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와 에브라임 (창 41:50-52)
이 시간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신년 첫 주에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하고 싶은 것은 요셉이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 이름이 주는 축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시는 대로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각고 중에도 승리하고 또 승리하여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어 낳은 두 아들이 바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그럼 두 아들 이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잊어야 할 것을 다 잊는 은혜입니다.
51절에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이 말씀대로 므낫세란 ‘잊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장자의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이 요셉의 모든 고난과 상처를 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 속에 요셉이 그동안 얼마나 고난과 상처가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7살에 인신매매로 팔려와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당하였습니다. 사람의 인권이 보장 되지 않던 시대에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죽을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요셉의 상처는 그 뿐 아닙니다.
여기 “아비의 온 집 일”이라 했듯이 자기를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르우벤의 반대로 그를 죽일 수 없자 그들은 요셉을 지나가는 상고에게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도 사람인데 어찌 원한이 없겠습니까? 미드라쉬를 보면 요셉은 팔려 가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셉의 원한이 그 뿐이겠습니까? 동침을 요구할 때 거절하자 모함하여 감옥에 넣은 보디발의 아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모든 것을 잊고 살아기로 결심하고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훌륭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성공했으니 원한을 풀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당시 애굽의 총리라면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력이 대단한 실권 가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잊기로 했습니다. 아주 영원히 잊기로 했기에 다시는 불가능하도록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잊을 것을 다 잊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년말 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고 하는 데에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잊자는 말입니다. 지난 시절 맘 아팠던 것, 속상했던 것, 원수까지도 다 잊어야 합니다. 즉 므낫세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잊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가 살기 때문입니다. 잊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내가 병이 들고 그것 때문에 영육 간에 막혀서 형통치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므낫세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 서로 옆 사람에게 잊으라는 의미로 말씀하십시다. “므낫세하세요.”
바울도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했습니다.
내 죄도 잊어야 합니다. 잘못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도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골2:13-15). 실수도 잊어야 합니다. 지난날의 실수가 망령처럼 되살아나 괴롭습니까? 잊어야 합니다. 억울한 일도 잊어야 합니다. 남의 실수도 잊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나의 선행도 잊어야 합니다. 이 잊지 못함이 나를 교만하게 합니다. 이 잊지 못하는 것이 나의 앞날의 방해물인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이렇게 성장시켜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요셉에게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고통과 원한가지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인 줄 알고 나의 고난과 원한과 선행은 다 잊어야 합니다.
2. 잊을 것은 잊고 계속하여 창성해 가는 은혜입니다.
요셉은 계속하여 창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두 배의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즉 과거는 다 잊고 이제는 앞만 보고 창성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자를 낳고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과거는 므낫세하고 미래는 에브라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과거는 므낫세로 다 잊고 미래는 에브라임으로 창성해야 하겠습니다. 뒤를 보면 시험 들어요. 앞만 보고 전진해야합니다.
그럼 창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52절에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여기 “나의 수고한 땅에서” 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수고 없이는 창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총리가 되었으니 쉬엄쉬엄 좀 편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했다면 요셉은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했기에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의 흉년을 잘 해결하여 애굽 왕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창성하기 위해서 무슨 수고를 하여야 할까요?
먼저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신명기 28장의 약속대로 창성하는 복을 주십니다. 다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수고해야합니다. 시 128편을 보면 경외한 자에게 주시는 창성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자인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난뱅이여서야 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골3:23-24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했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께 한다는 생각으로 어느 곳에서나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은 내 보수 다 못 주어도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다 잊고 창성에 창성을 거듭하는 요셉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 성도는 죽기까지 낮아지셨다가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요셉의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주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이라면 우리들은 그 예수 안에서 요셉과 동일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복음을 굳게 믿으시고 늘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거를 다 잊게 하시고 더욱 창성한 미래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를 므낫세하고 미래를 에브라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신년 첫 주에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하고 싶은 것은 요셉이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 이름이 주는 축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시는 대로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각고 중에도 승리하고 또 승리하여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어 낳은 두 아들이 바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그럼 두 아들 이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잊어야 할 것을 다 잊는 은혜입니다.
51절에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이 말씀대로 므낫세란 ‘잊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장자의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이 요셉의 모든 고난과 상처를 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 속에 요셉이 그동안 얼마나 고난과 상처가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7살에 인신매매로 팔려와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당하였습니다. 사람의 인권이 보장 되지 않던 시대에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죽을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요셉의 상처는 그 뿐 아닙니다.
여기 “아비의 온 집 일”이라 했듯이 자기를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르우벤의 반대로 그를 죽일 수 없자 그들은 요셉을 지나가는 상고에게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도 사람인데 어찌 원한이 없겠습니까? 미드라쉬를 보면 요셉은 팔려 가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셉의 원한이 그 뿐이겠습니까? 동침을 요구할 때 거절하자 모함하여 감옥에 넣은 보디발의 아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모든 것을 잊고 살아기로 결심하고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훌륭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성공했으니 원한을 풀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당시 애굽의 총리라면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력이 대단한 실권 가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잊기로 했습니다. 아주 영원히 잊기로 했기에 다시는 불가능하도록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잊을 것을 다 잊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년말 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고 하는 데에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잊자는 말입니다. 지난 시절 맘 아팠던 것, 속상했던 것, 원수까지도 다 잊어야 합니다. 즉 므낫세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잊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가 살기 때문입니다. 잊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내가 병이 들고 그것 때문에 영육 간에 막혀서 형통치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므낫세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 서로 옆 사람에게 잊으라는 의미로 말씀하십시다. “므낫세하세요.”
바울도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했습니다.
내 죄도 잊어야 합니다. 잘못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도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골2:13-15). 실수도 잊어야 합니다. 지난날의 실수가 망령처럼 되살아나 괴롭습니까? 잊어야 합니다. 억울한 일도 잊어야 합니다. 남의 실수도 잊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나의 선행도 잊어야 합니다. 이 잊지 못함이 나를 교만하게 합니다. 이 잊지 못하는 것이 나의 앞날의 방해물인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이렇게 성장시켜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요셉에게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고통과 원한가지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인 줄 알고 나의 고난과 원한과 선행은 다 잊어야 합니다.
2. 잊을 것은 잊고 계속하여 창성해 가는 은혜입니다.
요셉은 계속하여 창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두 배의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즉 과거는 다 잊고 이제는 앞만 보고 창성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자를 낳고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과거는 므낫세하고 미래는 에브라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과거는 므낫세로 다 잊고 미래는 에브라임으로 창성해야 하겠습니다. 뒤를 보면 시험 들어요. 앞만 보고 전진해야합니다.
그럼 창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52절에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여기 “나의 수고한 땅에서” 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수고 없이는 창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총리가 되었으니 쉬엄쉬엄 좀 편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했다면 요셉은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했기에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의 흉년을 잘 해결하여 애굽 왕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창성하기 위해서 무슨 수고를 하여야 할까요?
먼저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신명기 28장의 약속대로 창성하는 복을 주십니다. 다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수고해야합니다. 시 128편을 보면 경외한 자에게 주시는 창성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자인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난뱅이여서야 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골3:23-24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했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께 한다는 생각으로 어느 곳에서나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은 내 보수 다 못 주어도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다 잊고 창성에 창성을 거듭하는 요셉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 성도는 죽기까지 낮아지셨다가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요셉의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주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이라면 우리들은 그 예수 안에서 요셉과 동일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복음을 굳게 믿으시고 늘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거를 다 잊게 하시고 더욱 창성한 미래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를 므낫세하고 미래를 에브라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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