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가 왜 필요한가? (고전 12:1-2)
이 시간에는 “은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은사는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은 너무나도 초보적인 질문 같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이 초보적인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은사의 필요성 인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6)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자에게 은사를 주실 리 없고 주신다 해도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은사의 필요성을 깊이 느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은사의 필요성 인식은 은사 받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부족하다고 하니까 온갖 은사로 입혀 주셨습니다. 세계적으로 부흥하는 교단과 교회는 한결같이 은사가 활발함이 그 특징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은사를 제한하는 교단들이 많은 지역은 복음화율이 매우 낮습니다. 성령의 사역에 관심 없는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그 신앙 가지고 어떻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제자들도 따르는 표적으로 복음을 확실히 전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 은사의 필요성은?
1.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살전2:7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 했습니다. 아이가 장성하기까지 어머니가 필요하듯 여러 은사 역시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참 아름다운 믿음의 교회인데 그냥 그렇게 된 것 아닙니다. 은사 받은 사역자들이 온갖 핍박을 받아가며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2.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육으로 난 것은 육일뿐입니다. 그것 아무리 배우고 갈고 닦아도 육은 육일뿐입니다. 이 육은 갈고 닦으면 좀 나아진 것 같다가 노쇠하면 쇠퇴하고 결국은 없어지고 맙니다. 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거듭난 성도도 연약과 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영혼은 새롭지만 육체가 병들면 때로는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바보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육체에 갇혀 있는 우리 영혼 얼마나 답답합니까?
어느 성도가 버스에 부딪혀 사고사 당해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니 그렇게 자유롭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고 편안하더랍니다. 그런데 다시 육체 가운데 들어와 살아나자 왜 그렇게 답답하고 무지한지 육체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사는 동안에 여러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도움도 이웃의 도움도 교회의 도움도 의사의 도움도 교사의 도움도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몸을 벗을 때까지는 결코 돕는 은사를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3. 완악한 속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뭔가 납득되고 가능하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완악한 인간은 도마와 같이 봐야 믿겠다고 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사랑 많으신 주님은 그런 도마에게 나타 나서서 보여주시고 만지게 하시고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셨습니다. 그 때 도마는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고백했고 그는 그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사명 감당하다 순교까지 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는 말은 은사를 부정한 말이 아닙니다. 봐야 믿겠다는 불신앙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체험이 필요 없는 완전한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체험이 필요 없다면 사도들과 무수한 성도들이 왜 체험했겠습니까? 잘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멀리하고 영광 돌리지 못하는 것보다 은사를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편이 백배 천배도 더 낫습니다.
4. 혼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12:25에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다 했습니다. 세상 직업이 다양하듯이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못하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 지체의 은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5. 시험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읽은 2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바울이 우상에게 끌려간 이야기를 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이야기하는 동기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아야지 악신의 지도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사람들이 길흉화복을 알기 위해서 점치는 자들에게 갑니다. 왜 찾아갑니까? 초월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귀신의 소리 들어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아직도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찾아가서 좋을 것 없습니다. 그들은 교인인 줄 눈치채고 예수 믿지 못하도록 공갈을 해댑니다. 책망 받아 마땅합니다. 구약에도 사람들이 우상에게 물으려할 때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왕하1:16)고 책망했습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가 길흉화복을 묻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뭔가 하나님의 진리의 음성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와 가르침과 예언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계시고 각인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정말 알고 보면 성경이면 됩니다. 그러나 그 진리 안에 서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차만 타면 가는데 왜 역사가 있고 역장이 있고 안내원이 있습니까? 이처럼 믿음을 돕기 위해 교회와 사역자와 은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우상에 빠지는 것 교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성령의 은사가 인정되고 활발하다면 거기 찾아갈 사람도 적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셨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시는 권능과 권세로 전도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은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모세처럼 자기 부족을 깨닫고 은사의 도움을 갈망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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