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탈출(욘 4:4-5)
1. 개요 요나의 소망과는 달리 니느웨의 멸망은 유보되었다. 그래서 요나는 기분이 나빴 다. 몹시 불쾌했고 화가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내하시면서 요나에게 질문하셨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 그러나 요나는 대답 대신 행동했다. 성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촉막을 지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면서 성의 망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나의 발걸음은 불행한 발걸음이었다.
1. 지난번 걸프전때 이라크에 남아있던 교포들이 뒤늦게 어려운 탈출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우리는 가슴을 조이면서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 했던적이 있다.
2. 탈출이라는 것은 위기상황에서 안전한 상황으로 바뀌는 상태를 말한다. 창세기 에 나오는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소돔고모라 성을 빠져 나왔다. 아슬아슬한 탈 출 이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번져오는 유황불에 타죽고 만다.
3. 본문 속의 요나를 살펴보자. 지금 그의 모습은 어떤가? 그의 생각으로는 니느웨 성에 금방이라도 유황불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재 리 성을 나왔다. 그리고는 성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위에 촉막을 지었다. 그 안에서 햇빛 을 피하면서 성의 멸망하는 실황을 직접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4. 과연 요나의 탈출은 행복한 탈출인가? 아니면 불행한 탈출인가? . 그의 탈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A. 하나님의 뜻은 성 안에 머무는 것이었다.
1. 지금까지 그가 니느웨에 오게된 자촉지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었다. 결코 그의 뜻대로 온 것이 아니었다.
2. 오히려 요나의 생각은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었고, 아예 그 곳에 가지 않기 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갖가지의 방법으로 니느웨행을 피해보려 했었다.
3. 하지만 줄기찬 하나님의 간섭에 결국 요나는 항복을 했고 어떻든 니느웨성 안에 까지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회개하라"는 하 나님의 명령을 외쳤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과정이었다.
4.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니느웨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나의 헌신과 봉사가 필요했다.
B.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가 있다.
1. 요나의 생각에는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판단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합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유혹한 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 고 고집하게 만든다. 결국 스스로라는 올무에 빠지게 만든다.
3. 매사에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다. 심지어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내가 있는 환경은 어떤 곳인가? 과연 지금의 환경은 만족할만한가? 그러나 자신의 처해있는 환경 을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도 대다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의 환경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조사를 해봤다. "만일 당신 이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또 다시 결혼하겠는가? "라고 물었더니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않겠다고 했단다. 지금의 환 경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4. 지금 나의 가정, 나의 배우자, 나의 직장, 나의 교회를 얼마나 만족하는가? 혹 시 당신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의 환경을 떠나려하지는 않는가?
5. 중요한 것은 과연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했느냐다. "주님이시라면 내 게 무어라 말씀 하실까? 가라고 하실까? 그냥 있으라고 하실까? "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생각하자. 그리고 천천히 행동하자. . 그의 탈출이 하나님의 선교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A. 선교는 전도와 양육과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1. 요나는 단순히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혹시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실천하려하 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피하려 했다.
2. 전도 뒤에는 반드시 양육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를 낳앗다고 끝이 아니다. 낳 앗으면 키워야 한다. 키우는 일은 낳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낳은정 이냐 기른정이냐 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않는가?
3. 요나의 임무는 회심한 성도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일을 감 당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회피했다. 결과 그들의 신앙은 우왕좌왕 하는 신앙인으로 만들었다.
4.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사람은 성 전체의 사람들이었다. 그 숫자는 약 1 2만명이라고 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니느웨는 오늘날의 이라크 북쪽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라크는 어떤가? 이라크는 과격파 회교도들이 지배하는 나라 다. 만일 요나가 그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제자로 만들었다면 오늘의 이 라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 모두가 요나 한 사람의 편견과 직무유기가 빚어놓은 결과다.
B.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나도 제자 만들자.
1. 제자란 선생을 꼭 닮은자를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았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자신을 닮으라고 했다. 지금 나는 누구를 닮았나? 혹 시 마귀를 닮지는 않았나?
2.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육을 멀리한다. 그리고 아예 양육에 관심도 없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다 양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중에 그 어느 누구도 자기 혼자 저절로 큰 사람은 없다. 보호자가 있어서 그가 기저귀 갈아주고 먹여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는 어떤가? 과연 자신의 신앙인격 성장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했느냐 말이다.
3. 논에 심어논 벼포기도 농부가 때를 따라 관심을 두고 거두어야만 곡식을 낸 다. 그냥 내버려 둬서는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자신의 신앙문 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하단 말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심각한 문제 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문제점이다. 우리에게는 체계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4. 주님의 명령은 전도하여 그들을 제자삼으라는 것이었다. 제자삼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5. 선교의 최종목표느 무엇일까? 그것은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는 당연히 여기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 요나의 탈출은 인본주의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A. 자신의 생각을 따랐다.
1. 그가 니느웨에 입성했던 촉기, 그는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랐다. 그 결과로 니느웨성에 큰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2. 그러나 그의 생각은 하룻만에 바뀌고 말았다. 하룻 동안의 기적으로 의기 양 양해졌고 머리 끝까지 교만해졌다. 그래서 배짱을 부린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없이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볼 수 잇을 것 같았다.
3. 예수님의 탄생을 별을 통하여 알게된 동박의 박사들은 오직 별만 보고 따라 왔다. 그런데 그 별이 이스라엘의 유대 땅에 이를 때, 박사들은 별보는 일을 그만뒀다. 단념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라면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그들의 선입견이 더이상 별보는 일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되었나? 온 성이 소동을 일으켰고 두 살이하의 수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었다. 엄청난 재난을 불러왔 다. 이 모두가 인본주의의 결국이다.
B.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1. 인본주의는 교만이다. 만일 요나의 니느웨전도가 별 효과가 없었더라면 그는 그토록 완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겸손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의 인도를 구했을 것이다.
2. 그러나 요나는 힘 안들이고 큰 역사를 체험했다. 이것이 그만 그의 인생을 망 쳤다. 순풍에 돛달고 달리는 항해는 결코 인생의 행운이 아니다. 인생이란 굴곡 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3. 성을 나간 요나는 자신의 힘으로 촉막을 만들고 "그늘"을 즐겼다. 자신의 힘 으로 휴식과 쾌락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인본주의 사고방식이다. 먹고 살만해 지면 우리는 안락한 그늘을 만들기에 급급해 있다. 어려울때는 열심히 기도했 지만 이제는 틈만나면 쉬고 싶고 즐기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 록 저녁 집회는 인원이 줄어든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결론
1. 탈출은 위급한 상황을 안전한 상황으로 바꾸는 인간의 지혜다. 그러나 요나의 탈출은 불해의 출발이었다.
2. 우리는 이따금 탈출을 시도한다. 자신이 맡은 봉사로 부터, 자신의 환경으로 부 터, 친구들로 부터, 친척들로 부터, 기타 여러가지 상황으로 부터 우리는 끊임없는 탈출을 시도한다.
3. 과연 요나의 탈출은 어떻게 되었나? 결국 이라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뿐만아니 라 자신의 인생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4. 선교의 최대 목표는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이 사명을 위해 부름받은 존재다. 더 이상 떠나려 하지말자. 그리고 내가 먼저 제자되어 제자를 만드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자.
5. 어떠한 경우도 자신의 손으로 촉막을 만들지 말자. 그것은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요나서 강해 욘4:6-11 제목:하나님의 교육 방법 서론
1. 하나님의 교육 방법을 잘 살펴보면 매우 조심스럽고도 단계적이다. 우리들이 연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요나의 영적 신경 질환을 고치기 위해 그의 성난 발악을 한 번도 노 하신 음성으로 야단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 타이르는 부드러운 자세로 일관했음 을 알게된다.
3. 본문에는 요나를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두 가지 방법으로 소개되어 있다. . 하나님은 작은 것 하나 까지도 목적을 위해 하신다(6-8).
A. 박 덩굴을 준비하셨다.
1. 요나를 위해서 였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서 하신다는 사실을 알 아야 한다. 롬8:31에 그가 너희를 위하시면 이라는 말씀을 묵상하자. 하나님 이 나를 위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2. 요나는 자신을 위해서 촉막을 지었었다. 그러나 뜨거운 햇빛이 촉막을 살라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박 덩굴을 준비하신 것이다. 그를 더위 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3.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뜻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결코 우연도 없다. 건축가 가 대형 빌딩을 짓기 위해 복잡한 설계도를 일일이 그리듯이 치밀한 설계에 의해 되어져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1)기쁨도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져 가는 것도 단지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되고 있을 뿐이다. 결코 자신의 공로가 아니다. 2)슬픔도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슬픔도 주신다(적절한 예화 인용). 3)고통도 하나님의 뜻이다. 특수교육 연구소의 김일권목사는 개척교회를 비교 적 무난하게, 적절한 속도로 부흥시키던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뇌 성마비의 딸 아이를 주셨다. 결국 그 아이로 인하여 그는 목회자로서는 실 패했을지 모르나 그는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그의 정성으 뇌성마비인 딸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개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라 이 땅의 불행한 뇌성마비 아이들을 한 특수 교사가 되는 것이었음을 그는 고백했다. 결코 고 통은 불행이 아 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B.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1. 전번과는 정 반대 였다. 박 덩굴은 벌레가 줄기를 씹어서 죽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뜨거운 동풍을 보냈으니 말이다.
2. 고통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무뎌서 하나님의 섭리를 모른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모른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라고는 말해도 그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다.
3. 요나는 박 덩굴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다. 알려고도 안했다. 오히 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동의해 주신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요나가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박 덩 굴을 죽게 하신 것이다.
4. 요나는 원망했다.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면 원망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원망은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의 자기 푸념이다. 원망하는 자는 우매한 자 임을 알라. 원망은 원수의 가라지다. 성도는`범사에 감사'하는 자이다.
5. 박 덩굴을 주신 목적은 햇빛에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이성을 되찾아 하나 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을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였다. 6. 형통할 때 감사하고 곤고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자. 형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자. . 하나님은 우리를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9-11).
A. 질문하셨다.
1. 하나님께서 `화낼 이유가 있느냐? '고 물으셨다. 인간들과는 달랐다. 인간은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다고 생각할 때 가차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오늘날 가 정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문제도 모두다 엄격한 아버지의 권위 때문이었다. 그 러나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배반중의 자식이라도 한결 같이 살 펴 주기를 원하신다.
2. 요나는 선지자로서는 감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나님께 퍼부었다. 그러 나 이것은 엄연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속에서, 불 끈 치밀어 오르는 성난 말투는 모두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는 사실이다.
3. 내가 싫어하는 자가 축복을 받을 때, 이웃의 교회 라이벌 교회가 부흥을 할 때 나의 솔직한 감정은 어떤가?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자의 인기를 볼 때 나 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4. 요나는 자신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다고 푸념했다. 신경질은 인격체의 노폐물이다. 신경질적인 성냄은 아무리 명분이 합당해도 우리의 생활을 유익 하게 하지 못한다. 우리가 이 점을 고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해서도, 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B.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1. 박 덩굴은 요나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이 저절로 생겨난 것에 불과했다. 다만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박 덩굴이 생겼다고 감사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전혀 무관심했다. 다만 박 덩굴 자체에만 만족했다. 영적교훈을 몰랐다.
2. 나의 박덩굴은 무엇일까? 건강, 재능, 명성, 부모, 처 자식 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박 덩굴은 언젠가 시들 때가 있음을 알자.
3. 니느웨에는 12만명의 생명이 있었다. 과연 12만명의 생명이 귀한가? 아니면 생명없는 박 덩굴이 더 귀한가? 박 덩굴이 귀하다면 12만명의 가치는 박 덩 굴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귀해도 인간이 더 귀하다. 적어도 하나님에게는 인 간이 귀하다.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 그런데, 그까짓 박 덩굴 하 나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4.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사랑을 깨 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