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신약 성경과 마태 복음의 처음의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 스도의 세계라" 하는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 가에 대한 선언입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윤회설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입니다. 오늘의 시련을 전생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사이 사람들에게 전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전생의 무엇을 하였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오늘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이 전생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생을 통하여 오늘 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세계관에서 온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도에는 엄격한 4단계의 신분이 존재합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라는 상위 계급 사람들은 호화롭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계의 부자 가운데 인도 사람이 끼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처참하리만큼 궁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5%의 사람들이 95%의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95%의 사람들이 5%의 부를 나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이 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하여 잘 살아 보려는 생각, 제도를 개선해 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 것이고, 자손들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잘못된 종교관, 세계관, 인생관 때문입니다.
아랍 사람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말은 움 살라입니다. 신의 뜻이란 말입니다. 그들의 인생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심이 무척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인 신앙관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입니다. 오늘의 시련을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기도하고 노력하고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찬란한 새벽을 기다리지만,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쓰고, 노력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회교의 움 살라는 운명적, 숙명적 신앙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창조적 진보적인 신앙관인 것입니다.
유교는 예를 중시합니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부모 조상에 대하여 감사하며 사는 것이 덕목입니다. 그런데 부모에 대한 감사가 종교로 승화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추수를 마치고 조상에게 감사하며 제사를 지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 농사가 잘 된 것이 조상님의 은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농사가 안되고,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조상을 잘 못 모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좋은 명당 자리를 잡아서 이장을 하는 것입니다. 유교를 국가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왕조는 소위 말하는 명당 자리를 왕실에서 골라 사용하였습니다. 여주의 세종대왕 능을 가보면 아시겠지만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자리입니다. 햇살이 따듯하게 비췸은 물론이고, 왼쪽에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푸른 숲을 간직한 산이 있습니다. 묘 뒤편 산봉우리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정기가 흐르는 곳에 자리를 왕릉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세종이 이렇게 좋은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지만 아들 문종은 몸이 너무 쇠약해 늘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어린 단종이 왕위를 이어 받았습니다. 그 후 왕실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 가운데 운영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성경을 들고 처음을 펼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우주의 존재에 대한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절로 떨어진 것입니까? 저절로 생겨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 성경을 들고 처음을 펼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 가운데 움직여 가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기차로 화물을 붙였습니다. 기차로 배달된 화물에는 종이로 된 꼬리표가 가는 철사로 붙어 있었습니다. 누구 화물임을 나타내는 꼬리표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람들에 의하여 현인이라고 불려지며 존경받는 디오게네스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집도 없이 술통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를 직접 보기로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커다란 술통이 그의 집이었습니다. 옷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누더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의 몰골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단지 얼굴의 밝은 미소가 스며 있었고, 초롱한 눈망울만 반짝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현인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를 영락없는 거지로 보았거나, 갈곳 없는 초라한 빈민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술통밖에 나와 따사로운 햇살을 쬐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현자라고 존경받는 디오게네스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왕이 왔지만 예를 갖추고 일어나 맞는 대신에 그냥 누운 채로 그렇다고 말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현자가 이러한 초라한 몰골로 살고 있다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어 "나는 대왕 알렉산더요, 나는 무엇이든지 다 가지고 있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줄 수가 있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요?" 하고 말하였습니다. 대왕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현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딱 한가지 부탁이 있소. 옆으로 비켜 서 주시오. 당신은 지금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고 있소!"
이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를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자신은 온 세상을 차지하였습니다.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자로 존경받는 자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거지의 몰골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많이 측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반대로 알렉산더를 불쌍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것, 참된 것,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라는 철없는 젊은이는 세상에서 천 만년 살 것처럼 세상의 썩어질 것을 잔뜩 움켜쥐고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태어났듯이 빈손으로 가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욕심 사납게 세상의 모든 것을 꼭 움켜쥐고, 더 움켜쥐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알렉산더의 인생의 측은하고 불쌍하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렉산더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자기 것인 줄 압니다.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동안, 세상에서 살 동안 맡아서 관리하라고 사용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제 그만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날, 내가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의 사용권은 끝나고 남겨 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이 이 세상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윗을 통하여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네가 복의 근원으로 너를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척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태어난 곳, 자란 곳, 나의 삶의 기반이 다 이곳에 있고, 친척 정든 친구들이 다 이곳에 있는 데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하는가? 내 나이 75세인데 아직까지 나에게 아이가 없는데! 내 친구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나는 아이를 낳을 능력이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아이 하나 없는 나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시는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복의 근원이 된다고, 내 자손이 복을 받고 잘 사는 것 뿐 아니라 나를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을 복을 받는다고! 나 같은 하찮은 존재가 큰 민족의 뿌리가 되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복의 근원이 된다고! 이런 작은 마을에서 양이 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이런 위대한 일이 일어난다구!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믿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망설여지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키로 하였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정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셨음을 보게 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고, 기다릴 수 없는 중에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그 자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자손을 얻어 큰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고, 모든 생물들을 지으셨고,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땅히 섬기고, 경배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인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지어 주신 아름다운 낙원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평안과 풍족함을 잃어버리고, 대신에 질병과 죽음, 전쟁과 아픔, 배고픔과 아픔이 있는 세상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멀리 떠나버렸고, 자주와 형벌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을 구원키로 작정하셨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이 저주와 형벌 아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고, 큰 민족을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구원함에 이르게 하실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신앙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위대한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이새의 아들 가운데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새는 아들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잘 생긴 큰아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유난히 총명한 둘째 아들을 사무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유난히 키가 큰 셋째 아들을 사무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체격이 제일 좋은 넷째 아들, 꼼꼼한 다섯째 아들, 남을 잘 웃기는 여섯째 아들, 달리기를 잘하는 일곱째 아들을 사무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습니다. 이새가 말합니다. "막내가 하나 더 있긴 한데, 그 녀석이----"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왔다는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들은 터라 들에서 양이나 칠 줄 아는 막내가 거기에 합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새는 막내 다윗을 불러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을 보자마자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과 법궤를 예루살렘에 잘 모셨습니다. 나라를 굳건하게 하였습니다.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신장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모든 백성들이 따르고 존경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 임금으로, 나라를 강건하게 한 임금으로, 훌륭한 선정을 베푼 임금으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성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위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윗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임금이 나와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위대한 임금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임금으로, 왕 중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다윗은 한 세대의 왕이었지만 예수님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영원에서 영원토록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다윗은 팔레스타인의 자그마한 땅의 임금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 우리 인간을 짓누르는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임금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어떻게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역사의 중심에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역사는 주전과 주후로 나누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구원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약속대로 우리 주님의 교회는 온갖 환란과 박해 속에서도 약속대로 2천년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시간과 역사의 마침표를 찍으실 것입니다.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양과 염소로, 의인과 악인으로, 구원받아 주님이 왕노릇 하시는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거할 복 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장소에 던져질 백성으로 구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역사는 마쳐지고 새로운 영원한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적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헤겔은 역사란 정반합의 원칙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칼 막스는 역사란 재물에 의하여 움직여 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하여 움직여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여 가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목표하신 곳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의 약속대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된 나라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에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에 사람이 아브라함만 있습니까? 다른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셨을 것입니다.
어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는 가룟 유다와 배반자 브루터스가 있다고 하는데 가룟 유다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박히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니, 가룟 유다는 사실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소중한 도구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잘못 된 말입니다. 만약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였다면 하나님은 가룟 유다를 교회를 세우는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주는 일은 유다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루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는 시간과 역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대한 민국 사람이며 대한 민국 사람으로 대한 민국을 위하여 일하여야지 이완용처럼 일본을 위하여 일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세상,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지 악한 영을 위하여 불의의 병기로 악한 영의 인도에 따라 나의 욕심을 위하여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동안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병기로 귀하게 사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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