후로는 그저 듣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울고 싶은 만큼 다 울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거기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매우 쉽게 느껴질지도 모를 이 일을 배우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배워온 대부분의 지식들과는 반대적인 것이었다. 한때 나는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데 자신이 없거나 대답할 말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따뜻한 사랑으로 침묵하며 그냥 들어주는 일은 청산유수의 말보다도 훨씬 치유하는 힘이 클 뿐 만 아니라 서로를 깊이 연결시켜준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 순종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하신 일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와 마음으로 그리고 삶 전체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것과 그의 전기에 나오는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를 믿거나 의지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을 포함합니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당신이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거하기 위해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용납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해주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구원해달라고 그분께 기도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10:13). 당신이 부르짖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더라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순종하고자 하는 새로운 태도가 없다면, 그는 구원받을 만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2003-02-03 14:18:40   read : 4

믿는 자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큰축복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 오늘 본문에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
절),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고 세번이나 명령형으로 기록학 있다.
성도가 감사하는 마음이 넘칠때 얼굴에 빛을 가지고 세상의 빛이 되며 확신있게 복음도 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나

1. 구원의 확신에서 근본적인 감사가 온다.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라고 명령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도의 감사는 무조건적이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과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내 가정에 대하여 감사하 고 있는가? 나는 나의 부모, 나의 자녀,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념다 친척 그리고 나와 친한 모든 사람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는가?
나는 교회, 국가에 대해서도 감사하는가?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성도이다.
그러면 이러한 무조건적인 감사는 어디에서 오는가?

2. 구원의 확신에서 온다.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택함을 받았다"라는 확신에서 근본적인 감사가 나온다.
12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잤민낮"이라고 했다. 현재 나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장차 들어갈 천국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다.

3. 남을 용서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
13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하셨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꽁하게 얼어붙은 마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나올 수 없다.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용
서하지 않으므로(마6:15) 영혼의 평강은 없고 또 기도잤 문도열리지 않는다. 남을 용서하면 자기도 자유케 된다.

4.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생각을 따를 때 감사하는 마음이 넘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고했다. 성도의 평강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자유하고 또 성도를 온전히 지배할 때, 성령님의 평안이 곧
성도의 평강이 된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앞세울 때는 육체의 소욕이 주장하게 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생 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마음의기쁨

영국에 재치와 농담으로 유명했던 카리니라는 코메디언이 있 었읍니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곤 했읍니다.
그가 나서서 이야기하면 아무리 무뚝뚝해서 웃음을 모르던 사람도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엔 기쁨이 없었기 때문에 남은 웃겼지만 자신에게는 심각한 병이 들었읍니다. 그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읍니다.
오랜 시간 환자와 상 담한 끝에 의사는 환자인 카리니에게 말했읍니다. "선생님의 병은 마음속에서부터 우울한 것으로 축적이 되어서 그러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정말 기쁜 마음으로 웃을 수 있으면 그 병은 낫겠는데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 병을 고칠 수 있겠읍니까?" "예,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

미있는 농담을 잘하기로 유명한 카리니를 아시죠?" "예!"

"그분의 코메디를 한번 들어 보세요. 그분이 못하면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카리니가 의사에게 "선생님,제 가 바로 카리니인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이
없는 일입니까? 자신이 우울한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섬기는 마음
한때 성공회의 감독이 되기를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이 구세군에 지원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부스 장군은 그의 지원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그에게 겸손한 마음을 키워 주기 위해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낙심한 브랭글은 속으로 ‘내가 군화나 닦으려고 내 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무식한 어부들의 발위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


 

마음으로 차린 밥상
성 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 :28)


노점상 이씨는 사고를 당해 두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입니다. 그는 수세미와 장갑, 바늘, 실 같은 물건을 길바닥에 펼쳐놓고 팝니다. 하루벌이는 1만 5천원 정도입니다. IMF한파까지 겹쳐 장사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자 배가 고파왔습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오늘 점심은 건너뛰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한 40대 아주머니가 머리에 쟁반을 이고 다가왔습니다. “저 … 식당에서 밥 배달을 다니는데,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서요.” 머뭇머뭇 입을 연 아주머니는 이씨가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진작 찾아보려 했는데 늦었다고 했습니다. 보자기를 걷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청국장, 김치, 시금치, 미역 무침이 있었습니다. “추운데 어서 드세요.” 뜻밖의 밥상을 받은 이씨는 밥과 반찬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다음에 한번 들르겠다’며 식당 이름을 물었지만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주고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가 가진 것은 비록 작지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마음을 신문에 기고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자기가 손수 지은 밥상으로 돈보다도 더 귀한 마음의 사랑과 선물을 준 그분을 이씨는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예수님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잊고 삽니다. 내가 힘들어 기도해서 응답을 주실 때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셨습니다. 때때로 마주치는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낮은 마음
나와 절친한 치구 가운데 군에서 고급장교로 있다가 예편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군에서 지휘관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부하에게는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수 많은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오랫동안의 군 생활이 몸에 배인 그가 사회에 나와 일을 하니 갈등이 많았습니다. 갈등이 쌓여짐에 따라 그는 입버릇처럼 "그만 두어야지. 그만 두어야지"
하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간부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했는데 공개적으로 상사로부터 좋지 않은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리스챤인 그는 실의에 빠져 번민하다가 교회에 나와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한참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사람아 네가 아직도 군인이냐? 너 아직도 고급장교라고 착각하고 있구나. 너는 지금 민간인이야. 너는 보통 사람이 당하는 일을 당했을 뿐이다. 황제가 모욕을 받는 것처럼 상심하지 말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 제대를 한 사회인인데 자꾸 군인으로 생각했었구나 나는 누구에게나 비평도듣고 무시도 받을 수 있는 인간이다. 마음을 낮추자." 그가 이렇게 생각하자 그의 마음 속에는 실의와 고통이 사라지고 기쁨과 소망이 넘쳐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높은데 마음을 두지 않고 낮은 데 마음을 두면 모욕과 멸시를 받아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지고 낮아진 사람을 찾으십니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

우리 대부분은 물질적인 복을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좋은 것들을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면서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가지고 쉽게 불평한다. 몇 년 전 우리 부부가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할 당시, 우리 월급은 한 달에 겨우 몇 백 달러였는데, 그것은 우리 네 식구가 살기에는 분명히 충분치 않은 액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으므로 우리는 늘 감사하며 기뻐했다. 이에 어떤 선교사가 우리 가족이 감사하는 말을 듣고 톡 쏘아붙였다. “이봐요, 루이스 씨! 당신은 남미 출신이니까 모든 것이 대단해 보이겠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그 돈으로 살기 힘들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고 지금까지도 그 사람의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기에 “주님, 건강과 음식과 옷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기보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했다. 지금 그는 이혼한 후 하나님을 섬기는 선교 사역 대신 자신의 꿈을 좇고 있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큰 죄라고 믿는다. 당신이 지금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있다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성공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신의 가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는 것을 잊는다면 그것은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복 또한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 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A. 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토레이 박사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본문: 시100:1-5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Ⅰ. 감사하는 마음
우리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마음에 감사가 넘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자녀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100편은 우리성도들이 감사해야할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강조하는 감사는 어떤 내용입니까?

Ⅱ. 감사할 이유


1 물질적 축복을 감사함
성도는 매일 일용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 공기, 물 의복 살집을 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과 자녀와 부모형제를 인하여 감사하고 친구들도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감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휴식과 잠을 주신 것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또 나의 감정, 기분, 웃음과 울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눈, 코, 귀, 입, 손발을 주셔서 활동할 수 있게 하심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모든 축복을 매일매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삶에 좇기다보면 이 모든 축복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 받은 은혜에 더욱 감사하면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2 영적축복을 감사함
축복중의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주권 적인 능력으로 살려주시고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이 감사중의 감사입니다. 구원은 살아서는 죄로부터 구원과 죽어서는 지옥으로부터 얻는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또 교회를 통해서 성도의 교제를 허락해 주심도 늘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인 평안을 누리게 하심도 변함 없는 감사의 조건입니다.

3 인생의 목적을 주신 것을 감사함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이 땅에서 사는 이유와 사는 목적과 사명을 분명히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잊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서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주님을 높여드리고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 귀한 삶은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내 인생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때로 육신 적인 고통이나 환경 적인 곤란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세어보면서 감사하는 자가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하루를 열고 감사로 하루를 닫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Ⅲ. 적 용 : 내가 매일 누리고 있는 축복들을 세어보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다.

Ⅳ. 합심기도 : 주여!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찬송함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는 마음
월간 낮은 울타리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가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댁의 가장은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유명한 병원 원장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도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사모님과 딸도 인정이 많고 덕 있는 분들이어서 저는 남의 집 살이 하는 것 같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 가족 모두가 너무도 고마워 저는 정성을 다해 그분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저는 뜻밖에도 그 댁 아들로부터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과 심한 충격으로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주인댁 부모님도 당연히 반대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부모님의 승낙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의를 다하여 꾸준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셨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저에게 아버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아내로 택하고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우리에게 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의사인 남편의 아내답게 되는 것이고, 병원장의 며느리답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 되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정부 처지에서 그 댁의 며느리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저를 선택한 남편과 받아 준 시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이전에 제가 가정부로 일하던 떄의 의식이나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며느리답게 그 남편의 아내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뿐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작,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가문이 원하는 며느리와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이 함께하는 과정이었으나, 오직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모든 가족이 저를인정해 주고 그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이 오늘도 저를 기쁨과 보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도 힘이요, 저의 재산입니다.
성경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라고 하였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12)고 하였습니다.
오래 전 미국의 햄크스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광산에서 일하다가 크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눈이 멀게 되고 두 손이 떨어져나가 심한 불구가 된 그는 매우 절망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금식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한다는 자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교수는 청중들에게 "사람마다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폐회 후 햄크스는 그 교수를 만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나 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말없이 그를 쳐다보던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하지만 아직 입과 귀와 발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이 없더라도 나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온 햄크스는 이 한마디로 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자마자 곧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고는 자신에게 눈과 손만 거둬가고 입과 귀와 발을 남겨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후 그는 스텐포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은 주변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사람에게 희망을 품게 함으로써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또 다른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남대서양 연안에 있는 파타고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하다가 죽은 알렌 가디너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일생을 무서운 고통과 고독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해변에서 뒤집혀진 배 옆에 죽어있는 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오랫동안 기록해 온 것으로 보이는 다 낡아빠진 일기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그가 지금까지 당한 모든 곤란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상처, 고독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 마지막에는 그가 죽기 직전에 겨우 붓대를 움직여서 간신히 쓴 마지막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린다. 이 생각으로 나의 머리속은 가득 차 있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희망과 감사가 가득찬 사람에게는 죽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7),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하였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하였습니다.
감사는 기독교인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30:4)

 

절망뒤의 두 마음

오늘 저는 두 사람의 인생을 비교해봅니다.
100여년 전 미국에 헨리 콤스톡(Henry Comstock)이란 땅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와 엉겅퀴가 무성한 척박한 산을 고작 1만달러에 팔았습니다. 그는 손에 지폐다발을 들고 기뻐했습니다.
몇년 후 그 산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척박해보이기만 하던 산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금광이 발견된 것입니다. 매장량이 무려 5억달러를 상회했습니다. 콤스톡씨는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한탄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한달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14년 한 발명가의 집과 연구실이 전소되는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200만달러가 넘는 전재산을 날린 그의 인생은 잿더미처럼 공허했습니다. 이 발명가의 나이는 67세. 사람들은 재기하기에는 너무 늙어보이는 그를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위대한 발명가는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낡은 건물과 시설에 연연하는 내 좁은 소견을 깨우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새 것을 주시기 위한 방법이랍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그는 화재를 딛고 일어서 예전보다 더욱 훌륭한 연구실을 지었고 예전보다 더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콤스톡씨와 에디슨은 절망 앞에서 상반된 선택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실패 인생’이었고 다른 사람은 한번의 고난을 오히려 새 출발의 기회로 삼은 ‘도약 인생’이었습니다. 에디슨에게는 시련이 곧 새로운 출발의 시그널이었습니다.
인생은 시련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속적 가치의 포만감에 취해 하나님을 망각한 인생은 언뜻 풍요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없이 허무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느날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위대한 선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계속 ‘눈을 들라’고 명령하십니다.롯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바라본 시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쪽은 소돔과 고모라, 한쪽은 가나안을 앞에 놓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합니다. 롯의 선택의 기준은 아주 현실적이고 사특합니다. 과연 어느 땅을 선택하는 것이 풍요를 가져다줄 것인가, 어느 땅이 영화를 보장할 것인가. 롯은 세속의 잣대를 사용해 선택의 기준을 삼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과연 어떤 선택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을까,하나님이 기뻐하실 선택은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형제여,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한 선택의 기준을 가진 사람입니다.“이 선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아니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인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당신은 혹시 한국의 톰스톡씨는 아닌지요. 혹시 어리석은 선택으로 가슴을 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가슴아픈 선택으로 인해 당신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선택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끔 인생의 낡은 연구실을 모두 태우시고 새것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인생의 잿더미,척박한 엉겅퀴산에 저장된 금광을 찾으십시오. 축하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임신했을 때가 40,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다. 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마침 연말과 겹쳐 무엇인가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기 쉬운 때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낮은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하는 마음
매일 늦게 돌아오고 일찍 출근하다보면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든 후 아무리 늦게 들어왔다고 해도 아이들의 침상에 들어가 이마를 쓰다듬어 주거나 뽀뽀를 해주십시오
아이들이 잠을 자고 있다고 해도 무의식 속에 사랑의 감정이 이입되는 것이랍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성격이 밝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답니다
식물도 매일 사랑하는 마음을 5분씩 보내주면 그 옆의 다른 식물보다 월등히 잘 자란다고 하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잠 27:15)

 

감사하는 마음
발명왕 에디슨이 연구를 위한 약품을 들고 기차에 올랐다가 그 약품이 쏟아지는 바람에 기차에 불이 났습니다.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그만 귀가 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을 잘견디며 세계 제일의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한다. 딴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니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는 것을 모두 지니고 사는 삶, 그것이 풍요한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그는 좌석에 혼자 앉아서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게 되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덩치가 엄청나게 큰 흑인 여자가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를 다섯 명이나 데리고 자기의 옆자리에 비집고 앉는 것이었다.그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과연 그는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하나님,지금 제 옆에 앉은 이 뚱뚱한 흑인 여자가 저의 아내가 아닌 것에 대해 저는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깊이 생각하면 그 가운데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누구를 생각하든,무슨 일을 하든 간에 좋은
면,밝은 면,아름다운 면을 생각하도록 노력하자.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감사하는 곳에 인생의 즐거움은 함께 하게 마련이다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일 정도로 선생님의 존재를 크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라도 하면 그 날은 무척 기분 좋은 날이 됩니다. 그런데 이름을 불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 * *야, 이 출석부 좀 교무실에 갖다 놓
을래 ? * *야, 교무실에 가서 분필 좀 가져와라"는 식의 심부름을 시켰다 고 해 보십시오. 순간, 기쁨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숨이 머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치 발에 발동기라도 달린 것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심부름을 갔다 옵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선생님을 향한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심부름을 얼마나 감격스럽게 감당하고 계신지요 ?

"주님, 선생님이 시키는 심부름에 숨이 멎을 듯한 기쁨으로 반응하는 아이들처럼 주님의 말씀에 그렇게 반응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한 방문자는 스승앞에 자기의 고민거리를 한참 이야기하고는 다시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문다의 찻잔에 차만 계속하여 따랐다. 차는 찻잔에 흘러넘쳐 앉은 자리까지 홍건히 젖었다.
스스로의 아야기에 도취되어 떠들어대던 방문자는 놀라 스승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잔이 넘쳐서 흐르는데 어찌하여 자꾸만 따르시는지요?" 그제서야 스승은 입을 열였다. "이 찻잔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은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르쳐 드린다 해도 다 넘쳐버릴 것입니다.
"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장래의 길을 갈 때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교만과 질투로 빈틈이 없다. 돈이 많아서 예수를 못믿는 사람들이 많고, 사업이 잘되어 주일을 못지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지식 때문에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예수 앞에 나올 때는 없는 것보다도 있는 것이 죄가 되고 참된 축복의 거침돌이 되는 일이 많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이해하는 마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밴드빌 대학 바로 건너편에 유명한 피바디 교육대학이 있었읍니다. 그 피바디 교육대학을 일으킨 피바디 선생님의 일대기 속에 퍽 감명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읍니다. 피바디 선생님은 젊었을 때에 국민학교 교사로 있었읍니다.

그가 국민학교 2학년생을 담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읍니다. 하루는 교육 계획에 따라 자기네 반 아이들에게 박물관 유물을 구경시켜 주기로 계획하였읍니다. 이 계획 때문에 피바디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위해서 미리 알아 두어야 했기에 사전 답사를 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을 지키고 있던 수위는 하루 종일 앉은뱅이로 돌아다니며 메모를 하고 있는 피바디 선생이 정말 앉은뱅이인 줄 알았읍니다. 그런데 나갈 때 보니까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수위는

“저는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앉은뱅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성한 사람이었군요! 왜 그렇게 무릎으로 앉아서 돌아다니십니까? 무릎을 그렇게 꿇고 다니면서 유물을 보시는 분은 처음 보았읍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읍니다. 그러자 피바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내일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 와 유물을 구경시켜 주려 하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키가 다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그 눈 높이에서. 즉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 시각에서 유물을 보았다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교사입니까! 이 피바디 선생은 아이들의 입장에 자기를 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외모와 마음
"내용이 없을수록 겉모양은 더욱더 화려해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예로 중세 암흑시대의 교회 건물들을 보십시오. 상당히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그러나 그때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도외시되었던 때도 없었습니다. 요즘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화려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옷과 좋은 구두와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님으로써 스스로의 약점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최면에 빠져 자신은 멋있고 도덕
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모양이 아무리 깨끗하고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심중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 마음 가운데 있는 더러운 생각을 감찰하십니다. 외모보다는 우선 성령 충만한 생활로 당신의 마음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희의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정결키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심.걱정.번민 등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오늘까지 무척 괴로운 일을 당하기도 하고, 칼날로 위협당한 일도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어떤 때에는 얻어맞고 아래위의 이빨이 부러지기도 하고 하여, 그 때문에 나는 때때로 생명의 위험의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예수의 제자 바울 역시 그러했다. 그는 신변에 위기가 닥치면 주 예수의 모습을 우러러 사모했다. 그리스도는 `바울아! 힘을 내어라`고 격려해주셨다.

앞이 막막할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일그러진 마음을 또 한 번 돌이켜 보고 마음을 돌리는 일이 우리들의 종교이다.

`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신기한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들의 속죄를 위해 못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앙모하여라!
우리들의 이 마음가짐을 맛보게 된다면 온갖 근심과 걱정 불경기도 충분히 타게되어질 것이다.`

 

마음과 건강
마음과 건강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 최근호는 밝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잿빛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보고서를 게재, 눈길을 끌었다. 이 보고서에 따 르면 프랑스에서 조사된 건강실태의 경우, 북부 칼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부 피레네에 사는 주민들보다 소화계통의 암이나 간경변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 자살건수도 햇살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 어디 환경 뿐일까. 마음이 밝 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마음

성경: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잠19:1)

영국에 메리 존스라는 시골 처녀가 있었습니다. 메리는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돈을 모으는 것은 한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평생 소원은 성경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요." 마침내 메리는 성경을 살만큼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려 40Km를 달려가 성경을 구입했습니다. 메리에게 성경을 판 사람은 그녀의 순수한 신앙,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성경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관 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영국 성서 공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향한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정직과 성실로 부요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큰 행복을 가져오며, 우리의 인생을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의 부요보다 는 정직과 성실을 우리의 삶의 자원으로 하여 참으로 행복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 묵상: 당신은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면서 대하고 있습니까?


선한 마음

성경: 잠22: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바이얼린 교수였던 골드슈타인(Goldstein)은 소련으로부터 망명온 음악인이었습니다. 그의 동생도 피아노 교수였습니다.
그는 위암으로 두번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를 거절한 채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마취를 하게되면 암기해둔 악보가 망각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기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그는 자기 손으로 부고를 만들어 화제를 남겼습니다.
부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화를 가져오지 마시오.
둘째 조화대신 부의금으로 해주시오.
셋째 부의금은 현금으로 해주시오.
넷째 모아진 부의금은 전액 장애자 시설을 위해 써주시오.
다섯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행구좌로 부의금을 송금해주시오 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드슈타인은 생전에 그가 연주했던 음악보다 더 멋지게 아름답게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며 마무리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오늘도 선하게 살아가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을 비운 사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 고향 땅 친척들과 조상들이 살아 온 정든 집을 떠나
의지할 곳 없는 낯선 타향 땅에서의 첫날 밤을 맞이했을 때의 바로 그 마음을 가진 모습, 곧 그것이 곧 마음을 비운 사람의 참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에게 이 명령이 떨어진다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떠날 수 없다면 혹 당신의 손에 너무 많은 것이 지금 쥐어져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시는지요?
떠날 수 없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많이 감사해야 할 사람입니다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누가복음 9:6 )


우리들의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은 상처받는 것에는 민감하고 상처를 주는데는 둔감합니다.
창피를 당하고 화가날 대 상대방이 태연한 것을 보면 우리들의 마음은 한층 더 분노에 타오르게 됩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창 피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해도 자칫 부주의하여 상대방이 상처를 입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설령 그것을 느꼈다해도 자기의 부주의나 실수를 변명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 경멸감을 품는 때 가 있습니다.
"쳇! 그딴 일에...." "마음이 그렇게 좁아서야... 사내 자식이...." 우리 가운데는
유모어감각이 있어 시시한 화젯거리로서
도 주위사람들을 폭소케 만드는 재간있는 이 가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자신에게는 더할수 없이 재미있고 우수웠던 일 일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제 대로 그것을 전달 못하기 십상입니다.
열심히 자기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 자 리에 꼭 판을깨며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얘들아? 우습냐? 우리... 그래도 한 번 웃어주자. 웃어줘!" 그릇된 심성입니다. 자신에게 우습지 않으면 차리라 가만히 있을 일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창피를 줄 려는 의도가 설령 없었다 할지라도 그런식의 빈정거림은 상대방을 말할 수 없이 민망하게 만들고 상 처를 줍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빈정대는 습성은 즉시로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헤아려주는 마음과 겸허하고 따스함이 없다면 그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는 사람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보약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음악 지휘자’로 나타났다.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이는 스트레스와 통증을 해소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그는 볼펜과 젓가락을 흔드는 것도 동일한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다.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열광적으로 지휘를 하는 ‘지휘체조법’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평균수명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음주벽이 심했던 베르디와 스트라빈스키도 미수(米壽)를 누렸다.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5세,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89세,카라얀은 81세,아드리언 볼트는 93세를 누렸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장수한다.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사명자의 마음
신앙인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에 많은 교훈은 바로 인생의 마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성경 속에는 신앙생활의 근본이 바로 마음을 지키는 일임을 여러 사람,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요 영혼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대개가 생활의 문제 보다는 그 생활의 근본이 되는 마음의 문제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의 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한 후에 가장 먼저 받는 보상은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에 채워 주시는 기쁨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대부분은 인생의 마음에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기쁨, 감사, 위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도 다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복이다. 천국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복이요 천국이 너희 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먼저 마음이 변해야 한다. 마음이 변하지 않고서 외적 삶이 변하는 것은 참된 변화가 아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주님은 생활의 잘못을 책망한 것보다 마음의 삐뚤어짐을 책망한 것이 훨씬 많다.

인생의 기쁨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살 때에 체험하게 된다. 한평생을 살아도 사명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큰 기쁨을 모른다. 엄격히 말해서 자신의 사명을 알지 못하면 삶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명을 아는 날이 비로소 자신이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내 자신이 사명을 따라 산다는 믿음이 있다면 없어도 괴로와도 기쁨으로 살 수 있다. 사명이 없는 삶이란 삶의 생명력을 잃어 버린 것이다.

성도는 주인공 자리에 서면 안된다. 사명을 저버린 것이다. 주님만이 주인공이다. 어디서나 주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 드리는냐 인간의 것을 받아 드리느냐의 차이이다. 세상은 항상 인간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성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단순해야 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것을 받아 드리면 단순하다. 이것을 받아 드리지 않을려고 하다보면 인생은 스스로를 복잡한 문제 속에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 사명자가 단순하게 사는 이유는 삶의 방법이 단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법 이외에는 생각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국경을 접한 상태에서 계속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바로 그 경우다.두 나라는 1899년 국경분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양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사랑만이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전쟁과 증오는 후손들에게도 피와 살상을 유산으로 물려줄 뿐이다”

국민들은 양국 지도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그리고 대포를 녹여 양국의 국경인 안데스산맥에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워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놓았다.“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드시느니라” 두 나라는 100년이 지난 지
금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사랑은 마음 속의 증오를 녹이는 강력한 위력을 지닌다.
사랑은 대포를 녹여 평화의 상징을 만든다.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내부의 동기인 ‘사랑’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이 휴가를 얻어 어느 시골에 머물고 있었다.하루는 암소를 외양간에 집어넣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
울였다.그러나 암소는 뒷발에 힘을 모은 채 움직이질 않았다.아무리 힘을 써도 헛수고일 뿐이었다.에머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한 소녀가 암소에게 다가왔다.소녀는 암소의 콧잔등을 한참 쓰다듬더니 그곳에
얼굴을 부벼댔다.그리고는 부드럽게 암소를 끌고 외양간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에머슨은 그때 사람이나 동물의 마음
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동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리학자들은 내부의 동기를 ‘당근’(carrot),외부의 동기를 ‘막대기’(cane)라고 부른다.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항
상 내부의 동기에서 나온다.아내와 자녀와 동료를 윽박질러 행동의 변화를 얻어내려는 사람은 우둔하다.그는 다만 ‘시늉’
만을 받아냈을 뿐이다.내부의 동기인 ‘사랑’을 사용해야 상처받지 않는다.


칼든 강도를 감동시킨 따뜻한 마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 : 44)
지난해 10월 어느 날 한 청년이 한약 배달원으로 가장해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한약을 배달하기 위해 왔다던 청년은 느닷없이 강도로 돌변했고 시퍼런 칼을 들이대며 가정주부와 파출부를 묶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이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무릎을 꿇고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돈이 필요하다며 사정조의 얘기를 시작했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주인은 청년을 위로하며 안방으로 데리고 가 장농을 열고 안에 있던 금품을 꺼내놓으며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청년은 순순한 태도를 보이는 김씨의 행동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금품에는 손을 대지 않은 채 그 집을 나서려 했다
. 금품을 뺏기 위해 들어왔다가 포기하고 돌아서 가는 청년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이 들게 된 주인은 청년에게 밥을 차려주고 어머니의 수술비에 보태라고 320만원을 건네줬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영국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다.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다.그런데 한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 대답했다.
“참 기특한 죄인이로군.그에게 성경을 주어라.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다.그는 하루에 딱 한절씩만 성경을 묵상했다.성경의 절수가 무려 3만 1102절이니 그것을 모두 읽으려면 80년 이상이 필요했다.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다.“집에 가
서 성경을 읽어라” 암스트롱은 그 후 새사람이 돼 봉사의 삶을 살았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어느 날 빅터 프랭클 박사와 인간 속에 있는 여러 감정과 세력에 대해서 의논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유명한 정신과 의사와 묵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묵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에너지가 당신의 인생 속에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려라. 당신이 하나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속에 들어오실 것이며, 그로부터 영원한 에너지를 보충받아 가면서 당신의 행복한 사업도 완수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신부
샌프란시스코 사교계의 저명인사들이 성 베드로와 바울성당에 몰려 들고 있었다. 어떤 예식에서든 꼭 그랬듯이 신부는 질문을 받았다. "그대는 이 남자를 그대의 법적인 남편으로 맞이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목사에게 더듬거리며 이야기했다. "모르겠어요. 내 마음을 정할 수가없어요." 주례를 맡은 목사는 잠시 당황해하다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결혼은 무효입니다." 피로연은 취소되고 많은 돈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 모든것이 전부 결정적인 순간에 신부가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신부는 다시 결혼식을 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는 마음을 정했어요. 그 사람을 내 남편으로 맞아들이겠어요."


슬픈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코메디언이요 가수였던 로오더(Lauder)라는 사람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그래서 한 번은 그 친구가 어떻게 하여 그렇게 생활에 흔들림없이 잘 견디어 가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로오더는 "나 같은 경우를 당하면 사람들은 대개 술주정뱅이가  되든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리게 되고 아니면 하나님께로 향하든가 셋
중에 한가지를 선택하게 된다네." 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열었고 치유를 얻었다. 하나님은 그의 환경의 비극을 신앙의 승리로 변하게 해 주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5
감사하는 마음 5 성경 말씀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뻐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즐거워하는 마음,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은 전혀 생각지 못하거나 무시해 버리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모든 마음 가운데서 으뜸가고 제일 첫자리를 차지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간밤을 무사히 지내고 생명이 존재해 있는 새아침을 맞을 수있는 고마움을 잊기 쉽습니다. 옷을 입고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고마움을 잊기 쉽습니다. 이토록 작은 일, 일상 생활면에서부터 모두가 감사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잊기 쉬운 것입니다. 버스를 탔을 때 우리는 흐뭇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올라타면 금방 자리를 양보합니다. 얼마나 소중한 모습입니까? 프랑스의 철학자인 루소는 "감사는 마땅히 지불받아야 할 의무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대할 권리는 가질 수 없는 의무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마운 친절을 받았을 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쯤은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성경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우리의 주변에는 오로지 감사할 일 뿐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면 누구나 그것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한 일들을 새삼스럽게 발견해야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충만해 있는 감사의 일들을‥‥‥


겸허한 마음
사람들은 누구나 말하기는 좋아하되 듣기는 싫어합니다. 자기 주장을 내 세우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남의 의견을 듣는 데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사정과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보면 인간다운 훈훈함과 친근감을 느낍니다.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흥미와 열심을 가지고 들어주시는 선배 목사님을 대할 때는 훈훈한 애정을 느끼며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신학적인 입장은 전혀 다르면서도 때때로 전화를 걸고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모 교수의 모습에서 훈훈한 인간미를 느낍니다.
학생들의 소리에는 귀를 막아 버리고 배우기만 하라고 호통치는 권위주의적인 교수는 학생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결국 학생들의 불신과 배척을 받게 됩니다. 교인들의 사정에는 아랑곳없고 일방적으로 강단에서 설교만 하는 목사는 교인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는 결과를 빚고 맙니다. 아내의 사정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남편, 남편의 사정을 들어주지 못하는 아내는 불만과 불편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그 가정을 불행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들어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설득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는 사마리아인의 열린 마음이요,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 그의 사정과 소원에 귀를 기울이던 깨어진 베드로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범죄의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된 한 여인의 호소와 죽은 아들의 시체를 메고 무덤을 향해 통곡하며 걸어가던 한 과부의 울음 소리에 귀기울이며 불쌍히 여기시던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라
일본의 하천풍언이 안질에 걸려서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
다. 몇 년동안 수술을 하고 실명을 했다가 눈을 뜨게 되었는데,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바늘 구멍만큼 희미하게 뭐가 아물아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좀 더 윤
곽이 드러나자 부엌에서 조그마한 창문으로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하천풍언은 황
홀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았던 그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면서 자기가 시력을 가
졌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격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감사하다고 자꾸 표현을 해야 한다.

 

마음을 지킵시다
 
성도는 그 별명이 낙심하지 아니하는 자이다. 낙심이란 마음에 힘이 없어서 목표를 잃어 버리는 상태이다. 신앙생활은 마음의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사탄은 사람을 찾아 와서 마음의 힘을 빼앗으려고 한다.

욥과 같은 사람은 다른 힘을 다 빼앗겼다. 재물(생활의 힘) 건강(육체의 힘) 아내(가정의 힘) 자녀(혈육의 힘) 친구(사회적 힘) 그러나 욥은 마음의 힘을 잃지 아니했다. 욥은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마음의 힘을 빼앗기지 아니했다. 사탄이 욥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이요 영혼을 지키는 것이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잠 4:23)

성경에는 마음에 대한 교훈이 많다. 하나님의 버림 받음의 특징은 마음이 강팍해 지는 것으로 표현했다. 전 7:4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했다. 성경에 마음이 강퍅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저주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마음이 아름다운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셨다. 인간의 하나님과의 접촉점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귀히 여겼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의 유언을 보면 한결 같이 마음을 담대히 하라고 했고 신약에는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했다.

침착한 마음을 위한 기도
주님, 저로 침착케 하옵소서. 나의 뛰는 가슴을 잠잠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시간들을 제게 보이사 저의 빠른 걸음을 천천히 그리고 한결같게 하옵소서. 어지러운 가운데서 저 언덕의 고요를 주시고 제 기억속에 살아있는 시냇물의 달콤한 노래 소리로 심신의 긴장을 풀게 하소서. 발길을 늦추어 한송이 꽃을 바라보면서, 친구와 몇마디 말을 주고 받으면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양서를 몇줄 읽으면서 순간 순간 쉼을 얻는 지헤를 가르치소서. 저로하여금 매일 매일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기억하게 하사 빠른것 만이 승리가 아닌것을, 인생에서 빨리 달리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높이 치솟은 떡갈나무를 올려다 보면서 그것이 서서히 그리고 튼튼하게 성장함으로서 거기 늠름하게서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 저로 침착케 하옵서서. 저로 하여금 영원한 가치의 토양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당신을 향해 자라게 하소서.

 

열려진 마음으로 전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스탠리 죤스 선교사가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선교사업을 하게 되었다.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복 음을 전해도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받 아 들이지 않았다. 스탤니 죤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 기가 떨어져서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스탠리 죤스,피 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읍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 다. 저들에게 열매가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 셨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열려져 있어 언젠가는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말고 기도하자!


열려진 마음 벌려진 팔
냉담하고 소심하고 위축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신앙적 열심이란 큰 소리를 질러대는 설교나
큰 소리로 부르는 찬송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신자가 반드시 활동적인 신자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볼 때 그들은 소심하거나 냉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을 끌고 주님을 생각나게 해주는 신자들은 조용하고 확신이 있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조용하고 확신에 차 있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대담성은 야단스러운 자기 노력을 하거나 경건한 사고를 하거나 대담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평화롭고 자연스럽고 또 조용한 성성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게 무언지를 점점 더 많이 알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야단스럽게 떠들면서 `신앙을 옹호하려는 자`는 반드시 몹시 흥분하기를 잘하고 신경질적 부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우리는 엄청난 불안감이 그를 사로 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복음의 무기란 거친 말이나 꽉 거머쥔 주먹이 아니라 열려진 마음과 벌려진 팔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열자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어떤 사람이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헤엄을 칠 수 없었던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구조요청을 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한 채 일광욕만 즐겼고 바다에 빠진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들은 무관심했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현행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비록 그에게 법적인 죄가 없을지 모르지만 도의적이고 양심적인 죄는 남아 있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가장 무서운 병은 무관심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옛부터 이웃과 두터운 교분을 가지며 거의 모든 경조사에 함께하는 미풍양속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옆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 소리를 치면 자기집 문을 꼭꼭 걸어 잡근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동 사람을 만나도 마주칠 까봐 처음부터 시선을 층수 표시판에만 둔다. 한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죽은지 며칠이 되어도 집주인이 몰랐다는 예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산업사회의 물결이 한차례 지나갔는데도 극심한 개인주의는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주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숙을 하고 있는 두사람에게 딸기 한 상지씩의 선물이 들어왔습니다.
딸기 중에는 좋은 것도 있었지만 벌레 먹고,상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딸기를 골라 먹는 방법이 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딸기 중에서 제일 좋은 것부터 골라 먹었고,또 한사람은 오래 두고 먹을 생각으로 나쁜 것부터 먹고 좋은 것은 남겨 두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 두 사람 모두 딸기가 많이 상해 먹지도 못하고 내버렸습니다.
결국 한사람은 맛있고 좋은 것을 맛볼 수 있었으나 또 한 사람은 나쁜 것만을 먹다가 버렸는데,
버린 양은 좋은 것부터 골라먹은 사람과 같은 분량이 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똑같은 한 상자에 해당되는 70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같은 환경, 같은 세상속에서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평과 원망과 다툼과 짜증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어두운 세상에서 헛된 것만을 추구하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야 하겠습니다.(롬12:2)

 


기쁨의 근원은 항상 내 마음이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32세에 비극적인 유서 한장을 작성했다.그는 형제인 칼과 요한에게 유서를 전달할 생각이었다.유서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나는지난 6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지냈다.이제 머잖아 삶을 마감할
것이다.오,신이시여.내게 기쁨의 날을 허락해주소서” 베토벤은 당시,실연과 청력감퇴로 깊은 시름에 잠겨 유서를 작성한 것이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후,베토벤은 비엔나의 한 극장에 서 있었다.그곳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합창교향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그는 청력을 거의 상실했고 건강은 극도로 악화됐다.청중들의 우레같은 박수소리도 듣지 못했다.그러나 마음 속으로부터 큰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외적인 환경은 24년 전보다 훨씬 비참했지만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삶의 행복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기쁨의 근원은 항상 내 마음이다.


마음의 깨끗함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 고후 6:16.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 - 고후 7: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 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바퀴벌레 두 마리가 각기 다른 식당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A라는 바퀴 벌레가 간 식당은 입맛을 돋구는 것들이 아주 많은 지저분한 식당이었습 니다. 그런데 B라는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밥알 하나 발견할 수 없는 너 무나 깨끗한 식당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B라는 바퀴벌레는 잽싸게 A라 는 바퀴벌레가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헐떡거리며 말을 했습 니다.
"얘, 지금 내가 갔다온 식당이 어떤 곳인 줄 아니 ? 정말 기가 막히 게 깨끗한 곳이야. 파리가 낙상할 정도라구." 그러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던 A라는 바퀴벌레가 불쾌한 듯 말했습니다.
"야, 너는 내가 먹고 있 을 때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니 ? 밥맛 없게 !" 얼핏 보기에 우스갯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적용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 속을 여행하면서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

사단도 바퀴벌레와 마찬가지로 너무 깨끗한 곳은 싫어 합니다. 사단이 입맛을 잃을 정도로 청결한 마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 "주님, 주님 보시기에 깨끗한 마음이고 싶습니다." 경건을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은 훈련입니다. /// 죄에 빠지는 자는 사람이요, 그것을 회개하는 자는 그리스도인 이요, 죄를 자랑하는 자는 마귀이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미국의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일에 대 기근이 들어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어느 마을의 한 부자는 자기 마을 어린이들에게 매일 빵 하나씩이라도 급식을 시켜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집안 사람을 시켜 빵을 굽게 하고 20여명의 어린이들을 모이게 하여 하나씩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기근이 끝날 때까지 매일 이와 같이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더니, 굶주렸던 어린이들은 "와-"하고 달려들어 서로 큰 것을 갖기 위하여 야단들을 한 후, 주인에게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이런 싸움통에 자기 순서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그레첸'이란 소녀는 아이들이 다 떠난 뒤 맨 나중 빵 그럿으로 다가가 찌그러진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기쁜 표정으로 주인 어른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어린이들은 지난 날과 다름없이 서로 큰 것을 가지려고 아우성들을 치다가는 주인에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레첸은 예외없이 맨 나중까지 기다렸다가 이 닐도 다른 아이들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남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주인을 찾아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집에 돌아온 그레첸은 어머님과 함께 그 빵을 나누어 먹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쪼개었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빵 속에서 50센트 짜리 은화 6개가 나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분명 이것은 잘못된 것이니 은화를 주인 어른에게 가져다 드려라."고 했다. 그때 그레첸은 그 돈을 가지고 주인 어른을 찾아가 사실을 아뢰었더니 주인은 대답하기를, "그 돈은 틀림없는 내 것이란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 착한 너에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 속에 넣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씨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새로운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고 매사에 불평을 일삼는 자는 종신토록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 많은 사람들은 좋게 되면 행복이고 나쁘게 되면 불행이라고 하는 단순한 논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롬8:28) 부해도 가난해도 자족할 줄 아는(빌4:11)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어느 여름날의 한 낮이었다. 두 사람의 행인이 나무 한 그루없어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금방이라도 더위에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데 마침 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아래는 과연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 나무 그늘로 달려 들어갔다. 숨이 막힐 것 같던 가슴이 열리고 이마의 땀방울이 식어가자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여보게 나무란 원래 대부분 어디엔가 쓸모가 있는 법인데 여기 이 오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
모가 없다네 정말이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진 게 이 나무라더군"
그러자 한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절말 그렇군, 정말 쓸모 없는 나무야 "

이 두 행인은 그 오리나무 때문에 금새 쓰러질 듯한 무더위를 시원하게 피했건만 그 은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를 향한 마음
어느 날 '루터'가 기르던 강아지가 그의 발 밑에 앉아서 한 조각의 빵과 고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본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개가 고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도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개는 지금 한 조각의 빵과 고기에만 몰두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며 희망도 갖지 않거든?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루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말하고 있는 육으로 인한 안타까운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우리 주님에 대하여 이와 같이 일편단심의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마음을 새롭게

본 문 : 에베소서 3장 14절 ∼ 19절

우리 한국 역사에 이태조와 무학대사의 대화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태조께서 어느 때 무학대사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돼지상이네, 그려." 돼지 닮았다고 얘기했습니다. 아, 물론 농담이지요. 그런데 무학대사는 이태조를 쳐다보다가 하는 말이 "임금님은 부처님 상입니다" 그랬어요. 이태조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아무리 임금님과 신하의 이야기이지만은 농담은 농담인데 나는 자네더러 돼지 같다고 했는데 자네는 어째서 날더러 부처님 같다고 하는 건가?" 이때에 무학대사는 시침을 떼고 한마디했습니다. "그거야 물론 누구든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남의 얼굴 보는 거죠." 나는 내 마음이 부처님 같으니까 다 부처님으로 보이고, 당신은 돼지 같으니까 나를 돼지로 보는 거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그래 뭐, 할 말이 없었지요.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영국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다.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다.그런데 한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 대답했다.“참 기특한 죄인이로군.
그에게 성경을 주어라.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다.그는 하루에 딱 한절씩만 성경을 묵상했다.성경의 절수가 무려 3만 1102절이니 그것을 모두 읽으려면 80년 이상이 필요했다.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다.“집에 가서 성경을 읽어라” 암스트롱은 그 후 새사람이 돼 봉사의 삶을 살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본문 : 마태복음 5장 1 절- 12 절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불신자까지라도 산상보훈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 도의 숭고하고도 심오한 교훈 앞에 찬탄을 마지 아니합니다. 듀잇트는 산상보훈은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다 고 말했고, 어떤 이는 모든 종교의 서곡 이라고 했습니다. 토루코는 산상보 훈은 하나님의 나라의 대헌장 이라고 했는데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의 나라의 대헌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모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인도의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평생 산상보 훈을 애독하였고 그의 생활 기본을 그리스도의 교훈에 두었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 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일은 오히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멀리 떠나 있 거나 어떤 때는 전혀 반대 방향에서 살고 있다는 일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산상보훈을 생각하 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 모습을 찾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읽은 마태복음 5장 1∼12절 말씀은 산상보훈 중에서 팔복 이라고 불리는 부분입니 다. 오늘 아침 팔복 중에 그 첫째인 마음이 가난한 사람 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사람처럼 유대인들은 특별히 축복을 추구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생활의 기준이었던 모세의 율법은 복과 화 로써 엮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아니하면 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우리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라 복 받기 원하는 마음은 인류 공동의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기 원하지만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복을 받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여기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 한 걸음씩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 그 첫 번째 말씀은 마음 의 문제를 강조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보면 천국은 여 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 코 객관적인 천국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건축가가 집을 지을 때 보이는 집이 서기 전에 그 마음 의 집이 먼저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 마음의 집이 보이는 집의 기본인 것처럼 우리 마음의 천 국이 장차 실현될 천국의 기본인 것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현실주의 에 대항해서 마음의 종교 를 창설하신 것입니다. 아마 오늘 주신 말씀 가운데서 주님이 마음 이 라는 말씀을 빼 놓으셨다면 군중들은 퍽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착취와 압박을 당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생기가 없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무 슨 희망이나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가난 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지 아니하시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군중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귀 기울였을 것입니다.

얼른 듣기에 수수께끼 같은 이 말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축복의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첫째 축복을 약속하신 것은 부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 가난한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으로 알고 있던 유대 사회에서는 확실히 이상스러운 생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마음 이 가난한 사람 은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며 육신의 기쁨만을 구하던 라오디게아교회와는 좋은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가난 이란 말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 겸비하게 그리고 간절히 구하는 태도입니다. 굶주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만이 그 말씀의 진미를 알고 또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헬라어는 프토코스 (Ptokos)인데 그 뜻은 매일 노동을 하여도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없는 정도의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 심령의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을 느끼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무조건적이고 철저하 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첫째, 자신의 마음의 가난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사사기 16장에 보면 소렉 골짜 기에서 블레셋 방백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삼손은 하나님이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 하였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 비극의 원인이 있습니다.우리가 능력을 얻는 길은 나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돈을 버리고, 권력가가 권세를 버리고, 학자가 학식 을 버리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인정할 때입니다. 병든 사람이 병을 고치려면 우선 자신이 병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지한 사람은 없고, 죽을 병을 앓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처럼 중병에 걸린 사람은 없고, 더할 나위 없 이 가난하면서도 그래도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가난한 사람은 없다. 헬라의 대 철인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지식의 문전에서도 이와 같은 가난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 면 천국의 복을 얻는 데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탕자가 가난해진 후에 자기의 가난을 깨닫 고 내가 이러다가는 여기서 주려 죽겠구나 하고 자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부끄럽지만 염치없지만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천국문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첫 걸음은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겸손한 마음으 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난 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모시는 행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가난하 십니까? 그러면 복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Ptokos 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소 유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마는 히브리어로는 ani 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물론 물질적인 소유 가 없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능력과 명성이 없고 세상의 모욕이나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과 연합하여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가까이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을 표시하는 히브리어 ani 는 겸손과 충성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 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는 독립하고 하나님께는 예속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 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했는데 이 말은 다른 말로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요 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 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 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자 기 자신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믿게 됩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비밀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 을 지키시리라. 하늘의 창고로부터 흘러나오는 이러한 행복과 은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받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난 함 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마음의 가난만이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내려 주실 적에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속이면서 독립이요, 항복이면서 자유인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예속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기회요,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 한 가난한 사람은 참된 자유가 무엇인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주님 을 더 잘 봉사하기 위하여 자진해서 십자가를 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자기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해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이 없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은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는 이 시대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세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요, 하나님께 항복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자기의 덕행과 재물에는 자신을 가지고 탐욕에 넘쳐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분해 버리고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실 때 그는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 청년은 슬픈 듯이 가버렸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왜요? 그는 자기를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가 하는 일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 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이 부한 사람은 천 국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그러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했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은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고 현재에 이루어진 축복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 될 것이요 라고 하지 않고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천국의 왕의 통치가 가난한 자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72편에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적 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란 말은 천국의 법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법인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겸손해지는 것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겸손한 일을 좋아하게 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기 자신의 육신적인 것을 자랑하는 것이 가 장 매력 있는 일이고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너 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 니다. 주님의 이 선언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외에는 어떤 사람도 용납치 아니하신다는 원 칙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특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 가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한 사람에게는 천국이란 것이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흘 려 죽으셨지만 자기의 의를 고집하는 사람은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아니합니다.

 중생하는 일은 놀 라운 성령의 역사이지만 마음이 부한 사람은 그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그의 영원한 기업에 참여시키려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역사하지만 마음이 부한 사람들 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 람들의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를 통치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늘나라의 왕관은 어 느 누구의 머리에나 다 맞는 왕관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머리에만 맞 는 왕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늘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만족을 얻게 되고 이 만족으로 천국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 은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그러나 낮은 데 마음을 두면 거기서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이길 수가 있고 자신을 정복하는 것은 최대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 다. 이 세상에서는 거만하고, 야심적이고, 완고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을 보고 왕처럼 행동한다 고 하지만 진리를 알게 되면 주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오히려 왕이 되며 이들의 능력의 비밀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데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두고 보세요. 온 인류 가운데서 가장 존경받을 인물은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레닌과 같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영웅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가진 사람 조용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산 사람 들,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방자하게 잘난 체 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으로 가난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백만장자들이 무의미해지고, 모든 세상의 보화가 연기처럼 사라지겠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은 다함없고 흠 없는 천국에 영원히 있을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이기 때문입 니다. 이런 축복을 우리 모두 받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마음
프랑코 총통이 세상을 떠나며 유서를 남겼는데 저는 그 유서에서 굉장히 감명을 받았읍니다. `나에게 원망살 만한 것이 있었던 여러분이여, 나를 용서해 다오.`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프랑코는 자유이니 혁명이니 하는 민주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그런 세대 속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오면서 스페인의 경제 질서를 오늘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읍니다. 스페인은 날마다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말하든지 프랑코는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하고 마지막 유언을 하였읍니다. 예수를 앙모하는 그 마음으로 보아 그 마음 한구석에 가난한 심령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에 우쭐대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어느날 Africa 에서 제트비행기가 이륙시간이 되어도 이륙을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기체내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었다. 무려 4시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생쥐를 잡아 내고 거대한 제트 여객기는 창공을 향해 날았다.
쥐가 기관 속에 들어가서 기관고장을 일으키면 아무리 큰 비행기일지라도 추락 하기때문에 작은 한 마리의 생쥐일지라도 시간을허비해가며 쥐를 잡았던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생쥐처럼 숨어드는 사탄을 잡아내지 않으면 실패를 하게된다.

 

마음과 몸으로 이해하기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빈민의 성녀라고 일컫는 마더 테레사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 호주의 한 젊은 프란시스코 수도회 수사가 테레사에게 그녀의 수행원이 될 수 있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이 수사는 훌륭한 테레사 수녀를 매우 가까이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줄곧 그녀 가까이에 있었으나 말 한마디 건넬 기회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를 만났던 것입니다. 드디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그녀가 뉴기니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사는 너무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녀에게 청원했습니다. "뉴기니아로 가는 저의 여비를 제가 부담한다면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말씀을 나누며 배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을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뉴기니아로 갈 항공료를 낼 만한 돈을 갖고 있어요?" "예." "그러면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세요.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배움에 자기를 던져 보는 것이 참 종교의 의미와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을, 그리고 종교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의 마음과 몸으로 이해해야 되리라 봅니다.

 

마음과 건강
건강을 원하는 분은 마음을 평화롭게 가져야 한다. 우리들의 신경계통, 또는 혈액 순환, 소화기계통, 호흡기계통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대단한 변화를 가져 오는 것이다. 조금 놀
래면 마음이 두근 두근하고, 호흡이 거칠은 것을 생각하더라도, 정신 작용이 심장이나 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걱정이 있을 때, 입맛이 없는 것도 마음이 소화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슨 놀랠 일이라든가, 무서운 일이 생겼을 때에 그 문제를 자기 혼자 처리하려고 조금히 서둘기 전에 기도로써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
음을 평화롭게 하고, 거기에서 우러 나오는 생각을 바른 생각으로 믿고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새마음 새뜻 새힘

세계적인 철학자 러셀은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영향력 등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힘없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합니다.세계 각 나라들은 군사력이란 물리적 힘을 가지려고 하고 사람들은 경제적인 힘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돈을 하나님보다 크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주일 동안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상경하신 예수님은 어느날 아침 무화과를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시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광야에 있을 때 어린 소년이 내어놓은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점심,저녁을 굶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물리적인 힘뿐 아니라 경제적인 힘도 빈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소리,큰기침 하나 없음에도 이스라엘의 큰 무리를 통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힘이 무슨 힘이겠습니까.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것입니다. 또 경제적인 힘이 아닙니다. 이 힘은 철학자 러셀이 말한 대로 영향력이라는 힘 즉 종교적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선교 2세기를 향해 영향력이라는 종교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 힘은
 
첫째 하나님 말씀의 실천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생활에 옮기느냐, 즉 실천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인격과 정신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을 옮긴 분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생활 훈련을 연마해야 이 세상에 소금도 되고 빛도 되는,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입니다. 인간의 최대 기대는 생존과 행복과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였던 것입니다. 즉 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였으며, 이 세상이 끝인 줄로 알고 있는 인생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썩고 있는 나사로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인간의 기대를 예수님은 모두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선교 2세기를 내다보는 한국 교회도 인생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과 기량을 배양해야 하는 것입니다.적어도 앞으로의 한국 교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생명, 밝은 희망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건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가 지녀야 할 힘은 생활의 변화와 창조의 기능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신생의 역사입니다. 변화의 출발은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생각도 새로워지고 뜻도 새로워지고, 말도 새로워지고, 행동도 새로워지고,생활도 새로워지고 인생 전부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배양하십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힘도 아닙니다.예수님이 지니셨던 정신적인 힘,종교적인 힘,성령의 힘 곧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신앙의 힘, 사랑의 힘, 영적 영향력을 가집시다.

 


감사하는 마음
김동인의 사초집을 보면 고려 말년인 1430년 경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 관이란 사람은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던지 우의정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집 하나도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제때 지붕을 덮지 못하여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뚫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 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다. 5,6월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 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빗방울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 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유 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오.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불행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끝내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S. 존슨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높은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하였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하여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영국의 역사가이며 평론가인 칼라일은, "나는 암흑을 사랑하고 암흑 속에서 살았으며 죄인들의 괴수로 빛을 미워하고 경건한 생활을 비웃었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고 하였던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진정한 마음의 선물
진솔한 인간미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최석호 신부님에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고민이 하나 생겼다. 성당 수위 아저씨에게 줄 선물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해주어야 근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까 여러 날 고민하던 신부님은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옳지, 그걸 드리면 되겠군’ 얼마 전에 새로 생긴 라디오가 생각난 것이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 신부님은 새 라디오를 들고 수위 아저씨에게 갔다.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최 신부님에게서 새 라디오를 선물 받은 수위 아저씨는 몹시 기뻤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런 귀한 선물을 다 주시고....”

그런데 수위 아저씨에게 선물을 전하고 돌아온 최 신부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신부님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선물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문제였다. 선물이란 원래 자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마음을 담아 주어야 하는 것인데, 자신에게 아직 라디오가 하나 더 남아 있으니 아까울 리가 없었다.
신부님은 “주고도 아깝지 않으면 그건 준 게 아니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한참 뒤 신부님에게 드디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애연가였던 최 신부님은 자신이 고이 아껴 남겨 두었던 마지막 담배 한 갑을 꺼내 들고 다시 수위실로 내려갔다. 아깝기 그지없었다. 수위 아저씨에게 담배를 선물하고 방으로 돌아온 신부님은 그제서야 “이젠 됐어”하며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주는 마음, 주는 계절
본문: 요3:16-17

성탄카드와 선물의 정신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선물로 주신 크리스마스의 성격 자체에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라.
살벌하기 그지없는 세모의 거리에 성탄절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인류의 역사 속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계 역사는 전쟁과 권력 싸움밖에 기록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4세기 지증해 연안에 케일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 지방에 니콜라스라는 사제가 교회감독으로 일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그는 병든 죄수를 간호하는 등 사랑이 넘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성자로 불렀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성탄 때가 되면 그는 평소 거두었던 식량이나 옷을 가난한 집문 밖에 말없이 놓고 갔다. 니콜라스의 선행은 해마다 성탄계절에 실시되었으며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란 발음이 산타 클로스가 된 것이다. 따라서 산타클로스의 정신은 남몰래 도와주는 사랑이다. 그것이 곧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의 정신이기 때문에 성탄 절기는 주는 계절, 사랑을 실천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역대 뉴욕 시장 중 가장 훌륭한 시장으로 알려진 인물은 라과디아(1934-1945년 시장 재임)다. 그가 뉴욕의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 빵을 훔치다 잡혀 온 노인이 기소됐다. 배가 고파 훔친 것이다. 라과디아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행위는 10달러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냈다.
"그 10달러는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어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자신의 넒은 중절모를 재판부 서기에게 내주며 다시 말했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너무 잘 먹은 데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노인은 오히려 47달러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호흡하고 살려면 들이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 내뿜는 호흡도 있어야 한다.
벌기도 잘해야 하지만 내어주는 일에도 멋진 인간이 돼야 한다. 진짜 저축은 필요한 사람에게 내준 물질과 사랑이다. 뉴저지 패터슨에 리보라는 17세 소년이 있다
그는 손재주가 있어 5년 전부터 자전거 수리를 시작했다. 틈틈이 이웃을 다니며 안쓰는 자전거를 기증 받는다. 그것들을 수리해 크리스마스 때 가난한 아이나 복지시설에 선물하는 데 연간 20대에 달한다고 한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 악보는 연주돼야 음악이 되고 종은 울려야 종이 되는 것처럼 사랑도 내주어야 사랑이 된다. 사랑은 말과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다. 주머니속의 내 돈이 없어져야 하고 바쁜 내 시간을 쪼개 줘야 사랑이 된다. 미국의 한 구호 단체가 11세 소년의 편지를 공개했다. 이 소년은 몇 해 동안 모은 100달러를 보내며 이렇게 썼다. "나는 보통 아이보다 살이 찐 편입니다. 살찐 나를 거울로 볼 때 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미안해 죽겠습니다" 이 소년의 양심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본문 말씀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응축한 영원한 명구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오늘 우리는 "주셨으니"라는 단어에 관심 을 가져보자.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사랑 때문에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은 곧 '주는 마음'이었다.
첫째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긍정인 것이다.
17절에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한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심판 받아야 할 인생들을 오히려 사랑하신 위대한 긍정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계와 인생에 대하여 강한 혐오와 부정을 서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삶과 세계에 파
괴적인 요인이 된다.
폭탄차가 터지는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어진 삶과 환경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선의가 필요하다. 좋게 보여주는 태도를 성탄절에 배우자.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표면적 처세술 이상의 뜻이 있
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마음은 인생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다.
아무리 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들을 도와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도우심을 입은 우리들은 또한 누구든지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생각하고 그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한 세상 살면서 아무런 도움도 못되고 기여하는 바도 없는 인생으로 당신은 끝나버려도 좋은가. 인간의 약점, 실의, 고독, 이런 것들 때문에 더욱, 인생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삶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란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깨진 마음
정신 의학자 린치 (J.L.Lynch) 박사는 그의 명저 `깨진 마음` (The Broken Heart)에서 인간관계가 건강을 좌우한다고 주장하였다.
병의 원인에 대한 원시적 생각을 죄나 잘못된 행위로 보았고 그후 병균의 발견에 의하여 과학적인 원인을 말하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현대의학이 다시 옛적에 말하던 잘못된 행위를 병의 원인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음의 상태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것이다. 린치 박사의 조사 내용 중 한 부분을 소개하면 심장병은 조급함과 긴밀히 연결되었고 참지 못하는 성격, 경제적 행위, 시간에 끌려 사는 태도, 걱정하고 평온한 마음을 못가지는 생활 등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린치 박사에 의하면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정신 상태는 수명에도 연관된다고 한다. 평균 연령을 다 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서 사회적 고립, 우정의 결여, 고아로서 혹은 편모편부 밑에서 자란 경우, 갑작스럽게 사랑하던 대상을 잃은 경력, 유전성 질환의
소유등이 많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관계에서 받는 정신문제가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이다


넉넉한 마음
이번 월드컵 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한·미전에서 이을용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였다. 언론의 표현대로 지옥에 떨어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후반 안정환의 헤딩골로 비기는 경기가 되었다. 경기 후에 황선홍 선수에게 기자가 질문하였다. 이을용 선수의 실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때 황선홍 선수는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저라도 실수했을 것입니다”고 답변하였다.
황선홍 선수의 답변이 두고두고 감동을 줬다. 작은 실수에 대해 날카로운 혀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우리들과 비교해보면 서로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선수들의 단합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팀워크가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터키와의 마지막 3·4위전에서 이을용 선수는 그림 같은 프리킥을 날려 1점을 추가해줬다.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해주고 격려해줄 때 언젠가는 실수를 능가하는 축복을 안겨줄 수 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다.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임신했을 때가 40,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다.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마침 연말과 겹쳐 무엇인가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기 쉬운 때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낮은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의 만족
텍사스 휴스톤의 알렌 박사는 마음에 만족을 가져오는 다섯 단계를 이렇게 이야
기 했습니다.

첫째로,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
은 자기의 분수에 넘치게 탐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적은 소득이라도 조금씩 저축해 가며 살아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꿈과 모험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만족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로, 최선을 다하면 항상 길이 열리는 것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이 있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거기에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시련과 역경이 도리어 축복으로 변해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렌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족이라는 것은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
자세에 따라서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돈 물질 마음 가난)
어느 날 두 사람의 남자가 랍비에게 상담을 하러 찾아왔다.
한 사람은 그 마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단히 가난한 사람이다. 돈이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몇 분 먼저 왔기 때문에 차례가 되어 먼저 방에 안내되었다. 상담시간은 대단히 오래 걸려서 한 시간 이상이나 지체한 다음 가난한 사람의 차례가 되어 방에 안내되었다. 그런데 그 상담은 불과 5분만에 끝나고 말았
다.

가난한 사람은 내심 분개하였다. 아무리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차별대우를 할 수 있는가? 돈이 많은 부자에게는 성의를 다해서한 시간 동안이나 상담에 응해 주고 나는 가난뱅이라고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눈치를 챈 랍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가난하니 그 가난한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리는 법일세.` 돈을 천시하거나 경원시하지도 않지만 돈만을 추구할 때에 인간은 그
마음이 빈약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한 이야기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
나치 독일의 박해하에 놓였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목격하고 그것을 기록
했던 플랭클 박사는 그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
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상관없이 자신은 물론 절망에 허덕이는 다른 사람들까지 격려하며 몸과 마음이 함께 건
강해져서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마음의 상처(대화.기도)
*최근 미국 남 감리교 대학의 <제임스 페네 베이커>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0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을 때는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러나 그것은 건강에 유익한 것이라0고 했습니다.
즉 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지 못하는 죄책감같은 마음의 짐으로부터 생기는 해로운 스트레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준다는 것입니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자살이나 자동차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을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슬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해 온 사람들은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슬픔을 털어놓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다른 질병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뉴턴의 열린 마음
뉴턴은 자타가 인정하는 미래지향적인 과학자였다. 그가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건이 있었다. 뉴턴이 어느날 책상 앞에 앉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눈앞에서 빙빙 돌며 귀찮게 굴었다. 여러번 쫓았지만 다시 와서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뉴턴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그는 벌떡 일어나서 파리를 잡았다. 죽이지는 않고 창문을 열고 밖에 내던졌다. 그리고 한 말 “세계는 넓은데 왜 내 얼굴 주위만 맴돌며 괴롭히느냐”
좁은 테두리에서 매일 빙빙돌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 높고 넓은 영적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내 마음의 안식처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 두워 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 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 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 온다.”

 

 

감사의 마음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시편 9: 1)
옛날,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城主)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마음먹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다.
거지는 평생에 처음 먹어보는 기름진 음식으로 한껏 배를 채우고, 거기다 성주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 거지는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한 후 성주의 배려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몹시도 화를 냈다. 개중에는 화가 나서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 라고 분개하면서 거지에게 욕설을 퍼붓는 신하도 있었다.
그저 모든 광경을 침착하게 보기만 하던 성주는 그제서야 입을 열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들도 거지와 다를게 없소. 그대들도 역시 날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리지 않고 있잖소."

우리는 특별한 일에는 감사하면서도 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으로 소중한 것들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기 쉽다. 공기, 물, 햇빛 그 외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수많은 것들. 사실 이러한 것들 이 없다면 우리는 단 몇 분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베풀어 주시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감사의 마음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와 같이 주의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한시도 살아 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자명한 사실에 대해늘 감사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 그리스도인에게 참으로 요청되는 신앙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는마음은어디서
믿는 자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큰 축복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 오늘 본문에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 절),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고 세번 이나 명령형으로 기록학 있다. 성도가 감사하는 마음이 넘칠 때 얼굴에 빛을 가지고 세상의 빛이 되며 확신있게 복음도 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나

1. 구원의 확신에서 근본적인 감사가 온다.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라고 명령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도의 감사는 무조건적이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과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내 가정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부모, 나의 자녀,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넓게는 친척 그리고 나와 친한 모든 사람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는가? 나는 교회, 국가에 대해서도 감사하는가?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성도이다. 그러면 이러한 무조건적인 감
사는 어디에서 오는가?

2. 구원의 확신에서 온다.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택함을 받았다`라는 확신에서 근본적인 감사가 나온다. 12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잤민낮`이라고 했다. 현재 나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장차 들어갈 천국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다.

3. 남을 용서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

13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하셨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꽁하게 얼어붙은 마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나올 수 없다.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므로(마6:15) 영혼의 평강은 없고 또 기도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남을 용서하면 자기도 자유케 된다.

4.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생각을 따를 때 감사하는 마음이 넘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고 했다. 성도의 평강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자유하고 또 성도를 온전히 지배할 때, 성령님의 평안이 곧 성도의 평강이 된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앞세울 때는 육체의 소욕이 주장하게 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영국시인 E.그레이의 시

"부서진 것을 통해"
"부서진 대지에 곡식이 자라고 무르익습니다
부서진 구름이 넓게 퍼져 신선한 비를 뿌립니다
그 곡식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살아가는 모든 날들 속에서
부서진 것들에 의해 새로워집니다
부서진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 주님은 결코 멸시하지 않으시니
뉘우침으로 부서진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 귀중한 향기가 되는 것은 부서지고 회개하여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욕심 많은 마음
시기는 탐욕과 자기 중심주의의 자식이다.
탐욕적인 사람을 멕시코의 첼탈 족은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고, 시기하는 사람을 "욕심 많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작은 마음'과 '욕심 많은 마음'은 동행(同行)한다. 그리고 그 영혼은 욕심에 비례 하여 축소된다.
시기하는 사람은 만족할 때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만족시킬 수 없는 자아를 끊임없이 쫓아가기 때문이다. 남부 멕시코 습지 티바스코에 사는 촌탈 인디언은 시기를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이웃을 시기하는 사람을 가리켜 "그는 자기 이웃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기가 종국에는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들만 가졌다고 생각하는 특권을 남들이 가지는 것을 볼 때에 속이 쓰린 것이다.
시기하는 사람은 남의 즐거움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 불행의 마지막은 어디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이웃이 불행의 극에 달해 죽음에 이를 때 그를 시기하는 자의 시기도 끝이 난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이웃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웃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인간 탐욕의 종말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았을 때 우리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문익점은 고려말 공민왕 때의 사람이었다.그 당시는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이 추위에 얼어죽었다.문익점은 사신으로서 원나라에 파견됐다.그는 그곳이 더 추운데도 이상하게 얼어죽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 이유를 알아본 결과 목화를 재배해서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중국측 국경 경비대의 검문은 아주 살벌했다.원나라에서도 목화를 재배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목화씨를 유출하다가는 죽음을 면키 어려웠던 것이다.그러나 그는 조선의 백성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그는 자신의 붓뚜껑 속에 목화씨앗 세 알을 몰래 감추어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다.그렇게 해서 목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재배됐다.

한 사람의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그는 좌석에 혼자 앉아서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게 되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덩치가 엄청나게 큰 흑인 여자가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를 다섯 명이나 데리고 자기의 옆자리에 비집고 앉는 것이었다.그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과연 그는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하나님,지금 제 옆에 앉은 이 뚱뚱한 흑인 여자가 저의 아내가 아닌 것에 대해 저는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깊이 생각하면 그 가운데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누구를 생각하든,무슨 일을 하든 간에 좋은 면,밝은 면,아름다운 면을 생각하도록 노력하자.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감사하는 곳에 인생의 즐거움은 함께 하게 마련이다.

 

감사하는 마음
 영국 트렌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
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꼭 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눅
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 14:1-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14:11).


감사하는 마음
오랜 옛날 얘기이지만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
여 23명을 구출해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A.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토레이 박사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 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
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 그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다`라고.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생을 훈훈하게 지펴주는 불씨와 같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편만한 세계는 한대지방과도 같다. `감사합니다`라든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등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우리네 삶의 주변을 꽃향기처럼 향기롭게 해 줄 수 있다.

 


가난한 마음
프랑코 총통이 세상을 떠나며 유서를 남겼는데 저는 그 유서에서 굉장히 감명을 받았읍니다. `나에게 원망살 만한 것이 있었던 여러분이여, 나를 용서해 다오.`하는 유명한 구절 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프랑코는 자유이니 혁명이니 하는 민주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그런 세대 속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오면서 스페인의 경제 질서를 오늘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읍니다. 스페인은 날마다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입니다. 사 람들이 무어라 말하든지 프랑코는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갑 니다.`하고 마지막 유언을 하였읍니다. 예수를 앙모하는 그 마음으로 보아 그 마음 한구석에 가난한 심령이 있었던 것으 로 풀이됩니다. 반면에 우쭐대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읍니 다.


꽃같은 마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있었다.이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여행용 가방 외에 또 하나의 가방에 꽃씨를 가득 담아 여행지에서 그 꽃씨를 뿌리고 다녔다. 이 사람은 특히 기차를 탈 때 달리면서 철도 주변에 꽃씨를 뿌렸는데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당신은 이 길로 두 번 다시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데 왜 꽃씨를 뿌립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그러면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는 마음
어린이들에게는 순종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순종하는 순수성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순결하고 정직하기 때문에 배운대로 실천합니다.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게 된 어느 소년이 수술대에 누워서 주먹을 움켜쥐고 땀을 흘리며 참아서 그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너무 기특해서 "너 참 용감하구나."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 소년의 꽉 움켜쥔 손에는 조그만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보이스카웃은 용감하다"라는 글이 써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보이스카웃이었고, 그 쪽지를 움켜 쥐고 대수술을 용감하게 참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겸손과 신뢰와 순종의 태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순수하고 결백한 마음을 배울 때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의 기도

언제든지 툴툴 털고 일어나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욕심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나그네이고 싶습니다.

천진난만한 동심과 해맑은 웃음으로 때묻고 코 묻어도 마냥 좋은 털털이이고 싶습니다.

땀흘려 일하고 달게 자는 것으로 행복해 하며,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아는 빈자이고 싶습니다.

떼어주고 뽑아주고 해골마저 손때 묻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섬기기만 하다가 영원히 잊혀질 머슴이고 싶습니다.

 


감사의 마음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시편 9: 1)
옛날,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城主)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마음먹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다. 거지는 평생에 처음 먹어보는 기름진 음식으로 한껏 배를 채우고, 거기다 성주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 거지는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한 후 성주의 배려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몹시도 화를 냈다. 개중에는 화가 나서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 라고 분개하면서 거지 에게 욕설을 퍼붓는 신하도 있었다. 그저 모든 광경을 침착하게 보기만 하던 성주는 그제서야 입을 열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들도 거지와 다를게 없소. 그대들도 역시 날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잖소."


선한 생각과 착한 마음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웃 동네에 있는 어느 착한 빵집 주인에 관한 얘기다.그 주인은 매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을 하나씩 선물했다.스무명쯤 되는 어린이들 앞에 빵을 담은 바구니를 내밀고 한덩이씩 가져 가게 했다.그때마다 아이들은 앞다퉈 제일 큰 빵을 고르느라 경쟁했다.그런데 아이들 중 한 소녀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기다리다가 남은 것 하나를 받아가면서 꼭 주인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어느날 그 소녀는 받은 빵을 들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빵을 쪼개다 빵 속에 동전이 몇 개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소녀는 바로 그 돈을 돌려주려고 빵집 주인을 찾아 갔다.하지만 빵집 주인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착한 아이야,내가 잘못해서 돈을 빵 속에 넣은 게 아니란다.너를 위해 제일 작은 빵 속에 그 돈을 일부러 넣은 거란다”.

선한 생각과 착한 마음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그리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듯 사랑의 파장을 일으킨다.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는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는 인생의 원리중의 하나는 잡념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잡념에 사로잡히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심장병의 권위있는 유명환 의사는 여러가지 생각
때문에 심장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어느 컴퓨터 전문가는 아무리 고도로
개발된 컴퓨터라 할지라도 동시에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억지로
하게 하면 고장이 난다는 것이다. 우리인간들도 동시에 둘이나 그 이상의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다. 예수는 사람이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 윈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계시다. 일편단심이 곧 마음의 평화이다. 당장 잡념을 떨쳐버리고 한가지씩
일을 처리하라!
우리가 슬플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절대로 잊지말아야 할 이
것은 `인생속의 각 순간은 영원의 일부이다. 순간 순간을 즐겨라!

 

마음의 민감성(감사)
만약 나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먼저 눈으로 찾다가 다시
서투른 손으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을 찾아
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한다. 서투른 손으로 찾는 것처럼 감사할 줄 모
르는 마음은 자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
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기쁨의 근원은 항상 내 마음이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32세에 비극적인 유서 한장을 작성했다.그는 형제인 칼과 요한에게 유서를 전달할 생각이었다.
유서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나는 지난 6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지냈다.이제 머 잖아 삶을 마감할 것이다.오,신이시여.내게 기쁨의 날을 허락해주소서” 베토벤은 당시,실연과 청력감퇴로 깊은 시름에
잠겨 유서를 작성한 것이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후,베토벤은 비엔나의 한 극장에 서 있었다.그곳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합창교향곡’ 이 울려퍼지고 있었다.그는 청력을 거의 상실했고 건강은 극도로 악화됐다.청중들의 우레같은 박수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부터 큰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외적인 환경은 24년 전보다 훨씬 비참했지만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삶의 행복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기쁨의 근원은 항상 내 마음이다.

마음과 건강

성경: 잠4: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내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유명한 의사 벤슨이 쓴 "마음과 육신과의 관계"라는 책에 의하면 육신의 질병에는 많은 세균이 있지마는 세균에 지는 것은 그 상태에 따른다고 하며 많은 질병들이 생기는 원인 중 70%이상이 마음의 장애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언제나 즐겁다거나 혹은 괴롭다거나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마음과 감정이 주축을 이룹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처를 받게되면 첫째, 두려운 마음이 생겨 불안 염려가 따르게 되고, 둘째, 분노심이 생겨 남을 미워하고 시기 반항 등이 생겨나며 셋째, 낙심과 실패의 감정으로 좌절감과 열등의식 등이 생겨나며 넷째로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 편견과 이기심, 만용과 자만심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의약품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재미 의학자인 이상구박사는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요건은 항상 평안하고 기쁜 마음을 유지하려는 생활태도라고 하면서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 해도 기쁘고 편한 마음가지만 못하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길잡이는 병에 대한 저항력인데, 저항력은 핏속에 있다고 합니다. 즉 핏속에는 백혈구가 있어서 여기서 저항력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백혈구 가운데는 임파선이 있고 이 임파선 안에 티임파구가 있어 티임파구가 모든 저항력에 관한 것을 완전히 통제하며 티임파구가 약해지면 저항력은 풍지박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티임파구는 화내거나 남을 미워할 때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나와 이로 인해 티임파구가 약해져서 저항력을 잃고 모든 질병이 생기게 되고 남을 사랑하고 웃을 때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하고 티임파구를 강력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많은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성경에서도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건강하게 해주는 단하나의 치료법은 온전한 사랑이라(요일4:18) 말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건강과 마음가짐

이 시대의 가장 극렬한 전쟁터는 인간의 마음세계이다. 미움, 시기, 원망, 불안, 초조, 근심, 걱정 열등감, 의욕상실, 패배감 등의 모든 심리적 갈등은 각종 질병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단순한 마음가짐과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인간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번민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킬 수도 있다. 감사는 삶을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정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명력 있는 삶을 누리게 되지만 부정적인 마음자세는 자신의 체질을 서서히 산성화시켜서 결국 병적 체질이 되고 만다. 이것을 심신상관의학이라 한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최고의 예의는 감사하는 마음가짐이다. 감사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이웃을 얻게된다. 영육의 총체적인 건강을 누리려면 마땅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정직한 마음
중국 고사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날 왕과 왕후 그리고 재상 세 사람이 앉아서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알리지 않은 자기만의 비밀스런 얘기를 툭 터놓고 한가지씩 얘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일 세 사람이 각각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병풍 속에 그려져 있는 금계가 소리치고 울 것이라고 했다. 왕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고 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아래 있는 것들이지만. 때로 관민들이 나한테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면 내 마음이 심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 재상이 입을 얼었다.
“나는 이 나라의 통치자로 내 위에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다 내 아래 있지만 매일 저 왕좌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저 자리에 앉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 왕비도 입을 열었다.
“나는 한 지아비를 섬기는 사람이지만 어전 회의에서 가끔 문무백관들 틈에 젊고 건장한 신하가 있으면 저 사람과 깊은 교제를 나눠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더라는 고화이다. 인간에겐 다 각각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본능과 본심을 숨기는 데 있다.
자기는 제일 거룩하고 청렴결백하고 가장 애국 애족적인 인사인 것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데 있다. 밝고 건강한 개인 생활과 사회가 되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위선의 탈을 벗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진실을 찾는 것이다. 거울을 보아야 얼굴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실앞에 서야 자신의 왜곡된 인생과 생활을 교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진리를 따르는 자라야 바른 가치관을 남길 수 있다.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는 모든 종교적인 모임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언제나 그분의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기도회나 예배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지체들에게 짐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전혀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는 사람이 그 기도시간에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들이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 아무런 갈망하는 마음이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그 사람이 예배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그는 틀림없이 예배가 끝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그 교회의 예배 전체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일에 방해가 됩니다.

선물을 준 자의 마음
조 집사님께서 커다란 책장 2개를 주셨다.
책장의 길이는 무려 240cm, 높이는 180cm 정도의 크기이다. 작은 우리집에 들어오질 않아서 다시 줄여서 넣어주셨다. 그런데 1주일 정도 지난 후 우리 집에 들르셔서 그 책장이 넣어주신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시고 좋지도 않은 책장을 준 것이 아니냐고 마음 쓰시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닌데, 도저히 책장을 정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인데…. 우리 책꽂이는 거의 다 내려앉아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태였고 주신 그 책장은 우리에게 가장 요긴한 선물이었다.
이 일을 통해 선물 주신 자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선물을 주신 분은 받은 자가 기쁨으로 사용하고 요긴해 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그것을 감사의 응답으로 여기신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는데, 받은 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때 섭섭함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도 이러한 마음이 아닐까! 우리에게 그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복음의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장 기뻐하실까?

 

탕자의 애통하는 마음

자신의 재산을 챙겨들고 먼 나라로 훌훌 날아갔던 탕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한번도 진진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자신에게 많은 재산을 돌려 준 아버지를 생각해 내는 것으로 그는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즐거운 삶을 위해서,

자신의 안정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는 아버지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처지가 심각한 지경으로 전락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재물이 점점 바닥이 드러나고 급기야는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인심마져 흉흉해 지고 말았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며
1971년 부흥회 인도를 위해 워싱턴 주의 시애틀로 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착륙 준비를 하던 기장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비행기의 앞바퀴가 제자리에 정착이 되면 불이 들어와야 되는데 불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종사들은 앞바퀴가 잘나와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장은 연료가 거의 떨어질 때까지 상공을 돌다가 비상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구급차들이 줄을 지어 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고 승객들은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기장의 마지막 점검을 들었습니다.
만일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의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승객들은 그 절박한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며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그의 영향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우리의 생각, 동기, 인간 관계, 우리의 꿈까지도 간섭하시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우물가에서 두 사람의 머슴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머슴 하나가 불평을 털어놓 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내가 아무리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냔 말이야.얼마 안 가서 다 써 버리고 또 물을 길어 와야 하니, 이렇게 빈통 들고서 말이야` 하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세상만사가 억울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원망만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불평을 듣던 다른 머슴이 대답을 했다.
`야,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냐? 나는 우물에 올때마다 빈통으로 오지만 갈 때에는 꽉꽉 채워 가지고 가는 뿌듯함 때문에 즐겁고 기쁘기 이를 데 없다. 생각해 봐라, 내가 물통에 물을 꽉꽉 길어가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유용히
쓰냐, 너도 마음을 고쳐 먹으면 즐겁고 기쁠 터인데 늘 불평만 하니까 문제가 있는것 아니냐?`
그렇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같은 머슴 신세지만 빈통으로 왔다가 채워 가지고 가는 것을 불평할 수도 있고, 물을 채워 가지고 간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죽도록 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억울한 쪽을 택하느냐 감사하고 기쁜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은 `항상 기뻐하라`하지 않으셨던가?

 

마음이 가난한 자
독일 함부르크라는 도시에 가난한 구두장이가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떨어진 구두바닥을 두드리며 살아갈 뿐 아무 즐거움이 라고도 없는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 옷을 갈아 입고 나드리를 다니고 소풍을 가건만 이 구두장이는 밤낮을 방안에서 구두만을 고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다만 하나의 즐거움이란 가게 처마에 기르고 있는 새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어느날 가게 문간을 지나가던 대학생이 구두장이의 벙글벙글 웃는 즐거운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언제 보아도 무척 기쁜 낯을 하고 계시니 웬일이세요?"
"그래요?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행복하니까 그렇지요."
"무엇이 그리 행복하다고 그러세요? 제가 보기에는 아저씨 살림은 퍽 옹색하실 것 같은데요."
"그래도 너무 감사할 뿐이죠"
"참 이상하네요. 그렇게 가난한데 무엇이 감사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때 구두장이가 "내가 이래뵈도 사실은 훌륭한 임금의 아들 왕자거든요!" 라고 대답하자, 학생은 `그럴리가......,이 영감이 미친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는 저런 가난뱅이가 늘 싱글거릴 수 있는냐 말이야......'라고 생각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후 일 주일 쯤 지나서 그 대학생은 또 그 구두 가게 앞을 지나게 되자 이번에는 구두장이를 놀려주려고 "왕자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구두장이는 "학생! 지난번에는 얘기를 하다 말고 달아났는데 학생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틀림없는 왕자요, 자, 이책을 보시오!"하며 성경을 보여주며 말으 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며 왕자입니다. 이를 알고 어찌 기뻐하지 않겠어요?"

대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 구두장이는 그후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였다.


암 예방은 평안한 마음부터
암은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중 으뜸을 차지한다. 3명중 1명은 암으로 사망한다고 볼 수 있다. 암세포는 원래 정상세포의 유전자가 발암 요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생긴다. 마치 루시퍼가 스스로 교만하여 사탄으로 타락, 돌변한 것처럼 암세포의 성격 또한 마귀를 닮아 주위의 모든 혈관을 자신에게 끌어들여 혼자 영양분을 독식한다.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늘려가며 주위의 정상조직을 파괴시키고 자신의 졸병들을 혈관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급기야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암예방을 위한 식생활 지침을 보면 동물성 지방 섭취를 전체 칼로리의 30% 이하로 줄이고 매일 20∼30g의 섬유소를 섭취하며 신선한 야채를 매일 먹고 비만을 피하고 과음과 흡연, 소금에 절인 음식이나 탄 음식,훈제음식을 피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몸에 정상적인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암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이루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미움이나 증오 불만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게 되면 몸안의 정상적인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 중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시키는 것은 증오이다. 평안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만물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인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삶을 약속해주는 열쇠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과 건강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 최근호는 밝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잿빛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보고서를 게재, 눈길을.
이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조사된 건강실태의 경우,북부 칼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부 피레네에 사는 주민들보다 소화계통의 암이나 간경변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건수도 햇살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어디 환경뿐일까. 마음이 밝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열린 마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챨스 스텐리>
닫힌 마음을 지니고 있는 한, 교회에 출석하여 수동적으로 말씀을 듣는 것보다
차리리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듣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들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의 구석구석에 모두 관여하시길 원하시며 매순간
우리와 교제하려고 하신다.
우리 주위를 보면 교회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매주 성경말씀을 읽지만 자신이
접해본 말씀에 관하여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속에서 말씀을 면밀히 조사해보려고도 하지 않고 결코 생활에 적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닫혀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마음.
어떤분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어느 깊은 산 속에 벌목하는 일꾼이 있었다.그는 날이 예리한 도끼를 가지고 하루종일 나무를 찍었다.처음에는 도끼가 예리하여 나무를 잘 찍었지만 몇일을 계속해서 나무를 찍다보니 나중에는 날이 무디어져서 힘만들고 나무는 잘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일꾼은 고민에 빠졌다. 날을 다시 갈아서 쓰자니 시간이 없고, 그냥 찍자니 힘이들고,
결국 미련한 이 일꾼은 자기 힘만 믿고 나무를 찍다가 피곤해져서 자기발을 찍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날을 갈아서 다시 찍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느긋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미국의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일에 대 기근이 들어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어느 마을의 한 부자는 자기 마을 어린이들에게 매일 빵 하나씩이라도 급식을 시켜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집안 사람을 시켜 빵을 굽게 하고 20여명의 어린이들을 모이게 하여 하나씩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기근이 끝날 때까지 매일 이와 같이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더니, 굶주렸던 어린이들은 "와-"하고 달려들어 서로 큰 것을 갖기 위하여 야단들을 한 후, 주인에게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이런 싸움통에 자기 순서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그레첸'이란 소녀는 아이들이 다 떠난 뒤 맨 나중 빵 그럿으로 다가가 찌그러진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기쁜 표정으로 주인 어른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어린이들은 지난 날과 다름없이 서로 큰 것을 가지려고 아우성들을 치다가는 주인에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레첸은 예외없이 맨 나중까지 기다렸다가 이 닐도 다른 아이들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남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주인을 찾아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집에 돌아온 그레첸은 어머님과 함께 그 빵을 나누어 먹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쪼개었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빵 속에서 50센트 짜리 은화 6개가 나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분명 이것은 잘못된 것이니 은화를 주인 어른에게 가져다 드려라."고 했다. 그때 그레첸은 그 돈을 가지고 주인 어른을 찾아가 사실을 아뢰었더니 주인은 대답하기를, "그 돈은 틀림없는 내 것이란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 착한 너에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 속에 넣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씨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새로운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고 매사에 불평을 일삼는 자는 종신토록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 많은 사람들은 좋게 되면 행복이고 나쁘게 되면 불행이라고 하는 단순한 논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롬8:28) 부해도 가난해도 자족할 줄 아는(빌4:11) 것입니다.

 

머리보다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
1. 이기적인 사람보다 봉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2. 상업적인 관계보다 인격적인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3. 계산으로 살지 않고 뜨거움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4.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이기 위해서입니다.

5. 지식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6. 조건적이 아니라 헌신적이기 위해서입니다.

7. 악마적인 삶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8. 기계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이기 위해서입니다.

9.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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