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요셉의 애굽 피난

공 상희 2010. 9. 10. 17:17
요셉의 애굽 피난
본문:마2:13-15
초점:고난과 축복

요약
사단의 박해는 두 방향에서 나타난다. 먼저는 오실 예수님의 길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예수님 조상의 계보는 고난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셨고 이기게 하셨다. 다음은 오신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롯의 살인극과 유대인들의 암살 모의 및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 주님은 대속사역의 완성을 이루셨고 사단은 패배자가 되었다. 이 시간에도 사단의 시험은 존재하지만 더욱 온전한 믿음으로 훈련시켜 준다는 점을 잊지 말자.


강해
지난 시간에는 라헬과 레아를 통해서 신구약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수준 차이를 말씀 드렸습니
다. 오늘은 요셉의 애굽 피난을 통해서 예수 이름을 가진 성도들의 고난과 축복에 대해서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애굽 피난과 관련된 사건이 많이 나옴을 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흉년으로
애굽으로 피난 갔고, 야곱의 가족 모두가 흉년 들어 애굽에 피난 갔으며,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예레미야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외경이나
중간기 교회사를 보면 시리아 왕의 압제에 못 이겨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피난 갔습니다.

참고로 신약의 요셉이 주의 사자의 말을 듣고 애굽으로 피난 간 것은 피난하기 좋은 지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애굽에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거주해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숨으면 찾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왜 요셉은 아기 예수님과 자기 아내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을 갔을까요? 그것은 당연히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물을 필요도 없는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에 귀한 진리
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사단은 계속하여 예수 이름을 가진 자들을 방해하고 핍박
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단이 예수님만 이기면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단은 언제든지 누구든지 예수 이름만 있으면 그를 핍박하고자 한다는 사실입니
다. 물론 이 핍박은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리어 이 핍박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와 큰 일을 이루게 합니다.

그럼 사단의 박해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1. 오실 예수님의 길을 박해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야 예수님께서 오시지 못해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야 사단이 아담에게서 얻은 그 승리를 지속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이 오
시는 길에 온갖 고난과 방해와 박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보다 못한 사단이 과연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막을 수 있을까요? 성공은 할 수 없
지만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약속
하셨고 또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
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 다른 길을 내시지 않으시기에 메시야의 줄기만 끊어
놓으면 사단은 승리하게 됩니다. 이론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내서라도
후손이 끊기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메시야 자손이나 모형과 관련하여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
건들은 사단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박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도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아시는 대로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다시 온 세상을
다 타락시켜 이 세상에서 믿음의 대를 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 노아의 가정을
보호하시고 방주를 짓게 하여 구원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그 줄기에서 아브라함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을 삼으셨는데 사단이 아브라함에게도
얼마나 역사합니까? 자기 줄기가 이어짐에 대해서 온갖 의심하게 만들고 사라의 몸종 하갈로 이
스마엘을 낳게 만드는가 하면 사라도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뺏길 뻔한 위기를 맞습니다.

그런가 하면 손자 대에 와서 장자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게 만들고, 야곱도 상속자가 되
지 못하게 하려고 집안에서 쫓아내고 일생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게 합니다. 야곱의 장자 루우벤
이 간음죄를 짓는 사건도 그렇고, 유다의 장자 엘의 죽음도 그렇고, 차자 오난의 악한 마음도 그
렇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의 계대가 끊어지도록 하는 사단의 집요
한 핍박인 것입니다.

그런데 살몬 때에 와서도 살몬의 가정에 어떤 이변이 발생합니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여리고
의 기생 여인 라합을 아내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입니다. 물론 라합은 구원 받은 하나님
의 백성이 되었기에 문제는 없지만 이런 면에서 그 가문의 어떤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 때에도 이방 여인 룻을 아내로 삼아야 하는 무슨 사건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족보가 끊기려고 하는 위기일발의 상황입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장에도 14대씩 끊어서 말씀하는데 끊긴 부분들을 보면 대단한 위기가 있었음을 봅니다. 다윗
의 시대에 얼마나 위기가 많았습니까? 하루도 빠짐 없이 다윗의 생명을 찾는 사울왕의 군대 앞
에 그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바벨론 포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수한 사람이 바벨론에 죽고 포로로 끌려가고 그리고 거기
서 이름까지 바뀌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못하도록 사단은 집요한
공격을 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예수 이름을 가진 가문에는 고난이 많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형과 예표에 대해서도 한결같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가령 아담
은 오실 자의 표상인데 사단이 가만 두려고 하겠습니까? 또 성전도 오실 예수의 예표인데 어찌
성전이 파괴되지 않고 지금가지 있겠습니까?

2. 사단은 오신 예수님을 핍박하여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을 통해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그래서 본문에 보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그래서 베들레렘이 아이들의 피로 얼룩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에 예수 이름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단은 예수 이름은 물론 예수 이름
의 흔적만 있어도 핍박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수십 년간 예수 영화에 나오는 예수 역을
맡았던 사람들이 모두 고난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예수 이름의 흔적조차
도 없애기 위한 사단의 역사입니다.

애굽에서 돌아오신 아기 예수님에게 고난은 없었습니까? 공생애 시에 얼마나 유대인들이 예수
님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지만 그것은 사단 자기
가 죽을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사단의
권세를 법적으로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초대교회에 있었던 박해나 반대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있었던 종교적 타락이
나 그 동안 역사 속에서 있었던 온갖 기독교 핍박도 모두 사단이 예수 이름에 대항하는 핍박이었
습니다. 그리고 각종 이단이나 자유주의나 재림 예수에 대한 신앙의 미지근 역시 같은 맥락의 사
단의 시험들입니다.

더 나아가 각인의 심령에도 오늘도 쉬지 않고 사단은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 적당히 살려고 하면 핍박도 시험도 없지만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있는 것은 사단이 방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에 대한 사단의 공격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알아야 할 것은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단의 승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
에 대한 사단의 공격을 허용하신 이유는 도리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강해지고 더
복을 받고 더 번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대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박해하자 얼마나 이스라엘이 번성하고 강해졌습니까? 즉 사
단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으나 그것으로 구원의 대 사역을 이루심과 같이 아무리 성도를 박해해도
성도들은 그것을 통해서 더욱 온전케 되는 영 육간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
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했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겉으로는 무차별적인 고난 같으나 참새 한 마리라도 머리털 한 개라도 아버지의 뜻밖에서 되어진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히 쓰일수록 사단의 시험은 크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도리어 감
사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은 예수 이름에 지금도 변함없이 핍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성도들에게 축복만 안
겨다 주고 맙니다. 그러므로 평안할 때 더욱 주님을 사랑하시고 고난이 닥칠 때도 낙심하지 마시
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크신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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