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외로우신 예수님 (마2:6)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날이 있습니다. 그날을 기억을 하든지 못하든지 태어난 날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태어나신 크리스마스 날입니다. 예수님의 생신날이지요.
이 크리스마스라는 말의 의미는 christ + mass(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날인데 영아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산타할아버지께서 오시는 날로 인식이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또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와 비슷하지요.
그리스도는 어디에 간곳 없고 그리스도를 모셔야 할 빈방에 혹시 산타클로스나 선물 혹은 카드의 유혹만 우리가운데 남아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런것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라는 본질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갑자기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원과 바램속에서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심에 대한 예언 또한 있었지요.
구약에서도 여러부분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가서 5:2에 보면 오늘의 본문 말씀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그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사야 7:14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지요. 그 하나님이 예수님이 되셔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신약에도 마태복음 1장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결혼하기전에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됨을 천사들이 나타나서 말을 해 줍니다.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라 하니라.]
위의 신 구약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냥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태초전부터 계셨으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수 많은 예언들 가운데서 태어나셨던 분이십니다.
미가서를 인용한 본문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는 삯군이 아니시지요. 참으로 양을 푸른초장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구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큰 도시에서 태어나신것이 아닙니다.
거창하게 화려하게 태어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태어날 곳이 없으셔서 말이 사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지요.
하나님은 거창한 그 무엇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용없이 외형적으로 보이는 그 무엇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예수님을 멋있는 집에 태어나게 하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 예수님을 그렇게 비천하게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니지요. 세상의 가치관을 뒤엎어버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지요.
거대하다고 하는 그리고 크다고 하는 아니면 화려하다고 하는 그런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 그런 가치관을 깨어 버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지요.
작년에 어버버버하면서 처음으로 했던 설교 제목이 기억에 납니다. 빈방있습니까? 정말로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빈방이 있습니까?
따뜻한 보일러가 들어오는 온돌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히터가 들어오는 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창문으로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음날 아침 미역국을 끓일 수 있는 부엌하나 없어도 좋지요. 다만 누울 수 있는 방 하나만 있으면 예수님은 행복하실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누울 수 있고 예수님 또한 누울 수 있는 방하나만 있으면 그렇게도 서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어쩌면 2000년전 보다 더욱 비참할지도 모르지요.
그 보잘것 없는 말구유 마저도 우리에게는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모실 준비가 되어있는자 예수님을 마음으로 맞이할 마음의 빈방을 가진자 그는 결코 작아도 작은자가 아닐 것입니다.
그는 결코 가진것 없어도 초라한 삶을 사는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가장 넉넉하게 살아가고 그는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땅의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자 그의 오심을 온몸으로 축하하는 자 그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놀수 있는 건수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나요?
이땅이 조금은 살기에 심심하니까 새로운 무엇인가를 주기위해서 이땅에 오셨나요?
루돌프 사슴코의 코를 빨갛게 하기 위해서 오셨나요? 아니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기위해 오셨나요? 천만에.
이 성탄의 사건은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의 기쁨의 시간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고통의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기쁨의 사건이지요.
그러나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고통이 사실 시작이 되었지요.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것은 이땅에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지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의 시간이었지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지극히 낮은곳에 오시는 고통이 여기에 있지요.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 지극히 비천한 인간 세상으로 오신것은 하나의 고통의 시작이지요.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땅에 그리스도가 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도 갈망했었지만 막상 예수님이 왔을때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갈망하나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나요? 나의 영원한 구주요 생명의 주인이라고 고백으로 그리스도를 갈망하나요?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이날 어쩌면 놀기만 논다면 즐겁기만 한다면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너무나도 외로우시지요.
온갖 요란한 소리와 즐거운 마음과 기쁜 표정과 들뜬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나를 저렇게나 기쁘게 맞이해 주는구나 하면서 오시다가
정작 그 본모습을 알았을때 예수님은 얼마나 실망이 크시겠습니까?
어쩌면 그런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날 추운 뒷골목에 웅크리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런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를 원치 않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기쁨의 표현이 흥청망청먹고 노는 것으로 표현되어 버리고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날이 예수님은 extra도 아닌 그 어느 배역하나 주지않고
우리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보내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자족하고는 스스로 최면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그런 우리는 참 신앙인인가요? all night하는 것이 단지 노는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요?
우리는 결코 이날 크리스마스날 예수님을 더욱 외롭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길모통이 가에 웅크리고 계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이상 외롭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날 외로우신 것은 예수님이 이날 오시지 않는것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빈방하나 없기 때문이지요.
크리스마스 설교 수없이 들었지요.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한 예수님은 크리스마스날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로 이땅에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하루를 보내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아는자 그는 하나님을 외롭게 하지 않는자 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자 그는 그 큰 무엇을 예수그리스도에게 바치지 않아도
성탄케익이든 그 어떤 선물을 하지 않아도 많은 헌금을 교회에 드리지 않아도 그런 사람을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많은 선물과 요란한 축포를 쏘면서 예수님을 외롭게 하는것 보다 그런 거창한것 없이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 마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수님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자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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