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웁시다 (시57:1-11)
이 시간 “새벽을 깨웁시다.”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새벽은 스스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깨워야 오는 것일까요? 우주의 새벽은 가만 두어도 때가 되면 옵니다. 닭이 울어야 새벽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닭이 울지 않아도 새벽은 옵니다. 그러나 인생의 새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깨우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죄악과 어둠과 절망 가운데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예수 이름으로 새벽을 깨우면 어둠은 물러가고 깨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깨우면 기쁨의 광명한 날이 옵니다.
시 57편은 본문 표절에도 나와 있듯이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아둘람 굴에 있을 때 지은 찬송시입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웠던 때입니다. 삼상 22장을 보면 아둘람 굴 얼마나 어둠이 가득했습니까? 그곳은 다윗이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던 사울을 피하여 숨었던 곳입니다. 얼마나 절망스럽든지 4절을 보면 “내 혼이 사자(獅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했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삼상22:2절을 보면 그때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 왔는데 그들은 환란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였습니다. 수심과 어둠으로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 몇 사람만 있어도 분위기가 어두워지는데 몇 명이었을까요? 열 명도 아니고 백 명도 아니고 사백 명가량이었습니다.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아둘람 굴은 400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아둘람 굴은 이리 보아도 어둠, 저리보아도 절망, 이 사람 저 사람 숨소리까지 들리는 한숨과 탄식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다윗을 보니까 새벽을 깨웁니다. 어둠을 물리칩니다. 절망을 물리칩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통쾌한 모습입니까? 여러분 어둠 가운데 계십니까? 여기 아둘람 굴은 온갖 어둠으로 가득 찬 우리 마음일 수도 있고 우리 불우한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이 굴은 우리 민족과 세계의 영적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새벽을 깨우는 것일까요?
1. 부르짖는 기도로 새벽을 깨웁니다.
1-2절을 보면 다윗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입니까?
다윗을 찾아온 400명은 다윗을 장관 삼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상처 받은 사울 왕국에 대해 원한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칼로서 광명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사울이 스스로 이 굴에 들어와 볼 일을 볼 때 그를 죽일 기회가 충분했지만 다윗은 그의 옷자락만 몰래 베었을 뿐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절망 가운데 있어도 기도하면 소망이 옵니다.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세계를 순회하면서 캐나다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침에 숲속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 때 나는 캐나다가 자연의 아름다운 나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 갔었는데 공장의 요란한 엔진소리와 출근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아침을 깨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일본은 산업의 나라요 경제의 나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갔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 때 나는 한국은 주님이 지키시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우리 한국도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선교하고 선진국 대열에서 세계를 지도할 나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새벽기도를 하지 아니하면 마귀가 승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 웨슬리는 "새벽기도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배신의 도배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새벽기도하고 질병이 나았다." 하였고, 이엠 바운즈는 "새벽기도 하고 잘못된 자가 없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전부 새벽기도 한 사람들이다." 하였습니다.
올해 첫 달을 기도로 드리자고 해서 이제 한 달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의 관심이 얼마나 크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영적으로 소홀한 상태로 나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회에 관심이 크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신다면 행사적인 한 달이 아니라 자원자들로 함께 365일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365일 기도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는 교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기도하면 교회에 희망이 옵니다. 기도하면 우리에게 희망이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지만 기도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2. 하나님을 높임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5절을 보세요.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울은 교만하여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 버림 받았지만, 다윗은 하나님만 높아지기를 소원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높이길 사모했든지 11절에도 하늘 위에와 모든 세계 위에 하나님이 높아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새벽이 언제 옵니까? 새벽은 태양이 뜰 때 옵니다. 이처럼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또 높이면 새벽이 옵니다. 어떤 절망도 다 물러갑니다. 귀중한 진리입니다. 내가 높아지면 어둠은 올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높이면 소망이 옵니다. 이것은 영적 공식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낮추면서 하나님을 높이세요. 하나님만 사랑해 보세요. 하나님을 위해 사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높였더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높였더니 바벨론의 총리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만 높였더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인 루시퍼 천사장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어둠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1:6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을 깨우려면 자나 깨나 하나님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까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도와 세계선교에도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온 지구상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에녹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죽음을 보지 않게 하늘로 올리셨을까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우리 몸은 지상에 살아도 우리 영혼은 언제나 천국에 살게 해주십니다. 인생의 즐거움이 없습니까? 고독과 두려움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을 태양처럼 높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망을 온전히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3. 찬송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7-9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아둘람 굴의 그 절망 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여기 비파와 수금 즉 찬송이 깨야 새벽도 깨임을 말씀합니다. 찬송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확정 되었다란 하나님을 찬양할 준비가 확고히 되었다는 뜻입니다. 찬송을 하는데 무슨 이런 다짐이 필요할까요? 그만큼 절망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일국의 왕이 자기 생명을 취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추적합니다. 이리 숨고 저리 피하고 한숨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탄식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눈물만 나옵니다. 두려움과 절망밖에는 없습니다. 노래하자니 노래할 수 없고 악기를 연주하자니 연주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나는 나의 사랑의 하나님을 노래하리라. 나는 변함없는 진리를 믿고 찬양하리라.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멋지게 찬양하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찬송은 영적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새벽을 깨우는 다윗의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흑암의 교황권과 대결할 때 힘찬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종교개혁은 매우 찬양 중심적이었다고 합니다.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터는 성경 번역만큼이나 찬송가 작곡으로도 공헌했다. 독일에서는 모든 농부가 찬송가를 암송하고 있다. 그들은 찬송가를 근거로 조언하며 논쟁하고, 교회의 모든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의 여명은 찬송으로 깨운 것이었습니다.
200여 년이 지난 후, 이와 동일한 결과가 영적 대각성 기간에 미국의 뉴잉글랜드에서 일어났습니다. 부흥과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도 찬송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때 필라델피아에는 한밤중에도 도시의 거리마다 여기저기 가정집에서 찬양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일어난 모라비아 신앙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운동 역시 강한 찬양 운동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찰스 웨슬리를 통해서만 거의 6,500여 곡의 찬송가가 생겨났습니다.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다양한 부흥 운동도 찬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빌 하이벨스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에 나오는 내용인데 "기도를 찬미 혹은 경배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찬미없이는 기도생활을 잘 해 나갈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찬송을 부르면 새벽이 옵니다.
4. 진리의 말씀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시편 57편 곳곳마다 말씀에 선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인과응보를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서야 새벽을 깨웁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외우고 또 외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어느 한 말씀도 오해하거나 가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교육으로 유명하시고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영적 지도자이신 옥한흠 목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옥목사님에게는 제자훈련을 해오는 가운데에서 풀 수 없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성장했는데 교회의 외형에 비해서 능력은 무력하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교회 앞의 유흥가는 갈수록 번창하고 교인들은 무언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조용기 목사님를 만났습니다. “목사님! 저는 우리 사역자들에게서 성령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돕느라 몸부림을 치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조목사님은 “우리 교인들은 어떻게나 뜨거운지 내가 할 일은 날마다 물통에 물을 잔뜩 담아 가지고 가서 끼얹는 것입니다. 잘못될까봐 너무 뜨거워지지 말라고요” 그 때 옥목사님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운동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교육도 좋지만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이 이미 오셨다고 해서 성령을 구하지 않는데 구해야 하나님께서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옥목사님은 성령 충만 받자고 선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들 자기가 속한 교단이 장자교단이고 정통이고 바른 신학을 가졌다고들 자부하지만 성령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가졌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일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는 절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 복음과 아울러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한 말씀이라고 가감하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일 수밖에 없고 진리에 서지 않는 한 아침빛은 비칠 수 없으며 새벽은 깨워지지 않을 것입니다(사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절망을 지시고 그 험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어떤 절망도 어둠도 예수 이름이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새벽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새벽을 기도로 깨우고 하나님을 높임으로 깨우고 찬송으로 깨우고 진리로 깨워서 절망은 물러가고 소망으로 충만한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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