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십일조의 영적 의미 (말3:7-12)

공 상희 2010. 9. 11. 18:08

십일조의 영적 의미 (말3:7-12)

(요약)

십일조는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예표가 된다. 십일조가 그러하듯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간다. 십일조가 그러듯 예수 믿지 않음이 곧 저주이다. 십일조가 그러하듯 예수 믿는 것이 하늘 문을 여는 것이다. 십일조가 그러하듯 예수 잘 믿는 것이 죄악의 황충을 금하는 것이다. 십일조가 그러하듯 예수 잘 믿을 때 성령으로 변화되어 사람들에게도 칭송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십일조로 섬기듯 예수님과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설교)
이 시간에 십일조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번에는 십일조의 신약적인 의미를 연보의 관점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라는 명칭이 성경적이냐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는 십일조 명칭 개정보다 그 의미에 관심을 가지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십일조가 갖는 영적인 의미를 말씀드립니다. 십일조에 무슨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십일조가 처음 익은 것이나 짐승의 첫 것이었다는 점에서 귀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십일조는 결코 끝물을 내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죠. 출23:19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했습니다. 모든 첫 것은 예수님이에요. 나아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그 증거로 고전15:20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또 성령강림하신 오순절이 구약의 맥추절인데 출23:16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이 첫 것 되신 예수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십일조에 약속된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예수님으로 섬기라고 교훈합니다. 롬5:1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했습니다. 히13:15에도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행3:16에도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 피를 성령으로 드리셨습니다(히9:14). 딤후1:14에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했고, 빌3:3에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유1:20에도 “성령으로 기도하며” 갈5:25에도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에 첫 열매요 첫 소산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퓐?영적으로 온전한 십일조는 곧 예수 믿음이요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만 받아 보세요.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안 되는 일이 있는가? 생각만 해도 이루어 주시고 숨결에도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물질 평균이라는 십일조의 정신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과 비교하여 과연 십일조의 의미가 예수님을 가리키는지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십일조가 그렇듯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하셨습니다.

십일조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주님의 집에 온전한 양식이란 무엇입니까? 요6:3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잘 믿어 영적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십일조가 그러하듯 예수님을 믿지 않음이 곧 저주입니다.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떠나는 것이 저주입니다. 예수님께로 오면 저주가 없습니다.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고, 마8:17에도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저주 없어요. 저주 받을 이유가 없어요. 나에게는 저주가 없다! 모두 예수 복음에 서서 저주를 물리치시고 저주에서 해방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일조 안 함이 도적질이라 하셨는데 예수을 나의 주로 믿지 않음이 도적이에요. 왜 그럴까요? 내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신데 내가 주인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바꾸었으니 도적도 큰 도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것은 마치 부동산 등기를 다른 사람에게 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 십일조가 그렇듯 예수 믿는 것이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하셨습니다. 이렇게 신구약을 대조하니 천국 열쇠란 베드로만이 갖는 특권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고백과 믿음이 바로 천국열쇠라는 결론이 나오잖아요.

나다나엘도 예수님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고백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1:51) 하셨습니다. 하늘 문이 공연히 열립니까? 복을 주시는 통로입니다. 예수 믿으면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하나님의 복을 운반하느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여러분 십일조로 시험해 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을 말합니다. 우주가 변해도 변치 않을 틀림없는 진리는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3:15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잘 믿으면 우리 영혼에 쌓을 곳이 없게 성령 충만의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절대 진리입니다. 이건 시험해 봐도 좋아요. 아니 이것을 어떻게 시험해요? 그러나 여러분이 이미 벌써 많이 시험해 보았잖아요. 하나님 잘 경외할 때는 은혜 충만하지만 멀어지면 영적 빈곤이 오는 것 한두 번 체험입니까? 행2:38-39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것은 공식입니다. 이처럼 십일조의 의미는 지상의 복과 하늘의 복이 약속된 귀한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4. 십일조와 같이 예수 잘 믿는 것이 보호를 받는 길입니다.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그랬습니다.
여기 황충이란 나무나 곡식이나 풀을 하나도 없이 다 뜯어 먹는 무서운 메뚜기 재앙입니다. 십일조 하면 이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황충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죄에요. 이 죄가 우리의 심령을 얼마나 뜯어 먹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좀 파릇파릇 살아나려고 하면 침범해서 뜯어먹어 버리고 또 뜯어먹어 버리고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왜 황충에게 먹힙니까? 십일조를 안 해서 즉 예수를 잘 못 믿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예수님의 주되심과 그가 우리의 죄과와 죄악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시고 부활 승천하게 해 주심을 믿는 믿음에 서야 하는데 그 도리를 모르고 입술로만 예수 이름을 부르니 홍수가 나고 창수가 나고 좀 잘못해서 죄의식이 올 때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왜 심령이 죽습니까?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했는데 왜 죽습니까? 예수 잘못 믿으니 죽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 안에서 좀 뻔뻔함도 필요해요. 예수 복음 안에 황충에게 먹히지 않을 진리가 있어요. 예수 떠나서는 피할 방법이 아주 없습니다.

5. 십일조가 그렇듯 예수 잘 믿을 때 성령의 은혜로 심령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땅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주관적으로는 우리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도 하나님 나라는 물론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처럼 예수 잘 믿으면 이 마음 땅이 이름다워져 옥토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 사막이 낙원으로 변합니다.

이사야 35장을 보면 그 예언이 나타나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했습니다.

성경 기록의 신기한 것이 처음에는 사막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복으로 바꾸어지죠?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막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축복을 시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도 존중하되 문자적으로만 풀면 안 됩니다.

잠3:9-10절에도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건 물질의 창고도 채우신다는 말씀이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마음의 창고에 은혜를 가득히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새 포도즙은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고 성령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의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십일조의 영적 의미도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청지기 생활 잘하여 영육 간의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