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신자의 부요함

공 상희 2007. 4. 28. 11:23

신자의 부요함
(롬 8:1; 롬 28:0)

우리 예수를 믿는 신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차를 타지 못하고, 좋은 의복을 입지 못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금생과 내세에 부요한 사람들입니 다. 천국의 모든 보화와 복락이 다 신자들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참 평안이 신자와 신자 들의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최고 학문의 교육을 받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어도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 그 리스도가 없는 가정은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없고 이 세상 뿐이지 내세의 소망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 의 자녀들이야말로 가난하고 없어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도 없고 모든 것은 반드시 유익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 에서 끊을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1. 약속의 대상이 되는 사람>

이런 놀라운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확실히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purpose) 부르심을 입는 자들에게는 모 든 것이 합력하여 선(good)을 이루느니라"(8:2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믿지도 않고 도리어 발로 짓밟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도 사랑치 않는 자에게 주신 약속이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길을 벗어날 때도 있고 가끔 범죄하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참으로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도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하 여 유익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얻었고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결코 정죄를 받을 수가 없고 지옥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Condemnation).>

요한복음 3:36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18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 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강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다리는 여러 개 있지만 죄많은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 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였습니다.
서울서 부산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으나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님 뿐입니다. 에베소서 2:8에 "우리가 그 은혜(grace)를 인하여 믿음(faith)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한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은혜란 말은 하나님 편에서 베푸신 한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요 믿음이란 말은 인간편에 취할 태도, 즉 믿어야 구원얻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편에서의 놀라운 은혜와 인간 편에서의 믿는 것, 이 둘이 합쳐질 때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 주에 있는 깊은 산에 사냥하러 갔다가 그만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종일 헤매다가 해가 떨어지고 캄캄해지자 짐승의 소리, 새 소리는 들려오는데 몹시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소나무 가지를 주워다가 놓고 불을 피우고 밤을 지내고 그 다음날 종일 헤메다가 저녁 때 자세 히 살펴보니 어제 그 자리에 다시 와있었습니다. 쓰러지려고 할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을 놨습니다. 실종된 이 사람을 찾아 나선 구원대원들에 의해 그는 구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산에서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상한 욕망을 가지고 더 나은 생애를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항상 무기력과 허무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그의 사랑의 팔로 당신을 안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세와 내세 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고 있 습니다. 왜 예수님 없이 허덕이며 멸망의 길을 갈려고 합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3. 모든 것이 유익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런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내가 아노니"하고 말씀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 다. 자세히 보십시요, "모든 것이 다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다(Anthing are good). 모든 것이 합력 하여 결과가 좋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약사가 약을 조제할 때 그 어느 약 한가지만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약도 넣습니다. 그러나 이 약 저 약 넣고 섞을 때 병을 고치는 치료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이 모두 달콤하고 좋은 일만 있다고 하지 않았습 니다. 실망하는 일도 당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죽는 슬픔도 당할 수 있고 교통 사고를 만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고통과 환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고 유익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Work together for out good).

요사이 우리는 새벽 기도회 때 창세기에 요셉에 관한 말씀을 읽으며 은혜를 받습니다. 요셉은 행복 한 소년이었고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좋다고 하는 것은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기하는 형들이 요셉을 잡아 학대하고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 갈 때 요셉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같이 아팠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다시 못 볼줄 알았습니다. 총애를 받는 아들이 아니라 궂은 일을 하는 노예로서 앞길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음란한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 위해 그 유혹을 물리쳤을 때 칭찬과 상급 대신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장 보기에는 고생하는 노예요, 어둡고 습기찬 감방 생활이 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절망 상태였습니다. 이 때에 감방문을 열고 "요셉씨 기뻐하십시요. 하 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될 것입니다."고 말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고난 중에 처해 있소. 아무 잘못도 없 소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 해 후에 그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요 감방에도 있지 않고 애 굽 나라에서 제일 큰 인물이 되고 권세는 왕 다음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를 구원하고 그의 가족을 구원하고 아버지와 다시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시 궁중에 찾아가서 "요셉씨 지금은 어떻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예 당신이 옳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good)을 이루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비극적인 일들이 다 내게 있었 던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다 내게 유익하도록 만들어 주셨 습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선(good)이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가 바라는대로만 된다는 뜻도 아니고 환난과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고 번창하는 일만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과수원 하는 사람이 전지할 때 나무들이 말을 한다면 "그러지 마십시요. 나를 해치지 마십시요. 왜 나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합니까?"고 불평하고 반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지로 말미암아 더 좋 은 과수가 되고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믿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 는 것입니다.
죠지 매디슨(George Matheson)이라는 사람은 개편 찬송가 319장 그리스도의 사랑에 관한 노래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 노래 배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죠지(George)는 한 아름다운 소녀와 사랑했 고 약혼을 하고 결혼이 약속되어 있는 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눈에 고장이 나서 아프기 시작해 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그 의사가 말하기를 몇 달 안에 완전히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위로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애인을 찾아 갔더니 그 사실 이야기를 듣자 위로와 힘을 주는 대신 "나는 장님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 었습니다. 꿈과 희망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력을 잃은 것도 슬프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아픔 때문에 더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 가운데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고 은혜로 운 찬송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징계를 통하여 우리를 바로 잡고 연단시키는 것입 니다.

우리가 이 건물의 땅 값을 못 받아서 3년동안 얼마나 애를 태우며 고통을 받고 기도를 많이 했 습니까? 교회떠난 장로 중에는 이것을 찾으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까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변하여 축복이 되지 않았습니까? 새 예배당을 짓기 위해 때를 맞춰서 이 1,500평짜 리 임대 예배처를 주시고 싯가 15억원짜리를 주셔서 건축자금도 되어 결국 건축을 시작하지 않았습 니까? 저희 교회에서 도난 당한 사실이 신문 방송에 보도된 것 때문에 여러 교우님들께서 많은 염려 를 하셨을 줄 압니다(지난 주일 밤예배 때는 설명드렸지만). 그러나 신문기자들을 못본체 했더니 더 크게 보도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0만원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한 800만원 묶어 헌금 외에 수 표들은 즉시 은행에 연락을 해서 찾지 못하도록 죽여 놓았습니다.
그래도 혹 헌금한 것을 아깝게 생각하거나 좋지 않게 생각할 분이 계실까봐(없을 줄 알지만) 말씀드리는 것은 ① 10억 이상짜리 를 주셔서 생긴 큰 유익은 생각지 않고 한 천만원의 손해만 억울하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② 이로 인하여 앞으로 성전 건축하는데 더 큰 손실을 막도록 경계로 삼을 것이고 ③ 이 신문 방송을 듣 고 전국의 2만여 교회가 다 정신을 차리고 조심을 할 것이요 ④ 또 어제 보도에 의하면 그 도둑의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합니다.
변명하는 것 같아서 안되었지만 그 전에 기도원산 1,000여만원 주고 샀다가 더 좋은 기도원 자리 (마석 수동 태화사회관 근처)를 사서 금년에 건축할 예정이므로 팔았는데 2,200만원 가량에 팔도록 계약했습니다. 그 이익금 없어진 셈치면 되겠습니다. 20억 공사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큰일날 것이야 있겠습니까? 물론 한푼 한푼에 피땀어린 정성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환난, 시험, 고통이 없이 좋은 일만 있다는 뜻이 아니라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성공 이나, 실패 모두가 합쳐지고 섞여져서 선을 이루고 유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으리라(Separation)>

사도 바울은 먼저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하고 그리고나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 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들 중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 다고 하셨습니다(롬 8:35). 롬 8:38에서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 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감격에 넘친 어조로 확신있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나 땅에 나 세상 천지에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초원에 화재가 난 뒤에 들어가 보니까 까만 물체 탄 것이 보여서 발로 툭 찼더니 암닭이 날개 를 편채 타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닭의 날개 밑에서 병아리 세마리가 살아서 뛰쳐 나왔습니다. 이 암닭은 자기 새끼들을 살리려고 날개를 펴서 감싸안은 채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찾아 오셔서 우리를 살리 려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환난도, 핍박도, 죽는 것도, 자는 것도, 하늘의 천사들도,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 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시간에 수백 만톤의 물이 바위 밑으로 흘러 내리고 천둥소리 같은 무서운 소리 를 내며 떨어지는데 세상의 그 무엇도 그것을 멈추게 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폭포 도 겨울이 되어 얼면 그 무서운 소리도 잠잠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 안에 있 는 하나님의 사랑은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낙심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 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 바랍니다.
어떤 아빠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타이어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을 태우고 가다가 "너 좀 여기 있어라 아빠가 타이어를 고치고 돌아올테니까"하고 갔는데 뜻밖에 시간이 많이 걸렸 습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와 보니까 자기 아들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아들한테 물어보기를 "얘야,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은 안했니?"하고 물어보니까 "아뇨 나는 아빠가 할 수 있는대로 빨리 오실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아빠가 말씀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기다렸어요"하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옳습니다.
완전한 신뢰와, 완전한 순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아무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끊을 자가 없음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