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눅1:13-17)

공 상희 2007. 4. 21. 09:53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눅1:13-17)

이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는 제목입니다. 세상에서 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위인전을 읽어주거나 큰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를 안고 와서 목사에게 축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저는 주님께서 아이를 기뻐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저도 기뻐서 축복해주곤 합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의 관심사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태 18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질문했습니다. 세상에서 큰 인물들이 역사 속에 길이 남아 기억 되듯 하나님 나라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큰 인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인물이란 막연히 미래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임과 아울러 현재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 있고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큰 자란 현실로 말씀드리면 영적생활의 거장을 가리킵니다. 성경에 영적생활의 거장들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엘리야 다윗 다니엘 이사야 베드로 요한 바울 스데반 빌립 등 영적 거장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 아브라함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그는 영적인 거장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영적 거장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세례요한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례요한을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5절에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그랬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에게 큰 자의 진리들이 가득히 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성경은 세례요한을 큰 자라고 했을까요?

1. 육신의 쾌락보다 하나님을 즐거움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15절에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나 소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낙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움을 삼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거장이 되려면 세속을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결코 큰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청결한 양심에만이 믿음의 비밀이 존재합니다(딤전3:9). 양심이 부패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 수 없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세례요한은 자기를 감추고 예수만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를 증거하지 않고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하고 물었을 때 그는 서슴없이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눅3:16)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요한의 큰 겸손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겸손한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나는 죽어지고 예수만 나타나는 사람 그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타나면 그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죄가 나타나고 내 생각이 나타나고 내 자랑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내 인격 안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1:30-31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눅1:32에는 예수님을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이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면 가장 큰 자가 됩니다.

3. 세례요한은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습니다. 자기는 소멸 되어 없어져도 주님만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이런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44)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질문할 때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한없이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4. 세례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눅1:15에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모태만이 아닙니다. 그는 에세네파와 같이 광야에서 금식하며 메시야의 강림을 기다리며 경건생활을 했습니다. 경건하고 성령 충만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성령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 대 일의 교제가 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든지 그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성령 없이 어찌 영적 거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필수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세속에 대한 욕망을 끊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때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심령은 죽은 심령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5. 세례요한은 조금도 거침없이 다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마3:1-2을 보면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주제인 회개를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이 복음의 주제를 얼마나 외쳤는지 찾아볼 수 없지만 그에게서 발견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거침없이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자기 신앙에 적용하는 사람이 큽니다. 마5:19에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들도 성경의 어떤 말씀도 가감하지 말고 다 받아 들여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가감하면 그는 영적 생활에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 믿지만 예수는 안 믿겠다 하면 그는 유대인들처럼 구원에서 떨어진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혹은 다 열심히 하겠지만 찬송은 열심히 않겠다. 혹은 기도는 열심히 않겠다. 세상 욕망 다 버려도 이것 한 가지만은 버릴 수 없다고 한다든지 그 어떤 말씀 한 가지라도 부정한다면 그의 영적생활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혹은 다 잘해도 내 혀만큼은 고치기 싫다고 해도 역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1:26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만점 가깝게 해도 입을 절제 못하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에요. 입에 재갈을 먹이시기 바랍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덕스러운 말만 하세요. 넘치는 것보다 좀 모자람이 나아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 많이 해도 그 사람은 세상에서도 비웃음거리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입니다.

6. 세례요한이 큰 자인 것은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마3:3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습니다. 전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고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였습니다.

이처럼 전도 많이 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교회사가이기도 한 박용규 목사의 천국 간증을 보면 천국에 높은 빌딩 네 채가 있어 물으니 “가장 높은 빌딩은 미국의 전도 왕 무디 선생의 집이고, 두 번째 높은 집은 감리교의 창설자 영국 출신 웨슬리 집이며, 세 번째는 이태리 성자 프렌시스의 집이고, 네 번째는 한국의 전도 왕 최권능 목사의 집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들은 대부분 전도자들입니다. 이처럼 전도자에게 주는 상이 큽니다. 그래서 단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했습니다.

7. 세례요한에게서 다른 큰 자의 원리를 또 봅니다.

마11:11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를 부인하여 구원 받지 못했다는 말이라고 하지만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한 말입니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은 구약 시대 마지막에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나타난 선지자로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을 했지만 그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되는 예수님을 전했을 뿐 신약에 나타날 십자가와 부활사건 오순절 사건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하고 풍성한 사건을 체험하지 못한 한계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전하는 것 대단히 귀한 일이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영적 거장이 되려면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만 전하면 다 구속사적인 설교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구속사적인 설교의 초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심만을 전하는 것은 세례요한도 했습니다. 이것만 해서는 구원은 받지만 영적으로 더 클 수 없어요. 구속사적인 설교란 예수님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의 성령 그리고 성령께서 각인에게 역사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구체적인 면 그리고 다른 지체나 세상과의 관계나 영적인 삶에 필요한 온갖 진리까지도 다루어 실재적인 영적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 동참하도록 성화 영화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일컬음을 받는 신약의 일군이 될 것이고, 이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큰 영적인 거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에게서 배우십시다. 우리 모두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영적인 거장이 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를 감추고 예수님만 나타내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기며, 늘 기도하여 성령으로 충만하고, 한 말씀도 가감하지 않고 순종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전도하며,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체험하고 전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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