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학생의 바른 인생관 (요일 2:15)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서 죽게 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이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바로 사는 데는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디서 왔는가? 왜 사는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뚜렷한 가치관과 인생관이 없는 사람은 허공을 치는 사람과 같고 목표 없이 달려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인생은 비생산적인 인생이요, 무능한 인생이요, 자기기만의 인생일 것이므로 이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 학생들이 가져야할 인생관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구별된 사람일 것입니다. 새 인생관, 새 가치관을 세웁시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구별되게 삽시다.
말하는 것도 다르게, 잠자는 것도 다르게, 공부하는 목적도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인생관과 가치 표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새 인생관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의식주를 새롭게 바꾸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세속의 일을 경멸하고, 무욕(無慾)을 최고의 덕으로 삼고, 그는 커다란 나무 통속에서 살았고, 아테네가 어둡다면서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서 요구할 것이 없냐고 물을 때, 그는 “그림자가 지니 비켜 달라”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무저항 비폭력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폭력을 부정하며, 비타협적인 행동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그의 집은 감옥보다 못한 토담집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의 분명한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무언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우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열심히는 바리새파 인물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철저히 회개한 후로 그의 인생관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3:5-9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세상과 옛 생활로부터 완전히 뒤집어진 딴 모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의 표준을 완전히 부정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길이요 진전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상대적이지 말고 절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절대적으로 살자는 말입니다.
파스칼은 인생을 어떻게 묘사했냐면,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들의 행렬이 있는데, 차례 례로 끌려 나가 사형되는 것을 훤히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나그네가 여관에 하룻밤 묵는 것과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떠나야 할......
인생이란 고요히 잠자는 밤에 홍수가 밀려와 마을이 몽땅 떠내려 가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성경에도 인생은, 풀과 같다 했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다 했습니다. 세상을 위하여 살고 육신을 위하여 쌓았던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함께 예배하는 기독학생 여러분,
이제 우리모두 새로운 인생관을 세워봅시다. 예수와 더불어 분명히 다른 인생관을 세우고, 다른 사람이 되어봅시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듭난 자들입니다. 거듭났다고 하는 중생의 의미는 변화 되었다는 얘깁니다.
예수한번 잘 믿어봅시다. 예수님께 미쳐봅시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배가 바다위에 유유히 항해하듯이 참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면서 힘든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괜히 기독교인들을 헐뜯으려합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어딜 가도 어울릴만한 데가 없습니다. 직방모임이나, 친척모임, 동문 모임 어느 곳을 가도 그들과 화제가 같아야하고, 술 마실 줄 알아야하고, 춤출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받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그래서 우리는 때론 조롱과 핍박을 받아야합니다. 가족과 친지로부터 냉대도 받아야합니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로 조롱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는 거룩한 일입니다.
예수를 인하여 조롱과 핍박을 당하고, 예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희생하고 고난을 달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관을 가진 사람입니까?
학교 공부(시험)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원 때문에 교회를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발 날위해 피흘리신 주님을 위한 거룩한 손해를 감수하는 우리 학생들이 되길 바랍니다.
(성춘향이도 이몽룡을 그리도 사랑하고 정절을 지켰거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그 예수님을 사랑하고, 우리 모두는 변하지 않는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가치관을 신앙의 가치관으로 바꾸어 삽시다.
시편37:24-25
“저는 자주 넘어지나 아무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제 인생관을 바꾸어 산다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손 붙들고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주님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몸을
폭풍우 흑암속 해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고
그 계획을 우리가 깨달으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그 계획을 복되게 성취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머리칼까지도 세시는 섬세함으로
나의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애를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선택의 불안함으로 막막한 인생이아니라, 아무런 비젼도 꿈도 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가는 그런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깨닫고 모든 일을 결정하고, 그 비젼과 계획하심을 이루어가는 그분에게 나의 온 생애를 맡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느낄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나에게 큰 계획을 가지시고, 기 비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나를 인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
영광 가운데 계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 여러분의 삶이 복된 삶이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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