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확실한 은혜 확실하게 받으라 (사 55:1-5)

공 상희 2011. 1. 9. 16:46

확실한 은혜 확실하게 받으라 (사 55:1-5)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4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 시간 “확실한 은혜 확실하게 받으라 ”는 제목입니다. 본문 3절 보니까 확실한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기 믿는 신앙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도 확실하게 받아야 합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싱(Sundar Singh)은 힌두교의 종파인 시아크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션학교에 다녔지만 늘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고 오물까지 끼얹으며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힌두교에서 진리를 발견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정말로 계십니까? 계시다면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순간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갑니다. 기차소리를 들으며 결심합니다. 내일 아침 5시까지 응답이 없으면 열차에 투신자살하리라. 그리고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제가 죽기 전에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밝은 빛이 환하게 비취더니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언제까지 나를 원망하려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네가 바른 길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구나. 내가 바른 길을 가르쳐주겠다. 내가 바로 그 길이다". 확실한 은혜를 받은 선다싱은 그 때부터 예수를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깨달았고 신령한 체험을 수없이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다싱처럼 투신자살을 결심하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진리에 관한한 확실한 그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오늘 성경에 확실한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확실함을 강조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확실한 은혜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은혜가 뭡니까? 네 위가 영원하리라. 그러므로 그 정권 아래서 영원히 안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의 정권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건만 그들은 안타깝게도 그 은혜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확실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의 은혜를 받는지, 어떻게 죄에서 구원을 받는지, 승리하는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지, 어떻게 예수님과 동행 동역하는지 알지 못하고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과연 다윗의 언약을 계승하여 영원한 왕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스리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확실한 은혜 받고 사는 길은 무엇일까요?

 

1.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지금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보세요.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것은 그냥 와서 공짜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천국잔치의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잔치에 돈 받는 것 보셨나요? 돈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업하는 식당이지 잔치가 아닙니다. 이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바울이 무엇이라 했나요? 갈3:1-2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복음을 모르거나 적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종교를 짐으로 생각하여 신앙을 떠났다 긴 방황 끝에 다시 돌아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입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하다가 틴에이저 시절에 신앙을 떠납니다. 그러나 55세가 되었을 때 '신앙론' 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나는 지나간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 18세 되던 해 친구가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종교를 속박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실수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신앙을 종교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선물입니다. 내가 의로워야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공로가 있어야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 받지 못합니다. 마치 성령을 돈을 주고 사려 했던 마술사 시몬과 같은 생각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복을 누리는 것은 무엇을 해서가 아닙니다.

 

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만세 전부터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 안에서 승리했습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 안에서 영광의 존재입니다. 이 이루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누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은혜를 전제한 말입니다. 가령 "내가 갚아주겠다." 약속할 때 "그걸 제가 믿을께요." 한다면 내 수고 전혀 없이 100% 은혜입니다. 그래서 롬4:16에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함께 하시고 교통하심으로 축복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죄 없다 하시고 사랑하시고 안아주신다. 나는 보혈로서 죄 사함을 받았고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예수와 함께 살았으며 예수와 함께 영화롭게 되었고, 성령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사랑을 묵상하세요. 믿음으로 누립니다. 사랑을 믿어야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하심이 나타납니다. 죄가 나를 주장하려 합니까?시험이 다가옵니까? 이미 예수 안에서 승리자라는 사실을 안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조용히 엎드리세요. 감사하세요. 찬송하세요. 이미 이루신 복음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서서 찬송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승리가 다가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만큼 확실한 은혜는 없습니다.

 

2.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입니다. 바벨론에서 선민이라는 특권 다 빼앗기고 그들의 놀이개가 되고 그들의 종이 되어 섬겼습니다. 그런 수고 안 해도 되는데 헛수고만 하고 있었습니다. 왜 헛수고만 했을까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막13:14)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모실 마음의 왕좌에 세상을 있게 하지 마세요. 세상 사랑하면 환란이 옵니다. 심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육체 가정 나라 세계에도 고난이 옵니다.

 

왜 헛수고를 합니까? 시127:1-2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단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고민 그만 하고 단 잠 자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이것이 은혜 받는 확실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곧 복입니다. 예수님이 곧 구원입니다. 교리가 전부가 아닙니다. 교리를 알아도 구원이신 예수님에게 내 중심을 내어주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이제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요14:2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자라시기 바랍니다.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늘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세상 일에 분주하여 하나님께 소홀히 한다면 진짜 복은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귀하지만 하나님이 더 귀하십니다.


그래서 1절에만 해도 오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다 찾아집니다. 헛고생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신앙 확립부터 해야 합니다. 헛된 세월 보내지 않으려면 이 기초부터 잘 닦으셔야 합니다. 시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햇습니다. 잠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 암5:4에도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했습니다.


3.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3절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청종이란 듣고 따른다는 뜻이에요. 겸손한 마음의 태도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내 주장 그것은 교만입니다. 내 주장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존(John)목사의 간증입니다. 청소년 집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수 있도록 집회에서 말씀을 증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존 목사는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날마다 기도로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집회 전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의 메시지를 사용하지 않겠다." 지적인 청년들 앞에 준비 없이 어떻게 선다는 말입니까? 자기를 초청해준 주최측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그냥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장 1절을 봉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만 봉독하고 이어 기도하고 그들을 사명으로 초청하라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존은 성경을 봉독한 뒤 강해라도 덧붙여야겠다고 잠시 강해하였지만 실패합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존은 말씀에 순복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알 수 없는 평안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시작하시면서 은혜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참석한 1,500명의 젊은이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와 말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모두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을을 지나가다가 논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이 말을 들은 청년이 "목사님, 이 마을에서는 전도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일 전에 비가 오고 벼락을 때렸는데 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서낭당 나무를 때렸어요. 가지가 부러졌고요. 또 바위를 때려서 바위가 깨어졌고요. 논바닥을 때려서 바닥이 푹 폐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아니, 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논바닥이 무슨 죄가 있길래 그럽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던지 계시다면 장님이든지 그럴 겁니다.”


김목사님이 듣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네 학교 다닐 때 서당 다녔나? 학교 다녔나? 선생님의 손에 무엇을 들고 가르치던가? 그 막대기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예, 흑판도 땅땅 때리고, 책상도 땅땅 때리고 뭐 그러죠." "그래? 흑판이 무슨 죄가 있어서던가?, 책상이 무슨 죄가 있어서던가? 이놈아! 지금은 바위를 때렸다 만은 다음에는 네 머리를 친다. 깨닫고 예수 믿어라." 그랬더니 그 말에 청년이 놀라 회개하여 예수 믿고 거기에 교회를 세운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확실한 은혜는 성경에서 옵니다. 기도하다가 주시는 깨달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검토해 보세요. 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건 속에서도 들려주시는 음성은 없는지 살펴보세요. 지금 우리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남북 간의 국지전 상태에 국민은 긴장하고 군인들은 희생되고, 곳곳마다 구제역에 인플루엔자에 짐승들은 살처분되어 피해액이 1조가 넘고 있으며, 사람들도 신종 플루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 비교적 작은 사건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도덕적 영적불감증을 회개해야 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탐욕과 교만과 자만 다 내려놓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성도 형제들 끼리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크게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한 것보다 더 확실히 은혜 받는 길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새 언약은 영원히 변함 없는 확실한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 되는 걸 더 이상 방황하고 헛수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사랑과 이루신 복음을 믿고 감사하며 그 분을 경외하며 청종하며 사랑하여 우리 영혼이 살고 육신이 살고 모두가 사는 확실한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대 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호의 특별은총   (0) 2011.06.25
크고비밀한일  (0) 2011.05.11
생명수의 강 (겔 47:1-12)  (0) 2010.11.05
보호의 특별은총 (사 43:1-3)  (0) 2010.05.16
새 마음의 일군 (겔 36:26~27)  (0) 201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