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한계를 극복하는 참 믿음 (막2:1-12)

공 상희 2009. 2. 19. 15:13
한계를 극복하는 참 믿음 (막2:1-12)

이 시간에 [한계를 극복하는 참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려운 일을 여러 번 당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는 남이 알지 못한 놀라운 비밀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겨라. 믿음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럼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여러 정의가 가능하지만 이 시간 저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극도의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이 모든 불가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자인데 자신과 친구들의 믿음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만나 깨끗이 치료 받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나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과연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생각의 한계를 넘는 믿음입니다.

본문 1절에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했습니다. 이 평범하고 간단한 문구 속에는 나도 예수님을 만나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중풍병자의 믿음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중풍병이 어떤 병입니까? 뇌에서 생겨난 병으로 지금도 어려운데 당시로서는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 고쳐도 내 병은 못 고친다. 이것이 중풍병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나면 이 병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의 한계를 넘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우리의 사고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신앙의 옷을 입었을 뿐 아직 그의 마음은 이방인의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버가모 교회와 같이 주님을 위해 순교한다 할지라도 발람의 제자요 니골라당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영육 간에 성공하려면 먼저 자신을 복음화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물론 인류가 더 발전하려면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위궤양의 원인이 스트레스와 흡연 그리고 알코올로 인한 위산의 과다 분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외과의사 로빈 워렌과 배리 마셜이 기존 관념을 깨고 위궤양의 원인은 박테리아 세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 나간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1983년 마셜 박사는 항생제로 위궤양 치료에 성공했고 2005년 10월 그들은 '위궤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게 바로 `헬리코박터균(Helicobacter pylori)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우리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을 믿으려면 과학을 하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과학도 주셨지만 그 이상도 되시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무리 내 일생을 통해서 검증된 사실일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배치되면 그것이 나를 망쳐온 주범임을 생각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도 하고 그래서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해서입니다. 그 때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는 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의 틀을 깼기에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2. 참된 믿음은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믿음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만 나아가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가고자 할지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능력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중풍병자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믿음 좋고 건강하며 힘 좋은 네 사람의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혹시 생각은 바꾸었는데 능력이 없습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도움의 손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 길이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길이 보입니다. 어떤 전신지체장애자를 보니까 몸은 불구여도 다 생활하는 방법이 있더군요. 발가락으로 혹은 손가락으로 혹은 입을 움직여서라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도움으로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못한다고 낙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를 형통케 하는 비밀을 말씀드릴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다.”고 믿는 믿음이 그 비밀입니다. 언제나 이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방법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은 없습니다. 불치의 병도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내실 것입니다. 기술이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알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고, 바울에게는 누가와 바나바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이 있었고, 모세에게는 미리암과 아론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홀로 싸우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칠천을 두셔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다가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3. 참된 믿음은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중풍병자는 마음도 바뀌었고 함께 일할 믿음의 동지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2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많아 용신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든 각색병자들입니다. 서로 낫고자 모여들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 앞에 늦게 도착한 환자로서 힘이 생겨날리 있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그 때 환자 치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와 네 친구를 보십시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면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침상을 내릴 만나 구멍을 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가옥은 덤불이나 갈대를 덮거나 진흙을 이겨서 평평하게 만든 것이지만 남의 집이고 먼지도 떨어질 것이고 설교시간인데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방법의 한계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방법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데 꼭 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매 돌로도 되는 것입니다. 혹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데 꼭 배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팡이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혹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꼭 성을 부술 대포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혹은 38년 된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환자가 꼭 그 연못에 들어가야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꼭 포도로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로도 만들었습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안 된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속히 내 방법을 고집하는 사고에서 벗어야 합니다.

결국 중풍병자가 내 생각과 능력과 방법의 한계를 깨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 치료해 주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5절을 보니까 주님께서는 그의 병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니까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조지아 주립대학의 데이비드 슈워츠 교수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를 말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키나 체중, 학력이나 집안 배경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에 따라 평가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 되어도 하나님을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기적이 없다면 나는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받아서 천국에까지 이르게 하는 종교입니다. 프린스턴 여론조사연구협회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미국인 84%가 기적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대한 소문이 중풍병자를 이토록 바꾸어놓은 것처럼 더욱 말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생각과 능력과 방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 가지고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승리하고 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