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죄
본문 : 마태복음 18장 6절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 깊숙이 잠기는 편이 낫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오시오. 그리고 당신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 자디잔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 만한 잔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알 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거요!"목사가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복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목사는 그러면서 큰 죄를 지은 여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풍랑이 심하게 일고 천둥이 칠 때, 파도가 치고 폭풍이 휘몰아칠 때, 사람을 가득 실은 채 바다 가운데서 흔들거리고 있는 배를 본다면 아찔한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만큼 폭풍으로 물결이 높이 이는 해안의 방벽으로 범선 한 척이 이리저리 심히 요동하면서 어렵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방벽에 있던 사람들이 로프를 던져주었습니다. 선원들이 가까스로 그것을 배에 붙들어 맸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한 선원이 실수로 그만 손도끼를 휘둘러서 그 로프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배는 성난 물결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암초를 향해 치달았습니다. 결국 암초와 충돌하여 배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구원을 주는 로프를 자르는 데는 열 조각으로 자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한번만 잘라도 로프는 끊어지고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성도가 한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도 광포한 순간의 욕정이 우리를 점령해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이유를 아십니까? 배의 길이가 300미터가 넘었던 타이타닉호는 1912년 영국에서 뉴욕으로 첫 출항을 하면서 침몰하여, 1500여명이 익사하는 최악의 해난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동안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졌던 침몰사고의 이유는 타아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배 옆에 큰 구멍이 생겨 침몰하게 된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잠수부들과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국제적 조사팀이 음파조사를 통해 바다밑 2.5마일 아래 진흙 속에 묻혀있는 이 유람선을 탐사한 결과, 배의 파손부분은 예상외로 작은 것이었습니다. 배 옆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작은 틈새들이 여섯 개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작은 틈새들,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파손들은 거대한 유람선을 침몰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도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의 <롱의 봉우리>에는 4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있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14번이나 벼락을 맞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에도 꿋꿋이 버텼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한 딱정벌레들이 이 나무에 기어 들어가 나무의 속을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차츰 나무는 거대한 체구를 지탱하고 있던 힘을 잃었습니다. 나무는 커다란 재해를 이겨내고 장장 400년이 넘도록 살아 왔지만, 정작 딱정벌레들의 습격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이겨내지 못해 그간 이루어 온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죄도 멸시하면 안 됩니다.하나님은 작은 죄도 크게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다스리던 시절, 아간 한 명이 외투 한 벌 훔친 것이 죄가 되어 이스라엘 아이성 싸움에서 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죄로 한 나라가 전쟁에 지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 작은 죄도 소홀히 여김 없이 다스려야 합니다.
법정에서 처리하는 형사사건의 절반 이상이 사소한 문제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술집에서의 시비, 친구끼리의 말다툼, 모욕적 언사와 실례되는 행동 등, 모든 사소한 문제가 살인과 범죄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잔인하고 나쁜 사람은 많지 않으나 자존심을 조금 상하게 한다든가 하찮은 허영심 때문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납니다. 작은 일에도 유의하고 작은 문제는 참음으로 큰 불행을 예방하도록 합시다. 우리 가슴속에 있을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작은 벌레 같은 죄와 실수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아까운 목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지극히 작은 죄를 경계합시다. 감히 남의 돈을 훔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잘못 받은 거스름돈 정도는 개의치 않는 경우는 없습니까? 교통순경이 보이지 않는 다고 아무데서나 길을 건너 간 적은 없습니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사람을 무디어지게 만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연애할 때 이성의 손을 처음 잡을 땐 짜릿하고, 스릴 있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황홀하고, 화끈거립니다. 그런데 다음에 손을 잡을 땐 그 강도가 현저히 둔화됩니다. 그리고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저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20∼30년을 같이 살면 밋밋해지고 덤덤해지고 무감각해져서 잡으나 마나입니다. 죄가 꼭 그렇습니다. 처음엔 겁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 오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반복되면 덤덤하고 감각이 없어집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뛰쳐나옵니다. 예민한 감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구리를 찬물에 집어넣고 불을 서서히 지피면 뛰쳐나오지 않습니다. 무감각해지기 때문입니다. 무감각이 저주입니다. 작은 죄라도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면 큰일입니다.
무감각증 환자들이 보통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세균 감염으로 인해 조직이 크게 손상됐기 때문입니다. 세균이 중추신경계를 마비시켜 마취주사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이런 병은 환자로 하여금 모든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런데 무감각증과 죄의 증세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일단 죄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면 서서히 우리 영혼을 손상시켜 ‘상처와 감염’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양심은 점점 무디어져서 결국 영혼이 마비증세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죄의 무감각증에 빠져 있습니다. 은행을 턴 주부로부터, 거액의 검은 돈을 받은 지도급 인사들, 상품화된 성을 ‘문화’라고 포장하는 사람들…. 털면 털수록 드러나는 정치인의 비리. 작은 죄일지라도 ‘아니오’ 하고 거절하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부인은 오래 전부터 남편이 요구해온 댄스 파티에 꼭 한 번만 동행해줌으로써 남편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번쯤 아량을 베풀어서 남편의 요청을 들어주면 결국 남편도 감동되어 계속 교회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저녁 이 부인은 남편을 따라 댄스홀에 가서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여보, 오늘밤은 참으로 즐거웠소 !”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남편은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인도 남편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여보, 돌아오는 주일에는 나와 함께 교회에 가시는 거예요. 그렇죠?” 하고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지 말라구! 이제는 다 틀렸어! 나는 당신이 진짜 교인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당신의 신앙은 엉터리더구만 !”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뼈 있는 말을 덧붙였습니다.“만약 오늘도 당신이 내 요구를 거절한다면 당신이야말로 진짜 교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소. 그리고 당신을 따라 교회에 가야겠다고 작정하였소. 그러나 오늘밤 당신을 보니 당신의 믿음은 진짜가 아니고 단지 고상한 취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구려.
”‘이것쯤 괜찮겠지’라고 하면서 죄와 타협했던 일들에서 돌아서십시오.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34세의 미혼녀 안토니아 머피는 최근 1년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 돈 1천 3백 달러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 사건의 변호사 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회사 돈 9백 달러를 훔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가중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죄를 덮기 위해 새로워 죄를 또 지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으로 시작된 작은 시기와 질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이 지옥에 떨어지느니 차라리 네 몸의 일부를 잘라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 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9)
이것은 아주 작은 유혹일지라도 단호하게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죄라도 반성하고 회개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에이다의 제일 침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 때 한 시각 장애인 복음가수가 들려준 간증 한 토막입니다.
"10살 때 아버지와 사냥을 가게 되었어요. 그 날은 주일이었어요. 어머니는 우리에게 주일예배 드릴 것을 권유했습니다. 아버지는 '주일 한 번 어긴다고 그리 걱정할 것은 없어' 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사냥터에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지요. 아버지는 저를 남겨두고 급히 토끼를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한 물체를 발견하고 총의 방아쇠를 당겼어요. 제 머리카락을 토끼의 꼬리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 날부터 저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 일로 모두 구원을 받았어요. 제 눈을 잃고 그 대신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사탄은 항상 '딱 한 번인데 뭘' 이라는 말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는 가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 예컨대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이퇴계 같은 분들이 예수를 안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너무하지 않는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여기서는 큰 죄와 작은 죄의 차이점에 대해서 다루어봅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죄인가 하는 것입니다. 죄란 말은 헬라어로는 하말티아(Hamartia)인데 그 뜻은 과녁을 빗나간다는 뜻입니다. 어기거나 모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것은 다 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모든 죄를 보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에 회개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다윗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를 보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대표적 죄는 아담이 범한 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선함을 의심하고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범한 죄의 성격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그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습니다(창 3:1).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둘째로 사탄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였습니다(창 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셋째는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넷째로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고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지러지고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사람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 가입니다. 로마서 2장 12절에 보면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2장 14∼15절에서는 보다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즉, 율법 이전의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인 양심으로 심판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작은 죄도 심판하는가? 물에는 큰돌은 물론이고 작은 돌도 가라앉고 심지어 모래도 가라앉습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죄도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와 전가된 의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 회개와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죄는 결국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에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하여 정직한 상태에 있다는 증거이며, 죄에 둔감하거나 마비 상황이 심할수록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죄란 목표를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한 일,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하는 목표를 버리고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이 죄입니다. 죄란 부르심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욕심의 부름에 귀를 여는 것입니다. 죄란 동력(에너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옴에도 불구하고 물질이나 명예를 통하여 힘과 소망을 얻어보려는 시도입니다.
죄의 수학이 있습니다.
① 더하기: 죄는 그대의 문제를 더합니다. 죄된 방법을 쓰면 점점 더 얽히고 골치 아파집니다.
② 빼기: 죄는 그대의 열정을 뺍니다. 죄가 깊어질수록 의욕은 없어지고 무기력해진다.
③ 곱하기: 죄는 그대의 아픔을 곱한다. 죄된 생활이 마취제가 될 때가 있으나 깬 뒤의 아픔은 이전보다 더하다.
④ 나누기: 죄는 이웃을 나눕니다. 죄는 가족까지 쪼갭니다. 죄는 친구를 잃게 합니다. 결국 죄는 그대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을 것입니다. 작은 구멍이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죄라고 해서 내버려두면 한 인간의 생애를 침몰시킬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에서 돌이키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고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온갖 변명을 하며 타당화 시키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지만, 회개하면 죄 사함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짓는 크고 작은 죄와 허물을 감추지 말고, 타당화 시키지 말고,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죄를 버리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얼마 전만 해도 간첩의 자수를 촉구하는 이런 표어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속은 인생! 오늘부터 밝은 인생!" "자수하여 광명 찾자!"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이제까지 우리를 속였던 모든 죄와 욕심의 굴레를 벗어나 하나님 앞에 나의 부족한 죄와 허물을 온전히 내놓고 자수하여 광명을 찾는 복된 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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