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신년설교

[스크랩] [송년설교]송구영신(送舊迎新)

공 상희 2007. 12. 27. 18:15
송구영신(送舊迎新)


(누가복음 15:11-24)


이맘때가 되면 으레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입니다.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올해는 IMF의 지원을 받았던 원년으로 어려움이 많았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충성하던 가정이 부도로 교회를 떠나야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이들도 많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에 과거의 슬픈 추억일랑 잊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해야 하겠습니다. 낡은 것을 다 버리고 새해와 함께 새것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낡은 것은 무엇이고 새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수십 년을 송구영신한다고 같은 일들을 거듭해 왔지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물론 수첩, 달력, 가계부는 달라졌습니다. 달력을 바꾸는 송구영신, 수첩을 바꾸는 송구영신은 있었지만 주위 환경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산천, 해, 달, 바람 여전히 있는데 무엇이 송구영신입니까?
사람은 새해를 맞으면 계속해서 낡은 것을 사용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옛것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엡4:22-24)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한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행동에 옮길 때입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처럼, 다락방의 실망한 제자들이 성령충만 받고 예수를 전파하는 능동적 삶으로 바뀐 것처럼,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 믿고 낙원을 보장받은 것처럼 변화되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 송구영신의 정신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아버지 곁을 떠나 나중에 비참한 꼴이 되었으나 이유와 원인을 깨닫고,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둘째 아들은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먼저, 생각의 송구영신입니다.
결국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분깃을 미리 받고자 하는 생각은 그를 안달 나게 했고, 아버지를 괴롭혀 자신의 분깃을 결국 받아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쥐엄열매를 먹어야 하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그의 생각은 바뀝니다. 아버지에게 분깃을 미리 받아 가지고 나온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둘째 아들은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아버지 집을 그리워합니다. 자신이 지금 아버지 품을 떠나왔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지금의 나의 상태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송구영신이라는 것은 자기가 당하는 지금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원인이 무엇으로부터인지 자기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계2:5)에서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교회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탕자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고 아버지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18-9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는 구절에서 그의 생각이 변했음을 극렬히 보여줍니다. 떳떳하던 사람이 죄인으로, 아들이 품꾼으로 생각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여기서부터 송구영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 진정한 송구영신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겸손과 온유와 사랑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성령의 마음으로, 보이는 세계의 욕망이 영적 세계의 욕망으로 변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새해를 맞는다 해도 생각의 변화 없이는 결코 새로운 해일 수 없습니다

둘째, 생활의 송구영신입니다.
오늘 둘째 아들이 허랑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새 생활로 출발한 것처럼 낡은 생활을 보내고 새 생활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의 17절에서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는 말에 주의합시다. 이곳은 둘째 아들이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가 삶의 환경 속에서 갈등과 고민과 고독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 가장은 가장의 자리에, 주부는 주부의 자리에,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 장로는 장로의 자리에, 집사는 집사의 자리에, 교사는 교사의 자리에 있어야 행복합니다. 그런 교회, 그런 가정이 좋은 곳입니다. 여러분은 제 자리에 있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빨리 그 자리가 아님을 받아들이고 떨치고 일어나십시오! 오늘 탕자가 그냥 생각만 하고 거기에 머물러있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께로 갑니다.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렇게 하다가는 내 영혼이 죽겠구나!' '이렇게 하다가는 주님께 징계를 받겠구나!' 여러분! 이런 생각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젠 박차고 일어날 것만 남았습니다. (롬13:11-12)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합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창녀가 예수 모시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무식한 어부 베드로가 송구영신하니 3,000명을 한 자리에서 변화시키는 복음의 역군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세리 마태가 송구영신하니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후세에 믿음의 빛을 던져줍니다. 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사울이 송구영신하니 전세계를 복음으로 일군 사도 바울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생활을 정리하십시오. 늦기 전에 하나님을 떠난 생활로부터 하나님을 모신 생활로 들어오십시오! 먹을 것도 없었던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아들의 지위를 다시 부여받았던 것처럼 생활의 변화로 주님의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John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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