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말 2:10-16)
이 시간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불변합니다. 이 우주가 변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부부가 많지만 그 사이는 각각 다른 것과 같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우리의 잘못입니다.
본문을 보면 말라기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책망합니다. 그 잘못은 문란한 결혼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도 율법을 버리고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함으로 언약 백성으로서 순결을 상실했습니다. 영적으로 성도는 예수님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면 안 됩니다. 바울이 엡 5장에서 가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씀하듯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혼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문제가 없으려면?
1. 존귀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10절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남편과 아내가 한 아버지의 자녀이고 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말씀은 남편과 아내가 모두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문화에 따라서 남존여비 혹은 여존남비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을 통해 잘 정립해야 합니다. 성경은 남존여비나 여존남비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누구의 기계도 아닙니다. 다른 한 편의 부속품이거나 더 낫거나 못한 존재도 아닙니다. 상호 역할과 질서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동일하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벧전3:7에도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했습니다. 고전9:5에는 “자매 된 아내”라고 한 말씀도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형제된 남편입니다. 부부이기 전에 성도요 형제요 자매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려면 하나님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58:13 말씀처럼 주일도 이 날을 존귀한 날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면서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삼상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셨어요.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좋은 관계가 됩니까?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 가질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2. 마음과 뜻을 맞추어야 합니다.
11-12절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율법(신7:3)에는 우상숭배자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결혼 잘못하면 저주입니다. 조상의 저주가 삼사 대까지 갑니다. 신앙의 교육도 끊어집니다. 이세벨 왕후가 그랬듯 우상숭배자의 딸은 온 나라에 우상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복 받으려면 경건한 가문에서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이방신의 딸과 결혼합니다. 데리고 오면 신앙생활하겠지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도 아니고 이방신의 딸이니 두고 보면 신이 들려 십중팔구 무당이 됩니다. 그러니 그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갈등 가운데 가장 큰 갈등이 종교적 갈등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뜻이 맞지 않으니 가정은 날마다 쑥대밭입니다. 혹은 남편도 동화되어 따라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무엇을 하면 같이 하세요. 공부를 해도 같이 하세요. 은혜를 받아도 같이 받으세요. 꿈을 가져도 같이 가지세요. 율법에 보면 “소와 나귀를 겨리 하여 갈지 말라”(신22:10)고 했어요. 서로 다르니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서로 이해가 필요하고 뜻이 맞아야 합니다. 뜻이 맞지 못하면 날마다 눈물입니다. 나는 동으로 가자는데 서로만 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예 포기하고 사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하나님 앞에서 내 고집 꺾지 못하면 자신이 불행할 뿐입니다. 그 끝나지도 않는 광야의 연단 내 고집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묵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지고 내가 꺾어져야 합니다. 자기주장이 센 사람에게는 좋은 것 알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철저히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 내가 순복되어야 합니다.
3. 사랑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13-14절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이 말씀처럼 백성들 중에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조금은 양심이 찔렸는지 하나님께 봐달라고 헌물을 열심히 바치지만 그것은 뇌물이지 제물이 아닙니다. 신10:17에 “하나님 여호와는 - 뇌물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원하실 뿐입니다. 성경은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화목하지 않다면 심적 이혼이란 점입니다. 몸은 함께 살지만 마음은 따로 살기 때문입니다. 부부일체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입니다. 떨어져 사는 것이 더 편한 부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통계에도 다시 태어나도 이 남편을 만나야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부입니다. 부부일심동체이지만 가까운 이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녀에게는 천사이면서 부부 끼리는 원수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혼과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용납의 문제요, 대화의 문제입니다. 참지 말고 용납하세요. 참으면 문제가 터집니다. 그냥 단점과 잘못된 점을 용납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좋아야 합니다. 만나기만 하면 가르치려 말고 심각한 문제로 대화하지 마세요. 말을 하면 같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시시한 대화를 하세요. 서로 용납하고 좋은 대화로서 화목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은 용납과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보혈로 용납하셨음을 믿고 양심의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늘 기도로서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듣기 좋은 기도를 더 많이 하세요.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믿습니다. 간구보다 찬양의 기도가 더 많아야 합니다. 감사하면 환경이 바뀝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시고 기도시간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4. 다른 마음 품지 않아야 합니다.
15-16절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하나님의 의도는 일부일처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실 때 한 사람씩 만드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완악하여 중첩을 허용했습니다. 허용했다고 그 결과를 받지 않은 것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여러 아내 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많았습니까? 본래 하나님의 의도는 일부일처였습니다. 15절에 암시되듯 가정들의 문제는 한 사람과만 결혼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결혼의 성결성이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기본 틀입니다. 히13:4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다른 대상을 향할 때 부부의 관계가 아름답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려면 하나님만 사랑해야합니다. 다른신이나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요일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우상숭배하거나 우상숭배자와 결혼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졌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됩니다.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과 결혼한 아브라함 보세요. 그 후 13년이나 침묵하셨습니다.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세상 사랑, 마음의 상처 다 씻으시기 바랍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 됩니다. 그러나 회복되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깨닫게 하시는 징계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다 아십니다. 마음으로도 범죄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을 가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기독교 가정을 이루십시다. 그러기 위해 신앙생활 잘하고 늘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가집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보혈과 기도로 화목하고 하나님만 사랑하여서 성령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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