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신명기 1장 34절~40절
어느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나비가 막 나오려고 하는 누에꼬치를 발견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조금만 거들어 주면 쉽게 나비가 누에꼬치를 깨고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에꼬치 한 쪽을 조그만 막대기로 톡 건드려주었습니다. 역시나 자기가 생각한대로 나비가 한 쪽 날개를 너무나 쉽게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나비가 한쪽 날개를 못 쓰는 겁니다. 한쪽 날개를 못 쓰니까, 당연히 날 수가 없습니다. 날 수가 없다가 보니까, 먹이를 찾지 못합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이 나비는 죽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더라면, 이 나비가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고 쉽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갑작스러운 개입에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변화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듭니다.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한 순간에 삶이 끝장나는 수도 있습니다. 공든 탑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수도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엇이 도대체 변화가 되었습니까? 외적인 모습들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적인 모습들은 변화가 된 것 같은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도 그런 모습이 없습니까? 외적인 모습은 다 변화된 것 같은데, 상황은 다 변화된 것 같은데, 아직도 내게 변화되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일까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입니다. 힘든 광야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가나안 땅 때문이었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도, 마실 물이 없어도, 그래도 참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가나안 땅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나안 땅 바로 앞에 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제안을 합니다. 정탐꾼들을 보내서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알아보자는 겁니다.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40일 후에 돌아옵니다.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돌아본 후의 소감을 들으려고 이스라엘 백성들 전부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의견이 하나였으면 좋았을텐데, 둘로 갈라졌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된다는 사람 두명, 안된다는 사람 10명, 누구 의견이 옳을까요? 물론 두명의 의견이 옳다고 하겠죠?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을 너무 쉽게 고수하면서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면 그게 옳은 줄로 알아요.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말씀에 보니까, 다수가 찬성해도 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명기 1장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애굽에서 그냥 노예로 살던 것이 더 좋았겠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까지 끌고 와서 죽이냐? 별의별 소리를 다합니다. 왜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변화된다 할지라도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사람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영화로도 되었던 동화책 중에 왕자와 거지가 있었습니다. 왕자와 거지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서로의 역할을 바꾸면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거지로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왕자가 되었습니다. 이 거지 왕자가 옥쇄를 가지고 무엇을 했습니까? 호두를 깨먹는데 썼습니다. 왕자가 어느날 갑자기 거지가 되어서 거지 소굴에 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가 왕자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고, 왕궁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비웃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바로 그 근본,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중요한 옥쇄를 가지고 호두를 깨먹는데 쓴 것은 아직도 그 안에 거지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겉모양은 거지였는데, 왕자같이 호령했던 것은 그 안에 아직도 왕자근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무엇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은 생각한대로 행동합니다. 우연히 했던 행동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진 행동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적인 모습은 변화되었지만, 그들의 내면, 생각과 마음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그런 모습은 없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겉모습은 변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는 모습은 없습니까?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이 우리 마음속에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 4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 마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마음 한번 잘못 먹었다가 망한 사람들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사야 시대의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서 제사장이 드려야 되는 제사를 자기가 드리겠다고 하다가 문둥병에 걸려버렸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재물에 대한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부부가 한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자살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어디에 마귀가 어디에 넣었다고 했느냐면 그것이 바로 생각이더라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예수 안에서 변화되지 않았다면, 변화되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강조합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고린도교인들에게 강조합니다. 무엇이 변해야 새롭게 됩니까? 마음입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만 새로운 피조물도 될 수가 있는 거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언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길을 가다가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자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무슨 말을 하든지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쌍시옷은 기본이고, 쌍기역, 쌍디귿, 하여간에 된소리로 된 말들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 인격을 나타내 주는 척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의 말이 우리의 인격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내 인격이 달라지는 겁니다. 인격이 어느 한순간에 형성되는 것 아니듯이, 언어도 한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꾸준한 훈련이 중요합니다. 언어가 변화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성통곡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전혀 아닙니다, 광야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일입니다. 홍해 바다를 만나자마자 했던 말들입니다. 또,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자 했던 말입니다. 마실 물이 떨어지자 했던 말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는 부정적인 언어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행동도 부정적일 수 밖에 없잖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내가 생각한대로, 내가 말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지 압니까?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밤새 잠 잘자고 일어나서는 기지개를 켜가면서 하는 말이 뭡니까? 아휴 죽겠네. 밥 잘먹고 나서 뭐라고 합니까? 배불러 죽겠네. 아이가 예쁘니까, 껴안아 주면서 하는 말이 뭡니까? 예뻐 죽겠네. 뭐든지 죽겠네로 시작해서 죽겠네로 끝납니다. 언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사건이 민수기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만일 여러분이 하고 있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100퍼센트 다 이루어주신다면 과연 몇 명이나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숫자를 세기가 너무 어려울 겁니다. 너무 많아서요? 그것이 아니고 숫자가 전혀 없거나, 극소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년에 베스트셀러였던 책 중에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읽어보셨습니까?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죠. 조엘 오스틴 목사님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집에 가셔서 남은 삶을 잘 정리하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조엘 오스틴 목사님 어머니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는 겁니다. 치유에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적어 놓고 매일 자신을 향해, 자신의 몸속에 있는 암 덩어리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매일 좋아질 것이라고, 매일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선포를 합니다. 그런데 정말 낫더라는 겁니다. 의학적으로도 포기한 병인데도, 매일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언어로 선포를 하니까 병도 낫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실제 임상병리학적으로도 실험이 된 겁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쪽 환자에게는 계속 약만 주고, 한쪽 환자에게는 약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언어로, 나는 나을 수 있다. 나는 건강한 몸으로 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선포하게 했답니다. 매일 거울을 보고 이런 말을 하게 했는데, 그 결과가 놀랍습니다. 긍정적인 말로 자신을 향해 선포했던 사람들 중에 80퍼센트 정도가 치유되더라는 겁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80퍼센트라고 하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가 아닙니까?
언어는 우리의 인격을 나타내줍니다. 품위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은 품위있는 언어를 구사합니다. 상스러운 인격을 가진 사람은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속합니까?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습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작은 습관이 큰 일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체면문화 때문에, 그리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유리한 부분만 듣는 습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IMF때에 일어났습니다. 캉드쉬 IMF총재가 우리나라에 와서 임창렬씨를 만났습니다. 임창렬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다 좋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만 보완하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임창렬씨는 뒷부분은 다 잘라내고, 고쳐야 된다는 부분은 다 잘라내고, 좋다는 부분만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도 한국경제 좋답니다. 건강하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IMF 원조를 받는 국가로 전락해버린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남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일어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버릇이 계속되다가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계속되다가 보면, 그것이 인격이 된다.” 여러분들에게 무슨 습관이 있는지만 보면, 여러분의 인격이 쉽게 들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 냄비 같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금방 난리를 치면서 관심을 보이다가도, 그것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관심이 사그러집니다. 냄비에 한 밥과 가마솥에 한 밥은 똑같은 밥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전기압력밥솥이름조차 찰가마 밥솥이겠습니까? 실제로 경기도 어디에 있는 집은 가마솥으로만 밥을 해주는 식당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냄비입니까? 아니면 가마솥입니까?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하나같이 조급합니다. 한 가지에 웃고, 한 가지에 웁니다. 또 남을 원망을 그렇게 합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고맙다고 했던 것을 한번이라도 성경에서 발견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삽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살기 바랍니다. 감사하다는 말 많이 하고 살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습관을 바꾸어 나가다가 보면, 자신의 삶 자체가 바뀌어지게 됩니다. 원망에서 감사로 바뀌다가 보면 인생자체가 풍성해져 있을 겁니다.
새 이름 중에 내일이면 집지으리라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집을 짓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노래부르면서 신나게 논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추운 밤이 오면 내일이면 집 지으리, 내일이면 집 지으리라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추운 밤이 가고 햇빛이 떠오르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하루를 또 보내놓고는 후회한다고 합니다. 내일이면 집 지으리, 내일이면 집 지으리
우리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바로 내일이면 집 지으리라고 울부짖는 새 모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해야 되는 일을 내일로 자꾸 미루다보면 평생 못하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항상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 신앙의 고공비행, 삶의 고공비행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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