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을 받으려면1
행 2:1-4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의 세례는 일회적인 것이며,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는 믿음을 고백할 수 있고,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는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즉 중생을 관통하고, 영화의 삶을 경험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세례와 충만에 대한 또 다른 차이점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 1:8)
이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성령의 뜻에 의해서 임하시는 것을 전제한 말씀이지 우리의 노력의 대가로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주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 14:16)
라고 하신 말씀도 우리가 사모하고 노력하면 마침내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 거리에서 전도하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
고 했습니다. 선물이란 주시는 이의 뜻에 따라 주는 것입니다. 추석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임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을 나눠주신다(히 2:4)
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선택된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때에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성령의 세례라고 하고, 이것은 성령의 일방적인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같은 성령의 역사이긴 하지만 성령의 일방적인 사역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개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부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을 받고 체포되었던 제자들이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옥중에서 벌어진 일들을 말하였고, 이것을 들은 신자들은 일제히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들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행 4:30-31)졌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밝은 빛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회심한 사울은 다메섹에 들어가 3일간 금식기도를 합니다. 이때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그에게 와서 안수기도를 하면서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를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 9:17)
고 합니다. 사울의 경우,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 3일간의 금식기도와 아나니아의 안수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이 갖고 있는 차이입니다. 세례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충만은 교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더욱 분명해질 중생에 대한 말씀을 들으시기 위해서는 이 차이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허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부활의 사실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두 번에 걸쳐 하셨음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24장 49절의 말씀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개역한글판)
그리고 사도행전1장 4,5절의 말씀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개역한글판)
그리고 이 말씀이 마침내 현실로 제자들에게 경험되어졌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보고서가 사도행전2장 1절로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개역한글판)
먼저 이렇게 일어난 일련의 정황을 통해 이제까지 관행처럼 설교되어 오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성령을 받은 것처럼 뜨겁게 기도하여 성령을 받으라는 내용이 수정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도’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제자들이 정말 기도만 하고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제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에 기록된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유추된 말씀일 것이라 추측됩니다. 누가복음 11장 10절로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개역한글판)
저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해진 성령의 임재는 기도만에 의한 임재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확신합니다. 오히려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한 제자들에게 주님의 약속하신 성령이 임재했다고 확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제자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믿음 없는 기도, 시간이나 때우기 위한 기도, 허공을 치는 기도, 행동이 동반되지 않은 공허한 기도가 아니었으리라 믿습니다. 제자들의 기도는 믿음과 순종이 동반된 그래서 자신들이 해야 할 사명을 인식하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능력을 구하는 기도가 있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누가복음12장 22절로 34절까지의 말씀이 제자들의 간구한 기도의 뼈대가 되고, 중심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개역한글판 눅 12장)
저는 기도의 참된 가치는 삶의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뿌리는 믿음과 순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한 성령은 제자들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임재하실 때까지 기다렸던 인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럼으로 진정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자 한다면 기도에 앞서 자신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인내를 점검해 보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고 "저희가 다 성령의 층만을 받았다"(행 2:4)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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