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심판(전 12:1-14)
다니엘 웹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한 번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된 일인데 뉴욕의 어떤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명과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저녁을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웹스터 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웹스터는 얼굴을 들고 대답하기를 "제일 나에게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내가 심판을 받고, 하늘 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에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집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엄격하고 두려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에 두 사람의 농부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고 한 사람은 불신자였습니다. 한 날은 불신자 친구가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하나님도 모르고 그리스도도 모르고 믿지도 아니한다. 그러나 지난 봄에 파종을 잘하였고 여름엔 순풍으로 물대기와 김매기를 잘하였고 가을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신자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었다."
그때 그리스도인 친구는 이렇게 답신했습니다.
"하나님은 10월의 결과를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의 정하신 날에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그 언젠가 갑자기 밤의 도둑같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지명 수배가 되었어도 수십 억의 채무가 있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으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신앙과 행위를 따라 추호의 가감도 없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1553년 왕위에 오른 후 기독교인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후퍼도 있었습니다. 후퍼의 화형을 담당했던 집행관은 후퍼에게 신앙을 포기하면 살려 주겠다고 구슬리면서 「생각해 보시오 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후퍼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영원한 기쁨의 삶을 살며 비 신앙인은 영원한 고통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가 난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는 속담처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요즈음은 녹음기가 널리 보급되어 모든 대화나 강연을 있는 그대로 녹음하여 기록으로서 영구적으로 보존이 됩니다. 기침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녹음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에 의하면 오늘 한 말 뿐만 아니라 어제 한 말도 되살려 녹음기에 옮겨 놓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군용견이나 경찰견이 땅에서 범인의 냄새를 맡으며 어디까지라도 추격해 가는 것처럼 사람의 하는 말에도 각자 특유한 파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 파장을 추적하면 우주 공간 어디 엔가 날아가고 있을 그 사람의 말을 녹음기에 옮겨 놓을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이론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엄청난 생각을 현실로 옮겨 놓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를 기억하고 계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일생동안 행한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됨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갈 6:7~9, 고후 9:6, 전 11:9)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겔 33:20)
어떤 판사가 해수욕을 갔다가 물에 빠져 죽게된 사람을 건져주었는데 몇 년 후에 그 사람이 큰 죄를 범하고 바로 그 판사 앞에 서서 전에 살려준 것같이 살려달라고 했으나 "전에는 살려주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네 죄를 재판하는 사람이다."라고 냉정히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주시고 부활하셨으나,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고 말씀했습니다. 즉 지금 예수를 믿으면 구세주가 되시고 아니면, 심판주가 되십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
인간의 생활은 불확실한 것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합니다. 죽음과 심판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심판할 날짜를 정하여 두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은 누가 할 것 같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예수님이 죄악을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심판하실 때는 표준이 있습니다.
계시록을 보면 책들이 펴 놓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책 한 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인생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행한 대로 쓰여지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위하여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이 책을 관리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 그의 보혈이 이 책의 모든 죄를 지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이 다음에 핑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생명책입니다. 이 책은 한 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믿음이 장성했는지 그 행위를 따라서 상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단어가 둘이 나옵니다.
첫째 단어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확실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죽음의 손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한사람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가지고도 죽음의 때가 올 때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착함도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다윗은 "죽음과 나 사이는 한 발자욱 거리밖에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를 숨기고 피하여 다닐 수도 있고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라는 목사님의 호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대면해 일생의 죄를 다 내놓고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성경은 두 가지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크리스천들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구원이냐 멸망이냐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은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 사는 동안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 모든 것에 대해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할 이들을 위한 심판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들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믿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지상에서 행한 모든 행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형벌을 받느냐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어느 날 심판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될까요? 세상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라. 네 돈을 남에게 주라. 빚을 갚으라. 그러면 천국에 간다"고 세상은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심판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 준비할까요? 그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많은 나라에 가 본 경험을 갖고 있던 영국군장교가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서 경험담을 말해달라고 해서 여러 나라에서 본 것들을 얘기 해주고 나서 그의 말에 홀린 청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어서 주님 앞에 선후 5분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주님의 재림으로 역사는 종말을 맞게 됩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끝나면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자신을 평가하고 내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자신을 정돈해야 합니다. 인생이 시작되었나 싶었는데 젊음도 잠간입니다. 노년이 금방 찾아옵니다. 마치 계절이 왔다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직 젊었을 때,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직 눈이 잘 보일 때, 아직 목소리가 쟁쟁할 때,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절). “. . . 전에” 라고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벌써 늦었습니다. 인생의 막을 내려야할 때면 이미 늦었습니다. “기억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힘이 있을 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를 향하여 밀려오는 저 끝, 종말, 마지막 시간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는 그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한달 동안 저희 교회에 여러 가정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날은 오는 것입니다. 폭풍의 계절 같은 어려운 노년기가 금방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2절)고 합니다. “그리하라”는 1절에 있는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7절 마지막에도 나옵니다. 그 기억의 내용은 1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며 사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끝이 오면 하나님의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한 해를 살아도 마지막 평가의 때를 의식하며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치 마지막 심판이 없을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무지하고 어리석게 사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 하였도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네게 주리라”는 칭찬을 들어야 됩니다. 우리 중에 젊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금방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마지막 평가의 주인과 시간과 장소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보고 죄를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새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종말의 때가 오면 손발이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3절). 손과 발이 떨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손과 발을 가지고 주를 열심히 섬기며 사는 것이 마땅한 인생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13절).”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선악간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살피면서, 손발이 떨리기 전에, 허리가 약해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 씹어서 먹고 잘 소화해서 건강한 힘이 있을 그 때에 여호와를 기억하고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 앞에서 온전하게 살려는 부단한 노력이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그 때가 되면 맷돌질도 멈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요”(3절) 솔로몬이 유머감각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또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절에 보니까 어느 사이에 귀가 들리지 않을 때도 온다고 하였습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힐 것이며.” 길거리를 향하여 열려 있던 문이 어느 새 닫혀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할아버지 한 분은 예배를 마치면 제게 와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싶은데 절반밖에 안 들립니다. 그래도 보청기를 끼고 교회에 오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들릴 때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어느 날 창문이 닫힐 것이요, 눈이 안 보이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새벽잠이 없어져서 새소리만 나도 깬다고 하였습니다. “새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4절) 바스락 소리에도 잠이 달아납니다.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드시는 분들은 감사하십시오! 몸과 마음과 영혼이 회복되어 힘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손과 발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가 되면 찬송을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요”(4절). 저도 전에는 창창하게 부르던 멜로디가 어느 순간에 보면 반음이 내려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찬송을 부를 수 있을 때, 아직도 목소리가 창창할 때 열심히 찬송하십시오! 그 날이 닥치기 전에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서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시기 원합니다. 그 때가 되면 기운이 없어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5절). 전에는 당당하게 길을 걸었는데 이제는 길을 건너기가 두렵습니다. 조그만 언덕만 만나도 걱정이 되고 중간에 한 번씩 쉬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토로하였습니다. “헛되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붙잡은 것 같은데 어느새 빠져나갔다는 의미입니다. 가진 줄 알았는데 없더라는 말입니다. 젊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노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언제 인생이 지나갔나?” 합니다. 알 수 없는 사이에 빠져 나가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젊다면, 힘이 있다면, 눈이 밝다면, 손발이 튼튼하다면, 허리가 곧다면 그 몸과 그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을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머리는 백발이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또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요”(5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유머감각이 또 나타납니다. 살구나무가 하얗게 꽃이 피지요? 이곳에도 보니까 살구나무에 꽃이 핀 분들이 보이네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말총 같던 튼튼한 머리카락이 흐늘흐늘해 지면서 흰머리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직도 머리가 검을 때, 기운이 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시게 되기를 원합니다. 언젠가 메뚜기도 짐이 된다고 했습니다. 식욕이 약해져서 먹지를 못합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5절). 별로 먹고 싶지 않고 겨우 연명하기 위해서 먹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참 맛이 있을 때 잘 먹고 힘을 내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즐겨하시는 삶을 꼭 사시기를 원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5절). 우리의 호흡이 끝나고 육신이 무너져 조문자들이 우리 집을 찾아올 때가 속히 온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건강할 때, 아직도 시간이 있을 때, 아직도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때 열심을 내어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또 생명줄이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6절). 전에 물을 긷던 바가지가 모두 깨지고, 은줄에 매어 방을 밝히던 밝은 등불이 은줄이 끊어짐으로 깨지는 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절에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는지 나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에 40살이 갑자기 70살로 뛴다면 기절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 가서 어느새 그렇게 되었는지 나도 몰라요. 어느 날 “벌써 인생의 마지막 항구에 와 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젊은 분들은 축하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 보십시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인생이 지나갔습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40세까지는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40이 지나니까 내리막길이라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던지!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미리미리 자신을 준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십시다! 끝나면 다시 회복할 수 없어요. 역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마치면서 남은 일은 심판의 주를 만나는 일입니다. 몸은 죽어서 땅에 묻힙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7절). 한 줌의 흙으로 지은 우리의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숨결은 창조주에게로 돌아갑니다.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신” 호흡을 뜻합니다. 입술의 호흡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다시 가져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섬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 오늘 아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도전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끝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준비하고 가다듬고 심판자 하나님을 만날 것을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끝에 “경계를 받으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나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사람은 영원히 예배를 드린 사람이에요. 오늘 놀러간 사람은 영원히 놀러간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카메라는 다 찍어 놓았어요. 언젠가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함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오신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자로 오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운을 주셨고, 좋은 눈과 귀를 주셨고, 건강한 손과 발을 주셨고, 튼튼한 허리를 주셨고, 단잠을 주셨고, 먹을 것을 주셨고, 용기와 힘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며 살라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신실하지 못했던 부분은 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동안 신실하게 주님을 섬겼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직장을 위하여 공헌하셨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고 회개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큰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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