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회개의 손길로 소망 붙잡자(애 3:1-39)

공 상희 2006. 12. 27. 16:03
회개의 손길로 소망 붙잡자(애 3:1-39)  

인간에게 실패와 슬픔, 좌절과 상처가 다 있습니다. 예외없는 진리처럼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당연히 겪는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경험하고 있는 절망과 상처의 울부짖음도 바로 나 자신의 상처의 진통이기도 합니다. 현실과 믿음이 불일치하고 현실과 이론이 불일치한 그곳에서 고통이 일어납니다. 갈등이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극도의 좌절과 상처 가운데서도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다'하면서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예레미야는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고난을 먹고 산 눈물의 선지자 입니다. 그도 누구 못지않은 충성의 사람입니다. 포로시대에 비운의 선지자로서 많은 고난과 상처를 안고 절규한 사람입니다. 그의 애가는 곧 절망을 노래하는 부정적인 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과 소망을 노래하면서 그는 상처를 고치고 절망을 극복해 갑니다.


예레미야는 실로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무서운 병입니다. 사실 요즘 모든 것이 병들었고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다 중대한 것이 있으니 곧 상처와 소망은 이웃이라는 점입니다. 절망과 실패의 상처를 안고 머물지 마십시오. 바로 이웃집에 소망이 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19절 이하에서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라고 했습니다. '중심에 회상하는' 그 마음의 전환점이 중요합니다. 탕자는 굶고 죽어가는 그 지경에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의 전환점이 곧 회개하고 돌이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상처도 크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더 컸습니다. 우리에게 좌절과 실패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너무 습관적으로 오래 머물지 마십시오. 잠깐 상처를 입을 수는 있으나 곧 회개와 믿음으로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생이 있습니다. 평강을 잃고 소망을 놓친 사람들이 허다히 있을 수 있습니다. 상처와 소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한 이웃에 살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술취한 친구를 말에 태워 보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쪽에서 올리면 저쪽으로 떨어지고 저쪽에서 올리면 이쪽으로 떨어 진다. 방법은 오직 한가지뿐! 내가 함께 타고 술취한 친구를 붙잡고 가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술취한 사람보다 더 불안한 존재로 보신다' 의미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동역하는데서 인간은 끝까지 바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의 전환점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