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특별 새벽기도회"
1.제목 "존재 가치가 없는 자들" 성경 막 14:10-47
서론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 중에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필요한 사람이 있고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없어야 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존재가치가 없는 자입니다.
1.스승을 배신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하였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든 간에 가룟유다가 스승을 배신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아니하였고 마귀라 예수를 팔아 넘길 수 있었습니다(요 6:64, 70-71). 여하간 배신을 한다는 자체는 도저히 용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자들도 스승을 배신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깡패의 세계도 배신은 용납하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스승을 배신하는 자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2.스승을 파는 자들입니다.
본문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하였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기로 흥정을 하였습니다. 돈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그 돈은 은 30냥이었습니다.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데 내니이까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18-20)하였습니다. 스승은 부모나 다를 바가 없는데 팔아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자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3.위선자들입니다.
본문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선자입니까. 겉으로는 인사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원수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는 신호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수들에게는 단단히 묶어서 끌고 가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니 위선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들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21)하였습니다.
2.제목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성경 요일 5:13-18
서론
죄 때무에 인류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무서운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는 죄로되 사함을 받을 죄가 있고 사함을 받지 못할 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위하여 구하고 사망에 이르는죄는 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생한 사람은 사망에 이르는 죄는 짓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1.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습니다.
본문 16-17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한 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하였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죄를 범하면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용서하여 주시는데 즉 생명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다만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인이냐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냐 차이 뿐입니다. 용서받을 죄는 끝까지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도 은혜입니다(행 11: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목적도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 5:32).
2.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습니다.
본문 16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하였습니다. 그럼 사망에 이른 죄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민 15:30-31)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는) 죄, 배교하는 죄, 짐짓 죄를 짓는 자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12:31-32, 히 6:4-6, 히 10:26-27). 이는 불택자들이 범하는 죄입니다.
3.중생한 자들은 망할 죄는 범치 않습니다.
본문 18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하였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상습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그리고 인간이 약해서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지옥 갈 정도의 죄는 범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켜 주시면 마귀는 성도들을 만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죄를 짓게 되지만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가까이하여 죄를 범치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지옥 갈 정도의 죄는 허용치 아니하여도(시 37:24) 징계받을 정도의 죄는 허용하십니다(고전 11:31-32).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벧전 3:10-12).
"결론"
우리는 아담이 지은 죄로 죽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살리셨습니다(엡 2:1).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야 합니다. 특히 약해서 죄를 범했다면 무조건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제목 "말의 중요성" 성경 잠 13:2-3
서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재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1.말로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하였습니다. 혀는 세치 정도 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역할은 다섯 자의 몸을 죽일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저자는 말하기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 3:6-10)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혀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입술이 되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성령에 이끌리는 혀라는 점에서 복되다 그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입으로 남을 축복하면 자신도 복을 받고(욥 42:10) 타인도 복을 받습니다(잠 11:11). 그래서 말의 귀중성을 깨닫고 삼가 조심하여 복 받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2.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로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영혼을 더럽히고 또 나아가서는 육의 생명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꿔 핀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5-7) 하였습니다. 여하간 입술을 삼가하지 않으면 영혼도 해를 받으며 육의 생명도 죽임을 당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는 입술이었고 한편 강도는 회개하는 입술인 동시에 구원을 요청하는 입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욕하는 입술은 그 영혼이 잘못되었고 회개하며 구원을 요청한 그 입술은 복이 되어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사상표현입니다. 그래서 입을 지켜서 영혼도 잘 되게 하고 육신의 생명도 보존해야 합니다.
3.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빌라도가 묻기를 이 죄를 누가 받으려냐 했을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받고 남는 것이 있다면 후손들이 받겠다고 하였습니다(마 27:19-26). 그리하여 그들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망하고 결국 그들 후손들까지 유랑민이 되어 국적 없이 나라 없이 약 2000년간을 떠돌아다니면서 고생을 하였고 독일에서 600만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말을 반드시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 :28) 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은 함부로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 서원 하는 것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전 5:2-7, 신 23:21-23, 잠 18:21), 하나님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하였습니다.
"결론"
말은 아주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해서 복을 받고 멸망을 초래하지 말며 은혜를 끼치고 나와 타인에게 유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 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있고 슬프게도 할 수 있고 사람의 의욕을 불어넣을 수도 있고 삶의 의욕을 포기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유익한 말만해야 할 것입니다.
4.제목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성경 갈 6:7-8
서론
이는 파종의 원리를 말하는 것인데 사람은 언제든지 거둘 것을 바라보고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두기 전에 먼저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하여 부부가 되어 때가 되어 임신을 하게 되면 10개월만 있으면 반드시 아들이나 딸을 낳게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농부가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기 되어 있고 팥을 심으면 반드시 팥을 거두는 것이 파종의 원리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심든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기도로 필요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였습니다.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역사 하시는 이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려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심한 갈증 속에서 물을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삼손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그와 같은 모습으로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부르짖기를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하였습니다(시 118:5). 이는 다윗이 급박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기도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한 결과는 응답을 거두었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장 응답 없다고 낙심할 일이 아니고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 정녕 거두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야베스는 기도하기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하였습니다(대상 4:10).
2.말로 필요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혀는 자신의 생사(生死)를 가늠하는 척도이며(잠 18:20-21, 약 3:5-8), 생사화복을 좌우하게 됩니다. 특히 주의 종들의 축복의 말은 성도들이 복을 거두게 됩니다. 민수기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하였습니다(민 6:22-27). 속언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로 자녀들의 복을 심어 언제인가는 싹이 나고 열매가 맺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을 말로 심어서 반드시 거두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하였습니다(막 11;23-24). 아브라힘이 종들에게 하는 말이 "너희는 여기 있으라 우리가 하나님께 번제드리고 오겠다고 하였고 이삭에게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리라"고 말로 심었는데 그대로 거두었습니다. 반대로 자기의 말로 자기가 잡히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잠 6;2)
3.소원으로 심으면 반드시 거둡니다.
막 10:51-52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하였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에게 자기의 소원을 심었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는 그의 평생에 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심은 소원은 분명하게 거두고 말았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지혜를 달라"고 소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전무후무한 지혜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진정 소원을 주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거두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이여 큰 교회를 소원을 심으십시오 반드시 거둘 것입니다. 병든 자들이여 낫기를 원하는 소원을 주께 심으십시오 반드시 건강을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소원을 심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 기도로 물을 주고 인내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반드시 거둔다는 파종의 원리를 믿고 기도로 심어 거두고 말로 심어 거두며 소원으로 심어 거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많기를 바랍니다.
5.제목 "여호사밧이 기도하니" 성경 대하 17:1-19
서론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에게 부와 영화를 주시고 계속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번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가 경제도 튼튼하게 하였고 따라서 국방정책도 빈틈 없이 하여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의 기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본문 3-4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바알 신을 미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심을 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요 14:15). 하나님을 사랑했기 패문에 하나님께서도 여호사밧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잠 8:17).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2. 나라가 견고하였습니다.
본문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셔서 기반이 튼튼하여 흔들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셨습나다. 그리하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0). 그 뿐 아니고 여호사밧은 성을 튼튼하게 하고 용감한 군사를 많이 두어 나라의 국방을 더욱 튼튼하게 하였습니다(13-19). 그러므로 나라가 튼튼해지는 비결은 나라의 최고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에게 기도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면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셔서 흔들리지 아니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3. 국가 경제가 발전하였습니다.
본문 5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인 블레셋도 예물을 바치니 그 수효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11-12). 국가가 튼튼하기 위하여는 경제 발전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경제가 풍족해야 국력을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후진국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도우심을 요청하니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부강한 나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으며 부지런하게 일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시127:1-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먼저 농사가 잘 되고 백성들이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에 재난이 없게 하시고 전쟁이 없게 하시면 당장에 국가 경제는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지도자와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니라"(막 9:29)하였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만들고 나라가 튼튼하게 되도록 하며 국가 경제가 풍족하도록 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부강하고 싶으면 지도자를 비롯하여 온 백성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6.제목 "회개와 감사" 성경 스 9:5-15
서론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 때문에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죄를 지적하는데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죄를 보는데는 익숙하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지도자들도 타락하였고 많은 백성들도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탄식하며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리하여 회개하는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고 죄를 지은 것만큼 벌을 아니한 것을 감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지도자가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5-6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며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었지만 지도자가 탄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죄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요나 한 사람의 회개로 니느웨성민 12만명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면 지도자가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자책하는 마음이 앞서야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2.백성들이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7-12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 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이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3.죄보다 형벌이 경함을 감사하였습니다.
본문 13-15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하였습니다. 이는 죄를 지은 것보다는 벌을 적게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였습니다. 회개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기 때문에 그와 같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였는가를 알지 못하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는 기쁨도 있고 죄에 비해서 벌을 적게 받았다는 생각이 될 때에 감사가 나오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7.제목 "기독교인이 우는 이유" 성경 욜 1:1-9
서론
요엘 선지자는 당시의 유다 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경고하면서 각성과 반성과 애통과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받기 전에 울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1.재앙을 막기 위하여 우는 것입니다.
본문 3-4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팟종이(송충이의 일종)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눗(곤충)이 먹고 눗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하였습니다. 곤충의 재앙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자녀에게도 가르치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는 깨닫게 하는데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가르쳐서 대대로 기억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앙을 받을 때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물 중에 회개의 눈물이 제일로 값진 눈물이 될 것입니다.
2.적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우는 것입니다.
본문 6-7 "한 이족(異族:다른 혈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하였습니다. 이는 유다가 죄를 지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침략하여 들어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수는 메뚜기처럼 많고 메뚜기가 곡식을 해치면 피해가 막심하듯이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되면 그 피해는 보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적의 힘이 강해서 사자의 이빨같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강한 나라의 침략이 있으면 유다 백성들은 꼼짝없이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울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3.살기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본문 8-9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隨從)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하였습니다. 약혼한 처녀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면 그 수치와 슬픔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신부로 모시고 하나님을 신랑으로 여겨서 열 처녀 비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메뚜기 재앙으로 소출이 줄어들어 굶주리고 백성들이 굶주리다 보니 하나님의 일만 전적으로 하고 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제사장들도 자연히 굶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 육간에 아울러 살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는 방법 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사는 길은 죄를 회개하면서 우는 것뿐입니다.
"결론"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앙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도록 울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8.제목 "잘 죽어야 되는데" 성경 대하 16:7-14
서론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 때는 35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36년을 맞이하면서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성전의 기물과 왕궁의 보물을 벤하닷에 주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착한 성품이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그는 신앙도 있고 통솔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아니하고 나중에는 병들어 죽게 되어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에게 구하여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는 처음에는 매우 잘 했는데 말로에 아쉬움을 남기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가 좋아야 하는데"라는 제목으로 말합니다.
1.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하였습니다. 15장에서는 아사왕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감화를 받아 용감하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는데 왜 죽음이 가까울수록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우상숭배하는 그의 모친까지 폐위시키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까지 하였는데 어찌하여 무엇 때문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옥에다 가두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시종여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이미 믿음에 병이 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2.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7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도움을 간청해야 좋아 하십니다. 그런데 아사는 도울 힘이 전무한 인생을 의지하고 그의 도옴을 요청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좋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이십니다(삼상 2:6-10). 그런데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일이요 불신앙적인 태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도 마땅한 일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지하였으니 그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며 아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3.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병원부터 찾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 병원 가는 것이 불신앙적인 행동이며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병원 가는 것이 나쁜게 아니요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 잘못도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를 찾지 아니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고치는 일도 있고 의사의 손을 통하여 고치시는 일도 있으며 약으로도 고치시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의사를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무화과 반죽을 하여 상처에 붙이고 고침을 받았음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왕하 20:1-7). 그러므로 의원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요청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명은 의사의 손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요 아쉬운 점입니다.
"결론"
사람이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깨끗하고 분명하게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제자로 처음에는 제자로서 활약하였지만 나중에는 예수를 배반하고 그를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강도는 처음에는 잘못되었지만 나중에는 회개하고 주님과 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처음에는 훌릉한 신앙인으로 활약했지만 나중에는 불신앙인으로 행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으니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9.제목 "지도자의 삶의 마무리" 성경 민 27:12-23
서론
사람이 살다가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만고 불변의 철칙인 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어떻게 살았느냐 여하에 따라서 죽음의 결과가 좌우될 것입니다. 특히 주의 종들의 죽음은 더욱 값진 죽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과 같은 죽음이 있는가 하면 가롯 유다와 같은 죽음도 있기에 더욱 주의 종들의 삶의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죽음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죽음을 준비하였습니다.
분문 12-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것임과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고 새로운 생활의 출발점임을 알려서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공동묘지로 간다는 말이 아니고 그의 조상들이 머물고 있는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움 없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것을 알고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백성들의 장래를 염려하였습니다.
본문 15-17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도지 않게 하옵소서"하였습니다. 모세는 자가기 죽을 줄을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후계자를 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자기의 개인문제 보다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 더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백성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삶의 마무리를 잘 짓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를 떠나면서 자기의 장래를 염려하지 아니하고 성도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행 20:29-32). 이와 같은 태도가 지도자의 삶의 마루리를 잘 짓는 것입니다.
3.후계자에게 사명을 인계하였습니다.
본문 18-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돈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인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내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모세가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은 자기의 직무를 대신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세우는 일인데 그 후계자를 선택하는 것도 자기가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주시는 자를 백성들 앞에 세우고 그를 존귀케 하여 백성들이 그를 복종하도록 후계자의 위치를 튼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그렇게 실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도자의 삶의 마루리를 잘 했습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잘 맞이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모세와 같이 삶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딤후 4:7-8)
10.제목 "삶의 승리" 성경 딤후 4:7-8
서론
한 평생을 잘 살았다고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자기의 평생을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도 개종하기 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개종을 한 후부터는 믿음으로 그의 여생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가 주의 종이 되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지 않고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하면 육대 육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주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및 질병과도 싸워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적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매를 수 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뻔 하였고 동족과 이방인과 광야의 위험, 춥고 헐벗는 것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고후 11:23-28)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과 싸워서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였습니다.
2.믿음을 지키는데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7 "믿음을 지켰으니"하였습니다. 많은 환난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즉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악과 싸워서 믿음을 잃지 않고 지켰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하였습니다. 웬만하면 모두가 믿음을 버리는데 지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싸움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는데 승리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3.상급을 타는데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승리한 사람은 반드시 면류관이 있고 승리한 사람에게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믿음으로 승리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신앙생활에 승리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데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반드시 순교자들이나 신앙생활에 승리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말고 더욱 굳게 서야 합니다(고전 15:58).
"결론"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적으로 승리하고 가난과도 싸워서 이기며 자신과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승리는 하고 보아야 합니다(히 10:37-39).
11.제목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성경 고후 6:11-13
서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성도들을 대하는 마음이 옹졸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여러분이 자기 마음 스스로 옹색하게 만들었습니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가 소원(疏遠)해졌다. 이는 아마도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동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고후 11:11). 아무튼 문제는 바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좁아진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거나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기보다는 자신이 여전히 예전처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부드럽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1.사람은 마음을 얼마든지 넓힐 수가 있습니다.
본문 11 "고린도 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하였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을 좁혀서 매사에 옹졸하게 생각한 것이지 목회자인 바울이 옹졸한 마음으로 교인들을 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넓히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들은 생각하는 것이 소인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늘 큰 생각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낮이면 바다의 모래를 바라보며 내 자손이 저렇게 많아져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넓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넓고 바다도 넓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항상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주인이 없습니다. 쳐다보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별은 주인이 없습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바다도 주인이 없습니다. 품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모래도 주인이 없습니다. 걷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공짜입니다. 생각하는 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큰 생각을 하여야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고래는 바다를 알기에 바다 넓이를 알기에 바다를 마셔 들이고 새는 하늘 높음을 믿기에 마음껏 하늘을 날라 다니는 것입니다. 사람도 생각을 넓히면 옹졸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마음을 넓힐 수 있습니다.
2.최악을 생각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본문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최악을 거부하면 마음이 좁아지고 최악을 받아 드리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최악을 받아드릴 준비를 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그는 섬김을 받으려는 생각보다 늘 죽을 준비를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최악의 죽음이라고 받아드리고 사는 데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기로 작정하고 마음을 넓혀서 "죽으면 죽으리라"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 무서움이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죽으면 죽었지 기도를 귀지는 않겠다고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상 아벳느고 세 사람은 우상숭배 하지 않겠다고 작정하니 마음이 넓어져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가 아니겠느냐 생각을 크게 가지니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최악을 받아드릴 각오만 하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항상 상대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할까? 그 염려가 사람의 마음을 좁게 만들고 상대를 경계하게되어 섭섭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악을 생각하고 이를 악문 각오와 최악을 받아드리는 결단은 정말 피말리는 결단이지만 그러나 최악이라도 받아 드리겠다는 결단만 내리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3.부모자녀 같이 생각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본문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녀 같은 심정으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하였습니다(고전 4:15). 성도들 간에 아니면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도 부모와 자식 아니면 친척으로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질투하거나 경계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가까이에서 살던 멀리 가서 살던 어디서 살던지 잘만 살아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가까이 살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귀찮으니 너 멀리 가서 살라고 하는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들이 부모가 가까이 살면 자주 들여다보아야 하는 부담이 있으니 멀리 가서 사세요 합니까? 이는 속 좁은 생각이지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존심이나 권위를 내세워 옹졸해지는 법이 없듯이 바울 자신도 단순히 가르치는 자로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자로서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해를 하고 불평을 한 고린도 교인들을 나무라지 않고 그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의 권위로써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들에게 주는 호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넓은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옹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까지도 한 품에 품고 살기를 바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 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하였습니다(마 23:37).
"결론"
예수님의 생각을 가지면 마음이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넓히고 아니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데 모두를 부모 형제라는 생각을 가지면 마음을 얼마든지 넓힐 수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옹졸하고 마음가짐도 좁아서 서로가 이해 못하고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은 있어서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2.제목 "민의를 저버린 통치자" 성경 왕상 12:1-15
서론
다윗이나 솔로몬은 대체로 선정을 베풀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노골적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폭군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간신들의 말을 듣고 놀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폭군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통치자나 민의를 저버리면 반드시 폭군이 되고 폭군이 되면 결과는 언제나 비참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군림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되고 봉사하는 자세를 취해야 통치의 생명이 길게 되는 것입니다.
1. 백성들의 요구를 유보하였습니다.
본문 1-5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했기 때문에 또한 요구도 하는 것입니다. 그 요구는 정치적 화합과 백성들이 폭군의 확정에서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즉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르호보암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에도 즉시 응하지 못하고 유보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통치자의 능력의 한계성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로서 해결할 수있는 것을 유보한 것은 이미 백성을 다스릴만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군이 된 것입니다.
2. 충신들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본문 6-7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노인은 경험이 많고 지혜가 많기 때문에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높이 인정하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면 자신의 통치 생명이 짧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노인들을 무시함으로 결국 통치자로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노인을 멸시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3. 간신들의 청을 들었습니다.
본문 8-15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르호보암은 간신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청을 거절하여 결국 폭군이 되고만 것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결론"
폭군은 언제나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충신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간신들의 말을 잘 듣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통치의 생명이 끝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귀를 열어놓고 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참고하여 노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젊은이들의 힘을 이용하여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13.제목 "부자인 욥의 신앙생활" 성경 욥 1:1-5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 19:23-24)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신앙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본문 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였습니다. 이는 욥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것입니다. 부자라고 무조건 신앙 없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신앙적인 면에서 문제되는 점이 없지는 아니합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기도하기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20:7-9)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부자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마 19:25-26).
2. 악에서 떠났습니다.
본문 1 "악에서 떠난 자더라" 하였습니다. 부자는 교만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악한 일도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신앙이 좋은 사람은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딤전 6:17-19). 물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물질을 가지고 악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지 신앙이 좋은 성도들은 그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따라 물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돈이 선한 일에 써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칼이 나쁜 것이 아니고 사용하는 자가 의사냐 강도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물의 경우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욥은 부자였지만 악을 행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3.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4-5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이는 욥이 자녀들의 신앙에 대한 관심도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만 급급하지 아니하도록 즉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할까 항상 염려하며 기도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말세에는 쾌락을 사랑한다고 하였숨니다(딤후 3:4). 그럼 쾌락을 사랑하는 결과는 결국은 이는 살았으니 실상은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딤전 5:6). 그래서 욥은 자녀들의 신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돈이 많으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결론"
욥은 부자였지만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서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을 배반할까하여 전전긍긍하는 경건된 신앙을 소유한 겸손한 성도였습니다.
14.제목 "더욱 분명했으면" 성경 스 2:59-63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을 마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바사를 버리고 황폐한 예루살렘을 택하여 고국을 향하여 황폐한 성전을 재건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려고 백성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제사장들도 있고 각계 각 층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혈통이 분명치 않아서 제사장 직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직을 행치 못하고 지성물도 먹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소속이 분명하다고 믿는지요. 사명의식이 뚜렷한지요. 하나님의 성물을 먹을 자신이 있는지요.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한가?
본문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계통을 밝혀 적은 것)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하였습니다. 특히 주의 종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이 없고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육적 이스라엘을 말하지는 아니합니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8-29)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있어야 하겠고 구원의 확신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그것도 없으면 주의 종이라고 말하기 매우 힘이 드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 주의 일군이 확실한가?
본문 61-62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하였습니다. 이는 제사장의 진위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즉 보는 사람들이 확증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쏭달쏭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을 행하도록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은 다른 사람이 주의 종이라고 인정하여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먼저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명 의식이 뚜렷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명의식에 사로잡혀서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사명을 위해서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영광스럽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명의식이 결여되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봅니다. 그렇게 되면 일할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자라는 확신 위에서 타인의 인정도 받아야 주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생활비를 먹을 자신이 있는가?
본문 63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거룩한 물건)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제사장직을 박탈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직을 박탈당하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받는 사례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것을 먹는 것은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양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역자들도 한번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의 목회자들이나 교회들은 사례 때문에 심심치 않게 문제가 일어나는데 교회는 상업화가 되어서 적게 드리려고 하고 목회자는 되도록 많이 받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하면 삯군이라고 매도하는 일도 있는 실정인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못 받으면 하나님의 양식을 먹을 자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확증이 없이는 사례를 받기가 매우 민망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사명의식에 사로잡혀 죽도록 충성하는 일군이라는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사명의식에 사로잡혀 죽도록 충성하는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양식인 사례를 받을 때에 양심에 떳떳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고 사람에게 덕이 되고 자신과 후손에게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결론"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되 보다 더 분명하게 믿어야 하겠고 교역자는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하게 믿고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는 심정에서 하나님이 일군이 되어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양식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불신자나 같은 상태에서 사명감도 없이 교역자가 되어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며 자신에게는 더욱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15.제목 "여호와의 명을 좇아" 성경 민 9 : 15 - 23
서 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통하여 행진할 때에 광야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구름의 지시를 따라서 행동하여 하나님의 명을 좇은 것입니다.
1. 구름이 떠 오르면 앞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본문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 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즉 구름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구름의 지시가 곧 하나님의 지시나 같기 때문에 구름의 지시에 절대 복종한 것입니다.
2. 구름이 머무르는 곳에 진행을 멈추었습니다.
본문 19-22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행진을 멈추고)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 오르면 진행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구름의 지시를 받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들의 움직이는 시기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통하여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시가 있으면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는 뜻입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본문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달된 명령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급하게 서둘거나 게으르지 않게 적절한 명령에 입각하여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가는 곳에 그들도 가고 말씀이 머무는 곳에 들도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결 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었고 악조건 속에서도 서두르지 아니하고 참고 기다리며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아니하여도 순종하였습니다. 즉 여호와의 명을 좇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점을 본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6.제목 "야곱의 가족들이 벧엘로" 성경 창 35 : 1 - 7
서 론
하나님께서는 범죄산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권면하시며 책망하십니다. 그리하여 회개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셔서 가족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권면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권면하셨습니다.
본문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과거를 회상시키시는 것이며 현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인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아니하시고 회개하여 사는 것을 rlQJ하십니다(겔 18:23-30). 그리고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인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라으이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게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하였습니다. 그 뿐만은 아닙니다. 회개만 하면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 (행 2:38)기쁨을 선물로 주시며(행 3:19)물질과 건강을 주십니다(욥 42:6-10).
2. 야곱은 가족들을 설득하였습니다.
본문 2-3 "야곱이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늬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야 할 이유와 필요성에 대하영 자사하게 가족들에게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태도입니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도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가족들을 설득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높이 평가 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이 가족을 설득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롯은 아내와 자기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 하나도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온 가족을 설득하여 그의 말을 따르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면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 가족 전체가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본문 4-7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강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벧엘의 하나님)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하였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 회개할 땡 그들의 보물까지도 아낌 없이 버렸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갈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여 야곱의 가족들이 떠나는 길을 막을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는 회개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가려며는 과거의 모든 죄를 깨끗이 청산하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결 론"
야곱은 자기가 서원한 것도 지키지 아니하며 징계를 받았는데 그로 인하여 깨닫고 회개하여 온 가족으로 더불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도와주시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17.제목 "항복하는 자는 살리라" 성경 렘 21:1-10
서론
유대인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인들을 붙여서 번쟁으로 인하여 그들이 죽고 남은 자는 포로로 잡혀 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여 하나님께 항복을 하든지 아니면 죽기 전에 바벨론에게 항복을 해서 하나님께 내리시는 진노 앞에 무릎을 꿇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1. 회개 없는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본문 1-2 "시드기야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하였습니다. 시드기야왕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자신은 회개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아니하면서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라를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시드기야왕의 신앙 없는 행위입니다. 자신은 회개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아니하면서 예레미야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이적을 끌어내리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죄 값은 사망 뿐입니다.
본문 3-7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 중에 모아 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후 내가 ‥‥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회개)하지 아니할 때는 아무리 도움을 청해도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3. 환난을 통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8-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이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죄를 지은 유대인들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징계로 이방인들에게는 침략을 당하는데 그 침략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 값으로 이룩된 것을 알고 회개하는 뜻에서 그들에게 항복하면 살 길이 있는데 전쟁에서 위태한 중에 근근히 얻어지는 것처럼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어야 아무 쓸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분노하신 얼굴은 유대인들을 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치를 무릅쓰고 항복하고 하나님께 회개해야만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결론"
유대인들의 살 길은 오직 회개하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고(사 1:15, 렘 5:25) 죄 값은 사망 뿐입니다. 그러므로 죄 값으로 침략을 당했을 때에 적에게 항복해야 근근히 생명은 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살 길은 하나님 앞에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항복하는 길 외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18.제목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 성경 갈 4:12-15
서론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유대주의 의식적 율법을 버리고 이방인들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만 구원문제는 율법에 붙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율법주의자들이 되지 말라고 강조는 하였지만 그들을 해롭게는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사도는 육체의 약함으로 인하여 성도들에게 약점이 있었지만 그들도 바울을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주의 종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하였습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바울사도를 주의 종으로 인정하고 박대하거나 업신여기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버리는 일을 너무나도 쉽게 합니다. 사람이 만남의 정도 있지만 헤어지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아름다움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2. 예수처럼 영접하였습니다.
본문 14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주의 종을 업신여기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버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천사처럼 대접하고 예수처럼 영접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필자가 아는 한 교회는 전도사님께서 결핵으로 인하여 입원을 하였는데 소생할 가능성이 보이지 아니하니까 스스로 목회를 못하겠다고 교회에다 통보하고 다른 교역자를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성도들은 그럴 수 없다고 어려운 형편에 교역자 모시는 것보다 전도사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설교는 성경만 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다른 교역자를 모셨습니다.
3. 눈이라도 빼어주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눈이 약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위하여서는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어서 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 못한 이유는 의학적인 기술이 없어서 못할 정도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 마음이 없어서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의 종을 위하여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결론"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잘못하는 일은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을 받은 것도 주의 종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고 천사같이 예수같이 대접하고 할 수가 없어서 못하였지 할 수만 있었으면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성도들은 주의 종들과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19.제목 "한 가지로" 성경 눅 10:38-42
서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 집에 가셨는데 하나는 주의 발아래서 말씀을 경청하고 마르다는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면서 마리아 때문에 불평을 합니다.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께 마리아를 명하여 자기를 도와 주라고 말씀하시라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여러 가지 하느라고 불평하지 말고 한 가지라도 좋으니 즐거움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복잡하게 생각하고 여러 가지 일을 계속해서 하다보니 즐거움이 없습니다.
1.주님의 말씀 한 가지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렘 15:16-17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고 에스겔은 꿀처럼 달게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잡하게 예수를 믿어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지말고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지켜서 원하는 소원들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2.회개 한 가지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하였습니다(눅 15:7). 이 말은 백 마리 양이 모두 귀하지만 잃어버렸다가 찾은 양은 더 각별한 관심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즉 탕자 비유에서 큰아들은 계속 아버지의 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수많은 고생을 겪었으므로 동정과 긍휼이 그에게 더 쏠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서에 있어서는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고(욥 42:6,10)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행 2:37-38) 모든 것이 회개하나로 좋은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사 1:15. 렘 5:25. 행 8:22).
3.순종하나만으로 즐거워 해야합니다.
삼상 15:23-24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하였습니다. 순종하나면 만복을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든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만 장군의 문둥병을 요단강에 찾아가서 물로 7번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깨끗하게 나았으며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해서 던졌더니 많은 고기를 잡는 것 같은 것입니다.
"결론"
비타민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종합 비타인이 있는데 그 종합 비타민 하나만 먹으면 여러 가지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료도 인산, 가리, 질소가 있지만 종합비료는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도 복잡하게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간단 명료하게 믿음으로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20. 제목 "여호와의 명을 좇아" 성경 민 9:15-23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통하여 행진할 때에 광야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구름의 지시를 따라서 행동하여 하나님의 명을 좇은 것입니다.
1.구름이 떠오르면 앞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본문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즉 구름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구름의 지시가 곧 하나님의 지시나 같기 때문에 구름의 지시에 절대 복종한 것입니다.
2.구름이 머무르는 곳에 진행을 멈추었습니다.
본문 19-22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행진을 멈추고)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 오르면 진행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구름의 지시를 받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들의 움직이는 시기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통하여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시가 있으면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는 뜻입니다.
3.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본문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하였습니다. 이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달된 명령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급하게 서둘거나 게으르지 않게 적절한 명령에 입각하여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가는 곳에 그들도 가고 말씀이 머무는 곳에 들도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었고 악조건 속에서도 서두르지 아니하고 참고 기다리며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아니하여도 순종하였습니다. 즉 여호와의 명을 좇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점을 본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21.제목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성경 수 24:14-18
서론
늙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부탁하기를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면서 자기와 자기 집 식구들은 하나님 한 분만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애굽에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만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2.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7-18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주신 것은 어느 신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단코 다른 신은 섬길 수 없으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섬긴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바로에게서 보호하시고 홍해에서 보호하시고 광야의 험악한 악조건 하에서도 보호하시며 가나안 전쟁에서도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신을 섬기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천국가는 날 때까지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8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하였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분은 오직 유일신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살고 죽는 것을 좌우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 한 분만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한 분만 섬긴다는 것이며 모든 백성들도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오직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일찍 깨달은 여호수아는 하나님 한 분만 자기의 구주로 삼고 그분 한분만 섬기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서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 한분만 섬기기로 작정하고 결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들 전체도 하나님만 섬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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