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장 노하시는 것들 (행 17:16-34)
이 시간에 “하나님이 가장 노하시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행위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노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잘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피하고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하게 주십니다.
그래서 전2:26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그랬습니다. 잠16:7에도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만 기쁘게 해드려 보세요. 에녹에게 함께 하신 것처럼 온전히 함께 하여 주시고, 못해주실 것이 없으며, 약속하신 대로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할 때 분이 나서 견딜 수 없었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분이 아니라 아덴을 향하신 성령의 의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덴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외적으로는 역사에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아덴을 통하여 하나님이 가장 노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우리의 기도제목을 삼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다른 신과 우상숭배입니다.
16절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당시 아덴에는 300개 이상의 공식적인 우상과 3만여 개의 신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 아테네올림픽이 개최 된 곳이 바로 아덴입니다. 지금도 파르테논신전을 비롯해서 곳곳마다 우상이 우뚝 서 있는 우상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보자 바울이 마음에는 견딜 수 없는 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십계명에 제 1계명과 2계명이 무엇입니까?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라”(신5:7-8). 이 두 계명이 십계명의 맨 앞에 나온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하나님께서 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32:16에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성경에 다른 신을 섬기다가 여호와께서 노를 격발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 죄 때문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 섬기면 안 됩니다. 우상 만들면 안 됩니다. 탐욕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다른 영을 받아도 안 됩니다. 다른 가짜 예수를 따라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하는 일입니다.
2. 교만입니다.
18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아덴이 신기한 것은 그토록 미신이 창궐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가장 발달하고 민주주의가 그곳에서 나올 만큼 지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덴은 헬레니즘의 최고봉에 달할 만큼 문화적으로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미신과 철학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가지만 영적으로 보면 한 통 속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본문에 아덴에 있던 에비구레오 학파와 스도이고 학파가 나오는데 에비구레오는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학파이고, 스도이고는 금욕 이성 청빈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에서 참된 만족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적 교만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전하는 부활의 복음이 들어갈 리가 있나요?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마음은 바로 이런 교만입니다. 고전 8:1을 보면 지식이 가장 교만하게 한다 했습니다. 물질도 교만하게 만들고 권세도 명예도 교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지식이 교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덴 사람들 진정 알면서 교만했나요? 철학적인 문제만 제기했지 답도 알지 못하면서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신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죄입니다. 천사가 마귀 된 죄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채찍과 심판 뿐 용서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도 매 맞기 전에 깨달아 속히 회개하는 것 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3. 불신입니다.
32절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정면으로 불신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고상한 도덕이나 정의나 평화나 애국 애족을 이야기했다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사는 예수 이야기를 하니 그런 허튼소리 말라고 조롱했습니다. 그 지식적인 머릿속에 예수의 복음이 들어갈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안 믿는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안 믿는 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로부터 오시는 성령을 거부하거나 사모하지 않는 죄입니다. 지옥 가는 죄가 바로 불신죄이기 때문입니다. 의심도 큰 죄로 알고 의심하는 죄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큰 죄는 예수를 안다는 사람이 예수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죄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진정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은혜로 이런 죄를 범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리는 이렇습니다. 예수를 안 후에 공식적으로 부정하면 사함이 없습니다. 잠시 하나님을 멀리하다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공식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두 번 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사하는 제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고 노하시는 일은 하지 마십시다.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며 교만하고 불신하고 의심하는 악한 죄를 다 물리치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겸손하며 믿고 순종하는 가장 지혜롭고 선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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