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 (고후 4:15)

공 상희 2009. 11. 19. 16:54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 (고후 4:15)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확실히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그릇이 클수록 은혜가 크게 임하고 또 감사하는 그릇이 많을수록 은혜도 많이 임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수없이 말씀하고 있는 교훈입니다.


감사가 왜 은혜 받는 그릇일까요?


1. 감사는 진정 하나님을 아는 자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안다면 항상 감사할 수 있고 그는 절대 긍정적인 믿음을 갖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 된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절망할 때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았기에 믿음에 서서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멀린 R.캐로더스가 쓴 ‘찬송생활의 권능’을 보면 감사와 찬송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불러오는지 간증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수백만부가 팔려나간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입니다. 감사는 놀라운 기적을 불러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는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그리고 나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상황이 좋든 궂든 나의 모든 환경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줄 믿고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하시든 감사드린다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드리세요. 그러면 감사와 찬송이 나오게 되고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무엇이든 찬성하며 감사하고 찬송한다고 절대 하나님의 팬이 되세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 숙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절대 감사 절대 긍정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보세요.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했습니다. 이 말은 적극적인 사고방식만 가지면 뭐든지 된다는 뉴에이지적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능력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렇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 아는 자가 되어 절대 감사와 절대 긍정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사람이 받는 은혜는 심히 큰 것입니다.


2. 감사는 진정 자기를 아는 자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또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자기를 알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를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으로 영생의 백성으로 택해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어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도 바로 믿을 수 없어요. 자기를 아는 자만이 예수밖에는 구원이 없음을 압니다. 진정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구원의 감격을 압니다.


이런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약4:6의 앞부분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랬어요. 겸손한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사에 나타날 만큼 크게 은혜 받은 사람 성 프랜시스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프랜시스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많은 보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보좌는 눈에 띄게 높은 보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건 누구 것입니까?"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을 보좌이지요." 그 말을 듣고 그는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환상을 깼습니다.


그 제자가 어느 날 조용한 시간에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말을 들은 제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건 바로 위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성자라고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강도, 살인자 등 온갖 악인들이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가장 악하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게 바로 위선이 아닙니까?" 환상 중에 본 보좌에 은근히 시기하는 마음도 들었기 때문에 따진 것입니다.


그러자 성 프랜시스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정말 나는 악한 놈이지.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으니까 오늘날 내가 된 것일 뿐이라네. 만약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더라면 그 사람은 나보다 몇 배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일세.”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제자는 그 때에야 스승을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어 큰 절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는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큰 은혜를 받게 합니다.


3. 감사는 진정 자기를 비운 자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교만과 욕심이 있는 한 절대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교만하기에 현재 누리는 축복도 당연하다 생각하고 욕심이 많기에 도리어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 욕심 때문에 잘 살아도 상대적 빈곤을 느낍니다. 욕심을 줄여야 행복합니다. 족한 줄 아는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족 없이는 경건한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딤전6:6-8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들도 모르는 순간에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 그 맛있던 음식이 지금은 왜 맛이 없습니까? 음식 맛이 나빠졌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옛날보다 더 잘사는데 왜 기쁨이 없습니까? 자기를 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욕심 버리면 행복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미국의 뉴욕재활병원과 한국의 실로암 안과병원의 벽에는 어느 환자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있다고 합니다.“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고,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으며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 못한 기도까지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글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진정 자기를 비울 때 나옵니다. 자기를 비워야 하나님께서 그 빈자리에 행복을 가득히 채워 주십니다. 우리 영성의 시작은 비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감사는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의 심장은 하루에 10만3689번을 뛰고, 몸속의 혈액은 하루에 1억6800만 마일을 달리며, 하루에 숨을 2만3040번을 쉬고 두뇌 세포를 하루에 700만개를 사용하며 산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했다고 심장이 그렇게 많이 잘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줄까요?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를 비울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깨달을 때 진정 감사할 수 있습니다.


4. 감사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했습니다. 감사가 그런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시69:30-31에 감사와 찬송은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열 살 난 아이가 얼마나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보았더니 6천 단어이더랍니다. 그러나 그 6천 단어 중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한 단어였습니다. 그 단어는 “감사합니다.”라고 단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2만 5천 단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마디, 감사하다는 말뿐입니다.


하나님만 가장 기쁘시게 해드려 보세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장 기쁘시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세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감동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려 보세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100배로 깜짝 놀라게 해주실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감사로서 하나님을 대접해 보세요. 욜2:26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실수는 감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할 일이 그렇게도 많건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 보고 불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려울수록 더 감사해야 하는데 보이는 환경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귀한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쳐주신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만 감사하려고 왔을 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감사하는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하셨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감사자만이 그 구원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축사하실 때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이처럼 항상 감사의 본을 주셨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불러옵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 중에 큰 그릇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많은 감사로 은혜가 넘치고 넘친다 했습니다. 더 많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진정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가져 진정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