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때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사업을 평범하고 초라한 어촌의 청년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3년여 동안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후에 온 천하를 복음화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청년의 때는 모든 일에 열성적이며 무슨 일이든지 이룰 수 있는 때이며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늘나라의 위대한 사업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을 섬기는 청년이 되라
성경은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혈기방장하여 자기의 지혜와 총명, 자신의 모략과 재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학문을 배워 말과 행사가 능란했습니다. 그가 이제 40세가 되자 자신의
동족을 구원하겠다고 나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혈기로 애굽사람을 죽여서 모래에 묻었습니다. 이것이 탄로
나자 도망쳤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 하였고 이에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허덕이다가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로 오셔서 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얼마나 깨어지고 겸손하고 낮아졌던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는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셔서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43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도록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고
하나님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이 됩니다. 청년의 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나이 늙고 지치고 힘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젊을 때 정의롭고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날카로운
타작기계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111편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시편 119편 9∼10절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 시절에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면 그의 생애를 통해 인류를 위한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YMCA
설립자인 영국의 조지 윌리엄스는 16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이 넘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몸과 영혼을 모두 바쳐 주님을 위해 살게 하소서.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젊은이들은 세속적인 유희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조지 윌리엄스는 또래
젊은이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세속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6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이 그
마음속에 있었으므로 세속과 함께 떠내려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매달 수입의 7%를 선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결국 그의
나이 22세가 되던 해 그는 11명의 청년들과 함께 YMCA를 창설하여 혼란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정신적, 영적 개선을 이루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구원을 받고 꿈을 품으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신명기
30장 19∼20절에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해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젊은 시절 우리가 생명과 복을 택하고 저주와 사망을 멀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담대하게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잠언
3장 5절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고,빌립보서 4장 13절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업가로 체신부장관을 지낸 존 워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정확한 경영능력의
소유자로 그가 투자해서 구입한 물건들은 항상 최고의 유익을 창출해 엄청난 부를 쌓았던 기업가였습니다. 하루는 한 신문기자가 그에게 그의 투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분명한 어조로 “그것은 내가 12살 때 한 투자입니다. 그 때 나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권을 샀는데, 이것이 내 삶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이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소년시절 성경을 읽으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순종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섬긴 자는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
꿈이 있는 청년이 되라
청년의
때에 마음속에 꿈을 품어야 합니다. 꿈이 있는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꿈도, 미래에 대한 환상도 없으면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됩니다.
꿈이
있어야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꿈이 젊은이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꿈과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하면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꿈이 있으면 목표를 향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고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75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평범한 시골 노인이었습니다. 학문도 없고
교육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목동으로 나이 75세가 되어 머리도 희어지고 눈도 어두워졌습니다. 그 때 그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노인일지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자 꿈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그의 나이도 잊었습니다. 자신이 교육 받지 못한 것도, 환경이 어려운 것도 모두 잊었습니다. 꿈이 그를 변화시켜서 그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과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을 향해 순종하여 출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꿈을 품는 것이 아니라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갑니다. 꿈을 품으면 하나님의 꿈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카라일은 “인간은 꿈에 기초를 둔 존재이다.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해도 나는 오직 한 가지 꿈 갖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소유를 다 잃을지라도 꿈을 가지고 있으면 꿈을 통해 위대한
인생을 다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이 있는 청년이 되라
믿음
있는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에게 믿음이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져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린 자녀가 부모를 믿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영생을 상실하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이제 그가 의지할 것은 자신의 이성과 감각 밖에 없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전혀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각으로만 살고
그들이 믿는 신앙도 자신들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우상과 사신을 만들어 절하게 된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믿느냐’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깨달을 수 없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시인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가질 수 없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오직 영이 거듭나 살아나고 성령이
내주하실 때 생기는 것입니다. 영이 죽고 그 마음에 성령이 안 계시는데 어떻게 영적인 세계를 알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눈이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설명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하고 말해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예수님의 은혜를 말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서 그의 영이 살아나야 성령으로 모든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독생자를 주셔서 그를 우리의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의 흘린 보배로운 피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야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해도 우리의 믿음은 항상 전쟁을 치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의심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환경과 느낌을 통해서 마귀는 자꾸만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그래서 많은 삶들이 주님을 믿으면서도 의심을
하고 의심하면서도 믿는 그러한 갈등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출발해서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흉년으로 비가 오지 않고 우물이 말라버리고 풀이 죽었기 때문에 짐승떼가 굶어죽고 같이
온 종들과 일가친척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아내와 조카 롯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곳까지 갔으나 이러한 환경은 그의 믿음을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는 그만 믿음을 접어
놓고 살 길을 찾아 그의 아내와 함께 롯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아내도 빼앗기고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자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살다가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 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니 상속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데리고 밤중에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약속하신 후손이 없자 그의 아내 사라가 그에게 ‘당신은 나이 들어 늙었고 나는
단산했으니 아기를 낳을 수 없고, 그러나 후손은 얻어야 하니 더 늙기 전에 여종 하갈을 통해 후손을 얻으라’고 유혹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만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으로 믿음이 흔들리면 그 결과는 커다란 파괴와 고통이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은 우리가 비록 믿음이 약해서 의심하고
넘어졌을지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넘어졌다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고 받아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인 이상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고 마음에 고통이 다가오면 믿음이 흔들리고
의심을 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곧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용납해 주시고 다시 추슬러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90세 되는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이 소년이 되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버지의 자랑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그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100세에 얻은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아브라함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절대 믿음, 절대 순종으로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장작을
펼쳐 놓고 아들을 묶어 번제물로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독자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창세기 22장 16∼17절에 기록되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가 믿음으로 그의 마음을 요동하지 않고 절대 순종, 절대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믿음에 굳게 서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수 많은 전쟁을 통하면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고 일으켜 주시어 결국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 주십니다.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 앞에서는 각종
어려움과 난관도 다 힘없이 무너집니다.
4.
강하고 담대한 청년이 되라
여호수아
1장 6∼9절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서면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람과 파도를 보자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워져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항상 세상 파도에 빠지는 이유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환경을 보며 우리의 느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 믿음은 시험에 들고 약해져 두려움으로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제 겨우 17,18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다윗이 블레셋의 큰 장수
골리앗을 쳐서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까? 사울 왕과 이스라엘의 모든 명장들이 겁을 내어 도망을 쳤는데 어린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와 지팡이만 들고
골리앗을 대적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가 환경을 보았으면 떨고 뒤로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만군의 야웨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인생 노정은 너무나 험합니다. 우리의
살아온 길이 그렇게 평탄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이처럼 크고 작은 험한 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운명은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거친 운명에 부딪힐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또한 시편 23편 4절에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노정이 아무리 험난해도 주님은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주님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나가면 주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희망과 꿈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나가면 주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합력하셔서 선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저버리지 말고 마음을 비관적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항상 주께 두고 주님을 바라보며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태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늘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길이 바로 그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믿음과 능력을 줍니다. 세상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위로가 될지언정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9편 105절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고린도후서 6장 7절에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십시오.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 속에서 살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로 사귀면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비밀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는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세상의
마귀보다 더 크시므로 그 어떠한 곤란이나 환난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는 것일지라도 하나님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내일의
역사는 누가 만듭니까? 청년이 만듭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꿈과 믿음과 담력을 갖게 되면 나이와 상관 없이 항상 청년으로 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젊어야 청년입니다. 우리가
창조자를 기억하고 섬기며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러한 청년과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마음도 몸도
젊은 사람을 사용할 뿐 아니라 비록 나이 많아도 마음이 늘 청년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75세가 되어도, 모세와
같이 80세가 되어도 그 마음속에 청년시절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고 하나님에 대한 꿈과 믿음과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고 나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청년처럼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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