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생명수의 강 (겔 47:1-12)

공 상희 2010. 11. 5. 13:47

생명수의 강 (겔 47:1-12)


이 시간에 “생명수의 강”이라는 제목으로 잠시 은혜의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행복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KBS 아침마당의 최윤희 씨가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에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며 행복전도사로 활동했는데 신체적 약함 등을 이유로 남편과 함께 유서를 써놓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건을 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행복전도사가 진정 행복이 없었다는 말인가? 희망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면 희망을 내셨을 텐데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속단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면 칠레의 호세광산에 69-70일 두 달이 넘게 매몰돼 있는 광부 33명이 그 어둠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바로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선지자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미지는 강물에 대한 것이었지만 내용은 살아나는 희망에 관한 환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 징계로 1차 2차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이스라엘 성읍은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갔으며 시드기아 왕까지 눈이 뽑혀 잡혀가는 비극을 당하였습니다.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선지자 에스겔의 아내까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스겔마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리 봐도 절망, 저리 봐도 절망입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생명수의 환상으로 희망을 부어주셨습니다. 희망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령 안에서 희망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희망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신 곳에 영육간의 삶과 교회의 희망과 세상복음화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성령님은 어떻게 오시는 걸까요?


1.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십니다.


1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동쪽은 하나님 쪽을 상징합니다. 계7:2을 보면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인을 칩니다.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했어요. 그러니까 동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3절에도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요1:14)고 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자에게 성령이 오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면 성령이 임합니다. 이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해 보세요.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 가운데서 숨어 신앙생활과 복음전도에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분부하신 대로 날마다 하나님 바라보고 기도하고 찬송하다가 성령이 임하여 예루살렘이 복음화 되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62:5-8)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2. 겸손할 때 나오십니다.


다시 1절에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그랬습니다. 수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물이 문지방에서 스며 나왔습니다. 여기 “스미어 나오더라.’는 용어 ‘파카’는 강력한 힘으로 분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댐 아래서 고압파이프로 분출되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력하게 분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문은 니카놀의 문이라 해서 놋으로 된 문입니다. 이 문은 남자들만 이스라엘의 뜰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장정 20명이 움직여야 열리는 크고 육중한 문이었습니다. 이 문은 안식일 축제일 그리고 왕이 나타날 때 등 특별할 때만 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환상에 성전 문이 닫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1:10에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문지방 아래로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지방은 겸손을 상징합니다. 즉 아무리 어려워도 겸손하면 은혜가 넘칩니다. 겸손하면 기도가 나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응답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의 문지방을 낮추면 부흥이 옵니다. 누구나 평안하게 드나들어야 합니다. 여러 시설을 운영하여 불신자들도 교회에 드나들 일이 있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예수님도 기사와 이적으로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문지방만 낮추면 부흥이 옵니다.


3. 사랑하고 봉사할 때 나오십니다.


1절에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최종 방향은 남편이었습니다. 남쪽의 목적지는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흐르니 사해를 가리킵니다. 애굽도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해도 애굽도 세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도움을 청하러 가지 말라한 애굽입니다. 세상에 속화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물이 남편으로 흐릅니다.


이것은 세상과 이웃을 향한 봉사를 의미합니다. 이웃과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은혜가 넘칩니다. 3-5절을 보시면 나아갈수록 풍부한 물결이 넘칩니다. 일천 척을 나아가니 물이 발목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나아가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음에는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음에는 물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강입니다. 남쪽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많아지고 넘치고 넘치는 강입니다. 이처럼 남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면 할수록 은혜가 넘칩니다. 영력을 얻고 싶습니까? 기도하시되 남을 위한 섬기는 기도를 많이 하세요. 그의 영적 부담이 밀려오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이웃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복음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고 우리가 살고 모두가 삽니다.


이것이 갈릴리호수와 사해의 차이입니다. 갈릴리호수는 물을 받으면 흘려줍니다. 그러니까 물이 맑고 생물이 삽니다. 그러나 사해는 물만 받고 내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입니다. 주라 그러면 넘치게 주리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해 주면 성령충만이 나에게도 옵니다. 축복해 주면 나에게도 복이 임합니다. 항상 신앙의 초보에 머물지 말고 섬기는 신앙으로 장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 까지 이르라 한 것입니다.


초보의 발목신앙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아버지가 예배 때마다 졸았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참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천 원씩 주며 아버지가 졸 때마다 깨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조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가 다시 졸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아이를 불러서 왜 깨우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할아버지가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러겠느냐 깨우지 않으면 2천 원씩 준다고 해서 깨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유머이지만 남이 하라 해서 하고  하지 말라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초보신앙입니다. 무릎단계는 기도의 단계입니다. 발목신앙에서 졸업하여 새벽기도회까지 나오시기 바랍니다. 허리단계는 충성과 겸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온전히 성령에 붙잡혀서 사명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기에게도 은혜가 되고 형통이 됩니다.


4. 십자가 진리에 서야 합니다.


11절에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그 생명수를 받고도 변화되지 않는 땅이 있었습니다. 진펄과 개펄입니다. 진펄 개펄은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아담 안의 옛사람 가지고 너무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걸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방황합니다.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악한 옛사람이 드러날 때마다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복음 안에서 성취하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담 안의 자화상이 솔직이요 정직이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 안의 자화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성령 두 가지 조건을 갖추세요. 하나님 경외함으로 성령충만 받고 십자가 진리에 설 때 우리의 신앙은 성령님의 은혜로 허상이 아니라 실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절망밖에 없는 이 세상에 성령님이 소망이십니다. 절망의 세상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잠잠히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여 성령충만으로 절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