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으로 본 성령 강림 (행 2:1-4)
본문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그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 강림의 의의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만 말씀 드리면 그동안 구속사의 주도권이 성부와 성자에서 성령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는 귀한 성령의 상징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간에는 본문에 나타난 성령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진리를 나타냄에 있어서 상징이 필요한 이유는 언어란 진리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대단히 불완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언어란 한 편으로는 진리를 나타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심오한 사상을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유와 상징으로 진리를 예시하시기를 기뻐하셨는데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더 확실한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에는 약 네 가지의 상징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오순절이라는 절기가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랬습니다. 이 오순절도 여기서 중요한 상징입니다. 성령의 강림이 오순절에 임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오순절이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 앞에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리던 때입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라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혹은 유월절 후 7주 지난 다음 날이기에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성령 받아야 우리의 신앙이 비로소 열매 맺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쭉정이일 뿐입니다. 바람만 불면 다 날아갑니다. 악곡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는 갈 수 없습니다. 시험 당하면 끝내는 다 배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참되게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나 교회생활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 알곡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잘잘못을 떠나 믿음 없어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다투고 싸우는 것을 보면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내가 옳아도 져주면 어떻습니까? 내가 죽어지면 어떻습니까? 왜 그렇지 못합니까? 아직은 알곡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마음에 예수가 계시기 때문에 똑같이 범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7은 완전수 인데 또 7을 곱한 수이니 본질적인 완전입니다. 성령 받아야 완전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진정 성령 안에만 있다면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신 그대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영의 오순절이 임합니다.
2. 강한 바람으로 성령의 상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바람으로 성령을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통 바람이 아니라 태풍입니다. 그냥도 임하실 수 있는데 왜 이런 태풍 같은 바람처럼 임하셨을까요? 성령이 임하시면 될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지구촌의 소식을 보면 집도 날아가고 공장도 날아가고 자동차도 날아가고 지상을 완전 초토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태풍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몸을 나무에 꽁꽁 묶었지만 너무나도 바람이 세차서 결국 죽고 만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런 강력한 바람 소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바람은 땅의 바람이 아니라 하늘의 바람입니다. 하늘의 바람이나 성령의 바람이요, 성령의 바람이니 은혜의 바람입니다. 죽이는 바람이 아니라 살리는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세상을 변화시킬 변혁의 바람입니다. 악과 그 모습을 다 쓸어 가시고 새롭게 하실 새바람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바람입니다. 이 성령의 바람은 인간을 바꾸고 세상 문화를 바꾸고 역사를 바꿉니다. 이런 바람 보셨습니까? 이 바람이 성령으로 불어옵니다.
이 바람이 이 땅을 강타하도록 기도해야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귀한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요, 가장 귀한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 없이 수효만 많으면 뭐합니까? 기도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서 나타나신 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그런 변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불의 혀 같은 상징이 나타났습니다.
3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더니” 성령께서 불의 형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불의 모양이 아닙니다. 불의 혀와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불도 능력이 있는데 혀는 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 인격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3:6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대단한 것이어서 우리 인생을 불사릅니다. 이 불은 지옥불과 같이 거세서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불의 혀도 그런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 일생을 주님과 선한 일에 불사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불을 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이 불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열심히 살게 만들고, 온갖 죄악을 소멸하게 하며, 얼음장 같은 심령도 녹이고, 완고한 심령도 깨뜨리고,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신 것은 다른 불이 아닌 열심의 불, 성령의 불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불을 받아야 우리 일생을 성령의 불로 태워 하나님을 위해 사는 번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불을 받아야 내 인생 전체를 주를 위해서 살게 됩니다.
4. 방언으로 성령의 상징이 나타났습니다.
4절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지금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은 실제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방언은 특이해서 학자들은 이 방언은 오순절에만 있었던 단회적인 사건이라고 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방언과 구별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순절의 방언은 실재이면서도 상징적인 것이 함께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필요하다면 각국 방언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 사람이 각각 다른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20명 모두가 다 다른 120개 지방의 방언을 동시에 한 것은 그 때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성령을 받을 때 오순절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때 태풍을 경험시키고 불의 혀를 보게 하고 오순절에 임하신 것은 거기에 중요한 의미의 상징적인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징은 크게 두 가지인데 넓게는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 어느 곳에도 복음이 증거 된다는 복음의 세계화를 보여주신 것이고, 좁게는 성령 받으면 인종과 언어와 지역을 초월하여 영적으로 교통 하나 되어 교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방언하는 소리를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듣고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전12:13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배움이 다르고 풍습이 달라도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 귀한 사실을 방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분부대로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기도하십시다. 이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동일한 분부입니다. 성령 없이는 쭉정이일 뿐입니다. 성령 없이는 버림받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받아 알곡 되고 변화 받고 열심 갖고 서로 교통함이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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