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더, 더욱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29. 16:15

더, 더욱에 대한 예화 모음

 

더욱 왕성하는 교회
본문 : 사도행전 2장 37 절- 47 절
희망의 새해 1981년을 맞이하여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축복이 여러분과 사랑 하는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말 여러 면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지난 한 해를 하나님의 은혜 중에 지내고 보니 에벤에셀 즉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셨다 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작 년 같이 어려운 해에 교회가 계속 성장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신다는 말씀이 너무 실감이 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맞이하는 이 새해는 모든 어려움이 풀려 나가는 해가 된다는 보 장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쩌면 지난해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어려움이 많을는지도 모르겠 습니다.이런 때에 우리도 그 어려움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떠내려가고 말아야 할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변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교회는 더욱 빛을 발해야 합니다. 죽는다고 모두들 아우성 칠 때 그리스도인은 신념을 가지고 굳건히 서서 절망적 인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그 동족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고 신성 모 독죄와 소란죄로 피소되어 로마 총독에게 몇 번씩이나 심판을 받다가 유대 땅에서는 공정한 재 판을 기할 길이 없어서 직접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로 호송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는 얼마를 못가서 유라굴로라고 하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는 파도에 쫓기 기 시작하여 24시간만에 배에 실은 짐을 몽땅 바다에 던져 버려야만 했고, 50시간도 못되어 배 안의 기구마저 물 속에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밤낮 사흘을 풍랑과 싸운 뱃사람들은 맥이 빠지고 기술도 이젠 소용없게 되자 실망의 얼굴빛 을 나타내게 되었고 행여나 하고 선장과 선원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승객들은 선원들의 실 망을 보고 그만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기자 누가는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더라 고 사실 그대로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알렉 산드리아호가 위험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죄수의 몸으로 타고 가던 한 사람 바울이 나타났습니 다. 바울은 구원의 소망이 없이 식음마저 전폐한 276명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시오. 여러분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이고 손해가 있다면 배 뿐이오.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을 다 네게 맡기셨 다 했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결코 거짓말 안하실 줄을 믿소. 이렇게 바울은 불안과 공포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소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그 존재가 비록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나라에서나 그 백성의 영혼과 그 생 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직면할 때 그 위기를 경고하 고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그 원인을 밝히고 동시에 고생하는 민중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소망 을 안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항상 고생하는 민중의 벗이 되어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절망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염려와 근심에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너희는 근심하지 말 라.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고 교회는 말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쳐서 넘어질 때 그 짐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라고, 그리하면 쉼을 얻을 것이라고 교회는 위로 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파선에 직면한 국민들의 생명을 구원의 피안으로 인 도할 능력을 교회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 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라굴로를 만나 파선 직전에서 절망과 낙담 가운데 있는 알렉산드리아 호 의 선객들처럼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이때 교 회가 일어나서 어두움에 싸여서 갈 길을 못찾고 방황하는 이 겨레에게 참 살 길, 소망의 새벽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였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 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면서 너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교회 역사상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 다. 초대 교회는 이렇게 왕성하는 교회였습니다. 저희들은 서로 교제하며 말씀을 배우며 기도하 기를 전혀 힘썼습니다.그래서 능력있는 교회가 되었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가는 왕성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금년에 더욱 왕성하는 교회 라는 표어 밑에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영락의 권속 하나 하나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능력있 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35주년을 지내 보내고 창립 40주년과 한국 교회 100주년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생동하는 교회, 전진하는 교회, 빛 을 발하는 교회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더욱 왕성하는 교회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회적인 사명을 다해야겠습니다. 교회적으로도 각 방면에 왕성해야겠습니다. 더욱 왕성하게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더욱 왕성하게 교육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더욱 왕성하게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 다. 모든 구역의 활동이 더욱 왕성해야겠습니다. 성가대의 봉사가 더욱 왕성해야겠습니다. 그래 서 금년 일년 동안 더욱 왕성하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몸의 어느 작은 지체 하나라도 바로 움직이지 못하면 그 몸은 왕성하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왕성한 몸은 어느 지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사지백체 오장육부가 왕성해 갈 때에 있 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책임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한 분도 구경하시는 분 없이 직접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온 교우가 함께 모든 일에 참여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더욱 왕성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온 성도가 100퍼센트 일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더 욱 왕성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와 같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온 가족이 각 방면으로 왕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시는 사업이 금년에 더욱 번성 하시기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하시는 사업 그리고 우리 교회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그 하는 일이 다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늦기 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사역을 격려하고 도와 주었던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고,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 일일이 나열하며 감사했습니다.
어느 무명 작가의 시는 칭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나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날 때 최고급의 꽃을 받는 것보다 친구의 정원에서 잘라 온 한 송이의 장미라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나의 심장이 멈추고 내 생명이 끊어졌을 때 많은 찬사를 받는 것보다 한 마디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나의 심장이 멈추고 내 생명이 끊어졌을 때 많은 찬사를 받는 것보다 한 마디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나의 관 앞에서 흘리는 눈물보다 나의 진실한 친구들로부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금 받고 싶습니다. 분홍, 하얀, 빨간 어떤 꽃이라도 오늘 당신의 모든 꽃을 나에게 갖다 주세요. 내가 죽은 후에 한 이름 받는 것보다 단 한 송이라도 지금이 더 좋습니다.”
칭찬하거나 감하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지금 감사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왜냐하면 ‘이미 늦을 때’가 언제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깨달았더라면....
옛날에 어떤 왕이 보위에 오르면서 궁전 탑 꼭대기에 아름다운 은종 하나를 설치 했다. 그 이유는 왕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 종을 울림으로써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였다. 특별히 그는 자신의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찼을 때 그 종을 치기로 하고, 그것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종을 친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날이가고 달이가고 해가 바뀌어도 아름다운 종소리는 단 한번도 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새 왕도 늙고 병들어 이 세상을 하직할 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왕을 둘러싸고 있던 신하들은 슬픔을 기기지 못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왕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백성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종을 치고 행복한 미소를 띤 채 그는 숨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 왕이 진작 백성들의 사랑을 깨달았더라면 시종일관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며, 백성들도 날마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도 그 왕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년기를 거쳐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이를 때까지 얼굴을에 근심의 주름살만 깊게 패일 뿐 행복의 은종을 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줄곧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속에 완전한 행복과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나 자신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존재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나의 삶의 깊이와 불안한 미래를 단번에 아시는 그분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를 대신 십자가에 달아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만약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면 벌써 이 세상을 박살내버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다니? 그분은 사랑하시는 것도 나 한 사람밖에는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날 사랑하신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지라도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셨을 것이다."

 

좀 더 무거운 줄을
물결이 거센 강을 가로지르는 현수교 공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건축자들은 처음에 두 낭떠러지 사이에 커다란 연을 날립니다. 일단 연이 강 다른 편에 안착하면 줄이 연결된 셈입니다. 이 줄에 좀 더 무거운 줄을 묶어서 강을 가로지르게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더 무거운 줄을 엮어 강을 가로지르게 합니다. 이렇게 한줄 한줄 더하여 강철 케이블이 강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계속 케이블을 늘려감으로써 나중에는 거대한 다리가 완성됩니다. 어느 누구도 완성된 거대한 다리를 보고서 처음에 연에 한 가닥 줄을 연결하여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이 발전합니다. 위대한 믿음은, 시련에 시련을 거듭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거듭해서 의지하며,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주장하여 응답을 경험할 때마다, 우리 삶의 믿음이라는 줄에 좀 더 무거운 줄을 연결하게 되는 셈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아시며, 인생에서 닥치는 시련에 쉽게 굴복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경에 수많은 약속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의심이 들 때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약속을 주장하는 기도 / 토마스 이클리

 

더 훌륭한 군대로 쓰려고
영국의 브링턴에 있는 한 교회 뜰에는 끊임없는 노력 덕택에 잡초 하나 없이 꽃들로 만발해 있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중앙에는 프레드릭 로버트슨(Fredrik Robertson)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부친은 영국 군대(미국 전쟁 중의)에서 전사했으며, 그는 어린 시절을 주로 레이스에 있는 요새 주위를 뛰놀면서 보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성격으로 해서 그는 영국군의 장교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이름은 총사령관 리스트에까지 올랐으나, 몇 가지 이유로 해서 끝내 임명되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옥스포드(Oxford Univ.)에의 입학을 허락받았으며, 마침내는 성직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전 크리스천들은 그가 군대로의 길은 막혔지만,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오늘날 매우 기뻐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에스겔 18 : 4)
알렉산더 대왕의 병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왕실은 싶은 시름에 빠졌다.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름난 명의들이 수없이 왔다 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둥대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다.
신하들이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자게 되는 법, 살아 눈 뜨고 있는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리라." 그러던 알렉산더 대왕도 병이 점점 더 깊어지자 앉아 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은 좀처럼 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 띄엄띄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에 내놓아 볼 수 있도록 하시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쥑 흔들었던 일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오."
적 용 모든 영혼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세상에서 엄청난 부를 누렸을 지라도 죽을 때 그것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진리를 죽음의 문턱에서야 깨달았다. 썩어질 육체를 위하는 일에 생을 허비하지 말고 영혼을 위한 일에 삶을 투자하자.

 


기왓장 만큼이나 마귀가 많더라도
마르틴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재판소를 향해 갈 때의 일이다. 이 재판은 생사를 가늠하는 무서운 재판이라 루터의 친구들이 간곡하게 만류했다. 그 때 루터는 말했다. "재판정 기왓장 만큼이나 마귀가 많더라도 나는 재판정에 서리라". 그리고 재판정에 서서는 "오, 하나님이여 ! 나 여기 서 있습니다"라는 외마디 기도를 했다
고 전해진다. 하나님만 의지하기에 나의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깨끗이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놀라운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속을 썩이더라도 그런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어려움을 당한 어느 가정을 심방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집의 외아들이 어쩌다 불량소년들과 사귀더니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
그 가정은 일시에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줄 곧 울기만 합니다. 기도하고 위로하고 성경으로 권면도 하고 심방을 마치고 나왔지만 모두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행했던 여집사님 한 분이 뜻밖에도 너무나 담담해 보이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그 여집사님이 이야기합니다. "가출한 아들로 해서 울고 있는 저분들이 저는 오히려 부럽습니다. 저는 속을 썩이더라
도 그런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분, 이 심정을 이해하겠습니까 ? 바로 얼마 전에 그 여집사님의 아들은 차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불량한 자식이라 해도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 언젠가라도 바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리 라는 기대를 가져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자동차의 왕 포드가 자동차를 만든 동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그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여 급하게 말을 타고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 말을 최대한으로 몰았지만 그의 마음이 급한 만큼 말의 속도는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서둘러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집에 오니 어머니는 이미 운명하신 뒤였습니다. 그 때 이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좀더 빨리 달리는 방법은 없을까 ? '더 빠르게 더 빠르게' 하
는 생각과 환상이 늘 그의 뇌리에서 맴돌다가 결국 그 꿈이 이루어져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이런 꿈이 있고 환상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자동차의 왕 포드가 자동차를 만든 동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그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여 급하게 말을 타고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말을 최대한으로 몰았지만 그의 마음이 급한 만큼 말의 속도는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서둘러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집에 오니 어머니는 이미 운명하신 뒤였습니다. 그 때 이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좀더 빨리 달리는 방법은 없을까 ? '더 빠르게 더 빠르게' 하는 생각과 환상이 늘 그의 뇌리에서 맴돌다가 결국 그 꿈이 이루어져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이런 꿈이 있고 환상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더라면
이솝우화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흰머리가 반이나되는 어떤 중년 남자에게 애인이 두명 있었는데 그중 한 애인은 그남자보다 훨씬 더 젊은 연인이었고, 또 다른 애인은 그 남자보다 훨씬 나이많은 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젋은 애인은 나이든 사람을 애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싫어 남자가 올 때마다 흰 머리카락을 뽑아 주곤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나이 많은 애인은 자기보다 젊은 남자가 애인이란 것을 감추려고 남자의 검은 머리 카락을 뽑아 냈습니다.
이래서 결국 그 남자는 아예 대머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깊은 뜻이 새겨 있는 듯 합니다. 아마 두 애인이 진정으로 그 남자를 사랑했더라면 그의 머리는 대머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자에 대한 사랑보다도 자기의 입장과 자기 편의만 앞세웠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된 것입니다.

 

오븐 속의 음식이 타더라도
아담스 (Jane Adams 노벨평화상 수상) 여사는 시카고의 이탈리아 이민들에게 이런 연설을 하였다. `아들 딸이 엄마와 애기하고 싶어하면 오븐 속의 음식이 타고 있더라도 먼저 자녀의 말상대가 되싶시오. 그들이 아버지와 애기하고 싶어 한다면 가게를 한시간 늦게
열더라고 우선 그들의 친구가 되싶시오. 여러분이 이 새 땅에 박을 뿌리는 물질이 아니라 훌륭한 정신입니다.`

 


참을 줄 알았더면
오래 전의 영화에  "워털루 브리지"라는 것이 있었읍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 로버트 테일러의 이름을 신문에 발표된 전사자 명단 속에서 발견한 젊은 아내 비비안 리는 절망한 나머지 타락 하여 길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불행한 직업을 택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남편은 전사한 것이 아니었고, 신문의 보도는 잘못된 것 이었읍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내를 만나려는 희망에 부풀어 집 으로 돌아오는 그의 가슴에는 옛날의 순수한 사랑이 그대로 불 타고 있었읍니다. 그렇지만 그를 기쁘게 맞아야 할 아내는 자기의 더럽혀진 몸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읍니 다. 물론 춤추는 직업을 가졌던 비비안 리와 명문의 아들 로버 트 테일러의 결합은 당초부터 불행을 씨를 내포하고 있었읍니다
우선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며느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남편없는 시집살이를 도저히 그는 살 수 없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인내심의 결핍이라 고 하겠읍니다. 설혹 남편이
전사했다는 보도가 믿을 만한 것이고 또 가문을 내세우는 시어머니의 냉랭한 태도가 마음에 거슬 리더라도 참을 데까지는 참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인내심은 이 어가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 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바울 선생은 힘 있게 부르짖었읍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현재의 고난을 참을 수 있읍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잉 무슨 뜻입니까? 그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우리는 오늘 이 괴로움을 이기고 살아 갑니다. 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 주와 더불어 길이 살 것을 믿고, 인내의 아름다움으로 일관하여 봅시다.

 

안토니오보다 더 경건
중세기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자기는 굴속에 들어가 은둔 생활로 고행을 했다.
하루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 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신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말이 들리었다.
그 길로 안토니오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고치는 노인을 방문했다 노인 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갑니까? 하고 물었다.
노인의 대답이 우리는 생활이 극히 가난함으로 매일 신고쳐 생활비로 하 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 하였다.

 

스커더 선교가문
스커더 가족은 역사상 다른 어떤 가족이 도저히 깨지 못할 선교적 기록을 수립했다.
존 스커더와 그의 아내인 실론은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갔다. 그들에 겐자낡메열 명 있었는데, 다 성장하여 선교에 커다란 기여을 하였다.
하나는 목회를 준비하던 중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나머지 아홉은 모두 해외선교사가 되었는데 그 중 다섯은 의료선교사가 되었다.
스커더 가족이 인도에서 선교한 지 100년이 되던 1919년에는 세 명의 증손자들이 그 마을 향해 출항하였다. 아직도 31명의 자손들이 인도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른 일곱은 다른 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더 깊은 의미
  깊은 생명의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두 학생이 교수를 찾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의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위치상으로는 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해하였으나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더 깊은 의미였다. 어쨌든 그 교수는 그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극히 최근에 죽은 한 학생에 관해 말하면서 교수는 우선 그들에게 물었다. “아무개군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무덤으로 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무정한 것을 그에게 털어놓으십시오.” 교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해하면서도 그들은 그의 말대로 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 그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다시 한번 그의 무덤으로 가십시오. 그래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아첨의 말, 그를 우쭐대게 하고 교만스럽게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그에게 하십시오.” 그들은 들은 대로 행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교수는 대답했다. “당신들은 내게 와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당신들이 저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 서서 독설과 아부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한 것처럼, 당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 믿음으로 그의 죽으심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당신은 육신에 응답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쁜죄
 전에 [애틀란타 저널]이란 잡지에 모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매우 인상깊은 기사를 썼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였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갈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의 희생자를 전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를 거느린다. 나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이름은 중상 모략이다.” 우리의 혀가 초래할 수 있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관하여 시사한 것입니다. 어느 주일 학교 어린이가 엄마께 “엄마, 거짓말하는 죄가 나쁜가요? 도둑질하는 죄가 더 나쁜가요?”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엄마는 “둘 다 나쁘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엄마 둘중에 어느 것이 더 나빠요.” “도둑질이 더 나쁘겠지.” “아녜요. 엄마.거짓말이 더 나빠요.” “왜.” “도둑질은 아무리 해도 그 물건을 다시 돌려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나면 다시 그 말을 되돌려줄수가 없어요.” 우리가 한번 토한 말은 다시는 회수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신상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신앙 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지기 위하여
  비판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결점을 찾아내는데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이 세상에는 건설적인 사람들보다 비평가가 더 많을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제로 돕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 건설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더 나아지기 위하여 한 가지 일을 고치는 것은 1천가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더 높은 곳을 보라
  어떤 중국인이 39년 동안이나 아편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편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때는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끝 없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편에 눈을 돌려 초점을 맞추었을 때에는 아편의 종이 되었지만 ,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돌려 고정시켰더니 위대한 그 분의 종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높은 곳을 더 귀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생길의 진정한 최후의 승자는 무엇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들려 주시오
 롬 5:6-10; 요 8:32; 딤후 3:15-17
 멕시코 모렐로스 지방의 한 권서인 발렌틴 토렌데스는 어던 사람으로부터 성겨을 사겠으니 집으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가 방문하자 주인은 그를 새로 파놓은 무덤으로 데리고 갔다. 주인은 토렌데스가 거짓 책들을 전한다는 생각에 그를 죽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주인은 탄알로 몸을 채워서 죽여주겠다고 협박하였다. 그 때 발렌틴토렌데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책들은 거짓 책들이 아닙니다. 그 책들은 복음의 책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있으나 심판날에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고는 죽기 전에 성경 명 구절만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토렌데스는 요한복음 3장을 읽기 시작하여 16절에 왔을 때 그 뜻을 설명하려고 읽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죄 많은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게 될 만큼 하나님을 자극시킨 것은 사랑이라고 설명하였다.
 그 때 주인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대체 그 사랑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토렌데스는 "더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사랑에 대한 부분을 읽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고리도전서 13장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가다 읽고 나자 그 집 주인의 딸이 울면서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어머니는 토렌데스에게 좀 더 읽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읽었다. 토렌데스를 죽이려던 사람은 권총을 권총집에 꽂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더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방으로 가서 더 들려 주십시오. 나는 속았습니다. 나는 그 책의 진리를 몰랐습니다."
 

더 옳은 것
  저는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의 교회 지도자들과 일본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 목사님들의 솔직한 고백이 “우리는 한국 교회 성도들처럼 열심을 가지고 전도할 수가없습니다”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분들은 “우리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되도록 상대방에게 민감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치게 전도할 때 그것이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고 그들의 삶의 분위기를 파괴할까 두려워서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일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곳에 갔더니 관광 안내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곳에는 절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땅바닥을 뚫고 솟아나오는 화산 용암의 강한 폭발로 말미암아서 그 절간이 그 속에 들어가버렸습니다. 그 깊이가 1,800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글지글 끓고 있는 그 용암을 향해서 어떤 아이가 기어가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때 이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가 용암을 향해서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방관하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아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 아이가 가는 그 길을 차단하고 방향을 바꾸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까? 어느 것이 옳습니까?” 체면보다 귀한 것은 목숨입니다. 예절보다 더 귀한 것은 생명의 구원입니다.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위험한 것
  꼬마가 놀이터에서 새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돌맹이가 잘못하여 지나가던 아주머니의 팔등을 맞추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꼬마를 데리고 그 꼬마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애가 어떻게나 별나고 말썽꾸러기인지 말도 못해요. 지금이 이런데 크면 더 큰 말썽을 부릴게 뻔하다구요. 그리고 항상 위험한 것만 가지고 노니까 엄마가 좀 야단을 치세요."
 아주머니는 말을 그칠줄 몰랐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꼬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애가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논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더 위험한 것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게 뭐죠?"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바로 입이에요. 돌맹이는 몸을 다치게 할 뿐이지만 말은 사람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거든요."
 우리는 모두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야고보서 3:2)
 예수님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생각을 해봅시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쉽게 치료할 수가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가 어렵습니다.
 남을 무시하는 말, 약점을 캐내어 상처를 주는 말들보다는 사랑의 말 한마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를 위해 세 번의 침묵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랜 생각을 거쳐 나온 말 한 마디가 그만한 힘을 갖는 법입니다.
 

더 잘되는 일
  모 교회에서 사용할 카렌다를 부탁했는데, 업자가 사정에 의해 못하게 되니, 그 해 그 교회에서는 달력을 못하고 지내게 되었다. 다음 해에 카렌다를 그 사람에게 맡겨서 하려고 하였다.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목사는 한번 더 맡겨 보자고 하여 맡겼다.
 업자는 목사님이 인정해 주는 데에 너무 감사하여 더 잘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 열심 하는 신자가 되어 교회가 잘되고 부흥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며 예수님 말씀 순종하였을 때 잘되는 일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신8:10)
 
더 좋은 편
  어떤 할머니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구원받은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였다. 하루는 그가 나가는 교회 목사를 찾아가 구원받은 확신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만약 할머니의 집에 두 이웃이 있는데 한 집에서는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다른 이웃집에서는 늘 먹고 마시며 즐겁다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느 집의 소리에 더 마음이 쏠리겠습니까?" 라고 하자 그 할머니는 "그야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정에 귀가 더 쏠리지요."라고 하였다. 그 때 목사가 "안심하십시요.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처한데서 더 좋은 편은 어느 쪽인가. 우리는 주님 쪽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더 큰사랑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그 집 며느리는 옆에 있는 신랑에게 손으로 떡을 소담스럽게 잘라 비벼서 주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나고 입에 군침이 돌아도 체면이 있어서 달라고는 못하고 창 밖으로 먼 산만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부인이 들어오면서 며느리에게 “얘, 아버님 떡 좀 드렸느냐.”고 하자. “아니요, 아버님은 상차려서 잘 해드려야지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떡을 뚝 떼어 주먹만하게 만들어 콩가루를 묻혀 남편에게 “어서 일어나 우선 잡수세요”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한 입에 넣고는 “이놈아 너만 색시 있냐 나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이 시아버지는 한때 서울을 새벽마다 다녔었다. 그 부인은 새벽이면 일어나 더운 밥을 해주다가 그것이 지겨웠는지 나중에는 저녁하는 길에 밥을 한 그릇 더 해 두었다가는 새벽에 먹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우유나 커피 한 잔만 끓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미안도 하고 또 부인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 새벽에 그냥 간다고 하며 옛날 그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먹겠느냐 안 먹겠느냐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첫새벽에 일어나셔서 밥을 해놓으셨다가 아들에게 먹였고 먹여 보낼 시간이 없으면 보자기에 싸주어서라도 보냈었다. 며느리가 귀여워도 아내만 못하고 처가 좋다한들 어머니만 못한 것이다.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하나님 사랑의 화신이다.


더러운 말은 담아 가시오
 엡 4:29-32; 잠 10:19; 26:21-25
  괴테의 집에는 언제나 정치가, 문학가, 군인, 실업가 들을 괴테의 문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이 타인의 흉을 보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괴테는 눈을 날카롭게 반짝이면서 엄하게 말했다.
 "여러분, 종이 부스러기나 음식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남의 흠이나 음담패설을 흘리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더러운 말을 모두 주워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을 저의 집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흠을 보는 것은 공기를 더럼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
어떤 평화스러운 바다 마을에 크고 사나운 물고기가 나타나 좀 컸다 싶은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포식성이 강한 이 물고기는 심지어 '그물을 감지하고 피하는 지혜'를 갖춘 물고기까지 잡아먹었다. 그 때문에 아주 작은 물고기들만 남았다.
 어느날 어부가 그물을 던졌다. 그 결과 이 '크고 포악한 독재자'만 잡혔다. 다른 물고기들은 너무작아 그물 사이로 다 빠져나간 것이다.
 큰 물고기는 그물 사이에서 몸부림치다 그제야 알았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가를.

 

더불어 살기
 어느날 시각장애인과 한 쪽 발을 못 쓰는 장애인이 고갯길 앞에서 만났다. 그들은 고갯길을 올라가야 했다.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시각장애인의 말에 다리장애인은 "제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주겠습니까? 제 다리도 끌고 가기 힘든데…. "라고 말한 후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러나 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업고 간다면 나는 당신에게 장애물을 일러 줄 수 있다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우리는 서로 도와야겠군요"
 고갯길이 좀 가파르기는 했지만 이 두 사람에게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더욱 겸손하라!
  암탉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자와 싸우다가 패배한 수탉이 컴컴한 구석에 가서숨어 있었다. 싸움에 이긴 수탉은 의기양양하여 높은 담 위에 올라가 큰 소리로 꼬꼬댁거리며 승리의 쾌재를 부른다. 바로 이 순간 독수리가 내리 꽂히며 그 수탉을 나꿔채 갔다.
 싸움에 진 수탉이 안전한 곳에 피해 있다가 나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암탉들에게 구애할 수가 있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가 아직 아이였을 때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 세가 땅을 많이 정복하자 '아버지가 다 정복하면 내가 나중에 정복할 땅이 없어진다.' 고 말했다.
    부왕이 암살되자 약관 스므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넓은 땅을 정복했다. 그는 이란을 정복한 후 멀리 인도까지 원정하였으며 정복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힌 알렉산드리아 시를 70개소나 건설하였다.
    그렇게 관대하고 인자하고 부하를 사랑하던 알렉산더도 전승의 교만에 도취하여 자신을 신격화하고 절제를 잃어버리자 술과 색에 기울어져 성질이 난폭해졌다.그래서 원정의 제일 공로자인 노장 파비니오의 부자를 죽이고 은인 그라이다스도 죽였다.
    인도 원정을 마치고 페르샤로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 들렸다.
신관은 그곳을 들리는 것이 불길하다고 예언하였으나 그것을 무시했다. 어느날 밤 그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니야카스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연회를 마친다음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총애를 받는 신하 메디야스가 들어왔으므로 다시 술을 마셨다. 그 이튿날 석양 때까지 자고 일어 났다가 다시 술을 마셨다. 몸이 약해지자 열병이 걸렸다.
    알렉산더는 크토리아 왕녀 크로사나와 결혼하였고 다시 다리우수 왕녀 스타티라와 결혼하였으나 아들이 없었다. 왕의 병이 깊어지자 한 신하가 물었다.
    "대왕께서 별세하신 후에는 누구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시나이까?"
    "가장 강한 자에게" 왕의 대답이었다.
    병이 더하여 진다는 소문이 군대 안에 퍼지자 다투어 그의 마지막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평소의 측근자들만 무장해제를 하고 왕의 병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은 슬피우는 부하들의 손에 입을 맞추어 결별의 뜻을 표하였지만 후계자에 대하여서는 별 말이 없었다.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나니  BC 323 년 6 월 28일 그의 재위 12년 8개월 그의 나이 33세 였다.
33세에 죽은 또 한사람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살렸으나 알렉산더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음부는 세상 영웅들을 옴을 영접하고 있다. (사14:9)

 더 나쁜 죄
  전에 [애틀란타 저널]이란 잡지에 모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매우 인상깊은 기사를 썼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였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갈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의 희생자를  전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를 거느린다. 나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중상 모략이다.”
  우리의 혀가 초래할 수 있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관하여 시사한 것입니다.
  어느 주일 학교 어린이가 엄마께 “엄마, 거짓말하는 죄가 나쁜가요?  도둑질하는 죄가 더 나쁜가요?”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엄마는“둘 다 나쁘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엄마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빠요.”
  “도둑질이 더 나쁘겠지.”
  “아녜요. 엄마. 거짓말이 더 나빠요.”
  “왜.”
  “도둑질은 아무리 해도 그  물건을 다시 돌려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나면 다시 그 말을 되돌려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한번 토한 말은 다시는 회수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신상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신앙 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지기 위하여
  비판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결점을 찾아내는데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이 세상에는 건설적인 사람들보다 비평가가 더 많을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제로 돕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 건설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더 나아지기 위하여 한 가지  일을 고치는 것은 1천가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더 나은 마음
  사 56:4; 신 14:26; 히 11:40
  어느 아버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주말여행을 떠났다.
  계곡에 이른 아버지는 두 아이에게  텐트를 칠 만한 자리를 찾아보라고 일렀다.
  큰 아이가 바위 근처로 달려가며, "아버지, 여기가 좋아요" 하자 작은  아이가 대꾸했다.
  "아니예요.  거기는경사가 져서 안좋아요." 그리고는 작은  아이가 소나무 밑을가리키며
  "아버지, 여기가 좋아요." 하자 이번에 큰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예요. 거기는송충이가 있어요"라고 했다.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해 두 아이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큰아이가 물가를 가리키며 "아버지, 여기가 어떨까요?" 하자 작은 아이가 "아까 그 바위 근처만  못한걸"했다. 그들은 다시 맨처음 자리로 돌아왔다.그러나 바위위도 소나무 밑도 벌써 다른 사람들이 차지해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말했다. "똑똑히 들어 두어라. 더나은 것은 더 나은 마음만이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이 물었다. "더 나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장점을 크게 보고, 단점을 감싸 안으면서 선택하는 것이다."


더 높은 곳을 보라
  어떤 중국인이 39년 동안이나 아편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편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때는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끝  없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편에 눈을 돌려 초점 을 맞추었을 때에는 아편의  종이 되었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돌려 고정시켰더니 위대한 그 분의 종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높은 곳을 더 귀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생길의 진정한  최후의 승자는 무엇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높은 소망(갈매기 조나단의 슬픔)
  갈매기들은 해변가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앉아있다가 배가 고프면 또 먹이를 찾곤 한다. 그것밖에는 갈매기들이 더  이상 돌아다니는 곳이 없다.그것이 갈매기의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중에 꿈이 컸던 조나단이라고 하는 갈매기가 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단다.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다를 볼 수가 있단다."  그리고 그 미지의 나라로 가자고 속삭이기도 했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조나단이 돌았다고 그들의 세계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동료사회에서 추방된다.
   추방당한 갈매기 조나단의 슬픔은 동료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는 그러한 슬픔이 아니었다. 보다 더 큰 슬픔이 있었다.
    "높이 날 수 있는데, 멀리 갈 수 있는데"
  동료들이 이 비상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대한 슬픔이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 한계이상을 보기를 거부하는 짧은 안목에 대한 슬픔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고독한 선구자 조나단의 슬픔이었다.

 더 들려 주시오
    롬 5:6-10; 요 8:32; 딤후 3:15-17
 멕시코 모렐로스 지방의 한  권서인 발렌틴 토렌데스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성경을 사겠으니 집으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가 방문하자 주인은 그를 새로 파놓은 무덤으로 데리고 갔다. 주인은 토렌데스가 거짓 책들을 전한다는 생각에 그를 죽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주인은 탄알로 몸을 채워서  죽여주겠다고 협박하였다. 그 때 발렌틴 토렌데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책들은  거짓 책들이 아닙니다. 그  책들은 복음의 책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있으나 심판날에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죽기 전에 성경 명 구절만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토렌데스는 요한복음 3장을 읽기 시작하여  16절에 왔을 때 그 뜻을 설명하려고 읽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죄 많은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게 될 만큼  하나님을 자극시킨 것은 사랑이라고 설명하였다.
 그 때 주인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대체  그 사랑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토렌데스는  "더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사랑에 대한부분을 읽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고리도전서 13장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가다 읽고 나자 그  집 주인의 딸이 울면서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어머니는 토렌데스에게 좀 더 읽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계속해
서 읽었다. 토렌데스를 죽이려던  사람은 권총을 권총짐에 꽂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더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방으로 가서 더 들려 주십시오.
나는 속았습니다. 나는 그 책의 진리를 몰랐습니다."


더 문제가 있는 사람
   '몇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고생한다'고 어느 역사가가 말했다.몇사람의 독재자, 몇사람의 아첨꾼, 몇 사람의 악마주의 때문에 인류가 시달리는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시달려온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온 국민이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5% 내지 7% 정도의 공산당 때문에 국민 전체가 공산치하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 현실이다.
    그러면 과연 이 악한 사람 몇명으로 해서 일이 잘못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잘못된 현실을 수수방관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수가 방관하는 틈을 타서 악한 몇사람은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하려고 든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은 더 문제이다. 아예 의식조차없이 단순한 이기심으로만 살아간다.


더 어리석은 사람
 옛날 궁중에 광대가 있어 왕을 웃겨 즐겁게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대의 역할 중의 하나가 왕이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책망하는 풍자놀이도 가끔해서 왕의 잘못을 뉘우치게도 했다. 어느 날 광대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왕은 그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너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 있으면 주라"고 했다. 몇 년이지나 그 왕이 임종을 맞게 되자 가족과 친척 그리고 신하들이 모였고 왕은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긴 여행을 떠난다고 고별의 말을 하였다. 이때 광대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와 "폐하 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사신을 먼저 보내셔서 준비를 하게 하셨는데 이번 여행에도 준비를 하셨는지요." 라고 하였다. 왕은 이번 여행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광대는 "그렇다면 이 지팡이를 받으시지요.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니까요"


 더 옳은 것
  저는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의 교회 지도자들과 일본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 목사님들의 솔직한 고백이   “우리는 한국 교회 성도들처럼 열심을 가지고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분들은
  “우리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되도록 상대방에게 민감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치게 전도할 때 그것이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고 그들의 삶의 분위기를  파괴할까 두려워서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일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곳에 갔더니 관광 안내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곳에는 절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땅바닥을 뚫고 솟아나오는 화산 용암의 강한  폭발로 말미암아서 그 절간이 그 속에 들어가버렸습니다. 그 깊이가 1,800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글지글 끓고  있는 그 용암을 향해서 어떤 아이가 기어가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때 이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가 용암을 향해서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방관하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아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 아이가 가는 그 길을 차단하고 방향을 바꾸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까? 어느 것이 옳습니까?”
  체면보다 귀한 것은 목숨입니다. 예절보다 더 귀한 것은 생명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위험한 것
꼬마가 놀이터에서 새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돌맹이가 잘못하여 지나가던 아주머니의 팔등을 맞추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꼬마를 데리고 그 꼬마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애가 어떻게나 별나고 말썽꾸러기인지 말도  못해요. 지금이 이런데 크면 더 큰 말썽을 부릴게 뻔하다구요. 그리고 항상  위험한 것만 가지고 노니까 엄마가 좀 야단을 치세요."
아주머니는 말을 그칠줄 몰랐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꼬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애가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논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더 위험한 것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게 뭐죠?"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바로 입이에요. 돌맹이는 몸을 다치게  할 뿐이지만 말은 사람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거든요."
우리는 모두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3:2)

예수님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생각을 해봅시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쉽게 치료할 수가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가 어렵습니다.
남을 무시하는 말, 약점을 캐내어 상처를 주는 말들보다는 사랑의 말 한마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더 잘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를 위해 세 번의 침묵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랜 생각을 거쳐 나온 말 한 마디가 그만한 힘을 갖는 법입니다.


더 잘되는 일
  모 교회에서 사용할 카렌다를 부탁했는데, 업자가 사정에 의해  못하게 되니, 그  해 그 교회에서는 달력을 못하고 지내게 되었다.  다음 해에 카렌다를 그 사람에게 맡겨서  하려고 하였다.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목사는 한번 더 맡겨 보자고 하여 맡겼다.
  업자는 목사님이 인정해 주는 데에 너무 감사하여 더 잘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 열심 하는 신자가 되어 교회가 잘되고 부흥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며  예수님 말씀 순종하였을 때 잘되는 일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신8:10)


더 좋은 것은 미래에 있다
  시인 부라우닝은 " 젊은이들이여 나와 함께  늙어가자 더 좋은 것은  미래
에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연설했다. 늙어 간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얻는 과
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더 좋은 편(구원 받은 증거)
어떤 할머니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구원받은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였다. 하루는 그가 나가는 교회 목사를 찾아가 구원받은 확신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만약 할머니의 집에 두 이웃이 있는데 한 집에서는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다른 이웃집에서는 늘 먹고 마시며 즐겁다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느 집의 소리에 더 마음이 쏠리겠습니까?" 라고 하자 그 할머니는 "그야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정에 귀가 더 쏠리지요."라고 하였다. 그 때 목사가 "안심하십시요.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처한데서 더 좋은 편은 어느 쪽인가. 우리는 주님 쪽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더 큰사랑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그 집 며느리는 옆에 있는 신랑에게 손으로 떡을 소담스럽게 잘라 비벼서 주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나고 입에 군침이 돌아도 체면이 있어서 달라고는 못하고 창 밖으로 먼산만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부인이 들어오면서 며느리에게 "얘, 아버님 떡 좀 드렸느냐?"고 하자 "아니요, 아버님은 상 차려서 잘 해드려야지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떡을 뚝 떼서 주먹만하게 만들어 콩가루를 묻혀 남편에게 "어서 일어나 우선 잡수세요"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한 입에 넣고는"이놈아 너만 색시있냐 나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이 시아버지는 한때 서울을 새벽마다 다녔었다. 그 부인은 새벽이면 일어나 더운 밥을 해주다가 그것이 지겨웠는지 나중에는 저녁하는 길에 밥을 한 그릇 더 해두었다가는 새벽에 먹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우유나 커피 한잔만 끓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미안도 하고 또 부인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 새벽에 그냥 간다고 하며 옛날 그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먹겠느냐 안 먹겠느냐를 물어 볼 필요도없이 첫새벽에 일어나셔서 밥을 해놓으셨다가 아들에게 먹였고 먹여 보낼 시간이 없으면 보자기에 싸 주어서라도 보냈었다. 며느리가 귀여워도 아내만 못하고 처가 좋다한들 어머니만 못한 것이다.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하나님 사랑의 화신이다.


더 풍성한 삶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조지 워싱톤 카버는 힘들여 교육을 받아서 하늘이 주신 재능에 따라 당대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
년동안 그는 부터  T. 워싱톤과 함께 남부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의 혜텍을 베풀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번은 토머스 에디슨이 카버씨에게 만약 그가 자기와 함께 일을 해 준다면 새 연구소와 연봉 1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가 이 매혹적인 제의를 거절했을 때 비평가들은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돈을  가진다면 당신은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오."
  그는 부드럽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돈으 전부  가진다면 나는 나의 사람들을 잊어버릴 지도 모르죠."
  조지 워싱톤 카버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는 명성과 부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상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 행복과 명예를 찾았다.'
  이 정신을 조금만이라도 당신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헌신은 당신이 나누어 가질 어떤 재산보다더 더 세상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더러운 놈은 쫓아내야지
 요13:14;막9:34,50;갈5:17;행28:25
  어떤 모임이 있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하게되었고 결국 얼굴까지 붉히게  되었다.
  그래서 회의는 중단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서로의 눈치만 살피느라 방안 분위기는 점점 싸늘해졌다.
  그때 한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더러운 놈 같으니. 이놈은 가끔 나를 귀찮게 한단 말이야. 이런 더러운
  놈은 쫓아 버려야 해."
  사람들은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횅하니 방안을 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 보았고 방안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싱글벙글하며 들어왔다. 그래서 한 사람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게, 자네 지금 어디 갔다 오는건가?"
  "화장실에 다녀왔네. 내가 뭐 틀린 말했나? 더러운 것은 몸에도 마음에도 담아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분노는 분토보다
  더러운 것이어서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거든. 그러니 우리 모두  더러운 놈은 쫓아 버리세. 나처럼 말일세."
  그 소리에 방안은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리하여 마음에 여유가생긴 사람들은 회의를 잘 진행시켰고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되었다.


더러운 말은 담아 가시오
    엡 4:29-32; 잠 10:19; 26:21-25
  괴테의 집에는 언제나 정치가, 문학가, 군인, 실업가 들을 괴테의 문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이  타인의 흉을 보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괴테는  눈을 날카롭게 반짝이면서 엄하게 말했다.
  "여러분, 종이 부스러기나 음식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남의 흠이나 음담패설을  흘리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더러운 말을 모두 주워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을 저의 집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흠을 보는 것은 공기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더럽혀지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산족제비는 황적갈색인 자신의 털이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동물의 털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족제비의 성격을 이용해 사냥꾼들의 족제비 사냥을 하는데, 산제비가 사는 집을 찾아내고 그 집과 주위를 더럽게 해놓고는 산족제비를 만났을 때 사냥개를 앞세워 추적을 시작한다.  그러면 이 동물은 자기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데 거의  집에 다다라서 자기의 집이 더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산족제비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냥개가 오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선다.  자신의 털이 더럽혀지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살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의식과 신념」은 필요충분조건이다.어떤 농부가 쳐놓은 그물에 두 떼의 새들이 갇히고 말았다.그런데 한 떼의 새들은 『자,우리가 힘을 합해 날아 올라 그물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면 산다』고 외치며 동시에 솟구쳤다.그러자 「연약해 보이는 날갯짓」이 큰 힘을 발휘해 조금 높은 버드나무 가지에 그물을 걸었고 새들은 살아났다.그러나 한 떼의 다른 새들은 『우린 꼼짝없이 죽었구나』하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모두 농부에게 잡히고 말았다.


더불어 살기
 어느날 시각장애인과 한 쪽 발을 못 쓰는 장애인이 고갯길 앞에서 만났다.
그들은 고갯길을 올라가야 했다."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시각장애인의 말에 다리장애인은 "제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주겠습니까?
제 다리도 끌고 가기 힘든데…."라고 말한 후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러나 말입니다.당신이 나를 업고 간다면 나는 당신에게 장애물을 일러줄 수 있다오""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우리는 서로 도와야겠군요"
 고갯길이 좀 가파르기는 했지만 이 두 사람에게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간다
  시 104:30; 사 11:6; 40:26; 암 4:13;
  소나기가 많이 오는 열대지방을  살펴보면,  나무가 무성한 숲의가장  꼭대기부터 작은 새,  조금 큰 새, 원숭이, 뱀 순으로 자리잡고있다.    뱀 근처의나무에는 가지와 잎이 가장 무성하였고, 또   그 아래에는 야수들이, 뿌리 근처에는 여러 종류의 버섯이며 키 작은 관목들과 풀이 자라고 있다.
  지지(지지)학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제일 높은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이들을  제거해 보았다.  맨 먼저 작은 새를 옮기고 그  다음으로  원숭이를옮긴  뒤, 숲의 상태를  여러 해 관찰해 보았는데 깜짝놀랄 일들이 일어났다.
  재재거리며 마냥 즐거운 노래만 하는 줄 알았던 새들과  원숭이들이  없어진 숲의 모습은 아주 딴판으로 달라져 버렸다.   새싹이 나오지도 않고,   원숭이들의  장난으로 적당히 꺾여 매양 키가  작았던 가지들이 쑥쑥 기를 펴어미나무를 약하게 만들고...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
오래 전, 교외선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젊은 대학생들이 소주병을 앞에 놓고 시국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언성이 높아져서 그만 차안이 시끄어웠다. 다른 승객들이 짜증스러워했지만, 혹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때 건장한 군인 한 사람이 나서서 타일렀다. "여보쇼,학생들!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한 다른 승객들 생각 좀 하고 좀 조용히 합시다."
그러자 청년들은 예상했던 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용히 하고 않하고는 내자유요,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그러자 다부지게 생긴 그 장교가 말 대답을 하면서 대드는 그 청년의 멱살을 잡더니 보기 좋게 따귀를 올려 붙였다. 그가 왜 때리느냐고 거칠게 덤벼들자 군인이 이렇게 소리쳤다. "때리는 것도 내 자유다,임마!"
    어느 지방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한 여자 손님이 껌을 씹고 있었다. 얼마나 소리를 크게 내는지 차 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 쪽을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중년 남자가 헛기침을 하면서 특히 눈총을 줬지만, 눈을 지그시 감은 그녀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운전 기사도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차 안의 거울로 자꾸만 뒤를 보더니 드디어 한 마디를 했다. "아주머니,껌을 씹더라도 이 자동차 엔진 소리보다는 조금 작은 소리로 씹으시죠." 차 안에는 폭소가 터졌고, 그 껌 씹는 소리는 이제 그쳤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 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여자 손님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담배를 계속 피워댔기 때문이었다. 참다 못한 여자 손님이 아까
씹던 껌을 손바닥에 탁 뱉더니, 그 남자에게 내밀으며 말했다. "이것 좀 드시지요." 의아해 하는 남자 승객에게 여인이 말했다. "나는 댁의 입에서 나온 연기를 아까부터 맡아왔으니 이제는 당신도 내가 씹던 껌을 한 번 씹어 보시지요."


더 위대한 것은 사랑
본문 마지막에는 여러분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자, 여기서 제일이라 한 것이 무슨 말인가? 성경책 각주를 보라. 맨 밑에 보면 조그마하게 씌어 있다. '더 큰 것은' - 이렇게 되어 있다. '더 큰 것은' - '제일'이라 한 것은 'first'가 아니라 '메이존'이라는 헬라말로 영어로는 'greater'란 뜻이다. "더욱 위대한' '더 큰'이다. 더 근본적이고 더 기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 보라. 사랑하면 믿어진다. 참 이상하다.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이유 없다. 사랑이 없어진 것이다. 사랑하면 믿어진다. 사랑하면 기대를 건다. 사랑하면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떤 때에 '당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마지막 말이다. 그 말하고 다시 같이 살 생각하지 말라... 사랑에는 실망의 흔적이 없다... 또 사랑하면 소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끝까지 낙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는다. 그게 사랑이다.

 

더욱 중요한 일
 이른 아침,런던의 다운닝가  10번지(영국수상관저)에서는 겁에  질린노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마침 의회에서 발표해야 하는 연설문을 작성하던 윌리암 크래드스톤(William E.  Gladstone.  1809-1898
수상취인)이 놀라 문을 열자 문 앞에는 한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친절하게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글래드스톤 선생님, 나의 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천국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시지 않으시겠어요?"하고 소년은  애원했다.
어느 크리스찬이라도 할 수 있는 이 중요한 일을 위해 그는 자신의 중요한 일을 내버려둔채 죽어가는 소년의 형에게로 갔습니다. 마침내 그소년의 형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서재에 돌아와서 그가 준비하고 있던 연설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다가 "오늘 나는 영국 런던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썼습니다.

 

더 풍성히 얻도록 기도하라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
하나님은 당신이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오늘 당신은 낙천가가 되라. 당신은 보다 나은, 보다 좋은 삶을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아들을 위한 기도(맥아더)
맥아더 장군은 매일 아침 겸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오 주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원이 됨을 아는 아들을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담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아들을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아들을 나에게 주옵소서. 바라옵건대 그를 쉬움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곤란한 도전에
대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폭풍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참 목표가 높
은 아들, 웃을 줄 아는 동시에 파괴를 잊지 않는 아들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이것을 다 주신 다음 이에 더하여 유모어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면서 삶을 즐길 줄 알게 하
시고, 자기 자신을 너무 중대히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개방적인 것이요, 참된 힘은 온유함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주옵소서 ........]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알렉산더가 어렸을 때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3년 동안 교육을 잘 받고 왕궁에 돌아왔습니다.
부왕 필립공은 알렉산더가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철학,수학,점술 등을 물어 보았으나 배운 것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저 3년 동안 스승의 뒤만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실망한 필립공은 아들을 직접 교육시키기로 작정하고 알렉산더를 데리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전투를 한 후 언덕을 경계로 양군이 노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보초병이 임금의 막사에 급히 뛰어들어 올라와 필립공을 깨웠습니다.
"언덕 너머에 적들이 모두 피곤하여 잠들어 있으니, 지금 공격하면 승리 할 수 있습니다."
필립공은 못들은 척 하고 있을 때 왕자 알렉산더가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승리를 도적질하고 싶지 않다. 내일 아침 나는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겠다."
이 아들의 말을 들은 필립공은 벌떡 일어나 알렉산더의 등을 두드리면서 "너는 과연 위대한 아들이다. 나는 일 국의 왕이지만 너는 세계의 왕이 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기뻐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법이 중요하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함을 깨우치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습3:5)

 

축복을 더해주는 감사신앙
본문: 누가복음 17:11-19
<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금년에도 엄청난 수마가 우리 나라와 이웃을 할퀴고 갔고 여러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우리가 건강하게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거리를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하는 많은 문제는 사실 감사하지 못하는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것! 바로 삶의 최대의 지혜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 감사해야 진짜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한번 감사하는 것은 일이 잘 될 때 백 번 감사하는 것보다 가치 있습니다. 주님은 어려울 때 감사하면 "네 믿음이 크구나!" 하시면서 더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높으신 뜻이 있음을 믿고 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사람은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실패를 잘 요리하면 성공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고상한 실패는 수많은 저속한 성공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더 많은 교훈을 얻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교훈만 얻습니까? 그때 바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실패 속에서 자기 연약함을 인정할수록 하나님 만날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얼마 전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 레나 마리아가 내한 공연을 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이 없었고, 한쪽 발도 짧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발로 글을 쓰고, 발로 밥을 먹고,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십자수도 놓았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수영과 운전도 하게 되었고 장애인 올림픽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 아름다운 찬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녀는 자기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르게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천사의 표정을 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며 희망을 노래해야 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은 크게 영광 받으시고, 큰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 살면서 시련도 있어야 합니다 >
때로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알고 보면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가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편하고, 일이 잘 풀리고, 자녀가 잘 나가면 잘 믿을 것 같지만 더 못 믿게 됩니다. 대개 망하는 사람을 보면 환난 때문에 망하기보다 잘 되는 것 때문에 더 망합니다. 잘 된다고 흥청망청 살고, 음란하고, 안일하게 사니까 내 안에서 망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전혀 없기를 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어려움도 예상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어려움은 더 안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돈과 권력과 지위와 건강이 있어야 행복합니까? 자기의 사람됨은 저 밑바닥에 있고, 자기 영혼은 병들었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추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기보다 건강은 약해도 아름답게 사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건강, 내 생명, 내 가는 길을 지켜 주셔야 우리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평안하게 지냈습니까? 다른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외적으로 불안하니까 만리장성을 쌓았고, 내적으로 불안하니까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건강이 불안하니까 동남동녀 3천 명을 동해 신선도로 보내 불로초를 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대적은 다 죽였지만 오래 못 살고 아방궁에서 마흔 아홉 살에 죽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외적도 있고, 내적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고, 그래야 우리가 바로 살고, 우리가 겸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시황처럼 별난 것을 먹고, 유별나게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잘 믿어야 참 행복과 위로부터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자기밖에 모르게 되지만,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남을 생각해 줍니다.
어떤 재벌 아들이 미국 가서는 편지 안 하더니 군대 가서는 편지를 잘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역시 군대 잘 갔다. 군대 대학이 제일 좋은 대학이구나!" 했다고 합니다.
어려워봐야 부모가 보이고 형제가 보이고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이란 어려움이 없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며 이겨내는 믿음의 삶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하나님을 믿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축복을 얻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
오늘 본문은 10명의 문둥병자 얘기를 통해서 감사를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인 일입니까? 그들이 예수님 소식을 듣고, 멀리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세요!"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의 한을 아시고,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
당시에는 제사장이 문둥병이 나았다고 판정해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상처 때문에 불평이 늘어난 교만한 문둥병자가 이렇게 불평합니다.
"안수도 안해주고 이게 뭐야! 예수님이란 분도 별 수 없어! 우리가 더럽단 말이지!"
가장 큰 비극은 불행을 당했을 때 자기 불행에만 매달려 사는 거만한 모습입니다. 만약 이 문둥병 환자들이 불행에 매달렸다면 결코 그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을 당했을 때 필요한 것은 불행보다 주님의 긍휼에 매달리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다행히 문둥병자들은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떠났습니다.
문둥병자가 병도 낫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꿈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가족들 만날 부푼 꿈을 안고 계속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 행동을 '하나님께 영광 돌린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고백을 많이 하고,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지를 잘 모릅니다. 자기가 믿는 자로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 좋은 일을 해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름을 드러낼수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크기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나면 감사하되, 이름을 억지로 내지 않을수록 하나님께서 더 영광 받으십니다. 얼마 전, 가난한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신학 공부를 시켜주는 안디옥 선교회를 갔을 때
이슬람권에서 온 학생들이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동으로 피곤에 지친 얼굴을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공부하는 그들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자 한 분이 조용히 한 사람 교육비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등록금 보조를 받은 학생은 누가 자신을 도와주었는지 모르니 어떻게 합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신학생이 도와준 분을 알고 큰절을 했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름 없이 선행을 하니까 결국 전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름 없이 선행을 하게 되었을까요? 은혜 받고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인터넷으로 말씀을 대했지만 마음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나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감사하면 더 큰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러 온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열 명이 다 깨끗하게 되었는데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나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 한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두 가지 큰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인정이었습니다. "너밖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없구나!"(18절)
이 세상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 특히 주님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한 명의 감사를 표현한 문둥병자는 결국 '주님의 인정'과 '구원의 은혜'까지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비하면 문둥병자의 병이 나은 은혜는 오히려 작은 것이 아닐까요?
그처럼 감사할 것에 대해 감사하면 반드시 높은 이자와 함께 축복이 돌아오게 됩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행복의 문'도 반드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암에 걸렸습니다. 몸이 힘드니까 간호하던 자녀들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의 심방예배를 받으면서 이분은 모든 것을 감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한번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이분은 죽도록 감사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병원에 오는 분마다 이분의 감사 고백을 듣고 오히려 용기를 얻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처럼 죽도록 감사를 실천하니까 암세포가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영혼과 육신의 암까지 치료되고,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감사한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그들 중에는 제사장에게 보여 완치 판정을 받고 가족들을 만난 후, 가족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감사하러 오겠다는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을 미루면 대개 감사하지 못하고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살게 됩니다. 병들었을 때는 "이 병만 고쳐주시면 제일 잘 믿을게요."라고 누구든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고 조금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특히 더 늦어 후회가 되기 전에 부모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요구하는 모습은 많아 보여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적습니다. 육체가 무감각해지는 문둥병보다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영적 문둥병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에 무감각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행복이 끝장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속에는 마귀가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때, 말로만 감사하기보다 시간으로도, 몸으로도, 물질로도 감사하십시오. 사실상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지 않습니까?
복음의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도 역시 실질적으로 물질이 많이 필요합니다. 누가 그 필요를 채워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감사를 아는 우리가 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저는 믿음이 없어요. 사업 조금 더 하고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겠다는 분이 시간이 지나 선교하고 구제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 감동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 당장 다른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힘껏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금년을 보람있게 사셨습니까? 한번 속으로 남을 위해 해 준 것을 한번 꼽아보십시오.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한번 펜을 가지고 종이에 남을 위해 해 준 것을 적어보십시오.
종이에 하나도 적지 못한다면 금년 한해도 별로 보람있게 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그 책임을 읽을 줄 알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진실로 감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
루터는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항상 '있는 것'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나처럼 모자란 사람과 기쁘게 살아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떤 남편은 아내가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으니까 참아가며 자기와 살아 주는 줄 압니다.
그런 생각은 가장 위대한 착각입니다. 그런 착각과 오해가 가정을 파괴하는 세균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서 가끔 예배에 방해가 됩니다. 그것도 사실 감사거리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작가의 고백을 듣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의 고백에 의하면 작가에게는 사색과 명상을 위한 조용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애들이 시끄럽게 하니까 줄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고 짜증이 났습니다. "조용한 곳에 혼자 얼마나 좋을까" 하는데 어느 날 진짜 조용한 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심한 위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니까 조용해서 처음 열흘간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그 조용한 시간이 금방 싫증이 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오히려 글쓰는 촉매제가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조용한 순간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시끌벅적한 순간도 필요합니다. 조용한 것이 좋아 보여도 신경성 정신질환은 대개 소리가 없는 환경에서 많이 생깁니다.
지나치게 조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에는 텔레비전 소리, 차 소리, 시장 소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어린아이들 소리가 많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중에 어렵게 사는 사람이 더 감사할 줄 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풍족하게 사는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요새 아이들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해주고 학교에도 자가용으로 모셔다줍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 감사하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힘써 가르쳐야 합니다. 풍족해도 아이들에게 풍족함을 다 쏟아 붓지 마시고, 항상 감사하며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자녀가 잘 되는 길이고, 자녀의 눈빛이 빛나게 되고, 축복 받는 길입니다.
많이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복된 존재입니까? '많이 가진 삶'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조엘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는 더욱 조심하라. 살찌는 돼지는 운이 나쁜 돼지이다."
어떤 분은 참 어렵게 사는데 감사하는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사람은 은혜 받을수록 은혜를 잘 모르지만 성도는 은혜 받을수록 더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부모가 큰아들을 위해 논 팔고, 소 팔아서 유학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결국 큰아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미국에 주저앉아 편지 한 통 없었습니다. 반면에 작은아들은 큰아들 공부시키느라고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고생한 노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작은아들이라면 누가 복된 존재입니까?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에 속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아는 한 명이 되십시오.
신앙생활의 목적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민을 가슴에 품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 중에서도 주님은 우리의 진실한 감사를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남을 도우며,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돼지
어느 돼지가 땅을 열심히 팠더니 보화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 그는 보화를 가져다가 신이 나서 친구 돼지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해서 친구 돼지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약간의 돼지들은 보화에 눈이 둥그래져 그것을 얻느라고 정신이 없는 반면 대부분의 돼지들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그에게 가까이 와서 그 보화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보화를 받지 않는 친구들을 경멸하였다. 저 친구들은 보화도 모르는 바보들이야. 내가 이렇게 착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나누어 주려는데 받지도 않다니. 그러나 그 돼지는 자기 온몸이 오물로 가득 묻어 있어 더러운 냄새 뿐만 아니라 닿기만 해도 그 오물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어떤 신자가 신앙 생활을 하며 능력을 사모하여 열심히 땅을 파듯이 기도하여 귀한 은사들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열심을 가지고 이 은사를 가지고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너무나 원하며 기도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무지 길을 잘 열어주시지 않으셨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기도할수록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그의 영혼의 모습은 기가 막히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서 가르쳐 주시는 자신의 부족함 조차도 굳은 그의 마음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성으로 뿌리 박혀 있는 것인지 깨닫지조차 못한 것이 많음을 깨달았다.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 조차도 은사일 뿐이지 그것이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그는 이전에 몰랐었다. 은사 좀 받았다고 그는 자신이 거의 천상에 이른 그야말로 이제 사람들에게 이 은사를 나누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섬길 길을 열어주지 않음만 이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러움 뿐만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기적인 그의 영혼의 모습을 보며 아! 이 오물들이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여태까지 사역을 열어주지 않으셨구나 깨닫고 부끄러운 모습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가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도록 간구하였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안에 사시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 온전한 성화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으며. . .
그래서 이 더러운 돼지는 보화를 나누어 주기 위해 먼저 열심히 몸과 손을 씻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해장국보다 더 진한 이웃의 정
" 또 주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사도행전 20 : 35)
부산 사상구 엄궁동의 '외갓집 사골 해장국' 주인 박기인(40)씨는 요즘 손님을 맞을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박씨에게는 '손님'이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개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박씨는 지난 6일 남들처럼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을 위해 하룻동안 해장국을 서비스 했다. 그리고 출입구 옆에 성금함도 갖다 놓았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돈을 내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냥 나가도 되는 '자율 모금'이었다. 행사 당일 주방에서 나간 해장국은 모두 200여 그릇. 한 그릇에 4천원이니 어림잡아 80여만원어치다. 손님에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모금함을 제대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영업이 끝난 뒤 함을 열어보니 무려 103만 5천원이나 들어있는게 아닌가. 박씨는 이날 자선 행사를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쓰려고 했지만 그마저 동네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몰려와 설거지, 홀서빙 들 무료 봉사를 해준 덕분에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7일 아침, 동사무소에 "의탁할 곳 없는 어르신네들을 위해 써 달라"는 부탁을 하고 돌아 온 박씨는 요즘 30여평 가게에서 사골 해장국보다 더 구수한 인정과 사랑의 내음을 맛보며 살고 있다고 한다.

 

마리아앤더슨
어떤 독창」-격려
흑인으로 냉대와 멸시를 이기고 미국 성악계에서 찬란한 별로 떠오른 마리아 앤더슨이 조그만 도시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을 때의 일화.가난한 한 소녀가 호텔에서 잡일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떴을 때 흑인 중년부인이 『너 외로워 보이는구나』라고 말하며 서 있었다.『네.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리아 앤더슨의 공연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일해야 했기에…』 소녀가 말하자 중년부인은 소녀의 손 을 잡으며 나즈막히 노래를 불렀다.소녀는 울먹이며 말했다.『마리아 앤더슨이군요』

 

더 큰 사랑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그 집 며느리는 옆에 있는 신랑에게 손으로 떡을 소담스럽게 잘라 비벼서 주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나고 입에 군침이 돌아도 체면이 있어서 달라고는 못하고 창 밖으로 먼산만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부인이 들어오면서 며느리에게 얘, 아버님 떡 좀 드렸느냐? 고 하자 아니요, 아버님은 상 차려서 잘 해드려야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떡을 뚝 떼서 주먹만하게 만들어 콩가루를 묻혀 남편에게 어서 일어나 우선 잡수세요 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한 입에 넣고는 이놈아 너만 색시있냐 나도 있다 고 했다고 한다.이 시아버지는 한때 서울을 새벽마다 다녔었다. 그 부인은 새벽이면 일어나 더운밥을 해주다가 그것이 지겨웠는지 나중에는 저녁 하는 길에 밥을 한 그릇 더 해두었다가는 새벽에 먹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우유나 커피 한잔만 끓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미안도하고 또 부인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 새벽에 그냥 간다고 하며 옛날 그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먹겠느냐 안 먹겠느냐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첫새벽에 일어나셔서 밥을 해놓으셨다가 아들에게 먹였고 먹여 보낼 시간이 없으면 보자기에 싸 주어서라도 보냈었다. 며느리가 귀여워도 아내만 못하고 처가 좋다한들 어머니만 못한 것이다. 조건 없이 부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하나님 사랑의 화신이다.

 


설교보다 더욱 훌륭한 것
한 마을의 과부와 6명의 자식들이 모두 전염병에 걸렸다. 그러자 그 마을 목사 부인이 아침 식사 중에 자신이 가서 그 가족들을 돌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인 목사를 비롯하여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시91:6-7)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결심을 꺽지 않았다.
"나는 시편 기자가 한 말씀을 믿고 있어요. 이 말씀은 나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내가 없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을 돌보아 주실 거예요."
그녀는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에게로 가서 4주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지냈다. 마침내 그 가족들의 병이 완쾌되자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들의 염려와는 달리 전염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그녀의 가족들도 모두 무사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목사의 설교보다도 오히려 그녀의 행위가 그 마을 사람들의 신앙심을 깊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마5:16, 딤전4:12, 벧전1:15)

 

마더 테레사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 : 12))
테레사수녀의 생애에 있어서 두 번째 커다란 변화는 캘커타에 있는 로레토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고등학교에서 그녀가 교편생활을 할 때 일어났다. 하루는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서 가장 비참한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는 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곳으로, 결코 아름다운 정원, 발랄한 여학생들, 친근한 동료들, 그리고 안정된 생활이 있는 로레토 수녀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레사 수녀는 여기서 또 다른 성소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성소를 위해, 이미 약속한 서원이 풀리기까지 2년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수녀원을 떠나 캘커타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동네를 찾아갔다.
테레사 수녀는 정말 꼭 필요하고 요구되는 바로 그곳에 영감자와 지도자로 현존하였으며, 그 때문에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이 여성을 특별히 바라보며 따르고 있다. 누구든지 이 수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테레사 수녀야말로 오늘날 우리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물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함이나 명성을 달고 있지는 않다. 네온처럼 번쩍이는 유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아주 평범한 인간들 속에 파묻혀서 인간의 고통과 가난을 함께 겪는 겸손한 모습의 위대함을 갖고 있다.

 

더좋은것을 받는 감사
미국의 소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이취에 대기근이 있을 때였다.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이 기아로 신음하게 되었다. 한 부자는 30명가량의 어린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주머니 속에, 너희 한 사람에 게 한개씩 줄 수 있는 빵이 들어 있다. 그것을 한나씩 가져 가거라. 매일 하나씩은 계속해서 주기로 하마`라고. 어린이 들은 매우 굶주려 있었다. 그래 그들은 주머니를 보기가 무 섭게 서로 아우성을 치면서 큰 것을 가지려 힘내기를 하여, 힘센 아이가 큰 것을 차지하고는, 주인에게 인사하는 것도 잿 가버렸다. 이 싸움틈에 들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 고 있던 그레첸이라는 소녀는, 조용해지자, 주머니 있는 곳 으 로가 맨 적은 빵 하나를 집어 냈다. 그리고는 얼굴에 기쁜 표 정을 지으면서, 주인을 찾아가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돌아 갔 다. 그다음 날에, 어린이들은 또 모여 왔다. 전번과 한가 지 로 서로 다투어가며 빵을 가지고 갔다. 그들과 한가지로 다 툼속에 끼지 않은 그레첸은, 다른 애들의 반도 못되는 어 젯 것과 같은 빵을 가지고, 역시 감사를 드리고서 집으로 돌 아 갔다. 그레첸은 그것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기 위하여, 다 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누는데, 놀랄일이 생겼다. 그 것 은 빵속에 빛나는 50센트 은화가 여섯 개나 빛나고 있는 것 이었다.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워 그레첸에게, `아무래도 네 가 잘못 가져 왔는 모양이다. 이런 돈은 우리들의 것이 아 니 다. 곧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에게 돌려드려라`고 했다. 그 렌 첸이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드리려 간때 주인 할아버지는 말 했다. `틀림 없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감사할 줄 아는 착한 네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속에 넣고 굽게 한 것 이다`라고. 작은 것이라도 감사히 알고, 감사를 잊지 않은 때 , 더욱 감사할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맨 밑에, 더 작게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린 무거운 가지는 항상 맨 밑으로 조용히 내려져 있는 법이며, 강 속의 깊은 물은 잠잠한 법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전능한 모습 앞에서 우리는 더욱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와 같이`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나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
한 사람들은 격한 교만의 감정과 헛된 영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은혜를 구하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보인다. 자기 자신을 복종시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진실로 동참하여 사는 사람만이 더욱 자라나 이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
요하다. 그 첫째로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 자기 자신을 복종시킨 이후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만을 구하며 사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리스
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또한 자신도 죄에 대하여 죽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우리 속에서 살아 나는 것을 의미한다.`

 


네가 더 필요하다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치가이자 군인, 시인이기도 햇던 필립 시드니 경은 역사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로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으나 세대를 이어오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신사다운 인간 됨됨이 때문이다.
1585년 겨울, 시드니는 스페인 통치에 저항해 싸우는 네덜란드를 돕기 위해 당당하게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나 1년이 지났으나 스페인 군대와의 싸움은 별 전과를 올리지 못해 병사들의 사기는 뚝 떨어졌다. 시드니는 여왕에게 병사들에게 월급을 더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는 등 온갖 방법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1586년 시드니는 스페인 군대가 쥐트페 시내로 군수물자를 들여보내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작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영국부대가 스페인 부대의 철통같은 경비로 무장된 보급열차를 뚫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맨앞에 선 시드니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돌격!'을 외치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 세 번째 돌격에서 시드니는 허벅지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고꾸라졌다.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한 것이다. 삽시간에 그의 바지는 피로 물들었다.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달려오자 시드니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벌떡 일어나 말등에 올라탔다.
당당한 자세로 전장을 빠져나오려던 시드니는 끝내 들것에 후송되었다. 도중에 시드니는 백부인 레스터 백작을 만났다. 죽어가고 있던 시드니는 심한 갈증에 뒤척이고 있엇다. 레스터는 참담한 심정으로
물통을 건네 주었다. 허겁지겁 물통에 입을 대려던 시드니는 중상을 입어 함께 후송되고 있던 병사가
자신의 물통을 쳐다보고 잇음을 느꼈다. 시드니는 꿀꺽 침을 한번 삼킨 다음 물통을 병사에게 내밀었다.
"나보다 네가 더 필요할 것 같구나."
그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한 시드니는 1587년 끝내 두눈을 감고 말았다.

 

더 높은 소망(갈매기 조나단의 슬픔)
갈매기들은 해변가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앉아있다가 배가 고프면 또 먹이를 찾곤 한다. 그것밖에는 갈매기들이 더 이상 돌아다니는 곳이 없다.그것이 갈매기의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중에 꿈이 컸던 조나단이라고 하는 갈매기가 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단다.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다를 볼 수가 있단다."
그리고 그 미지의 나라로 가자고 속삭이기도 했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조나단이 돌았다고 그들의 세계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동료사회에서 추방된다.
추방당한 갈매기 조나단의 슬픔은 동료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는 그러한 슬픔이 아니었다.그보다 더 큰 슬픔이 있었다.
"높이 날 수 있는데, 멀리 갈 수 있는데"
동료들이 이 비상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대한 슬픔이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 한계이상을 보기를 거부하는 짧은 안목에 대한 슬픔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고독한 선구자 조나단의 슬픔이었다.

 

공적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된 첫 선교사 언더우드
언더우드(1859-1916, Horace G. Undewood)는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 죤(Jdhn Underwood)과 어머니 엘리자벧(Elisabeth Grant Marie)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죤은 믿음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화공학 방면에 재주가 있어 인쇄용 잉크를 발명하였고 타자기와 묵지(리본), 안전지등을 발명하여 영국 왕실 예술원으로부터 메달과 표창을 받은 바 있었다.
13세 되던 때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1881년 뉴욕 대학을 졸업하고 뉴저지 주에 있는 뉴 브른스위크 신학교에 입학하여 1884년 동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신학교는 미국 화란계 개혁교회에서 경영하는 학교로 일본 개척 선교사 페어벡 등 유명한 선교사들을 배출한 신학교다. 언더우드는 신학재학 시절부터 인도 선교를 지망하고 그것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기에 여념이 없었던 자였다.
그러나 한국의 소식을 접한 이후 언더우드는 "너 자신은 왜 못 가느냐 ?" 라는 응답을 받고 한국 선교를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언더우드는 한국에 들어온 뒤에 제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였고, 이후에는 제중원 의학교에서 물리 화학을 강의하였다. 그는 1886년 2월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이 고아원은 후에 야소교 학당, 경신학교로 발전하였다. 1887년 9월 정동교회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후에 새문안 교회가 되었다.
언더우드는 정치적 권한을 가진 행정가라기 보다는 선교사로서 활동하였고, 한국에서 여러 가지 공로를 남겼다. 1894년 찬송가를 간행하였고, 또 성서를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가 1916년 9월 12일 사망하기까지 한국의 교인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교회사가 민경배교수는 "한 역사적 인물을 당시 시대상황과 완전히 유리시켜 평가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전제하고 "언더우드 목사는 한국의 기독교뿐 아니라 서양문화 도입에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으며 한마디로 한국근대문화는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했다.

 

누가 더 잘 알고 있을까요?
젊은 자동차 정비사가 헌차를 한대 싸게 샀다. 거의 굴러가지 않을 정도의 고물 차를 열심히 수리해서 타고 달리니 기분도 좋았고 자기의 기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루는 그 차를 운전하여 약간의 장거리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엔진 이 털털 거리더니 딱 멎어 버렸다. 젊은이는 차에서 내려서 엔진의 뚜껑을 열고 고장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때마침 지나던 차 한대가 옆에 대고 정차하더니 노인 한 사람이 내려와 젊은
정비사의 곁에 와서 엔진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청년 정비사는 그 노인을 바라보고
"문제 없습니다. 그냥 가세요. 나는 정비사 이니까요."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한 태
도로 여기 저기를 찾아 만져 보았다. 그러나 고장을 고치지 못하고 발동은 여전히
안 걸렸다.
그때까지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젊은이, 내가 좀 도와주지."
그러면서 손가락 한개로 엔진의 한 부분을 톡, 친후 "자, 발동을 걸어 보시요."
-a고 했다. 의심쩍은 얼굴로 청년이 발동을 걸어보니 엔진이 붕,붕 하며 잘 돌아
간다. 기가 막혀진 정비사 청년은 그 노인을 향하여 의아스러운 눈으로 물어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대답했다.
"네. 나는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입니다."

 

바비 홀더슨의 이상한 생애..^^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비 홀더슨입니다. 이 사람은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평생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죽을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사연인즉 그 사람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범죄하여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었
다고 합니다. 마침 그때 임신 중이어서 바비라는 아들이 감옥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감옥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태어난 아기는 감옥소측의 배려로 어머니가 기르게 되
었습니다. 이제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때가 되자 아이를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동안 감옥 생활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어머니 품이 그리워 다시 감옥에서
살게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세상의 자유 분방한 삶에 적응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교도소의 특별 허가를 받아 다시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것
이 마음 편하고 감옥이 마치 자기 집처럼 여겨졌나 봅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그 교도소의 교도관이 되어 한 평생 감옥에서 살다가 감옥에서 죽어습니
다.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한 사람의 대단히 흥미있는 인생 이야기 였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여기 가난한 삶을 나누는 두 선교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원휘 선교사는 케냐에서 침술하는 의료소를 열고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술로 선교를 하고 어린이들을 위하여 조그마한 유치원을 만들고 빈민촌에 온종일 버려진 아이들에게 글과 노래와 춤을 가르쳐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곳 주민들과 한 동네에서 어울려 살면서 아프리카의 가난과 질병, 배고픔과 외로움을 같이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며 사랑의 선교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 속에 들어가 삶을 같이 해주는 것은 곧 그 가난한 이웃을 높여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이 있는 데로 와서 그 학생이 깨달아 알 때까지, 또 배울 때까지 있어 주는 것은 곧 그 학생을 높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짐이 우리의 높여줌이 되듯이 사회와 가정에서 부유하게 누릴 수 있는 이들이 먼저 가난한 이웃이 있는 곳으로 가고, 더불어 살면 가난한 이웃이 부유해지고 높아지고 인간의 존중을 받는 것이 됩니다.
주는 물질의 분량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러한 삶에는 크게 값을 치러야 합니다. 봉사하고 치유하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줄 수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만으로 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가난하게 되어 그들 속에 삶, 사랑, 사람으로 함께 해야합니다.

 

더 좋은 것
지난 세계 복음화 대성회에서 어느 훌륭한 신학박사인 목회자의 설교를 통역하던 중 감동 깊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사무실에 패트라는 젊은 여자가 우울한 얼굴로 목사님을 찾아왔 다. 사연인 즉 2년전 기도하는 가운데 선교사가 되거로 약속했지만 결혼이 더 급하다는 생각에 신랑감을 찾느라고 2년동안 교사로 지내고 있었으나 아직도 알맞는 남자가 없고 늘 답답하게 기냈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분명한어조로 "정말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세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렵지만 순종하여 아프리카 기니아에 선교사로 갔는 데 놀라운 사실은 그 밀림 속에서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살게 됐다 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좋으며, 더 필요한 것인가를 , 또 가장 좋 은 것인지를 아시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리석은 소원을 말씀드려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또는 그 소원 조차도 이 루어지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는 실수도 저지르곤 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나님께 자신을 의뢰하는 맏음의 심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교회가 없었더라면
교회의 친교,
주일학교,
기도회,
크리스천의 가정,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죄인에게 설교할 복음,
외국 땅에 보낼 선교사,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가 바라고 있는 환희의 결혼날,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위한 종교교육 과정,
가정의 제단,
외롭고 슬픔을 당한 가정을 심방할 목사,
죄인을 위한 기도,
소년 소녀들에게 주는 도덕적 훈련,
크리스천 대학,
죄인을 위한 사랑,
이런 것들이 없을 것이다.
참조: 시11:4, 시79:1, 마12:6, 마27:40

왜 교회에 가십니까
1) 그 주간의 책임을 잘 감당하도록 준비시켜 주기 때문에
2) 우리 영의 등불을 다시 켜 주기 때문에
3) 감사를 표현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4) 다른 신자들과 거룩한 교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5) 우리의 생활로 우리의 신앙을 증거해 주기 때문에
6)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영국의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은 매우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늘
낙천적으로 살았다. 나비 같은 콧수염과 펑퍼짐한 술통 바지,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이 뒤바뀐 구두 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채플린은 남의 흉내를 내는 일에는 단연 천재적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유명세에 몰려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내던 그가 하루는 남몰래 여행을 떠났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날 때였다. 때마침 그곳에서는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모두들 외모부터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다. 채플린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자기 신분을 속이고 그 대회에 출전했다. 재미있게도, 심사 결과 진짜 채플린은 겨우 3등을 차지했다. 그 대회에서는 진짜 채플린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한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일화다. 나는 돌 속에 섞여 있는 옥인가? 옥 속에 섞여 있는 돌인가? 나는 혹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는 아닌가?

 

 

어려운 일이 네 가지 있더라
중국 명대의 유학자요 정치가인 왕양명이 지혜로운 말을 남겼습니다. '살아보니 나의 인생에 어려운 일이 네 가지 있더라' 했습니다. '첫째로 어려운 것은 고생스러운 것이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을 때에 고생스 럽더라.' 기본적인 것입니다. 배고픈 것, 헐벗는 것, 참으로 견디어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남에게 냉대받은 것이 고통스럽더라.' 집안에서든 직장에서든 친구들에게서든,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친구로부터 냉대받는 것, 인간 관계가 그렇게 될 때 참으로 괴롭더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고민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고민이 있어서 이 실존적인 고뇌와 더불어 싸울 때의 고독과 고뇌, 이것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더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이 세 가지의 어려움보다도 가장 더 괴로운 것은 '한가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백인 에이미 머리와 흑인 바버라 시몬스는 절친한 사이다. 1985년 1월 2일 바버라가 다니고 있던 세인트존 교회가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서진 창문들, 나치의 휘장, 현관의 문짝에 휘갈려 놓은 "KKK". 여기 저기 총탄 자국이 있었고, 빈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으며, 성경과 찬송가집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그리스도 성상은 절단되어 버려져 있었다.
에이미 머리는 모금을 하고, 보안관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하는 한편, 주간신문에 세인트존 교회 사건의 기사를 싣게 하였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지지자들을 모아 세인트존 침례교회 구조위원회란 이름의 단체를 구성했다.
곧이어 교회를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파괴 행위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협박전화에 시달렸고 괴한에게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0여명의 사람들이 교회 파괴행위로 체포되었다.
1995년 8월 16일 또다시 세인트존 교회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러나 머리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었다. 그 때 텍사스주 신턴에 사는 한 건축업자가 건설 인부를 데리고 와서 불에 탄 원래 교회보다 일곱 배나 큰 교회를 지어주었다. 오늘날 세인트존 교회는 모든 역경에 굴하지 않고 서 있다.

 

더 큰 사랑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 때 그 집 며느리는 옆에 있는 신랑에게 손으로 떡을 소담스럽게 잘라 비벼서 주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나고 입에 군침이 돌았으나 체면상 달라고는 못하고 창 밖의 먼 산만 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외출했던 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며느리에게 얘, 아버님 떡 좀 드렸느냐? 고 묻자 아니요, 아버님은 상 차려서 잘 해드려야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떡을 뚝 떼서 주먹만하게 만들어 콩가루를 묻혀 남편에게 어서 일어나 우선 잡수세요 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한 입에 넣고는 이놈아 너만 색시있냐 나도 있다 고 했다고 한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주님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 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마더테레사
나는 알바니아인으로 태어났으나, 현재는 인도 시민이다.또 카톨릭 수녀이고, 하는 일에 있어 서는 전세계에 속하지만,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다. 처음 수녀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느꼈을 때 내 나이는 겨우 열두 살이었고, 유고 의 스코프예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비카톨릭 학교에 진학했으나, 그 학교에는 훌륭 한 목사님들이 계셨다. 그 분들은 학생들이 하 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그들에게 부여된 소명 에 따르기를 권하셨다. 나의 소명은 가난한 빈 민들을 돕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열여덟 살 때 다시 수녀가 되기를 위하여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나의 정에 대하 여 조금도 회의를 품어 본적이 없다. 그것은 하 나님의 뜻이었고, 그 분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하셨다. 1948년 나는 로레토 수녀원을 떠났다.
로레토 수녀원을 떠난 뒤 캘커타 거리를 따라서 처음으로 여행중에 한 신부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카톨릭계 신문을 위한 헌금을 기부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마침 다섯 루피가 남아 있었는 데, 벌써 그 중 넷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 버 렸기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나 남아 있던 한 루피마저 곧 신부님께 드렸다. 그날 오후 신부님이 날 만나러 왔는데, 봉투 한장을 들고 왔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뜻에서 봉투를 보 내왔다고 했다. 그 봉투 속에는 50루피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일에 축복을 내리시기 시작하셨구나 하는 생 각이 들었다. 또 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는 느낌도 받았다. 나는 여러분이 배고픔이 무엇 인 그 예를 보여 주고 싶다. 한 어린아이가 우리 자매로부터 빵 한 조각을 얻었다(그 아이는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가 빵을 잘게 떼 어서 한 조각씩 먹는 것을 보았다. 아이에게 물었 다. `배가 몹시 고플텐데 왜 빵을 빨리 먹지 않지?`
그 아이는 대답했다. `이 빵을 오래 갖고 싶어요!` 혹시 빵을 다 먹어 버리면, 다시
배고플까봐 두려 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만 빵을 잘게 떼어먹었던
것이다. 그 아이 곁에는 또다른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무것도 먹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는 빵을 다 먹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말했다. `우리 아빠가 편찮으세요, 지금 무척 배가 고프지만, 아빠가 아프시니까 이 빵이 먹고 싶으실 거예요 아빠께 드리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이 착한 어린이는 자기가 먹을 빵이 없어도 그 작은 빵조각의 기쁨을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 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위대하다. 그들은 우리 의 연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대한 사람 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맥아더와 금접시
맥아더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상원 국방위원들이 시찰을 왔다.맥아더 장군은 보고를 마친 후 국방위원들을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에는 가구도 없고 쇠침대만 덜렁 놓여 있었다. 맥아더는 “이 곳이 제가 생활하는 방입니다. 이 곳에서 일주일 지내고 주일에만 집에 갑니다”라고 말하며 자기가 고생하고 있음을 은근히 강조했다.
시찰이 끝나자 만찬이 베풀어졌고 금접시에 요리들이 담겨 나왔다. 그들이 돌아간 뒤 맥아더는 금접시 하나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고 범인을 꼭 잡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국방위원들을 의심하던 맥아더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금접시의 행방을 물었다.
며칠 후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만일 장군께서 그날 밤 야전용 침대에서 주무셨더라면 벌써 금접시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침대 모포 밑에 접시를 넣어두었거든요”
나의 일이 뒤틀리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이다.

 


한 치만 더
한 청년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전 재산으로 금광을 매입했다. 모든 열정과 지혜를 동원해 땅을 팠으나 금맥을 찾지 못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그는 광산을 헐값에 팔아 넘겼다. 그런데 광산을 인수한 새 주인이 땅을 한 치쯤 파고들자 금맥이 드러났다.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새 주인은 일약 대부호가 됐다.
청년이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광산을 판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 "한 치만 더 파고들자" 그는 이 신념을 가슴에 품고 보험설계사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고객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계약을 성사시켰다. '한 치만 더'라는 신념으로 일한 결과 1년만에 '세일즈 왕'이 됐다.
의지와 신념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재기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교훈과 경험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의 자산으로 삼는다.


 

시련이 닥칠수록 더욱 용기를 가져야 한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보통 고통스런 현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소설가 스티븐슨은 결핵 말기의 고통 속에서 명작을 집필했다.테레사 수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 만성두통을 참아내며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었다.파스칼은 청년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힌 온몸의 통증을 이겨내고 ‘팡세’를 남겼다.베토벤은 청각장애의 고통 속에서 불후의 명곡
을 만들었다.선교사 마틴은 폐결핵과 악전고투하며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프랑스 화가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으로 고통을 겪으며 그림을 그렸다.그가 붓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얼굴에 고통의 땀방울이 맺혔다.구세군운동을 주도한 캐더린 부드는 “내 삶에 있어서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고난은 사람을 새롭게 복구시키는 힘이 있다.고난을 통해 사람은 보다 완전해진다.고난을 통해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 고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그러므로 시련이 닥칠수록 더욱 용기를 가져야 한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
사랑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얼른 [미움]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미움이라기 보다는 [무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을까?
일찌기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와 "돈" "쾌락"에 쏠릴것을 예언한바 있다.(딤후3:2-4)
마태복음 8장은 백부장이라고하는 로마 장교가 자기집 하인에게 보여준 아름다운 관심하나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중풍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는 종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당시 그 사회에서 천한 대접을 받는 종의 문제를 마치 자기 친 자식의 문제처럼 신중히 여겨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온 이 높은 계층의 따뜻한 인간관심의 정성이 예수님까지도 놀라게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즉시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응답하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믿음대로 종의 병은 그 시간에 고침을 받았다.
한번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가?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쉽다고들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사랑을 받으시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계시지만 사람들 중에는 사랑스럽지도 않고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라고 하지 않았던가?(요일4:20-21)
우리는 예수님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유명한 비유를 잘알고 있다.
한 율법사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예수께 물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의 이 비유가 시작됐다.
이 비유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 즉 피해자를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우선 강도에게 있어서 그 피해자는 [약탈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가진바를 다털고 반쯤 죽게하고 도망친 것이다. 그때 마침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피해자를 보고 그들은 피해서 지나가 버린다. 아마 그들에게는 피해자가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피해자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다음날 자기 주머니를 털어 여관 주인에게 경비를 주면서 그 사람을 잘 돌보아 줄것을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노라고 하고 떠나갔다. 이 사람에게는 그 피해자가 봉사해야 할 이웃이었다.

과연 누가 나의 이웃인가?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를 돕는 손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바로 나의 이웃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뒤에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아이들 눈에 더 이상 피부 색깔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더 이상
피부색깔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미국을 취재하기 위해 갔다가 필라델피아의 한 음식점에 들른 어느 날이었다.그곳 한인교회의 이영호 목사님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러 들렀던 시내의 작은 음식점. 이정선 사모와 세살짜리 은일이가 나와 자리를 같이 했었다. 마침 저녁 늦은 시간이어서 손님이라곤 우리 팀과 바로 건너편 테이블의 흑인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도 미국 내에는 LA흑인폭동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서 빈 곳 이나 다름없는 음식점에 흑인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다소 부담이 되긴 했지만 별 신경쓰지 않고 미국 현지 목회에 대한 어려움을 주제로 얘기를 진행해 갔다.
음식을 먹으면서 화기 애애하던 분위기가 깨진 것은 갑자기 건너편 테이블의 흑인가족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아마 일행 중 한 명의 생일파티를 하는 모양으로 이들은 거의 괴성을 지르면서 우리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그들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파티가 오래 갈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이목사가 점잖게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리측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안하무인격으로 더욱 괴성을 지르며 생일을 자축했다.
`흑인들은 어쩔 수 없어, 저러니 미국 사회에서 욕을 얻어 먹지`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스치며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히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과거 중학교 때 배웠던 짧은 영어로 `Be quiet(조용히 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우락부락한 흑인가족들이 달려들기라도 하듯 인상을 쓰는 것이었다.
일촉 일발의 위기감이 맴돌았으나 갑자기 상황이 전혀 다른 측면으로 전개됐다. 양측이 서로 인상을 쓰며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이목사 아들 은일 이가 방실방실 웃으며 흑인 가족들에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마침은 일이 또래의 흑인 여자 아이가 있었고 이 아이 역시 은일이를 보고 아장아장 걸어와 둘은 한,흑 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어린애들은 어른의 험악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얼굴을 만지고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은일이가 손가락으로 샐리(나중에 안 이름이지만)의 코를 찌르자 샐리는 두 손으로 은일이의 머리를 잡고 장난을 쳤다. 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쳐다보면서 우리 일행과 흑인 가족들은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서로 이내 긴장된 표정을 풀고 아이 들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이가 무척 귀엽군요`
`애들이 서로 좋아하는 모양인데요`
`조용히 하라`는 말 한 마디에 `너희들이 뭔데 조용히 하라는 거야`라는 대꾸가 이어졌다면 무척 어려워졌을 분위기였지만 갑자기 벌어진 두 어린아이의 해프닝 때문에 음식점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정겨운 대화로 훈기 마저 가득 차게 되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경구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면서 심각한 미국내 한,흑 갈등도 이런 어린아이 심정을 가질 때 의외로 쉽게 풀려 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세상`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감상과 함께.

 


견디어 내는 자가 더욱
갈대와 올리브 나무는 힘과 절개라는 문제를 놓고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올리브 나무는 갈대에게 약한 바람이 불어도 굽실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하는 주제에힘있고 건강한 자기에게 뭐라고 대꾸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하였다. 얼마 안가서
큰 바람이 불었다. 갈대는 바람이 부는데로 잘 순종하여 바람이 그 칠 때까지 탈없이 넘겼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자기의 힘을 뻗치다가 그만 가운데 토막이 꺾어져 버리고 말았다.

 

더 큰 목적
신앙의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요 곧 목적의 문제이다. 몇 년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만난 적이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고개를 넘는 데 트럭 1대가 쏜살같이 내 차선으로 달려왔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두 차는 충돌했다. 그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했지만 놀랍게도 상처는 은혜가 스며드는 통로였고 고통은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트럭 운전기사를 만나 사고 경위를 들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트럭에 채소와 과일을 싣고 전국을 떠도는 행상인이었다. 전날에도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피곤한 몸으로 아침 일찍 장사를 떠난 그는 막 고개를 넘었을 때 옆좌석에 앉았던 어린 아들이 물병을 떨어뜨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물은 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놀란 아들은 울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허리를 굽혀 물병을 주우려 했으나 잘되지 않아 다시 손을 뻗쳤을 때 차는 이미 차선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 물병을 잡았을 때 앞에서 달려온 자동차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끔찍한 사고는 그렇게 일어났다.
가끔 그 사건을 기억할 때마다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아들의 물병을 주우려던 아버지의 자상함에 감동하곤 한다. 그러나 감동은 역시 감동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목적이다. 그에게 물병을 줍는 일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일은 자기 앞에 달려오는 자동차를 주목하는 것이었다. 자동차 밖에서 일어날 일이 자동차 안에서 일어날 일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오늘날 이유없이 바쁘기만 하고 피곤한 교회생활이다. 어떤 사람이 오늘의 미국인들을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인은 돈을 내고 맥도널드에서 소시지가 든 햄버거를 먹는 것보다 더 나은 목적을 가지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뜰 필요가 있다” 같은 논리로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정신없이 바쁜 것 이상의 목적이 필요하다. 주일날 모여 예배하고 이것저것 정신없이 일하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 그 이상의 목적을 우리는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이 교회에 소중한 일인가? 교회는 적어도 당장 눈앞에 떨어진 물병을 줍는 일보다 더 큰 목적을 가져야 한다.

 


요즘 방귀는 더 지도캐
옛날에 임금이 방귀를 뀌면 모라캤을까?
"마마~ 향기가 약한걸 보니 옥체 보중하옵소서..."
이승만 박사가 방귀를 뀌었더니... 곁에 있던 충신(?) 왈...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박정희씨가 방귀를 뀌었는데...
모두들 박씨를 쳐다보자 얼른 곁에 있는 차지철을 보고...
"네가 뀌었지?"
"네가 뀐 걸로 해..."
전두환씨가 방귀를 뀌었는데...
모두들 전씨를 쳐다보자...
곁에 앉아있던 장세동씨가 벌떡일어니더니
"각하 제가 뀌었습니다."
노태우씨가 방귀를 뀌었는데...
모두들 노씨를 바라보자 노씨는 손을 내저으며...
"나 안뀌었어요. 믿어~주세요~"
김영삼 대통령이 방귀를 뀌었더니...
모두들 우루루 밖으로 뛰쳐나가길래...
엄청 기분나빠서 비서실장을 통해 어디로 갔나 알아보았더니...
김현철씨에게 가서
"각하께서 오늘 사흘만에 방귀를 뀌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더라나...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던가요...
옛날 방귀는 소리는 컷지만 냄새는 별로 안났는데,
요즘 방귀는 소리는 적고 냄새는 지독...
세태가 방귀에도 적용되나봐요.
실상은 음식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바뀌어서 일어난 거지만...

 

성공하는 현대인을 위한 리더십 편지(시간관리에 성공하라!
하루를 다 끝마치고 "내가 오늘 하루동안 어떤 것을 해냈지?"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도대체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 버린 것일까요? 전국적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보통의 미국인이라면 일생을 아래와 같이 보낸다고 합니다.

● 외식 14,411번(맥도널드 1,811번 포함)
● 텔레비전 시청 13년 4개월
● 줄서기 5년
● 어디다 두었는지 몰랐던 물건 찾기 1년
● 결혼식 참석 35회
● 운전 413,226마일... 그밖에 무수히 많은 일들!

만약 당신이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당신을 지배할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 3가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우선 순위를 정하라.
분명히 당신은 모든 것을 다 할 만큼의 시간은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추구해 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 신중히 생각할 만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총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일을 추구하지만 미련한 자는 온갖 잡다한 것에 눈길을 돌린다" 잠 17:14-현대인의 성경
"헛된 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각이 없는 자이다" 잠 12:11-현대인의 성경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2. 마음가짐을 가볍게 하라.
정말로 해야할 목록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해야만 합니까? 그 누구도 당신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있진 않습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자기 스스로 지운 것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스트레스 완화제로 유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사람을 침울하게 한다" 잠 12:25-현대인의 성경
"마음이 평안하면 육신도 건강하다" 잠 14:30-현대인의 성경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 잠 17:22-현대인의 성경

3. 하나님을 바라보라.
스트레스는 언제나 당신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신의 제한된 시각으로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경고등입니다. 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면 장수할 것이다" 잠 10:27-현대인의 성경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잠 14:26-현대인의 성경
# Rick Warren의 ‘성공하는 현대인을 위한 리더십 편지’는 국제제자훈련원이 Pastors.com의 허락을 받아 디지털사역실에서 메일링으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현대인을 위한 리더십 편지(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여론조사원들, 전문가들, 예언자들이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어느 누구도 미래에 일어날 일 모두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언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속도와 강도에 있어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추측뿐입니다. 마이클 애니슨(Michael Anniso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것은 ‘회오리바람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미래가 아주 불확실할 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미래에 대처하는 3가지의 영원한 원칙들이 나와있습니다.

1. 목표를 세울 때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먼저 하나님께 상의하지 않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며 당신을 지켜주시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16:1). 다른 말로 하면, 기도 없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2. 하루하루에 충실하십시오.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는 있어도 내일이 되기 전에는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오늘을 즐길 시간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에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매 순간순간을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여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3. 미루지 마십시오 - 지금 당장 하십시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27:1). 미루는 것은 교묘한 덫입니다. 내일로 일을 미루면 오늘을 낭비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 일을 ‘가까운 어느 날’에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만 그 약속은 보통 지켜지지 않습니다.
실행 하려고 계획했던 것 중 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언제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십니까?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 3:27-28). 지금 당장 하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1,13).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대왕은 지금까지 생존한 장군 중 가장 훌륭한 분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그의 거대한 군대를 이용하여 거의 모든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하룻밤은 그가 출정 중일 때 잠이 오지 않아 야영하고 있는 군인들을 돌아보기 위해 그의 텐트를 나섰습니다.
그가 걷고 있는 동안, 보초를 서고 있던 한 군인이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보초를 서면서 졸 때 받는 형벌은 때로는 즉결 사형이었습니다.지휘관은 어떤 때는 석유를 잠든 병정의 몸에 부어서 불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가까이 가자 군인은 눈을 떴습니다. 젊은이는 그 앞에 가 서 있는 지를 알게되자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귀관은 보초를 서는 중 잠들면 어떤 형벌을 받는지 아는가?'
알렉산더 대왕은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예, 각하 압니다."
군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알랙산더 대왕이 물었습니다.
"알렉산더입니다. 각하"
알랙산더 대왕이 질문을 되풀이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알렉산더입니다. 각하"
군인은 반복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 번째에는 더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뭐야?"
세 번째에 군인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제 이름은 알렉산더입니다. 각하"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군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이거 봐," 그는 격렬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자네 이름을 바꾸던지 하는 행실을 바꾸던지 해."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였더니..
나는 요즘 우리나라 의류업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E-LAND창업자
박성수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점점 커져서 지금은 언더우드, 브렌따노, 헌트 등의 계열회사도 창업하였습니다.
이 회사는 이렇게 출발하였습니다.
박집사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불신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박집사는 결사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혼은 억지로 강행되었습니다.
그는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화가 나서 괘씸하다며 500만원 주어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는 신촌 로타리 앞에 2평짜리 가게를 얻어 옷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개업 예배를 드릴때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가게를 운영하기로 서약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 날 도와주셔서 이 사업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익을 선교에 사용하겠나이다. 500만원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10년 후에 1,000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났습니다. 십일조 하지 않는 대리점은 끊었습니다.
주일 성수하지 않는 가게는 물건 공급을 중단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업하는 그를 하나님은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개업 예배 때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10년 후인 1989년에 정확히 1,000억이 되었습니다..
90년도에는 3,800억이 되었습니다. 91년도에는 7,000억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붙어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주님은 붙들어주셨고 공급해주셨습니다.

 


알렉산더의 선택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에는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사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병은 알렉산더 대왕과 달리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책받기 일쑤였고 급기야 알렉산더 병사를 욕하는 소리는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까지 들렸다. 어느날 자신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참다 못한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병사,자네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네. 자네의 이름을 바꾸겠는가,아니면 자네의 인생을 바꾸겠는가?”
알렉산더 대왕의 이 충고는 비단 병사 알렉산더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으실지도 모르는 질문이다. 병사 알렉산더가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참고 기다렸더니
"목사님 참고 기다렸더니 교회가 되네요" 얼마 전 충청도 어느 도시 변두리에서 목회하는 후배 교역자의 말입니다. 그 곳에 내려가 목회하길 5년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별 효과는 없고 가끔씩 약해지고 낙심되는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 우리 대전으로 나가자" 말하면서 견디길 여러번 반복하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이번에는 정말 진짜다, 진짜 대전으로 나가자" 최후 결정을 한 후 이사갈 준비를 마무리하고 나니까, 새 신자가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너무 신기해서, 한 주 미루었더니 또 새 신자가 찾아오고, 또 한 주 미루고, 한 주씩 미루다가 결국 " 여보 여기서 목회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 가봐 " 말하면서 다시 그 곳에 머물며 목회하는데 지금은 목회가 잘 되고 부흥 되어 하남의 은혜를 감사하는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진정 믿음의 사람은 인내합니다....히브리서6장에서, 아브라함이 오래 참음으로....
사랑에도...........................고린도전서13장
성령의 열매에도....................갈라디아서5장
기도에도...........................누가복음18장

 


감사하는 사람 더 좋은 것 받음
영국에 대설교가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고 했다.

 

목사 월급 더 주어라
1950년대 경남 마산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교회 장로 가운데 한 분은 목사님의 사례금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목사가 설교도 잘하지 못하면서 '월급'은 많이 받는다." 늘 그런 식으로 불평을 하였다. 하루는 목사님이 출타하시고 수요일 밤 예배 강단이 비었다. 이 불평을 잘하는 장로가 강단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 불평 장로는 멋진 설교를 해서 목사가 없을 때 목사의 불필요성을 나타내기 위해 설교준비를 많이 하였다. 예배 시간이 되어 불평 장로가 강단에 올라섰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봉독을 하였다. 성경봉독은 벧전2:1-5이었다. "오늘 밤 설교 제목은 <도(道)의 젖을 사모하라>입니다. 헴!" 설교제목이 근사하였다. 불평 장로는 설교를 시작하였다. "도의 젖을 사모하라 했으니..." 하고 고개를 들고 대중을 보았다. 뭇 얼굴들이 자기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검은 동자가 자기를 향해 캄캄한 밤중의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전신에 식은 땀이 후줄근히 옷을 적시는 것이었다. "젓, 젓에는 새우젓도 있... 있고, 갈치젓도 있고, 멸치젓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그가 설교하려고 준비한 내용은 달아나 버리고 엉뚱한 소리들이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건 아니야." 장로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큰소리로 외치곤 강단에서 내려왔다. "목사 월급 더 주어라. 너무 적다, 적어!"

 

맥아더와 금접시
맥아더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상원 국방위원들이 시찰을 왔다.맥아더 장군은 보고를 마친 후 국방위원들을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에는 가구도 없고 쇠침대만 덜렁 놓여 있었다. 맥아더는 “이 곳이 제가 생활하는 방입니다. 이 곳에서 일주일 지내고 주일에만 집에 갑니다”라고 말하며 자기가 고생하고 있음을 은근히 강조했다.
시찰이 끝나자 만찬이 베풀어졌고 금접시에 요리들이 담겨 나왔다. 그들이 돌아간 뒤 맥아더는 금접시 하나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고 범인을 꼭 잡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국방위원들을 의심하던 맥아더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금접시의 행방을 물었다.
며칠 후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만일 장군께서 그날 밤 야전용 침대에서 주무셨더라면 벌써 금 접시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침대 모포 밑에 접시를 넣어두었거든요”
나의 일이 뒤틀리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이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성 프란체스코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옆에서 울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왜들 그렇게 슬퍼하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섭섭해서 못견디겠습니다." "너는 그럼 내가 얼마를 더 살았으면 좋겠느냐?" "지금까지 사신 것 만큼 더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욕심이다." 프란체스코가 다른 제자보고 또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내가 얼마나 살았으면 좋겠느냐?" "일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너는?"하고 또 다른 제자에게도 물었습니다. "하루만 더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 시간에 뭘 하려고?" "선생님과 함께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한 번 더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우를 만났다면 얼마를 더 요구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 시간을 무엇에 쓸 것입니까? 내 생이 더 연장될 때에 연장된 그 시간은 나에게도 유익하고 남에게도 유익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연장된 그 시간이 오히려 욕이 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도 하고 더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살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괴롭지만 부득불 더 살아야 할 줄로 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 앞에 가서 지내는 것이 소원이다.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서 주님 앞으로 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더 나은 본향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특별해 옛날부터 군에서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한번은 영국의 부호가 카나리아를 한 마리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관도 씌워 주면서 18년동안 애지중지 키웠다.
어느날 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새장 문이 열려 카나리아가 날아가버렸다. 부호는 매우 슬퍼하면서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고 사방에 수소문하였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서 카나리아를 아프리카 키네아 지방에서 발견하여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카나리아는 고향을 찾아 4800㎞를 날아간 것이다.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고향을 찾아갔을까? 그것은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부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카나리아를 완전히 해방시켜 고향으로 날려보냈다.

 


여성 노출 교회서는 더 안된다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 어깨와 등이 드러나 보이는 란제리 상의, 배꼽티, 그리고 짙은 화장 등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차림새로 교회를 찾아오는 여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대담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성들의 `반누드'모습이 올여름 교회안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지난 주일 부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정구일지사는 옆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초미니스커트의 아가씨 때문에 신령스런 예배를 못드렸다고 호소한다.
정집사 얘기대로 라면 "도대체 신경이 쓰여서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것이다.
정집사는 이에대해 "자유로운 의복선택은 좋으나 좀 지나친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는데 무슨 상관이며 왜 신경쓰냐고 반문할 여성들도 있을 듯하다. 특별히 성경은 예배드릴 때의 복장에 대해서 정확히 언급한 곳은 없다. 다만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마음과 육신이 온전하고 깨끗해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예배분위기를 흐트려 놓는 `불건전한 의상'은 회피하는 것이 믿음있는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더운 여름철을 맞아 기독 여성들도 대담한 노출로 사회 흐름에 민가하게 반응하고 있다. 거리에서의 심한 노출이 이제 낯설치 않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만큼은 예외라는 것에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얼마전 지방의 모국립대학에서 스크트길이가 짧다는 이유하나로 도서관 출입을 금했다는 기사가 보도된적 있다.
알고 있듯이 서구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여성들의 노출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유교적 풍토속에서 성장한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그 모습과 치장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화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
의상이 선택이 개인의 자유이긴 하지만 교회안에서 예배드릴때 만큼은 의상이 경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독교의 정신은 철저한 신앙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때문에 의복을 단정히 하고서 드리는 예배가 신체의 일부를 노출시키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대담한 노출을 하는 기독 여성은 극히 제한된 인원이라는 점이다. 제한된 이들이 전체 기독여성을 매도하지는 못한다. 단 일부 젊은 기독여성들의 과감한 노출에 영향을 받은 중장년 여성들도 덩달아 `노출'하려는 움직임은 방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처럼 대사회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여성들의 노출현상에 대해 한국교회는 너그럽게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윤종모교수는 "예배의미에 맞는 단정하고 정숙된 의복을 입어야 하다"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옷을 갖춰 입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총신대에 다닌다는 김영희양은 "요새 교회안에서도 여자친구들의 노출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며 "평상시에는 개성의 표현이어서 좋다고 생각됐는데 교회에서도 그러니까 거부감이 생겼다"며 교회에서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요즈음, 거리 어디에서나 대담한 노출을 한 여성들을 많이 본다. 때로 남성들조차 `나도 저렇게 시원하게 입어봤으면...'하는 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러나 교회안에서 여성들은 지나친 노출을 삼가해야 한다. "교회가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주의적이다"라고 하기 전에 교회를 찾는 목적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나친 노출은 오히려 신령해야 할 예배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세상과 싸워 이기는 리더십 전략

1. 수시로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내 자아의 욕구와 충동을 허락하였음을 인정한다.
2. 하나님이 나의 리더십의 동기와 생각과 행위들을 예수님이 모델로 보여 주신 섬기는 리더십으로 변형시키실 수 있음을 믿는다.
3. 나의 리더십에 대한 노력을 하나님께로 돌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섬기는 리더십으로 바꾸기를 결심한다. 또한 섬기는 리더십과 일치하지 않는 나의 리더십의 동기, 생각, 행위 등을 자세히 조사하여 목록을 만든다.
4. 나는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적어도 다른 한 사람에게 나의 리더십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한다.
5. 하나님이 내 리더십에 틈을 만드는 모든 성격적 결함을 제거해 주시는 것에 대해 믿는다. 또한 나의 단점을 제거해 달라는 것과 명성, 능력, 탐욕의 유혹에 대항하여 강하게 해달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한다.
6. 나는 나의 자기 중심적 리더십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기꺼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한다.
7. 홀로 있는 훈련, 기도훈련, 성경 연구의 훈련들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섬기는 리더십을 위한 노력들을 예수님이 모델로 보여 주신 것에 일치시키고 나의 리더십을 행하면서 직면하게 될 사람들에게는 먼저는 그들의 종이요, 그 다음에 그들의 지도자가 되는 방법들을 계속 추구한다.

 


안토니오보다 더 경건
중세기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자기는 굴속에 들어가 은둔 생활로 고행을 했다.
하루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신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말이 들리었다.

그 길로 안토니오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고치는 노인을 방문했다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갑니까? 하고 물었다.
노인의 대답이 우리는 생활이 극히 가난함으로 매일 신고쳐 생활비로 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 하였다.

 

감사하는 사람 더 좋은것 받음
 영국에 대설교가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다`고 했다.

 

겸손은 더욱 존귀하게
영국의 간호원이었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만 3천명의 호열자 환자를 치료함으로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어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에 전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명예스런 훈장이나, 자기 영광받기를 즐겨하지 않은 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년 8월 15일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들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이팅케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위인전을 보면 김모재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교훈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식들 중에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 원치 않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겸손함과 조심성을 가지라. 이것이 참사람의 위덕이니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의복을 입은 짐승으로 세상을 마칠 것이라."고 교훈했다. 그리고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에 높은 산이나 큰 나무들 중에 거하지 않으시고 볼품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교만한 자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자 중에 거하시기를 줄겨하시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게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마리안 앤더슨의 성공
미국의 흑인 음악가로 유명한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이 20세기의 대표적인 성악가 중 1인자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고초와 실패가 있었다. 한 번은 스승인 보게티의 도움으로 뉴욕의 타운 홀에서 독창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생각하기를 "때는 왔구나!"하고 매우 기뻐했다. 앤더슨은 무대 뒤에서 막이 오를 때를 기다리면서 만원된 청중석을 엿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그가 무대에 섰을 때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창중들은 홀 절반 밖에 차 있지를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앤더슨은 예상 외로 청중들이 적은 것을 보자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몰롱해진 앤더슨은 순서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전 곡목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독창회를 끝내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배달된 신문들은 앤더슨의 독창회에 대한 음악 평론가들의 신랄한 비평들을 기사로 실은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 감정없이 곡을 암송하듯 불렀다는 혹평이었다.
이와 같은 첫 번 독창회의 실패로 앤더슨의 마음은 크게 실망이 되어 그의 어머니에게 "노래를 단념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이때에 그의 모친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네가 그렇게도 실망이 된다면 잘 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려무나"하는 것이었다. 앤더슨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노력함으로 세계적인 대 성악가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이 될 때 좌절하거나 울지만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더욱 분투할 것을 알게 하는 말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이유를 불의한 재판관에게 밤낮 찾아가 애원하던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비유(눅18:1-8)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막9:29)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누가 더 나쁜가
1991.11.9. 국제신문 "여중생 윤락 7년선고" 라는 글을 보면 인신매매단으로 부터 넘겨받은 여중생을 감금하여 윤락행위를 시킨 성모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였는데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은 중형에 처해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을 사고 파는 사람도 벌을 받아야 하지만 수요는 공급이 있기 때문에 따르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필자의 마음 같아서는 인신매매 된 여자를 찾는 자들을 처벌하여 그들의 명단을 공개했으면 좋겠다.
또, 1990. 1.31. 동아일보 "가출 국교생 등 고용 화대 뺏은 업주 영장"이란 제하의 글에 보면 대구 김모 씨(25,여)는 가출한 10대 소녀 4명을 고용하여 윤락행위를 시키고 화대를 가로챈 파렴치한 인생이라고 하였다.
자기의 딸도 그렇게 윤락행위를 시킬 수 있겠는가?

 

더러운 소원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깃간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자기 집에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인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 집에서 좋은 고시를 주면 다른 집에서는 그보다 더 좋은 고기를 주고, 한 집에서 값을 내리면 다른 집에서는 그보다 더 값을 내렸다.
자연히 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어느 쪽이든 한 쪽이 장사가 잘 안 되면 서로 다른 한 쪽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된다고 원망했다. 또 장사가 잘 되어도 다른 한 쪽 때문에 더 잘 될 장사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 때문에 서로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 장사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도 경쟁자가 망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집 고깃간을 망하게 해 달라고 신령님께 빌었다.
하루는 신령님이 한 고깃간을 찾아와 주인에게 말했다.
“무슨 소원이든 너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래도 좋겠느냐?”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무슨 조건이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주인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네가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소원의 두 배를 저쪽 가게 주인에게 베풀어주게 된다. 가령 자네가 돈이 아쉬우면, 저쪽은 자네가 바라는 두 배의 돈을 얻게 된다. 만일 자네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저쪽은 자네보다 두 배를 더 오래 살게 된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자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고깃간 주인은 갑자기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모조리 저쪽 고깃간 주인한테만 좋은 일을 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천천히 열었다.
“그렇다면 신령님, 저의 눈 한쪽이 보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순응주의자가 더 위험
우리가 안고 있는 위험은 난폭한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순응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초래된다.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은 욕지거리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나, 갑작스런 행동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지닌 도덕적 정중함이 뒤엎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마치 시장에서 몇 가지로 한정된 유형 속에서 자신들의 옷이나 가구를 고르듯이, 자신들의 미덕이나 기호를 조심스럽게 선택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안고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

 

성급한 리더의 결정
사무자동화가 시작되어서 회사들마다 전산화 작업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던 때의 일이다. 모은행의 지점에 지점장이 새로 취임을 하였다. 취임 첫날 은행을 돌아보던 중 창구 직원들이 입출금 전산 업무 처리에서 빈번히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고 대책을 연구하게 되었다. 지점장은 빠른 시일 내에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다음 날 아침 직원 조회 시간에 폭탄 선언을 하였다. "다음 달부터 입출금 오류를 범하는 직원은 감봉에 징계 처리를 하겠습니다." 이 말에 직원들은 긴장하였고 지점장의 생각대로 입출금 실수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이를 흐뭇하게 여긴 은행장은 기뻐했고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지점장은 본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창구 은행 직원들은 실수에 대하여 겁을 먹고는 모두가 자기 개인 통장을 만들어서 자신의 실수한 것들을 그 통장을 통하여 조정하였다고 한다. 돈이 남으면 통장에 넣고 모자라면 자기 통장에서 인출하여 채우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 결과 창구 직원들은 부정한 방법을 스스로들 터득하게 되었고 공금을 빼돌린 몇 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은행장의 성급한 지시로 인하여 불필요하고 때로는 부정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원인을 그들에게 제공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공금을 빼돌린 직원과 함께 이러한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한 지점장을 모두 해고 처리한 것이다.
(결정 / 리더)
☞ 리더야말로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들이다. 보다 넓게 보고 멀리 보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빈손일때 더 감사를…
얼마 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란 제목의 책을 봤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행복에 이르고 성공에 이르는 바른 지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과 같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 곧 바른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화로 알려주고자 하는 책입니다. 이 우화에서 치즈는 인간이 도달하는 행복과 성공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행복도 성공도 우리 앞에 고정된 채 멈추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 변화에 바르게 대처하여 나가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 내지 낙오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톨스토이의 ‘행복론’에 나오는 말입니다.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행복의 조건을 돈으로 사려고 하고 좋은 집에서 얻으려고 하지만 그것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조건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마음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을 행복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선이지만 행운은 운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요행이요,우연히 굴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행운처럼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것에서 창작하고 힘쓰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보람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멀리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가까이에서 내가 만들어가야 할 대상입니다.
행복을 만드는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신앙적인 면을 말씀드립니다. 먼저 감사입니다. 만사를 감사로 이어가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결과만 놓고 마음에 들면 감사하고 불만족스러우면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항상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기뻐해야 합니다.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을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라고 하였습니다. 없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면 어떤 경우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베푸는 것이 행복입니다. 받는 것으로 행복하려 할 게 아니라 주는 마음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사회 어느 곳에서나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보람으로 삼을 때 행복한 삶이 됩니다.예수님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만드는 보람이 행복입니다.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면 할수록 축복으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비록 내 눈썹에 이끼가 끼더라도
죤 번연이 갇혀 있게 된 베드포드의 감옥은 괴로운 곳이었다.
불결하고 음침하고 습기가 있는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신앙의 날개를 굽히고 나가고
도 싶었다. 마음에 유혹도 많이 왔다. 그러나 번연은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결단을 했다.
“나는 작정을 하였다! 나의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고 도움이 되시니, 비록 내 눈썹에 이
끼가 끼더라도 나는 내 주님을 버리기보다는 이 감옥에 남아 있으리라!”

‘비록 내 눈썹에 이끼가 끼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죤 번연의 이 결단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죤 번연이 가난한 집에 태어
났지만 성경을 보면서 영어를 배우게 하셨고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신앙의 책을 내놓게 하셨던 것이다.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 주님만을 바라보리라는 결단이 요구된다.

 


더 좋은 것을 받는 감사
미국의 소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이취에 대기근이 있을 때였다.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이 기아로 신음하게 되었다. 한 부자는 30명 가량의 어린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주머니 속에, 너희 한 사람에게 한개씩 줄 수 있는 빵이 들어 있다. 그것을 하나씩 가져가거라. 매일 하나씩은 계속해서 주기로 하마"라고.
어린이들은 매우 굶주려 있었다. 그래 그들은 주머니를 보기가 무섭게 서로 아우성을 치면서 큰 것을 가지려 힘내기를 하여, 힘센 아이가 큰 것을 차지하고는, 주인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은채 가버렸다.
이 싸움틈에 들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있던 그레첸이라는 소녀는, 조용해지자, 주머니 있는 곳으로가 제일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냈다. 그리고는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주인을 찾아가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 다음 날에, 어린이들은 또 모여 왔다. 전번과 한가지로 서로 다투어가며 빵을 가지고 갔다. 그들과 한가지로 다툼속에 끼지않은 그레첸은, 다른 애들의 반도 못되는 어젯것과 같은 빵을 가지고, 역시 감사를 드리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레첸은 그것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기 위하여,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누는데, 놀랄일이 생겼다. 그 것은 빵속에 빛나는 50센트 은화가 여섯 개나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워 그레첸에게, "아무래도 네가 잘못 가져 왔는 모양이다. 이런 돈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다. 곧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에게 돌려드려라"고 했다.
그렌첸이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드리려 갔을때 주인 할아버지는 말했다. "틀림 없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감사할 줄아는 착한 네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속에 넣고 굽게 한 것이다"라고.
작은 것이라도 감사히 알고, 감사를 잊지 않은 때, 더욱 감사할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갖기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일
희랍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중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청빈생활을 하면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시기심을 갖게 되었다. 대왕은 말을 타고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디오게네스는 마침 토굴 속에서 햇볕을 쬐기 위해 밖에 나와 앉아 있었다. 물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다.그때 알렉산더는 말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대 디오게네스여,그대가 원한다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것이니 무엇이든지 말하시오”라고 했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물끄러미 알렉산더를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 손가락 하나를 들어 좌우로 젓는 시늉을 하면서 옆으로 비키라는 손짓을 하였다.그는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내 앞에서 태양을 가려서 추우니 비켜달라고 해 콧대 높은 알렉산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직위가 높고 소유가 많아도 마음이 부자라야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무엇을 갖기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택시 운전사를 더 칭찬한 이유
신자이기는 하나 매우 방탕하게 살았던 총알 택시 운전사와 목사님이 천국에 가게 되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총알택시 운전사보다 훨씬 칭찬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하나님은 총알택시 운전사를 더 칭찬하셨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늘 사람들을 졸게 했지만 이 사람은 늘 기도하게 했느니라."

 

감사했더니
어떤 이가 차가 고장나서 고속도로에 섰다. 아침 8시. 한심했다. 울화통이 치민다. 무심코 내뱉았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자녀의 일을 이렇게 만드십니까?"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또한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곤경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견인차가 올때까지 기도하며 감사를 실천하기로 했다. "하나님, 안개가 끼지 않고 맑은 아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동차가 고장이나서 감사합니다. 사고도 안나고 고장나서 감사합니다. 견인차를 부르도록 전화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기분이 점점 좋아져 갔지만 감사할 조건이 줄어 들어갔다. 이제는 찬양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다시 찬양했다. 그러는 동안 50분 가량이 지났다. 덩치 큰 흑인이 견인차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대단히 퉁명스러웠다. 차 밑에 들어가 보고는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람이 그냥 가면 큰 일이다. 상냥해야지.
흑인 운전사와 견인 트럭에 올랐다. 운전사는 말했다. "여기는 구역 밖이니까 요금은 두배입니다." "아니 아까 전화받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그가 말하자, 혹인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요금은 내가 정하는 거요." 앞좌석에서 가능하면 그와 멀리 앉아서 이 험악한 친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히 잘못 걸렸구나."
그러자 다시 마음속으로 감사를 시작했다. "하나님 이 사람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입니까?" 그때 그의 마음속에 들리는 말이 있었다. "뭔가 잘못된 사람이다. 그에게 말해라" 그러나 또 다른 대답은 "아닙니다. 저 사람은 안됩니다. 인상을 보세요" 그러자 다른 소리가 있었다. "한 시간이나 기도하고 겨우 그거냐?" 음성을 가다듬고 말을 걸었다. "일이 고되시지요. 얼마나 근무하셨어요. 밤을 새웠나요?" 퉁명스런 대답이 나왔다. "지금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제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러자 운전사가 한참 있다 말을 계속했다. "정말 고된 건 일이 아닙니다. 집안에, 아니 제 아내와 문제가 있습니다"
운전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가? 운전사가 계속했다. "나는 아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내를 처음 만나고는 부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내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물었다. "목사님과 상의해 보았습니까?" "사실 오늘 목사님과 상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나는 헤어질까 봐 무서워요." 그는 계속 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함께 성경도 읽어요. 그래서 더욱 믿어지지가 않아요. 어떻게 …" 점점 그의 음성은 힘이 없어지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 그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사실 저도 결혼생활중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별거했었고 여관방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며 혼자 지냈던 기억을 되살렸다. 새벽에 기도하고 그러면서 낮에는 출근하면서 사막같은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몇주의 별거생활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 어떻게 느끼는지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오늘의 이상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의미가 나타났다. 별안간 나이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두 사람이 마음속 깊은 감정을 나누는 사이로 변한 것이다. "별거한다고 서로 간의 의사마저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별거중에 가장 진정한 러브레터를 보냈습니다. 말보다 글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운전사는 얼굴이 밝아졌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이상하게 말이 자꾸 꼬여서 말을 하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나도 편지로 하면 되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문장을 작성하는 것 같았다. "당장 편지를 쓰기 시작해야겠습니다" 운전사는 미소지으며 수줍게 말했다.
정비공장 앞에 이르자 그가 운전사에게 말했다. "우리 지금 잠깐 기도할까요?" 그가 머리를 끄덕이자 견인 트럭은 즉시 기도실이 되었다. 함께 자신들을 위해,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예상치 못하게 하나님이 둘을 합석시켜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기도가 마치자 운전사는 말했다. "요금은 안내셔도 됩니다." "주를 찬양합시다"
운전사는 견인트럭을 몰고 갔다. 그리고 그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사자"로 사용되었다는 신나는 느낌을 맛본다. 하나님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기억하시고 자신의 과거가 운전사에게 도움과 위로가 된다는 것과 이러한 경험이 얼마나 자신에게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맡기기만 하면 된다!

 

더 아름다운 예수님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예배당에 들어서면 유명한 조각가 베텔 도발센이 조각한 웅장한 예수님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도발센이 처음 예수님의 상을 다 완성하고, 흐뭇하고 기쁨 마음으로 조소를 끝냈습니다. 청동으로 빚기 전에 먼저 흙으로 모양을 만든 이 작품은 예수님이 두손을 하늘로 높이 드시고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 상이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위엄과 권능을 조각한 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바다 안개가 스튜디오 안에 스며들어 조각상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올려진 팔이 무게에 의해 밑으로 내려왔고 뒤따라 예수님의 얼굴도 땅을 향하였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사람들을 품에 안으시려는 인자하신 예수님의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모습이 예수님의 은혜를 더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영광의 예수님이시기 전에 인간을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신 그 사랑과 희생의 예수님이 더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에서 밤새도록 피가 흐르도록 기도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는 그 상을 그대로 둔 뒤에 "다 내게로 오라"는 글을 새겼습니다.

 

더 좋은 아내가 되어야죠
어느 힌두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남편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한 사실을 안 선교사는 그 여인에게 남편이 화를 낼 때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글쎄요, 저는 남편을 위해 더 좋은 음식을 만들고, 남편이 불평할 때 면 마루를 더 깨끗이 닦고,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하면 더욱더 부드럽게 대답하지요.
선교사님, 저는 제가 크리스천이 된 후로 더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을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더욱 겸손하라
암탉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자와 싸우다가 패배한 수탉이 컴컴한 구석에 가서 숨어 있었다.
싸움에 이긴 수탉은 의기양양하여 높은 담 위에 올라가 큰 소리로 꼬꼬댁거리며 승리의 쾌재를 부른다.
바로 이 순간 독수리가 내리 꽂히며 그 수탉을 나꿔채 갔다.
싸움에 진 수탉이 안전한 곳에 피해 있다가 나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암탉들에게 구애할 수가 있었다.

 

겸손은 더욱 존귀하게
 영국의 간호원이었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만 3천명의 호열자 환자를 치료함으로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어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에 전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명예스런 훈장이나, 자기 영광받기를 즐겨하지 않은 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년 8월 15일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들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이팅케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위인전을 보면 김모재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교훈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식들 중에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 원치 않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겸손함과 조심성을 가지라.
이것이 참사람의 위덕이니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의복을 입은 짐승으로 세상을 마칠 것이라."고 교훈했다. 그리고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에 높은 산이나 큰 나무들 중에 거하지 않으시고 볼품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교만한 자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자 중에 거하시기를 줄겨하시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게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건초더미 기도회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은 윌리엄스대학입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1805년 윌리엄스 대학이 영적으로 부흥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날마다 모여 대학에 영적 바람이 불도록 맹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들은 정원에 모여 또 기도하고 있을 때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모두가 비를 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5명만은 정원에 쌓여있는 건초더미속으로 들어가서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건초더미 기도모임이 생겼습니다.
선교학자 토렛 박사는 “미국 교회들이 해외 선교운동에 대하여 처음으로 자극을 받았던 것은 건초더미 모임에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임이 드디어 해외 선교사를 수없이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건초더미 기도모임이 생긴다면 교회마다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더 성숙한 삶
조각가 로댕은 3번이나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낙방했다.그래서 그는 호구지책으로 은세공이 되었다.먹기 위해서 그는 날마다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어느 날 동료가 “눈에 보이는 나뭇잎만 만들지 말고 내면의 것을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다.그때 로댕은 순간 충격을 받았다.그때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당한 것이다.사실 그는 그때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해 살았다.
그는 비로소 내면을 보는 눈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그리고 24년 후 마침내 불후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을 내놓은 것이다.누구나 모두 보이는 것에 몰두해 살아간다.그러기 때문에 더 소중한,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이것이 현대인의 불행이다.

 

더 좋은 편
어떤 할머니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구원받은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였다. 하루는 그가 나가는 교회 목사를 찾아가 구원받은 확신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만약
할머니의 집에 두 이웃이 있는데 한 집에서는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다른 이웃집에서는 늘 먹고 마시며 즐겁다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느 집의 소리에 더 마음이 쏠리겠습니까?` 라고 하자 그 할머니는 `그야 매일 찬송 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정에 귀가 더 쏠리지요.`라고 하였다.
그 때 목사가 `안심하십시요.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처한데서 더 좋은 편은 어느 쪽인가. 우리는 주님 쪽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교회 문을 닫았더니
1917년 레닌은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을 일으키고 1000년이 넘도록 지속돼 오던 러시아 교
회의 문을 모두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곳을 공산당 당사와 노동자 숙소, 심지어 스케이트장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자들이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와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을 닫았더니 모든 문이 닫혀 버렸다." 교회 문을 닫으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문을 다 닫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 축복의 문, 은혜의 문이 닫혀 버립니다.
북한을 보십시오. 저들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던 평양을 비롯하여 북한 전역의 교
회를 다 폐쇄하고 얻은 결과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시 궁휼을 베푸셔서 북한에도 교회의 문이 열리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마더 테레사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 : 12)
테레사수녀의 생애에 있어서 두 번째 커다란 변화는 캘커타에 있는 로레토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고등학교에서 그녀가 교편생활을 할 때 일어났다.
하루는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서 가장 비참한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는 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곳으로, 결코 아름다운 정원, 발랄한 여학생들, 친근한 동료들, 그리고 안정된 생활이 있는 로레토 수녀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레사 수녀는 여기서 또 다른 성소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성소를 위해, 이미 약속한 서원이 풀리기까지 2년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수녀원을 떠나 캘커타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동네를 찾아갔다.
테레사 수녀는 정말 꼭 필요하고 요구되는 바로 그곳에 영감자와 지도자로 현존하였으며, 그 때문에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이 여성을 특별히 바라보며 따르고 있다. 누구든지 이 수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테레사 수녀야말로 오늘날 우리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물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함이나 명성을 달고 있지는 않다. 네온처럼 번쩍이는 유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아주 평범한 인간들 속에 파묻혀서 인간의 고통과 가난을 함께 겪는 겸손한 모습의 위대함을 갖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청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그 속에 파묻힌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

 

더 좋은 삶을 위하여
어느 시대에나 지혜로운 사람들의 삶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남긴 말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귀한 교훈이 됩니다.
키케로는 "생각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고 했고, 아우렐리우스는 "우리들 인생은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두 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가 다릅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이 달라집니다.
유대인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희망의 존재다."고 했습니다. 그 렇습니다. 성공적인 가정, 사회, 교회, 국가는 희망을 가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존 번연은 그의 유명한 저서 <천로역정>을 종교 재판에서 져 투옥된 이후에 썼다고 합니다. 오 헨리가 세기의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은 오하이오 주 콜롬부스의 독 방에 죄인으로 갇혀 있으면서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고서였다고 하며 그 후에 작가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헬렌 켈러 여사가 삼중고의 인간 폐인의 자리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세기적인 인물이 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육받은 셀리반 선생의 희망을 잃지 않은 교육의 결과였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와 12년 동안 혈루증 여인의 치료의 역사와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수님을 만난 결과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더 좋은 삶을 위하여" 오늘 불확실한 세대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광풍이 나에게 밀려온다 할 지라도, 먹장구 름이 나를 덮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마음만 있으면 좌절하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나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더 불행하지 않음에 감사
아메리카의 대 부흥사 무디(Moody, D.L)는 다음과같은 이야기를 한바 있다. `찬송을 잘 하는 한 신자가 있었다. 그는 집회 때 마다 간증할 때면 먼저 `하나님을 찬미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날 밤 그가 집회에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손가락을 모두 붕대로 감고 있었다. 물어보니 손을 벴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단히 심하게 뱄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날 밤에는 간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일어서서 [나는 손을 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손가락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었다. 실로 무슨 일이나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은 때에, 우리들은 더욱 잘 못되지 않아 감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한 구원
구원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시제 구조(Tense)로 설명할 수 있다.(부루너) 믿음은 예수의 십자가의 부활의 시공점과 활함으로 중생구원이 이루어진 사실(과거)에 근거를 두고 부활하여 영화될 미래를 소망하고 있으며 그 중생과 영화의 중간기인 현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사랑을 결실하는 성화구원의 계절이다.
로마서 5장에는 <더욱>이라는 말이 5번 기록되었다. 주님의 죽으심을 인한 중생구
원의 과거성 보다 살으심을 인한 성화구원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은 죄의 세력에서 승리하는 능력과 성령에 의한 사랑의 생활구원을 계시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생명 폭탄인데 가장 미개발의 생활 에너
지다. 이 폭탄으로 자아의 이기성 반석을 폭파시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자.

 

아름다운 선행은 감추어질 때 더욱 빛난다
 선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궁전이 있었다.
한 소녀가 궁전에 들어가고 싶어 매일 몸을 단장했으나 궁전의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다.하루는 궁전의 문지기가 소녀에게 귀띔해 주었다.
“남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진단다” 소녀는 그날 늙은 거지를 도와주었다.그리고 궁전으로 달려가 열쇠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다.

소녀는 낙심해 힘없이 집으로 걸어갔다.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신음하는 모습을 보았다.소녀는 정성을 다해 강아지를 풀어주었다.소녀의 손과 발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때 궁전의 문지기가 나타나 열쇠를 주었다.소녀가 놀라며 말했다.“저는 열쇠를 얻기 위해 강아지를 구해준 것이 아닌데요”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자신이 지금 선행을 베풀
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은채 남을 돕는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진단다”
진정한 선행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아름다운 선행은 감추어질 때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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