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설교

본 받을만한 감사의 사람 (7월1일 주일)

공 상희 2008. 7. 16. 13:21

본 받을만한 감사의 사람 (7월1일 주일) 
  역대하 29장 31-36절

  미국의 햄크스라는 사람은 광산에서 일하다가 두 손과 두 눈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절망하여 자살을 계획했습니다. 그때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한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에 참석했답니다. 그는 설교 내용중에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교수를 만나  "나같이 손도, 눈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사명이 있단 말입니까?"라고 반박을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그대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은 없을지라도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햄크스'는 전광같은 희망을 발견하고 곧 예수님을 영접, 회개하고 입과 귀, 발을 남겨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 후, 스탠포드대학에 입학, 최선을 다하여 공부함으로 미국의 대강연자 가운데 일인자가 되었답니다. 어찌 아니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감사를 빼앗기면 춤추는 자는 사단입니다. 매투헨리목사님은 "감사하는 사람은 진흙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은혜로 안다. 그이유는 보석은 진흙속에서도 보석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범사에 감사하라신 말씀으로 푸시고,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지면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5세의 나이에 유대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하여 29년을 통치하였던 히스기야왕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들을 개혁하는 작업에 열심을 내었던 왕이 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왕이 되자마자 선왕 아하스가 닫은 성전문을 열고 수리하였으며, 아하스왕이 꺼버린 성전의 등불을 다시 밝히고 중단했던 분향 또한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회복운동에 최선을 다하였고, 그리고 모범적인 감사의 제를 드린 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햄크스처럼 히스기야왕처럼 본이 될만한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성결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감사제를 드리게하고 감사제물을 가져오라고 명하며 그것에 우선하여 "너희는 성결케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까닭에 우리는 성결한 심령, 생활, 모습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만 됩니다. 죄는 우리의 기도를 상달치 못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음주에 드리는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연중 드려지는 하나의 형식적인 감사절이 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도록 회개하고 죄를 사함받은 성결한 상태로 드려져야 합니다.
 조선조 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대감이 이상재 선생님을 포함한 문객들을 불러 선교사로부터 받은 비누를 나누어주었답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님이 비누를 받아 칼로 깎아서 먹었습니다. 대감이 깜짝 놀라며 그것은 때를 씻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이상재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해서 그럽니다"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러자 그 곳에 모였던 문객들이 하나같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으며 더러는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속때를 그대로 둔채 겉때만을 아무리 씻어도, 벗겨내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에 감사제가 성결케하는 회개의 행함이 없이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참성결은 백지 아래에 나의 이름을 서명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지의 모든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성결치 아니하면 하나님과 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채워지는 심령을 가진 자가 드리는 감사제만이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본이 되는 감사의 사람입니다.

   둘째로 자원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몸을 깨끗이 하여 나온 백성들에게 감사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라고 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감사의 제물을 자발적으로 드렸습니다. "각각 그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이것이 헌금의 원리입니다. 감사는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득이하여 체면이나 조건 때문에, 또는 재물이 아까워 마음에도 없는 감사제물을 드림은 형식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사오거나 빌리거나 꾸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알게 될 때 스스로 생기는 것이며, 감사의 마음이 자기속에서 우러러 나올 때 제물도 자원하여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찾아오는 제일 무서운 병은 중풍과 암이라고 합니다. 중풍은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참을 수 있는 것도 참지 못해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잘 생기는 것이라면, 암은 참지 못할 것들도 참고 또 참아 내부에다 쌓아두는 사람에게 잘 발생합니다. 이 두 가지 병에 다 안걸리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범사에 감사란 어떠한 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중풍이나 암에 걸릴 소지가 있는 분들은 말씀보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에 초월할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를 초월하는 신앙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미함프는 비행기공장의 직공이었습니다. 그는 50이 넘은 남자로서 두 다리를 잘 쓰지 못할뿐더러 왼팔도 못쓰는 장애자였고, 폐결핵 환자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결혼도 하지 못하여 부인도, 아이도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행복이나 기쁨은 없고 오히려 괴롭고 힘든 고달품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망치가 들려 있었고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끊임없이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아주 없도다"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이 그리 기쁘단말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쁘고 말고요. 물론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가족도, 돈도, 건강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끝날까지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이 계셔서 참으로 기쁘답니다...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본이 될만한 감사자들은 외부에게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속에서 믿음으로 감사가 만들어져 외부의 어려움들을 정복하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세째로 풍성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유대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번제물은 수소 70마리, 수양 100마리, 어린양 200마리, 따로 구별하여 드린 감사제물은 소가 무려 600마리요, 양이 3000마리나 되어 제사를 맡을 제사장이 부족하여 레위인들에게 직무대행을 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풍성한 제물들은 넉넉하고 풍성한 시기에 드려진 것이 아니라 아하스왕의 악정으로 인하여 쇠약하고 황폐하여 궁핍한 상태에서 드려진 것입니다. 그들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넘치도록 바쳤던 것입니다. 체면으로 하는 형식적인 신앙이 오히려 헌금을 인색하게 만듭니다.
 오래전에 데인 족들의 거대한 군대가 스코틀랜드를 침범하려고 했었습니다. 데인 족들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맨발로 포복하여 공격을 해오는데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평안히 야영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데인족의 한 병사가 엉겅퀴를 밟아 그만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무장을 갖추어 데인 족을 진멸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스코틀랜드는 엉겅퀴를 국화로 체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잊을 수 없으시고 사랑할 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옷 잘입고 잘 생긴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그 은혜를 감사할 줄 하는 자를 귀히 여기시고 복되게 하시며 사랑하십니다.
 제물이란 히브리어 제바힘이란 뜻은 '희생'이란 뜻입니다. 히스기야왕과 그 백성들의 풍성한 감사제속에는 그들의 희생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감사의 제물은 희생이 따르는 넘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풍요는 곧 자신에게 돌아오는 복입니다. 내게 지금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최선을 다하여 감사할 때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문제의 해결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감사로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의 나를 돌보실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벌써 또 감사절이야가 되지 말고 '아 감사절이 되었구나'가 되어 모두가 기쁨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감사의 기쁨이 넘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을 찍으면 배경에 따라 사람이 나오듯이 , 나의 삶의 배경을 감사로 하면 감사의 사람이, 불평으로 하면 불평의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이 될만한 감사의 사람들은 언제나 감사의 신앙을 배경으로 하여 축복으로 삶을 마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감사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일본의 데레사로 불리우는 '다마키'여사는 평생을 나병환자들을 돌보며 살다가 자신도 감염되었습니다. 그녀는 병의 증세게 나타나자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줄은 미쳐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져 감사하다"라고 했답니다. 가진것으로만, 가져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리고 없어져도 감사할 수 있는 감사자가 본받을 만한 감사의 사람입니다. 눈썹을 가지고 있으면서 눈썹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자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디 누구에게나 본이 될만한 , 그리고 본받을 만한 풍성한 감사자가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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