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사역을 돕는 은사들 (행 18:1-22)

공 상희 2009. 7. 9. 13:57

사역을 돕는 은사들 (행 18:1-22)

이 시간에 “사역을 돕는 은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의가 있어도 도구 없이 맨손으로 일 할 순 없습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도구 발명이듯 하나님의 일에 은사의 도움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신령한 각종 은사로 무장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또 다시 여러 가지의 은사로 입혀주셨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일에 중요한 은사 몇 가지가 나타납니다.

1. 물질의 은사입니다.

1-2절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여기 나오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의 정신적 물질적 동역자입니다. 이 부부는 당시 로마 황제 글라우다오의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내려와 장막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 때 바울도 자비량 선교를 했으므로 업이 같아 이들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물질은 육체의 생존에 중요합니다. 바울이 일했던 것도 물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자립교회는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물질이 있으면 몇 배 혹은 몇 십 배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부인인 브리스길라 이름이 앞에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부인의 믿음이 더 좋았고 더 활동적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일에 부인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두려워 붙잡고만 있지 말고 믿음 좋은 아내의 말도 좀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여러 물질적 뒷받침이 따르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2. 수종의 은사입니다.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바울에게서 놀라운 말씀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할 때였습니다. 즉 여러 사역을 그들에게 맡기고 말씀에만 전념할 수 있을 때 그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위대한 설교자들도 그냥 위대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의 목회사역을 부교역자에게 맡기고 성경연구와 설교사역에 집중합니다. 이것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훌륭한 설교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사도들이 구제와 공궤하는 일을 집사에게 맡기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때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도에 복종했습니다.

 

설교자가 교인들 수발하는데 너무 바쁘면 풍성한 양식을 먹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종자가 필요합니다. 그 일을 부교역자가 할 수 있고 성도들도 할 수 있습니다. 행13:5에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다고 했어요. 여인들도 예수님께 수종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수종의 은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3. 여론의 은사입니다.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여기 회당장 그리스보는 고린도의 여러 회당장 중에서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회개하여 예수를 믿으니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10절에 아무도 너를 해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돕는 백성이 많아져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일할 수 있는 탄탄대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따르는 백성이 많으면 그것이 왕의 영광이듯이 교회도 교인들이 연합하면 아무도 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복음화를 위해 여론을 지배할 인물들이 예수 믿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한국교회에 저명한 과학자 교육가 군인 예술가 연예인 정치인 등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수효를 일일이 다 셀 수 없어요. 빨간마후라로 유명한 신영균씨도 장로시더군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씨도 하나님의 사람이더군요. 방송계의 최고의 MC 유재석씨도 집사입니다. 이런 분들이 많을수록 도움 됩니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고지는 방송 언론입니다. 방송 언론 포털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4. 정치의 은사입니다.

12절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이처럼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바울을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갈리오 총독은 이 고소 건을 보기좋게 기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의협심 강한 사람들은 무고한 바울을 고소한 앞잡이 소스데네를 폭행했습니다. 폭행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권력이 돕고 의협심 강한 사람들이 도우니 누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무식하고 완악한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는 알게 모르게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불신자 정치인은 불신자라고 박해하고 신자 정치인은 타 종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독교에 불리한 정치를 했습니다. 박해를 받을수록 강해지는 것이 기독교이지만 탄탄한 선교사역을 위해서는 박해만 받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해할 수 없도록 정치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5. 호감의 은사입니다.

18절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여기 머리를 깍았다는 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말합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표시로 종신 혹은 일정 기간 머리를 기르다가 깎는 그 나실인 서원을 한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폐지되고 없는 율법 중 하나인데 바울이 그런 서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헌신을 다짐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은 선교적인 조치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서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헬라인에게 가서는 헬라인의 모습을 가져야 만이 전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자유로움과 호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생각해 보십시다. 청소년을 전도하는 목사가 빈틈 없는 인격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차라리 구멍 난 바지를 입고 머리 한 가닥 물을 들이고 다가간다면 이걸 불경건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것보다 선교적 측면에서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도 대상의 감각에 맞다면 더 성공적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통할 수 있다면 전도의 좋은 환경입니다. 그 뿐 아니라 호감을 얻게 되면 더 깊은 사역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나 하나님의 일에 은사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복음이 중요해도 은사의 도움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때를 따라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십시다.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주셨다면 그 은사에 충실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에 크게 쓰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약]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일에 은사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은사를 무시하고 일하는 것은 맨손으로 일하려는 것과 같다. 성령의 여러 은사와 함께 때를 따라 돕는 은사의 도움을 입어야 한다. 그 은사 중에 물질의 은사가 있다. 물질이 있을 때 더 많이 일할 수 있다. 수종의 은사가 있다. 이 때 전적으로 자기 사명에 매달릴 수 있다. 여론의 은사가 있다. 이 때 아무도 해하지 못하며 탄탄대로가 열린다. 정치의 은사가 있다. 이 때 어려운 문제가 봉착해도 쉽게 풀려진다. 그리고 호감의 은사가 있다. 이 때 더 깊이 나아가 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