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공 상희 2007. 4. 30. 14:43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84)

본문: 누가복음 10: 1- 3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빙스턴은 1813년 영국 스코틀랜드 블렌타이어에서 가난한 가정의 다섯 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야학에서 공부하면서 주님의 구속의 은총에 감격하여 불타는 구령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는 26세에 목사가 되어 중국 선교사를 원했지만 여러 가지 장애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아편전쟁으로 중국선교의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프리카 선교사 모파트 목사에게서 무지와 가난 속에서 노예로 팔려가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아프리카 선교를 결정했습니다. 그는 모파트 목사의 설교를 듣고 헌금시간에 헌금접시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가난해서 헌금할 돈이 없습니다. 대신 나를 통째로 올려놓으니 아프리카 선교에 사용해주옵소서.” 그후 그는 중국 선교의 길이 막힌 것을 아프리카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고 결단했습니다. 마침내 아프리카 선교의 길이 열렸고 그는 세계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 35)

예수님께서 33여 년의 생애기간동안 가장 오래 많이 하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목수의 일이었습니다. 33여 년 동안의 삶 속에서 30여 년 동안 한 집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한 집의 가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요셉이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으로서 한 가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세월동안 목수의 일을 하였으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33여 년 동안 목수의 일을 가장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사명이 목수의 일이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목수의 일을 많은 기간동안 하셨더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이요 둘째는 제자들을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 년여 동안 공생의 기간을 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집의 일원으로, 또한 가장으로 30여 년 동안 지내시다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공생애의 삶으로 시작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첫 번째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며 회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행하신 것이 제자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서에서는 주님께서 시험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는 장면을 묘사하기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자 마자 자신의 복음사역을 함께 도울 사람 낚는 어부될 자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곧장 연결됩니다. 제자를 부르시는 이유중의 가장 큰 이유 즉,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의 사명을 말씀하신 것이 바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약속이셨습니다.
마가복음서에서도,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 또한 "전파하여 가라사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시작은 바로 전파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복음서에는 좀더 구체적인 전도의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예수께서 먼저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오셔서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오심의 목적은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되었고, 이 일을 위해 오심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서의 서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과 빛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다 전파되거나 비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들려져야 하는 것이고, 빛은 비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선포되어야만 생명이 있게 됩니다.
사도행전 8장의 말씀을 보니,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내시가 이사야의 글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 빌립을 보내었는데 빌립이 그에게 가서 말을 붙일 때에 그가 말하기를, "지도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라고 한탄하며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지 않고, 지도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이 복음이 전파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복음,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광고되지 않고, 권고되지 않고서는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더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리라.
로마서 10:16 말씀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실 때에 주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여러분이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시 주님께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이 언제인가고 물었지만 주님께서는 동문서답을 하셨습니다. 행 1:7 말씀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말도 전파요, 마지막 말씀도 역시 전파입니다. 또한 3년간의 짧은 공생애 기간 중에서도 끊임없이 전파하는 일을 게을리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전하셨고, 그 말씀을 전할 제자들을 택하셔서 3여 년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복음서를 볼 때마다, 참으로 예수님의 인내력에 감탄을 합니다. 성격이 급한 저로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인내력입니다. 저 같으면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텐데도 예수님은 참고,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는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들이 그리 좋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항상 실수 투성이고, 오해하고,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는 모습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키우시는데 실패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을 3번이나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가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 궁리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때에 천사들이 주님께 질문합니다.
"예수님, 어찌하여 벌써 오셨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았는데요"
"응, 나 대신에 할 사람들을 남겨 두었어" "누군데요" "제자들"
"아니 주님, 그들을 믿습니까! 그들의 행동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도저히 그들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못하면 나도 못해"
하나의 예화이지만, 이만큼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실수투성이인 제자들을 완전히 믿으셨습니다. 기대감을 가지시고, 사람낚는 어부로 키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70인을 따로 세우셔서 전도의 사명을 주시며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는 추수할 일꾼이 필요로 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세군 창립자 윌리암 뿌드는 말하기를,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남을 구원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전도의 사명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전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합니입까?

1. 전도는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주께서 친히 가시려는 동리에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데나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실 곳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큰 콘서트나 대형 행사엔 반드시 홍보요원들이 와서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고, 무대를 셋팅하고, 홍보하는 것은 당연시됩니다. 또한 그리 해야만 성공을 합니다. 그들은 행사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즈음 TV에서 가수들을 선택하여,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것을 봅니다. 아마 처음으로 한 가수가 '조 성모'로 기억이 됩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홍보시간은 몇 시간뿐입니다. 아무리 게릴라식이지만, 홍보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또한 무대를 셋팅을 해 놓고 기다리죠. 사람들이 온 다음에 무대를 셋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미리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에 미리 전도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여자가 낳은 자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한 자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전도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전도가 주님의 가실 길을 미리 예비한 것이라면, 오늘날의 전도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전도는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7-8)

2. 전도는 권면이 아닌 명령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갈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주 강한 명령입니다. 세상의 법은 주로 하면 죄를 범하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주로 안 하면 죄를 받게 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하는 것보다도, 하라는 것을 하는 것이 더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일하는 것입니다. 3절 초반에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갈지어다!" 이 말씀이 마음에 비수처럼 강하게 박히기를 바랍니다. 꿈속에서도, 잠자리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빨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이 말이 생각나기를 바랍니다.
"갈지어다!" 가서 무엇을 합니까? 추수하라는 말씀입니다. 추수하는 것도 다 익은 것을 걷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지치고 상한 마음을 품고 진정 하나님의 도움밖에는 바랄 것이 없어 추수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낫만 갔다대면 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때가 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은 빌 클린턴을 욕하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는 누가 있었느냐하면, 빌 하이빌스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항상 백악관에 가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많은 신앙인들에게는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빌 하이빌스 목사님에게도 손가락질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 지난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간증을 합니다. "나의 잘못과 나의 실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며 내 곁을 떠날 때에, 나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필요로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래도 언제나 빌 하이빌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대통령일지라도, 조그만 마을의 노인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주님이 필요합니다. 도저히 믿지 아니하며, 말을 듣지 아니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세요. 눈을 들어 여러분이 전도할 대상들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그리스도를 거부해도 그들 어디를 보아도 모두 주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3. 전도는 항상 힘써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6.25 동란 전 인민군 장교의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 인민군 장교는 기독교가 몹시 못 마땅해 기독교인인 아내를 알게 모르게 핍박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생명에도 큰 위험이 뒤따르므로 그는 아내에게 제발 예수를 믿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으나 그 아내는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이 잠들 때엔 그의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6.25 전쟁이 나자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전방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포로 수용소에 있을 때 미군 군목이 와서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한명씩 찬송가를 시켰습니다. 이 때 인민군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들려주던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사히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쓰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도의 대상자들은 바로 늑대굴 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쉽게 낫만 갔다대면 다 전도되면 누가 전도 못합니까? 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리 가운데 있는 양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숨이나 쉴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주님도 아십니다. 이 일이 어렵기 때문에 가장 큰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닙니까?
이사야 59:6-8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바로 늑대의 굴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해 준 성경의 표현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이기심의 섬뜩한 느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몸서리쳐 집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손해나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양처럼 어수룩하고 손해나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을 사람만 있습니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편하고 아무 속썩을 일 없고, 이것저것 대우가 좋은 교회로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뭔가 먹으려고 가는 늑대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늑대를 누가 전도했습니까! 양입니다. 양과 같이 순진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양처럼 어수룩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재고 계산하다보면 전혀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전도해야 말짱 헛고생입니다. 왜, 그들이 이미 계산적인 사람이고, 그들이 이미 요것조것 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만이 늑대와 같이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4. 전도할 때에는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권능을 주셨습니다. 전도할 때에 두려워 말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 염려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전도할 자들에게 권능과 힘을 주셨습니다. 기근이나, 감금이나, 고문이나, 해함이나, 상함도 우리가 전도하려는 그 열정을 끊을 수 없습니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1)

5. 전도하는 자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전도의 열매는 하늘의 상급이 있지만, 이 땅에서도 기쁨을 누리게 해 줍니다. 전도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전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을 아마 누구보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육신의 자녀 한 명 낳는 것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즐겁고 기쁜데 영적인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얼마나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내가 전도한 사람이 교회의 주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즐겁고 기쁘겠습니까! 전도에는 자녀를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아들로 부르면서 영적인 자녀로 삼았습니다. 전도하는 자에게 거룩한 기쁨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자는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영적인 거룩한 기쁨을 충만히 받으시는 전파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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