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제목 : 보고 지혜를 얻으라

공 상희 2010. 9. 11. 17:35

제목 : 보고 지혜를 얻으라
본문 : 잠6:6-11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보고 지혜를 얻으라”라는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 배우라”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배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에게든지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배울 것이 있다면 어른 아이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배울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레이더나 잠수함이나 비행기나 과학의 무수한 발명품들이 어디서 생겨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찮게 생각한 크고 작은 여러 생물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을 보고 응용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이런 것들을 통해서 과학만이 아니라 신앙까지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성경은 개미에게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잠6:6-8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부지런한 근면을 배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단지 부지런해서 잘 살자는 말씀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만 해석하면 성경은 윤리나 도덕책에 불과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부지런히 신앙생활 잘해서 영적으로 궁핍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잠6:9-11을 더 보면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육으로만 풀면 적용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일해야만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만 있으면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틀림없는 진리가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 어떤 사람도 영적생활이 게으르면 심령이 빈곤해지고 궁핍이 군사와 같이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날씨 좋은 대낮에 개미가 노는 것 못 보았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는데도 열심히 양식을 모읍니다. 이처럼 우리가 더 늙기 전에 그리고 은혜 주실 때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을 때 바로 지금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개미처럼 누가 하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뱀에서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0:16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뱀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빛의 아들들도 어둠의 아들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라고 했어요. 무엇을 배웁니까? 지혜를 배웁니다. 뱀 얼마나 조심스럽습니까? 뱀은 지나가도 조용히 지나갑니다. 뱀도 소리가 있지만 그 소리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뱀은 체온조절이 가능해서 주변과 온도를 맞추기 때문에 그 짐승을 감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주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이 오지 않도록 지혜롭게 잘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적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시험이 올 때 그 시험을 피해 갈 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도 왕의 진미를 거절할 때 얼마나 지혜롭게 했습니까? 시험 될 만한 것은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 했습니다. 가까이 하면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4:14에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해야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물들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텔레비전 치워버린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깊이 빠지면 시험 들고 죄짓고 영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뱀처럼 지혜로우시기 바랍니다.

3. 비둘기에게서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셨는데 “같이”라는 말씀에도 배우라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비둘기는 상당히 정절이 강한 동물입니다. 자기 짝하고만 삽니다. 혹시 다른 비둘기가 넘보면 피를 흘리기까지 싸운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부정으로 말미암아 박해자들에게 책잡혀서는 안 되니 주의하라는 교훈입니다.

오늘날은 그 당시와 같이 박해하는 세력은 없습니다만 그러나 이 정신은 꼭 그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롭지 않거나 순결하지 못하면 장애가 생겨지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대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적환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순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사람도 안 됩니다. 부정이 나타나면 대통령도 하야하지 않습니까? 부정이 나타나면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무수한 별들이 사단의 꼬리에 감겨 땅에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다짐해야 합니다. 일생 돈에 결백하자. 돈 욕심 부리면 안 됩니다. 또 이성에 깨끗하자. 명예와 권력에 연연하지 말자. 세상의 허영과 죄악에 물들지 말자. 이렇게 순결해야 우리 주님께서 그 심령에 신랑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싸우되 비둘기처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주님이 사랑의 채찍을 드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12:4-6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심령에 오물이 묻었으니 가만 두시겠습니까? 비둘기 같이 정결하시기 바랍니다.

4. 사슴에게서도 배워야 합니다.

시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했습니다.
우리가 사슴에게서 배울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사슴은 깨끗한 물이 있는 근처에서 살아갑니다. 사슴에 뿔이 있는데 그 뿔은 물을 찾는 안테나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 건기가 와서 짐승들이 갈증이 나면 웅덩이에 악어가 있는데도 목숨을 걸고 물을 마십니다. 얼마나 갈급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고라 자손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84:1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지만 멀리 사는 백성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갈급해 합니다.

그 외에도 소에게서 충성을 배웁니다. 혹은 양에게서 온유함과 순종을 배웁니다. 사자에게서 강함을 배웁니다. 독수리에게서 환경을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는 천지만물을 보고 거기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 개미에게 부지런함을 배우십시다. 뱀에게서 지혜를 배웁시다. 비둘기에게서 순결을 배웁시다. 사슴에게서 사모함을 배우십시다. 그리고 소에게서 양에게서 사자에게서 천지만물에서 지혜를 얻으십시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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