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
본문: 신6:4-9
유태인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주후 70년의 민족적 비극 때, 예루살렘에서는 반란을 음모한다는 이유로 로마 군들이 성벽을 에워싸고 모든 유태인의 출입을 철저히 단절시키고 있었으며 비둘기파의 지도자 벤 자카이는 그나마 꺼지지 않는 민족 생존의 마지막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성안에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벤 자카이가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문병객이 다녀간 얼마 후, 벤 자카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관속에 선생을 넣고 선생을 성 밖에 안치시킨다는 핑계로 성벽을 통과하려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병정은 '관'을 내려놓고 그 관을 칼로 찔러 확인한 후에 내보내려 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 관도 칼로 찔러 볼 것입니까?"하고 반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성벽을 통과한 벤 자카이는 급기야 로마 사령관을 만나 항복 아닌 간청을 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방 하나라도 좋습니다. 열명 가량의 랍비들이 들어가 공부할 학교 하나만은 남겨주시고, 그것만은 파괴하지 말아주십시오." 너털웃음을 웃고 난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선을 넘어 나를 찾아온 목적이 그것뿐입니까? 좋습니다. 약속드리죠."
그 후 로마는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성전을 파괴하고 9만여 유태인을 학살하였으나, 약속대로 작은 랍비 학교만은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유태인들은 바로 이 작은 학교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지식과 지혜, 전통, 그리고 신앙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벤 자카이는 민족의 스승으로 숭배 받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세계 민족 가운데 교육 열성이 우리나라 같이 앞서는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도 교육을 귀히 여기지마는 우리는 교육에 대해서 마치 생명을, 우리의 모든 삶을 자녀 교육에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에도 사교육비가 13조 6천억이 들었다고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 평균 1년에 한 50-60만원의 돈이 사교육비로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의 집 값이 하늘처럼 오르는 것도 오직 자녀교육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민족, 누구든지 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또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녀가 다 잘 되고, 천재, 수재, 영재가 되고, 배우지 않아도 척척 알고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자녀들이 공부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를 때에 그 자녀에게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그의 축복이고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교육보다도 참 더 중요한 교육과 교육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대인들은 교육으로 인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이 유대인의 교육을 배우고 유대인의 교육을 통해서 유대인같이 훌륭한 사람을 길러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25%가 유대인입니다. 특별히 과학 분야나 물리학 분야는 60%가 유대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좋은지 모릅니다. 무엇을 배웠기에 이 정도로 세계의 200 여 국가 가운데 가장 작은 민족이 어떻게 이렇게 뛰어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의 인구는 남한의 1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다 합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미국에는 상당히 수준급의 대학이 3천 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25%의 교수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작은 민족이 이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의 아이큐가 세계 제일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매우 심하게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유대인이 과외를 우리처럼 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유대인 부모님들은 성적에 관심이 없답니다. 교육의 참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교육은 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창조자를 보는 눈, 창조자를 믿는 믿음, 창조자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부모들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오늘 말씀한 대로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계속해서 천 번, 만 번 야훼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루소는 말하기를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데 있지 않고,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 라고 했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바로 변화(change) 입니다. 지식이 없는데서 지식을 넣어서 지성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식한데서 유식한 사람으로 체인지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모르고 행동하는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르쳐서 훌륭한 행동을 하도록 체인지를 시켜주는 것이 지식인 것입니다. 오늘 지식의 가장 중요한, 이 교육의 참 중요한, 체인지에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없는 머리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체인지를 시켜주는 이것이 참 교육의 핵심인 것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창조자를 믿는 사람,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 삶과 생명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보람되게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참 사람이 아니겠어요? 이스라엘의 교육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는 잠언에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근본이라는 말은 시작됩니다. 모든 교육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은 어떻습니까? 짐승부터 교육합니다. 송아지, 송아지에서부터 교육이 시작됩니다. 이게 뭐예요? 기린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사자입니다. 이렇게 교육의 시작을 동물에서 시작하는데 유대인의 교육의 시작은 야훼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먼저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정신, 위대한 능력, 인격, 사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미래, 교육, 하나님이 없는 지식교육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원숭이의 자손입니다. 인간이 어디로 갑니까? 모릅니다.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원숭이같이 재주가 있어야합니다. 재짱이어야 합니다. 인간이 어디서 왔습니까? 모릅니다. 왜 삽니까? 왜 인간입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이렇게 방황하고, 이렇게 자살하고, 이렇게 삶을 난폭하게 청소년들이 모든 걸 부정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와서 원숭이처럼 날뛰고, 재주 부리고, 방황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끽끽거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공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없습니다. 인간이 없습니다.
히브리인들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까지 그들이 배우는 것은 탈무드입니다. 우리는 서점에 가서 탈무드를 한 권씩 사서 보는 분이 많은데 탈무드는 한 권인 줄 알면 착각입니다. 영어로 번역된 것만 대형사전과 같은 사전이 스물 네 권이 큰 것이 있고, 한 트럭으로도 실을 수 없을 정도로 탈무드는 방대합니다. 몇 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되는 것이 쭉 내려오는 탈무드의 양은 엄청난 것입니다. 탈무드의 뿌리는 바로 모세 오경입니다. 성경에서 내려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탈무드가 그것을 하나, 하나 해석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느냐? 이 세상을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느냐? 그게 탈무드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쉐마요 십계명입니다.. 하나님 위에 우상을 섬기지 말고, 만들지 말고, 그래서 우상 없는 구라파가 되었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늘을 아니까 땅을 자연히 알고 높은 걸 아니까 아래를 자연히 알 수 있는 거예요. 자연과학? 간단하게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리학, 천문학 다 눈을 뜨는 것입니다. 왜? 야훼를 알고, 창조자를 알고, 전능한 분을 알고, 위엣 분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이 가치 있게 되고, 능력 있게 되고, 인간이 위대하게 되는 거예요. 누구를 아느냐? 누구를 만나느냐? 어떠한 영향을 받느냐? 가 절대적으로 귀하지 않습니까? 십계명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그랬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 십계명이 토라요, 토라가 탈무드로 전체가 이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너무 빨리 자라나는 아이들"의 저자 엘킨드 박사는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교육을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을 급행열차에 태워 너무 빨리 몰아댄다. 아이들은 좌절감과 실패의식 속에 살며 마음에 화를 품는다. 빨리 배우고 빨리 어른이 되게 하려는 부모의 성급함, 성공에 대한 기대와 재촉 등이 자녀들을 병들게 한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들은 결국 반항과 증오의 늪에서 허우적 거린다."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렘32: 33)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90년 한 해 동안 자식에게 구타당한 어머니 18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학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보고에 따르면 어머니를 때린 자녀들의 대부분이 중상류 층 부모들의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외아들이라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의 구타 행위를 정당하다고 생각한 자녀가 7명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경쟁 사회에서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이들 위주의 식사와 집안 환경, 공부만 잘 하면 무엇이든 다 받아 주는 자세.. 그러나 이런 것들이 결국 아이들을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으로만 자라지 않으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녀를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계적인 교육보다 칭찬과 질책,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세상의 전부를 물려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1911년 4월 22일자 스페인의 '시티즌'지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남부 해변가에 사는 한 부인이 시골의 한 오렌지 농장으로 'naranjas'(오렌지) 1,000개를 발송해 달라는 주문서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오렌지 농장 주인은 1,000그루의 naranjos(오렌지 나무) 묘목을 20대의 트럭에 싣고 달려왔습니다. 깜짝 놀란 부인은 오렌지나무 1,000그루를 주문한 적이 없음으로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이는 주문서에 쓰인 'a'자와 'o'자의 구분이 분명치 않아 생겨난 엄청난 일로 마침내는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하여 한동안 스페인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잘못 가르친 한 마디가 큰 화가 될 수 있습니다.
"열 번 길을 물어보는 것이 한 번 길을 잃는 것보다 낫다."
이 속담은 인생의 기본을 가르친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의 민족"이라고도 불리지만, 율법이 누구에게나 납득되는 인생의 기본적 규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을 경시하기 쉽습니다. 걷는 법, 뛰는 법, 먹는 법, 앉는 법부터 살아가는 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가 하는 것은 의외로 옛날부터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들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이 없으며,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결국은 같은 일이 약간 형태를 바꾸어 일어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래된 가르침을 지킨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 행동을 통계로 뽑아 이 경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도 기본을 잘 가르쳐줌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녀에게 십계명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이 교육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산지식입니다. 세상에 있는 지식은 많이 배워도 지식이 살아 있지를 못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삶이 흐트러지고 병들고 넘어지고 불행할 수 있는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살아 있는 지식이어서, 약속이 있는 지식이어서 우리의 삶에 엄청난 에너지와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공부 잘 하고 머리 좋은 게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래서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머리가 좋은 자녀들이 있을 때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도 천재가 많이 나왔습니다. 사실 세계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천재가 많습니다. 미국에 가서도 대통령상 받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 제일 많고, 전 미국에 장학금 받아서 공부하는 애들이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은데 인물이 안 납니다. 천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 뭐하겠습니까? 오늘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하는 저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오늘 우리가 지식이 많으면서 꿈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습니까? 능력이 있습니까? 성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떠나고 있는 이 모든 지식은 우리 인간에게 짐이 될 뿐인 것입니다. 축복은 위로부터 옵니다. 인간의 앞날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배워야 됩니다. 예수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포도나무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할 구주이심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주일을 지켜야 되는 것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부모님이 주일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 주일인데요. 아이고! 벌써 주일이 왔냐? 그리고 성경을 못 찾아서 어디 놓아두었는지 몰라서 성경 찾으러 돌아다니고... 그런데 성경은 모르면서 세상지식은 너무 많이 압니다. 찬송가 부르라고 하면 열 가지도 못 부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은혜를 받겠다고 말이나 됩니까? 아이들에게 찬송을 끝까지 외우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시편을 외우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과 주일이 얼마나 귀하고 교회가 얼마나 귀한 걸 가르쳐 주세요. 교회를 떠나면, 주님을 떠나면 소망이 없다고 가르치세요. 인간은 인간의 능력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잘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떠나면 눈물과 고통과 아픔이 옵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 같다가도 하나님 떠난 기업은 이상하게 사기꾼 어음을 받아 가지고 망하고, 물건을 배달하다가 배달하는 집 다 가서 사고 나 넘어지고, 될 듯 될 듯 하다가 안됩니다. 하나님 잘 믿는 걸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참 교육이 뭡니까? 참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참 인간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참 인간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창조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야 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가정교육, 자녀교육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가르쳐야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기도하면 되는 걸 가르쳐야 합니다. 조금 아프면 곧바로 병원에 데려가고 조금 배고프면 금방 먹을 것 주고 그러지 마십시오. 너 기도해라. 아이들이 아프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게 해서 아플 때 치료해 주신 하나님을 찾도록 스스로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라고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베토벤, 아인슈타인, 에디슨, 링컨 등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 세계를 움직이는 모든 분들이 기도하는데 왜 기도 안 합니까?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그의 말씀을 배우면 능력이 그에게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어서 기자들이 그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도대체 가르쳤습니까? 교육의 핵심이 어디 있습니까? 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성경 말씀으로 사람을 가르치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에고이즘(egoism)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큐 높은 사람 기르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어려움을 잘 이겨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실패 없는 사람, 고난이 없는 사람이 어디 한 명이나 있습니까? 눈물과 고통과 아픔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링컨은 세 살 때 동생이 죽었고, 여덟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열 여덟 살에 여동생이 죽고, 선거에는 여섯 번 떨어졌는데,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훈련을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받았는지 그는 이 모든 어려움을,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고난은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학교라고 하는 거예요. 배부르고, 편하고, 돈 많을 때 배울 것이 없습니까? 여러분, 며느리나 사위를 볼 때, 고생 안 한 사람 데려와 보세요. 그들이 자기만 알지 뭘 압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난의 십계명이 있습니다. 병이 있든지, 가난이 있든지,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든지, 억울한 일을 당했든지, 외로움을 당했든지, 공부하면서 밖에 나가서 한없는 고생을 하든지, 잠을 못 자고 멸시 천대를 받고 어려운 천한 삶을 살았든지, 이런 것을 거친 사람은 배우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고난을 거치지 않고는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작은 어려움도 못 참고 조그만 속상한 일도 못 참아서 자살하고 분노합니다. 너무나 현대인들은 의지가 약합니다. 살아야지요. 끝까지 살아야 승리하지요. 왜 죽어요? 어떠한 어려움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좌절이라는 게 없습니다. 오늘 고난 가운데에도 캄캄할 때는 빛을 바라봅니다. 저녁이 되면 내일 새벽을 기다립니다. 굶주린 저들에게는 풍성한 추수를 기다리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믿음을 배우고, 주의 날을 배우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되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부지런히 배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갈 때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를 아시아를 이끄는 능력 있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버드 대학은 세계 최고의 대학인데 학생들을 선발할 때 이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가를 가지고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점수가 얼마냐? 점수를 가지고 사람을 안 뽑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뽑느냐? 학생들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를 보고 사람을 뽑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신입생을 모집하면 어떤 학생은 380점, 어떤 학생은 150점, 이렇게 성적이 차이가 많은데도 1학년 때는 기초부터 고등학교 비슷하게 공부를 시키다 다시 끌어올린대요. 왜? 공부 잘 하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미래에 세계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고 큰일을 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가지고 사람을 뽑는 것이지 뭘 외웠느냐? 얼마나 똑똑하냐? 이걸 가지고 안 뽑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이 하버드 대학교 대학 신문에 나왔는데 할렘가 에서 살아가는 여학생이 부모가 이혼하고 재혼하고, 이래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너무 너무 가난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일도 많고, 공부를 못하고 학교에 못 가서 가로등 밑에서 공부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이 하버드 대학에 들어오고 싶다는 거예요. 학교 성적이 엉망이에요. 그런데도 학교가 이 학생을 신입생으로 받아 주었어요. 왜? 이 학생이 이런 가정에, 이런 어려움, 이런 가난을 이겨내는 걸 보니까 세계를 향해서 큰일을 할 수 있겠구나. 공부는, 머리는 좋고 외우는 건 많은데 사명감이 없어요. 헌신이 없고, 비전이 없고, 미래가 없는 거예요. 세계와 인류가 없고, 제 하나 먹고살려는 이런 사람은 학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신학교도 잘못되고 있고, 일반 교육도 모두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길러야지 능력 있는 사람,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어주고 봉사하고 우리가 함께 더불어 다 잘 살아가는 이런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됩니다. 평화도 만들어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어디 가든지 근면하고 부지런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합니다. 용기와 지혜와 꿈이 있고 실력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구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웃을 잘 섬기고, 가난한 자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이런 훈련도 아이들에게 열심히 시켜야 합니다. 창조자를 알아야 사랑과 봉사의 손길이 나가게 됩니다. 자기만 알면 어떻게 남에게 사랑과 봉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위에 계신 하나님을 알아야 이런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나누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기독교 정신이 있어야 보는 눈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이 시대를 이겨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돈을 써도 아껴 쓰고 절제하고 저축정신도 길러야 합니다. 금년에 우리나라 신용불량자를 조사해보니까 386만 명입니다. 이렇게 신용불량자가 많으니 나라 경제가 일어날 수 있겠어요?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살지 남의 돈을 왜 빌립니까? 돈도 없고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은행에 가서 척척 빌리는 거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가난은 저주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돈은 없는데 왜 남의 돈 가지고 펑펑 씁니까? 왜 남의 돈 가지고 좋은 자가용 굴립니까? 왜 남의 돈 가지고 좋은 식당에 갑니까? 국수 먹고, 라면 먹고, 고구마 삶아 먹지 왜 그런 것 씁니까? 가진 척하고 돈도 없으면서 술값 내려고 내가 낼게 하고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사치하고 옷 잘 입고 다니면 안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머니가 두둑하고, 다 창고가 넘치고, 은행에다가 다 돈을 몇 백 억씩 맡겨 놓고 쓰기를 바랍니다. 저축하고 아껴 쓰세요. 남의 것 탐내지 말고 남 산다고 해서 사지말고 아예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광고하는 건 보지도 마세요. 없는 주제에. 정신 차려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 우리도 서구 문명 이 구라파에 있었던 저 찬란한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문명국가가 되고, 기적이 일어나고, 잘 사는 국가가 되고, 건강한 사회가 되고, 평화로운 정치가 되고, 경제 안정이 이루어지고, 우리 교육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위대한 교육이 되고, 우리의 삶이 정말 모두 다 부러워하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부지런히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부지런히 가르치고 교회생활 부지런히 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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