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의 교훈 (창6:14)
오늘은 방주의 주 재료였던 잣나무에 대한 공부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귀히 쓰였던 잣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이라는 내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잣나무는 침엽수과에 속하는 상록수로서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서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썼던 잣나무는 상당히 특이한 나무입니다. 방주에 사용된 잣나무인 ‘아체고페르’라는 단어는 본문에만 한 번만 나오고 있어 일반 잣나무인 ‘베로쉬’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잣나무인 것만은 틀림이 없기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문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잣나무는 모두 귀한 데 사용되었습니다. 본문 창6:14을 보면 방주 만드는데 쓰였습니다. 잣나무가 없었다면 어찌 됐겠습니까? 강하고 질기고 부러지지 않고 결이 좋고 장대한 그런 나무가 아니라면 방주의 재료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시 우리 조선의 배가 일본 군선보다 더 강했던 것은 보다 더 좋은 나무를 썼고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일본 군함과 우리나라 컨테이너선과 충돌했는데 일군 군함이 우리나라 화물선의 측면을 받았는데도 우리나라 배보다 일본 군함이 더 많이 부서진 것을 보면 제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배가 더 잘 만들어진 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주의 주 재료로 그만한 나무가 없었습니다.
왕상6:15에 보면 잣나무로 성전의 마루를 놓았습니다. 다음 왕상6:34에 보면 성전의 문짝을 만들었습니다. 또 대하3:5 보면 왕궁 대전의 천장을 잣나무로 만들었고, 삼하6:5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 만드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잣나무는 백향목과 함께 귀하게 쓰였습니다. 그래서 잣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좁은 의미로는 우리 성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잣나무와 같이 귀히 쓰임을 받으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으려면?
1. 생각이 푸르러야 합니다.
잣나무는 사시사철 푸릅니다. 호14:8에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이처럼 잣나무는 사철 푸르른 상록수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항상 푸른 믿음을 쓰십니다. 낙엽처럼 어렵다고 실망하고 떨어지면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라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용기가 나고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대단한 장점을 가진 사람이고 크게 쓰임 받을 사람입니다.
갈렙과 같이 항상 푸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수14:10 이하를 보면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 얼마나 젊고 푸른 믿음입니까?
2.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잣나무는 나무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서 내구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래서 예부터 성문을 만들 때는 이 잣나무를 사용했습니다. 성문이 파괴되면 성이 정복당하기 때문에 튼튼한 재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나무가 어떤 때는 쇠보다 더 오래 가고 튼튼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에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위해서 백향목을 사용하였지만 단단할 곳들은 잣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베드로 성당의 문도 잣나무를 사용했는데 1,000년이 지난 지금도 끄떡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잣나무로 만들라 하신 이유는 어떤 파도에도 흔들림이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나무 가운데서도 특히 잣나무로 만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랑 되신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어떤 환난과 고난과 핍박이 오드래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미혹이 한층 더 강합니다. 나는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지켜 주심을 부탁하지 않는 한 안전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세에 유럽의 통합이 무슨 의미를 줄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유럽은 정치적으로도 통합을 이루고 지금 유럽연합국 대통령 뽑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유럽연합 EU초대대통령으로 영국 총리를 10년간 역임한 토니 블레어가 유력한데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찾아 독립하고 유럽연합이 경제 및 정치적 통합까지 이루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 주님은 오실 날이 더 가까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해 보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했습니다. 나무가 해가 거듭할수록 내구성이 강해짐 같이 우리 믿음도 더 강해야 합니다. 더 씩씩하게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와도 획하고 넘어지고 조금만 시험이 와도 픽 하고 쓰러지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3.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대개 향은 희생을 상징합니다. 잣나무는 은은한 향이 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사람들은 잣나무 관을 최고급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잣나무가 단단할 뿐 아니라 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재적인 미라의 나라 애굽에서 관을 만드는데 잣나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고후2:15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악취를 풍겨서는 안 됩니다. 열 사람이 향기를 내도 한 사람이 악취를 풍기면 그것 때문에 기독교가 핍박을 받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더 잘하고 있습니다. 예영커뮤니케이션에서 “좋은 종교 좋은 사회”라는 책을 펴냈는데 한국의 3대 종교를 객관적인 통계로서 비교해 놓았는데 불교나 천주교는 기독교 곁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기독교의 사회기여도가 몇 배 이상 높았습니다. (http://cafe.daum.net/agaser/9xV0/6289) 이 좋은 한국교회를 반기독교 세력들이 음해하고 있었는지 우리 책임도 있지만 끝까지 향기를 발한다면 결국 향기는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영적 향기는 희생이요 봉사요 헌신입니다. 향기는 소리는 없어도 온 동네를 진동합니다. 희생정신 없이 몸과 명예와 물질을 아끼는 사람은 주님이 귀히 쓰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아끼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라면 사람을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믿음이 커야 합니다.
잣나무의 크기는 높이 30m까지 자라는 큰 나무입니다. 작은 나무가 아닙니다. 큰 나무니까 큰일에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 자작개비는 큰일에 쓰일 수 없습니다.
믿음도 커야 칭찬 받습니다. 주님은 적은 믿음을 보면 항상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꿈이라면 어떤 것이든 수용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 가져야 기적을 베푸십니다.
5. 사욕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잣나무는 위로 곧게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잣나무는 뒤틀리거나 휘어짐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목재로서 가치가 있는 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한 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힘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칭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의 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데 무관심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사욕이 없어야 합니다. 잣나무는 곧을 뿐 아니라 썩지 않는 나무입니다. 세상에 우리 심령이 속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더욱 큰 임재를 원한다면 회개로서 심령을 더욱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더 겸손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실 때 마음이 반듯하고 청결하고 사욕이 없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하시려고 만드신 방주를 잣나무로 만드셨듯 우리 주님은 잣나무와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위해 위대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모두 잣나무와 같이 생각이 푸르고 마음이 강하고 믿음이 크고 희생정신이 있고 반듯하여 사욕에 치우치지 않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귀히 쓰실 수 있는 재목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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