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사로잡힌 일군 (행 20:17-24)
이 시간에 “성령에 사로잡힌 일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교회에서 사역자를 청빙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이를 청빙하는 것은 활동성이나 학문에 있어서는 좋지만 좀 더 노련함과 깊은 말씀과 영성을 생각한다면 그래도 나이 든 사람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의 인격과 지혜와 말씀과 영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평소 체험일 뿐 아니라 바울을 볼 때 더 그렇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어느 때고 훌륭했지만 특히 그의 노년기에 위대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 즉 교회지도자들을 불러 당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그의 고백이 너무 위대해서 비교가 되어서 어떻게 설교할지 고민했지만 함께 은혜 받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간략히 요약한다면 성령에 사로잡힌 자의 삶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절대 이런 사역은 불가능합니다. 이 점을 강조하지 않고 바울의 위대성만 강조한다면 사역의 중심이신 성령님은 무시하고 사람만 높이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만큼 성령은 중요합니다.
그럼 성령 받은 사역은 어떤 것일까요?
1. 겸손과 눈물과 인내가 있습니다.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에베소교회에 와서 사역한지 3년 동안 한결 같이 이런 자세로 임했습니다. 바울과 에베소교회와 관계를 말씀드리면 에베소교회는 바울의 2차전도 여행 시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3차전도 여행 시에 2년 3개월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가장 오래 머물면서 사역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서 일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겸손과 눈물은 성령의 감동입니다. 성령 받으면 핍박을 받아도 기쁨이 옵니다. 그래서 행5:41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행13:52에 이고니온에서 그 핍박을 받았어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2. 담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20-21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당시 예수를 가르치는 것은 박해 제 1호 대상입니다. 그러나 유익하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것이든지 꺼리지 않고 전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담대함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이런 담대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 담대하다가는 부작용이 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된 담대함은 부작용이 없습니다. 책망해도 듣는 자가 회개합니다. 맞으면서도 상쾌합니다. 성도들이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뭐든지 가르쳤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예수님이든 회개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시절에 어느 설교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가르치세요. 여름에 태풍이 불 때 감이 떨어질 것은 떨어지고 붙어 있을 것은 붙어 있는 것이지 떨어질 것만 생각하고 가르치지 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힐 때 가능합니다.
3. 순교적 신앙이 있습니다.
22-24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주를 위해 죽는 것을 순교라고 하는데 순교란 쉬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 말이 “오늘까지는 승리했지만 내일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은사를 주시지 않으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힐 때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연어들의 회귀의 본능 아시죠? 연어는 봄에 부화된 지 몇 주일 후에 바다로 돌아가서 3~4년 만에 성숙하여 다시 태어는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거기서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회귀본능이 얼마나 강하든지 온갖 장애물이 그토록 가로막고 있어도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성령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일에 목숨도 두렵지 않고 또 천국의 소망이 그토록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성령 받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삽질해도 포크레인이 한 번 떠주는 것만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잘 할 수 있게 되고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랬기에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속의 사역을 잘 완수하실 수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성령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사로잡혀 맡겨주신 일에 성공적으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전-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탄한 사역을 위하여 (행 21:15-26) (0) | 2009.07.09 |
---|---|
후회함이 없으려면 (행 20:25-38) (0) | 2009.07.09 |
오순절을 향해 가는 길 (행 20:13-16) (0) | 2009.07.09 |
세상을 사는 지혜 (행 20:1-12) (0) | 2009.07.09 |
마음의 소요와 진정 (행 19:23-41) (0) | 2009.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