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관한 예화 모음
▣ 좋은 교회
조그만 시골의 이발사인 '존'은 시로부터 큰 상금을 받고 다른 주에다 더 큰 이발소를 차리게 되었다. 존의 식구가 이사하기 전 교회에서는 환송회를 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였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존은 다시 돌아와 그의 이발소를 열었다. 아마도 큰 곤경에 처했던 것 같았다. 존은 다시 가위질을 하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 큰 도시에 글쎄 교회도 주일학교도 없지 뭡니까? 사람들은 돈벌이와 도박, 술 먹는 데 너무 바빠서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고요. 주일이 되어서 아이들을 보낼 주일학교가 없으니 어쩝니까? 난 그래서 돌아온 것이랍니다. 좋은 교회에서 온가족이 함께 자기의 은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것은 그리 흔한 복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녀 교육이나 직장에 따라 이사를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자기와 자기 가족의 신앙을 생각하여 이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진정한 교회
성경: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누추하고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하고 사랑스러우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사장 아론은 성전에 나올 때, 장식품을 걸친 화려한 외모로 향기를 풍기며 영광스럽게 나타났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으로 자신들의 교세를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일부 대형화된 교회들은 자기들 위주의 공동체 모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꺼려합니다. 교회가 너무 깨끗하고 화려해서 남루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모습을 입으면서까지 낮아지셨던 주님의 사랑을 돌이켜보면서, 화려한 교회 건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려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 기도: 교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가 그의 몸이기에 성경은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다(엡 1:23). 이 말의 의미는 교회가 온 세상에 가득해야 하고 이 세상을 온통 교회로 충만케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교회가 이 세상에 가득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자기 처소로 삼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다. 바로 그 새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 안에 거하시고 그 거하심을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 거하시고 교회를 채우시기 때문이다. 물론 이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그를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그의 몸으로 하는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거소요 성전이다. 그러나 교회는 단번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될 수 없고 만물을 충만케 할 수가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하지만 양적으로도 온 세상에 가득하고 충만해야 한다. 교회를 통해서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거소가 확대되어 가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다. 온 땅에 안 계신 곳이 없이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만이 자기의 성역화된 처소를 확대시켜 가시고 진정한 통치 영역을 확장시켜 가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다. 비록 녹슨 종탑과 초라한 간판을 건 아주 작은 개척교회라도 청와대·백악관보다 더 영광스러운 곳이다.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교회는 더 많이 부흥해야 하고 이 땅에 더 많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땅끝까지 더 많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 누가 감히 이 땅에 교회가 너무 많다고 했던가.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한 거소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하고 온 땅에 가득해야 한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거소가 되기에 합당한 교회로 갱신되고 새롭게 정화되어야 한다. /소강석(분당새엔덴교회 목사)
▣ 교회의 적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이러한 반대적 현상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막스'(K. Marx)가 한 때 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변절자가 오히려 기독교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변해 주는 가장 훌륭한 예이다. 교회에 가장크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처럼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라는것이 마음아픈 일이다.
▣ 신나는 교회 생활
어떤 사람은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서 분주하게 하루 종일 지내면서도 별로 피곤해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보낸다. 어떤 사람은 주말이 되면 또 어느새 일요일이 돌아왔는가 하면서 짜증스러워 하기도 한다. 예배가 시작된 예배당에 걸어들어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성경책을 들고 오지도 않고 멍청하게 앉아서 찬송을 부를 때에는 다 죽어가는 것처럼 개미 소리만하게 따라 부르고, 헌금하는 시간에는 주머니에서 부시럭거리면서 구겨진 돈을 꺼내서 언짢다는 듯이 헌금 주머니에 넣는다. 설교가 시작되면 영락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회 문을 나서는 것이다. 신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싶은가? 우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는가?"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축쳐진 어깨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가겠는가? 시간에 늦을까봐 부리나케 달리고 서둘지 않겠는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 중매쟁이
나는 얼마 전 아주 친한 친구로부터 자기 아들을 중신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친구 아들은 서울의 우수대학원을 졸업한 전자학 석사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인 S전자 사원이길래 그에 걸 맞는 여성을 소개해 주기 위해 수소문해서 현재 서울에 있는 명문 의과 대학 본과 2학년 여학생을 만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만난 후의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좋지 않은 말이 들려왔다. 이 일로 나는 중신하는 것의 어려움을 더욱 실감했다. 목사는 신랑 되신 하나님과 신부 될 사람과의 중매쟁이이다. 요사이 신랑감과 신부감이 맞선을 보는 곳은 보통 호텔 커피숍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신부감 여성이 신랑의 인품을 보려고는 하지 않고 맞선 장소인 호텔 커피숍의 조명이 어떻고, 의자가 어떻고, 커피 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신랑을 거부한다면 과연 그 여자를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최근 전도를 하다보면 신랑 되신 주님의 성품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주님을 만나는 장소인 교회가 어떻고 신자가 어떻고 하면서 신랑되신 우리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본다. 이 지구상에는 온전한 교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보고 혼인잔치에 참여할려고 준비하는 신부가 되어야지 신랑과 만나는 장소에 너무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등불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다.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 교회는 구원의 우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그 육신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했습니다. 그 신령한 몸이 40일 동안 제자들과 같이 있다가 마지막에는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이 신령한 몸이 하늘로 승천한 후에는 이 땅위에 보이는 몸을 대신 세웠습니다. 그 몸이 곧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수를 주는 구원의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일세기에도 많은 목마른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생명수를 마시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2세기에도 그러했고, 3세기에도 그러했고, 오늘날 20세기에 와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거스틴은 성경만 읽은 것이 아닙니다. 주일마다 진실되게 근실하게 밀리노 교회에 나가서 여러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때 로마 제국 일원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성 암부로스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더욱 깊은 자리에 들어갔고 풍성한 생명수를 마신 것입니다. 이 교회야말로 이 광야같이 메마른, 아니 사하라 사막같이 쓸쓸한 세상에서 영적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대로 구원의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 맑고 아름다운 목회자와 교회
사람들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나오고,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큰 교회라 합니다. 모이는 사람도 몇 명 안되고, 아직도 보조를 받아야 교회가 유지되고, 예배 장소도 상가에 세 들어 있다면 작은 교회, 또는 개척교회라 합니다. 이러한 평가 기준은 거의 보편적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람들 숫자나, 헌금 액수나, 건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부자 교회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3:17) 어떤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썼는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목회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합니다. 희망과 기도와 낙담과 용기와 믿음과 뭔지 모르는 것들이 뒤죽박죽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그 목회자가 아집과, 교만과,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고 낮아지고 낮아져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는 어느새 성도들의 숫자는 하나님 앞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숫자와 상관없이 영혼이 맑고 아름답고 투명한 목회자와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런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최용우
▣ 한국교회 쇠퇴원인
한국교회에서 기독교인 숫자가 여러 해 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인 숫자가 줄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먹고 살만하면서 배가 부르고,땅도 가지고 있고,자식들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고,내 자신의 만족을 채울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기독교인들이 앞장서고 있으니 기독교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또 나는 이제 먹고 살만하니 괜찮다고 하는 자기만족에 빠져서도 안 된다. 무관심과 자기만족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악에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깨어나라,그리고 주위를 한번 살펴보라.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공동 묘지화된 교회당
구라파 도처에 궁전 같은 교회들이 있고 교회 경내에는 대개는 공동 묘지가 있다. 구라파인들은 98%가 크리스찬이라고 등록이 되어 있으나 결혼식과 장례식, 평생 두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주로 노인들이 교회에 참석하는데 평균 3%가 출석 교인이어서 공동 묘지화된 교회를 보는 느낌이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 드리던 한국 교인들이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미국 교인수가 줄어들자 많은 교회들을 한국 교회가 접수하는 중이다. 미국 교회도 최후의 몸부림을 다하지만 미국의 영성의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의 기류가 태평양 시대 기류를 타고 한국에 그 중심이 머물고 있다. 이 부흥을 잘 감당하면 영광스런 통일 복음 민족이 될 수 있으나(겔39장, 신28장) 잘못 감당하면 지금 짓는 거대한 교회들이 공동화하고 공동 묘지 같이 텅 비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예수칼럼 : 김준곤-
▣ 정의로운 교회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종교를 의지하러 가는 곳이라고 비하하며 무시했던 아인슈타인이 활동할 당시에 독일에서 나치스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대학의 지성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즉시 나치즘에 무릎을 꿇고 아첨했다. 그들은 나치즘이 주장하는 잘못된 인종이론을 마치 옳은 것인 양 떠들어댔다. 또 나는 신문과 언론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신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필봉을 놓았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독재자에 항거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줄지어 감옥으로 향했다. 나는 교회에 한없는 찬사를 보낸다.” 교회가 불의하면 이 사회는 아예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교회조차 불의하다면 이미 다른 집단은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항상 정의롭고 공의롭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를 향해 광야의 소리를 발할 수 있습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복된 교회
기도하는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는 복되다. 이는 그들이 교회 안의 무질서를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슬퍼하며, 하나님의 일의 진전에 큰 해를 끼치는 악행을 시정하려고 손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 M 바운즈의 ‘기도의 본질’ 중에서-
기도는 교회의 기초와 같아 기도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교회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해 무릎 꿇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이 되길 기도합니다.
▣ 교회 참석의 동기
에머슨 파스틱이라는 설교가는 미국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데는 4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생활 습성이나 관습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그 설교를 듣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란 좋은 곳이라 교회에 나가서 활동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들은 교회에 나가는 주체적인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당신은 왜, 그 무엇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까?
▣ 교회의 세 가지 형태
콜린 윌리엄스는 교회의 모습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아브라함적 동기가 교회가 있다. 이런 교회는 미지의 세계를 믿음으로 순복한다. 둘째, 모세적 동기의 교회가 있다. 이런 교회는 조직제도를 상징하며 신앙심으로 조금 위험하다. 셋째, 바울적 동기의 교회가 있다. 영적 회심을 바탕으로 한 교제가 넘치는 교회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는 모든 사람의 공동체다. 위에 열거한 교회 형태 중 세 번째 형태를 근거로 해서 교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채수덕
▣ 성막과 교회
유대인들에게는 단지 한 곳의 예배 장소만 있으나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예배 장소가 있다. 대부분 예배 장소들은 존경과 관심의 주된 중심지며,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함 없이 서 있다. 선조들은 그 교회의 상수리나무 밑에서 안식하고자 떠나버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교회들의 뾰족탑들은 갑작스레 죽은 마을 사람들이 본 마지막 장면들이었다. 수천 가지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있어 교회가 귀중한 곳이 되게 한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배워 온 곳은 바로 교회였다. 우리의 모든 이해력을 초월하는 커다란 하나님의 평강이 헤르몬 산의 이슬처럼 내려온 곳도 교회였다. 우리가 시내 산의 천둥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조용한 작은 음성'을 들어온 곳도 바로 교회였다. * 참고: 왕상8:27-53, 대하6:10-42, 합2:20, 엡2:20,21, 계11:19
▣ 마르틴 루터의 교회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다. 교회는 피 흘림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 까닭은 교회의 원수인 사탄이 기만자이고,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나의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이 세상에 완전히 순결하고, 정화된 교회를 바라는 사람들과는 고별하라. 이들에게서 확실한 것은 그들이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형태와 외모는 낙원과 같으나, 참 교회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누추하고, 모양 없고, 거리낌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하고, 애호 받고, 높이 평가를 받는다. 제사장 아론은 성전에 나타날 때에, 장식품과 부유한 자태를 가지고, 향기를 풍기며, 영광스럽게 나타났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 교회는 병원이다
이상적인 교회에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를 찾자면 먼저 이상적인 교회가 어떤 것인지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조건 -좋은 위치, 문화적·경제적 중심지, 훌륭한 창립자와 훈련받은 지도자- 을 다 갖춘 곳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본문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인 중에 거짓말쟁이들과 혈기 부리는 사람, 도둑질하는 사람, 쌍소리나 음담을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실망합니까? 교회에서 천국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혈기 부리고, 술 담배, 노름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변화 받는 치료의 장소가 바로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교회는 병원이기 때문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치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이 제 구실을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인격이 모자란다고 나무라면 안 됩니다. 치료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의 분위기가 가족적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허물이 용납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또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는 즉시 "하라"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결심을 하든지 간에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해지고 싶으신 분들은, 자신을 낮추려 마시고 남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도 잔소리하지 말기를 결심하지 말고 칭찬을 많이 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치료는 부정적인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치료하고, 치료받는 병원 분위기로 바뀌겠습니까? 치료의 역사는 언제든지 조그만 그룹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교회는 작아야 합니다. 앞으로 가족을 생각할 때는 부인 혹은 남편, 자녀들을 비롯해서 가정교회에 속한 8명 내지 15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치부를 내어 보일 수 있어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영기 목사 중에서-
▣ 교회에 관한 성경 말씀
0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0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0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0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막11:17)
▣ 교회에 관한 금언
0 교회가 망하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어진다.(요한 웨슬레) 0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진정한 교회를 찾아볼 수 있다. 0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사무엘 죤슨) 0 나는 어떤 설교보다 예배가 있기 전의 조용한 교회를 더 좋아한다.(에머슨) 0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터가 되었다.(터툴리안) 0 신학은 교회 봉사의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교회가 예배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도록 공헌해야 한다.(칼 바르트) 0 오늘날 전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위기는 가톨릭과 신교 사이에 있지 않고, 교회생활의 전통적 양식과 경험적 양식 사이에 있다.(H. 콕스) 0 우리 교회는 '오래된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교인들을 끌어당기는 데 세속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높으시다면 자신이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믿지 말라 0 신은 교회와 종교의 폐허 위에 마음의 성당을 짓는다.(랄프 왈도 에머슨) 0 현대생활에 적합한 종교는 각자 뜻대로 교회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임어당) 0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그의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다.(매튜 헨리) 0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회의 소망이요, 평화의 약속이다.(더글라스 헤이그 경) 0 교회에 간다는 것은 자동차가 차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그대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울리엄 선데이) 0 종교는 그대의 해골을 성막으로 들어가게 하는 과정이지 일년에 한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오스틴 오말리) 0 교회는 천국 가는 나그네가 잠시 묵는 주막집이다.(김경선) 0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과 같다. 0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듯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반사한다. 0 달이 밤에만 세상에 빛을 주듯 교회도 세상이 어두웠을 때 그리스도의 빛을 뚜렷하게 비춰준다. 0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0 교회는 인간의 육체와 같아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많은 지체가 있다. 0 반석 위에 세운 집은 폭풍우가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듯이 반석되시는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세운 교회는 어떤 핍박이나 모진 박해 속에도 튼튼히 서 있다.(김경선) 0 천주교회는 순교자가 피를 흘린 곳에 세워졌다. 0 교회는 포도원과 같아서 특별히 선택된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인 곳이요, 들짐승이나 침입자를 막기 위하여 울타리를 쳤으며, 농부가 물을 주고, 전정을 하며 쉬지 않고 가꾸듯, 울타리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께서 지키시며 기르신다. 0 교회는 어머니와 같아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의 아내며, 어머니처럼(자녀를 낳기 위하여 산고를 겪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고 자녀를 훈계한다. 0 선장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 교회에 주인이 많으면 그 교회는 고통의 산으로 올라간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주님이시다.(김경선) 0 교회는 마치 주유소와 같아서 연료가 떨어진 차가 와서 계속 충진하고 가듯 성도들이 주일마다 혹은 수요일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충진받고 가야 세상 인생행로를 달린다.(김광웅) 0 아무리 잘 타는 장작불도 하나하나 헤쳐 놓으면 불이 꺼지듯 교회도 성도들이 많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해야 힘이 생긴다.(한경직) 0 교회에 사람을 더하는 주권적 권한을 독점하고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 존 스토트
제목: 교회 교회사 저술의 시조로 알려지는 에우세비오스의 글을 통하여 보면 실로 평안한 때야 말로 교회가 부패되기 쉬운 때임을 알 수가 있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 이후 26,7년에 걸치는 평화로운 동안에 교회가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를 일언하여 둘 필요가 있는 줄 안다.......그리스도의 종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 들었다. 그 막대한 사람들의 집회, 그리고 여러 도시에서 모여 온 그 군중들, 예배당에 있어서의 굉장한 수의 군중에 대하여는,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의 것이었다. 그들은 옛 건물에 만x족할 수 없어서, 각처에 있는 도시에, 큰 회당을 세웠다. 이들 교회는 나날이 커졌고, 진보는 더하여, 어떠한 증오, 어떠한 대적에도 압복되지 않았다. 그렇듯 교회는 평화를 즐기면서 번영했다.....그러나 극도의 자유로 인하여, 교회는 부주의와 나태에 빠지게 되고, 각양 방법으로 서로 투기하며, 욕지거리를 하게 되었을 때, 즉 이제라도 서로 무기를 들려는듯, 또 화살과 창으로써 싸우려는 것과도 같이 말로써 서로 습격하려는 때, 다시 말하여 감독은 감독을 비방하고, 신자는 신자를 상대로 일어나고, 위선과 허위로서 최대악의 절정에 달한 때, 군중이 또한 교회로 모여들 때, 언제나 부드럽게 시작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주 부드럽게 내려와서, 단속하기 시작했다"가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로 평안의 때는 오히려 부패되기 쉬운 위기이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때이기도한 것이다.
제목:교회 부흥은 기도로 지난 10년간 미국 교회에서는 12개의 큰 교회 중 8개가 한국 교회였고, 1991년도에 와서는 20여개의 큰 교회는 모두가 한국 교회 였습니다. 같은 성경책, 같은 돈, 같은 목적인데, 한국 교회는 성장하고, 미국 교회는 황폐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목사의 기도 시간은 하루에 8분 이었고, 한국은 30분 이었습니다. 다른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회로 교회를 일으키려고 하기 전에 정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했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더불어 몸과 마음과 뜻을 합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제목: 교회 부흥은 기도로 지난 10년간 미국 교회에서는 12개의 큰 교회 중 8개가 한국 교회였고, 1991년도에 와서는 20여개의 큰 교회는 모두가 한국 교회 였습니다. 같은 성경책, 같은 돈, 같은 목적인데, 한국 교회는 성장하고, 미국 교회는 황폐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목사의 기도 시간은 하루에 8분 이었고, 한국은 30분 이었습니다. 다른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회로 교회를 일으키려고 하기 전에 정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했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더불어 몸과 마음과 뜻을 합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제목: 교회 부흥의 원인 전에 평양 남문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무식한 목사가 부임해왔읍니다. 이 목사님은 말도 잘 못하고 학식도 없지만 기도는 많이 했읍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부흥되었읍니다.그런데 그 교인들이 말하기를, 무식한 목사님이 목회해도 부흥이 되었는데 이제는 미국 갔다온 목사님을 모셔오면 더 부흥이 되겠다고 하면서 먼저 목사님을 내쫓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셔왔읍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은 학식도 많고 말도 잘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데 왠지 교회는 점점 냉냉하게 되어갔읍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안타까워 하다가 사찰한테 묻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과 나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사찰이 대답하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은 강단에서나, 지하실에서나 엎드려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목사님은 한번도 그런 것을 못보았읍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깨닫고 담요를 싸가지고 산에 올라가 바위를 붙잡고 낙엽이 온 몸을 뒤덮을 정도로 며칠동안 부르짖어 기도하고 내려와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이 변화되고 교회는 계속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제목: 교회 안에 들어온 강도 말 3:9, 10; 마 6:19-21; 잠 9:17, 18 네바다에 있는 윌넛 크리크 교회에서 부활절예배가 드려지고 있을 때, 스키 마스크를 쓴 남녀 두 사람이 흉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헌금통을 제외하고는 성도들로부터 값나가는 것을 모두 빼앗았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여 버리겠다. 갖고 있는 지갑과 돈주머니를 통로에 던져라!" 성도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남자는 한 아이에게 그것들을 모아 오라고 했다. 그 강도들은 약탈물을 챙겨서 서둘러 교회를 떠나면서 약 75명쯤 되는 성도들에게 10분간 꼼짝 말고 교횡 안에 있으라고 명령했다. 로이 사이크 목사는 성도들에게 강도의 지시대로 하라고 당부했다. 매주 많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도적질이 행해지고 있다. 즉 주님께 바쳐야 할 십일조와 헌금을 온전히 바치지 않는 것 이다.
제목: 교회 참석의 동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에머슨 파스틱이라는 설교가는 미국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데는 4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생활 습성이나 관습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그 설교를 듣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란 좋은 곳이라 교회에 나가서 활동하면 사회 에서도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들은 교회에 나가는 주체적인 동기가 될수는 없다고 합니다. 교회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당신은 왜, 그무엇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목: 교회가 애매히 받은 박해 1919년 3.1운동 후였다. 4월도 중순에 들어 섰을 때, 일제가 가장 잔인무도하게 횡포를 부린 [수원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한국 겨레의 자유를 찾으려는 항거에 터무니 없이 화가 치밀은 일본 경찰과 헌병이 더욱 무도하게 탄압을 가하는중에, 4월 15일에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일본군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 군대가 나타나서, 주로 동네의 젊은 남자 약 30명을 강제로 제암리 교회에 몰아 넣고 출입문을 모조리 굳게 잠근 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은 사건이다. 일본군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문틈으로 기어 나오는 어린이들을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그리고 나서는 교회 건물과 그 주위의 민가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학살한 일본군은 그외에도 제암리 근처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민가를 불태우는 등 만행을 감행했다. 이것은 직접 한국인의 벗으로 알려지는 영국의 의료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사진을 찍어 전한 사실이다. 교회는 때로 이런 애매한 박해를 옛날부터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박해는 그렇다고 교회를 없이하지는 못한 것이다.
제목: 교회건물이 주는 영향력 소련의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광장 옆에는 옛날 제정 러시아 시대에 건축된 웅장한 러시아 정교회의 성전이 서 있습니다. 둥근 양파처럼 생긴 돔(dome) 형식의 지붕 위에는 아직도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현재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밑에서는 성경책을 절대 사 볼수 없고 전도지 한장 조차 나누어 줄 수 없지만, 수 많은 소련 시민들은 공산주의를 아무리 신봉해도 참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붉은 광장 옆에 있는 그 예배당에 모여 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수백 년 전에 자기들의 조상들이 신앙의 힘과 노력으로 이룩한 높은 성전을 볼 때마다, 소련 시민들은 그 성전 건물이 전해주는 신앙의 유산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성전 건물 자체가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목: 교회교사의 성실 스펄전은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설교가였다. 스펄전이 16세이던 1850년 콜체스터의 한 교회에서 조그만 모임이 있었고, 스펄전은 이 집회에서 복음을 접하고 큰 변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날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이날 교회학교의 한 교사는 날씨가 나빠도 교회에 미리 가 조금 후에 온 17명을 위해 열정을 다해 복음을 증거했다. 그 결과 스펄전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교회사에 찬란하게 빛나 있는 것이다. [위대한 결실]은 [최선의 성실]에서 비롯된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시편 31:23)
제목: 교회봉사 오래 전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여름철인데 40세 정도의 남자가 내게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금년에는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를 위하여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이 계속하여 “목사님, 아시다시피 제가 가르칠 수는 없고.”까지 말이 끝나자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도저히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이르기를 “해마다 성경학교 때에 보면 더위 가운데 아이들이 물 마시는 일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는 제가 아이들에게 냉차를 준비하여 마시게 하는 일을 맡아서 하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라고 승락을 하였더니 그 여름에는 분말 쥬스에 얼음을 넣어서 어린 아이들을 질서정연하게 음료수를 마시게 하여 보람있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교회 봉사란 언제나 열려져 있는 분야이면서도 자기 분수를 외면한 지나친 열심자를 만나게 되면 오히려 시험에 빠질 때가 있다. 자기의 능력을 알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의 분야를 찾아 헌신하는 일꾼이 아쉽다. 오히려 남이 꺼려하는 가장 낮은 일을 찾는 일꾼이 요청되는 현실이다. 금년에도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후면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이 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플라스틱 컵으로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고 물을 마시우던 그 교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른 곳으로 이사간 그 분이 금년에도 어느 교회에서 또 물컵을 들고 분명히 봉사할 것인데..
제목: 교회와 국가의 비밀이 누설된 순간 사 48:16; 시 78:2; 렘 49:10; 암 3:7 중세 때 많은 교회와 정부 관리들이 유럽의 한 수도에서 열린 교회회의에 모였다. 연회석상에서 어떤 유명한 추기경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명예를 높일 수 있도록 연설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성직 소명과 책임적인 의무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나의 첫번째 고해자는 살인범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연설을 마쳤을 때 어느 유명한 공작이 들어왔다. 그 공작은 추기경이 말한 것에 대한 평가연설을 요청 받았다. 그는 추기경과 청중들에게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여러분, 저는 추기경의 첫번째 고해자가 된 것과 그로부터 면제받은 첫번째 고해자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참석자들이 당황했다. 국가와 교회의 중요한 비밀이 부지중에 누설되었던 것이다.(T. J. Lewis)
제목: 교회의 보물 초대 교회사에 나오는 위대한 순교 사화입니다. 로마 교회의 식스투스 감독은 경건하고 인자하여 그의 목회에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는 빈민 구제와 사랑을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그를 처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식스투스 감독이 사형장에 끌려갈 때 라우렌티우스 집사가 식스투스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버지여, 당신께서 제단으로 나아 가실 때 늘 저에게 도움을 청하시지 솥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지금은 저를 데려가지 솥으쁠니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식스투스는 “사랑하는 아들아, 긁도 며칠 후면 나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당시에 식스투스 감독의 교회 수석 집사로 거대한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막대한 재산을 알게 된 로마 시장은 교회의 모든 재산을 상납토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 재산을 정리하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납일을 연기하도록 허락받고 교회당의 모든 보물을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수천의 민중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에 그 사람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시장이 교회당으로 올라오면서 “보물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문을 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때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교회당 문을 활짝 열고 소경, 벙어리, 걸인, 병자, 고아, 과부의 무리를 가리키며 “교회의 보물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제목: 교회의 의미 사람들이 저를 보면 제일 먼저 “오르띠즈 목사님, 어느 교회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저 '교회에서 왔다'고 대답합니다. “무슨 교회라고요.” “교회요. 교회, 마침표입니다.” “마침표 교회라고요.” “아닙니다. 마침표는 교회 이름이 아닙니다. 제 말은 그냥 교회에서 왔단 뜻입니다.” 성경을 살펴보고 혹시 교회 이름을 발견하시거든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교회일 뿐입니다. 교회는 교회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어두움의 왕국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냄을 받은 모든 자들로써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불러냄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제가 속해 있는 교회와 같은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그 본질상 교회는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다른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불러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교회가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10이라는 숫자를 열 개의 1이나 다섯 개의 2로. 혹은 두 개의 5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당신은 다섯 그룹을 세 그룹과 두 그룹으로 나누거나. 혹은 한 그룹씩 다섯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또한 2를 두 개의 1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나눌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나뉘어질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하나를 부술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다리를 잘랐을 때, 당신은 “그들이 나를 둘로 나누었다”라고 말하지 않고.“그들이 내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조각으로 부수어질 뿐입니다. 그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어 하나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치료해주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제목: 교회일과 교회의 일 어느 날 나는 꽤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친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 교회의 교인수는 얼마나 되나.” “5,000명쯤 되지”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교회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성가대에서. 교회 학교에서. 또는 안내 위원으로. 성경 공부 인도자 등 교회의 기타 부서에서 봉사하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가 말이네.” “음. 대략 1,500명 정도 되지.”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 소위 실업자가 3,500명이나 되는구나.. 다른 기회에. 목회를 하고 있는 또 한 친구에게 그 교회 교인수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더니 한 800명쯤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자네 교회에서 무슨 일이든 맡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지.”하고 물었습니다. “글쎄. 지금까지 거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 300명 가량 될 것 같네”하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교회 일”이 있고. “교회의 일”이 있습니다. “교회 일”이란 교회의 공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요. “교회의 일”이란 그 이외에도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을 말합니다. 교회의 공적인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좌석을 차지 하고 앉아 있는 평범한 교인들은 바로 이 “교회의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3,500명 또는 500명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교인들이 스스로를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 본다면. 모든 교인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무장된 일꾼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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