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누가 의롭습니까?(욥기 25:1-6)

공 상희 2006. 8. 9. 15:57
누가 의롭습니까?(욥기 25:1-6)  

 

누가 의롭습니까?(욥기 25:1-6)


오늘 우리가 생각하게 될 욥기 25장은 욥기 중에서는 가장 짧은 장(章)입니다. 빌닷은 욥의 한 말에 대하여 매우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악인이 형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지난 시간 생각할 때 욥이 한 말에 대해서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빌닷이 볼 때 욥이 하나님의 법정에 나아가 재판을 받는다면 자기 자신의 무죄함이 드러날 것이라며, 너무 담대하게 하나님의 권세에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빌닷은 욥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욥이 옳다고 생각해서, 또한 승리를 위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패자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빌닷이 욥의 생각이나 그 친구들의 의견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악인이 잠시 동안 형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고 욥은 악인이 드디어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의견의 차이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빌닷은 여기서 하나님을 높이고 인간을 낮추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먼저 빌닷은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런 존재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가 많고 깨끗치 못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을 매우 위대하게 묘사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것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저지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리,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실 어떤 형편에 있다고 하더라도,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이나 시비, 불평이나 불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든지 그 뜻대로 행하실 수 있고, 행하고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 때문에,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니엘 4장 35절에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가 모든 창조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지시와 뜻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광스런 무리들도 모두 하나님께 복종하며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평온을 즐기십니다. 거룩한 천사도 하나님과 다툴 수 없으며 천사들 사이에도 다툼이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일이나 다툼 없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 안에 있는 그 숱한 별들, 그리고 해와 달이 각각 그들의 궤도를 지키며 서로 부딪치는 일이 전혀 없이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강이 있는 곳이 있다면 그 평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사야 57장 19-21절에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에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습니다. 거기는 하나님과 언제나 교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에덴 동산에 살 때는 얼마나 평화롭게 지냈습니까? 마음에 근심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할 때 평화가 없어졌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왔고 하나님 만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평강을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죄가 우리를 졸졸 쫓아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재벌로 살아도 죄를 범하면 불안합니다. 권좌에 앉아서도 죄를 범하면 평화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귀한 말씀만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만 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고귀한 생활의 본만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은 것이 아무리 크고 더럽고 무서운 죄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깨끗이 씻음받게 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우리 마음에 참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3절을 보세요. “그 광명의 비침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랴.” 4절에서는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고 합니다.


하나님의 햇빛은 이 세상 모든 지역에 도달합니다. 일년 내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비취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한결 같으심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식의 빛 아래 있으며, 그 앞에 적나라하게 벗겨져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가리워서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가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했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싫어하며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부한 사람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있고 병든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 많은 사람이 있으며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세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꼭같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면에 있어서는 꼭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예외 없이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인종의 구별도 생활 환경의 차이도 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이 죄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그가 죽게 됨으로 그의 자손인 우리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의심하실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해 죽게 된 것과 그의 후손인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담은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에 인간의 대표되는 사람이 범한 죄는 모든 인간에게 그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입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세요. 여호수아 7장에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장군을 선두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난공불락의 도성 여리고를 무난히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점령해야 할 곳이 아이라는 성이었습니다. 먼저 정탐을 보냈더니 다녀와서 보고하는 말이, “아이 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이기 때문에 우리 군대 전부가 출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2-3천명 정도의 군대만 보내면 아이 성은 어려움 없이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군께서도 직접 지휘하시지 말고 여기 계셔도 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 장군은 넉넉하게 3천명의 군대를 아이 성에 보냈습니다. 아, 그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 성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반격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군대가 36명이 전사하고 도망쳐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내려오는데 하여간 얼마나 혼이 났던지 성경에 보면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 장군은 기가 막혔습니다.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군들과 함께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이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십니까? 우리가 요단 저 편을 족하게 여겨 거기 머물러 있었더라면 이런 망신은 안 당했을 것 아닙니까?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참패를 당했으니 이제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 사실을 알고 우리를 포위해서 우리 이름을 이 세상에서 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우리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면서 여호수아 장군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일어나라.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범죄했어. 내가 너희에게 한 언약을 어겼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내가 분명히 말하기를 그 성에 있는 물건이든 돈이든 모두 내 것이니 너희는 손대지 말라 했는데 너희 중에 하나가 이 명령을 어겼어. 내 물건을 도적하고 사기해서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았다. 이제라도 너희 가운데 그 죄를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일어나서 네 백성을 성결케 하라” 했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제비를 뽑자 아간이란 사람에게 그 제비가 갔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사람이 아간을 돌로 치고 불살라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스라엘 민족이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은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죄를 범하는 일이 온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만큼 큽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전 인류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죄 아래 있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0-18).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악합니다. 의롭지 못합니다. 목구멍, 혀, 입술, 입, 발의 순서로 악한 사람들의 생활을 말했는데 여기 나온 것 외에는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어디든지 있는 것이므로 그 전부를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것만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인간의 생활은 확실히 여기 대표적인 것 두 가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먼저 입으로 범하는 죄를 보십시오. 입이란 거짓의 특징입니다. 입으로는 무엇이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 또한 시침을 떼고 모른 척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벵겔의 말대로 “범죄의 큰 부분이 말로 말미암는 것” 입니다.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말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것도 사람뿐이지만 그 말을 거짓으로 쓰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사자같이 잔인한 짐승 가운데 사는 것이 오히려 거짓말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독사의 입술 안에 독이 있고 이빨이 있고 그것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처럼 사람의 입술에는 아름다운 말이 있으나 그 말의 이면에는 남을 해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있습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저주는 남이 망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고 악독은 그것이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잠언 26장 2절에 보면 “까닭 없는 저주는 남에게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주받지 않을 사람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하늘에서 빙빙 돌다가 들어갈 데가 없으면 나갔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입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할지언정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로는 어떤 죄를 범합니까?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했습니다.

발은 행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의 저주가 살인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마치 독사가 입에 독을 품은 채로 사람을 물려고 빨리 달려가는 것처럼 개인으로는 살인이요 국가적으로는 전쟁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앞에 있는 그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있어서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더 불안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해 질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의인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깨달은 사람도 없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치우쳤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요? 세상의 것을 찾기에 마음이 급급해서 하나님을 찾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시는 분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다 치우쳤습니다. 나침반의 방향 감각이 무디어진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이 끌려, 하나님을 찾아 가야 할 양심의 바늘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필요 없는 존재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의 본성은 다 하나도 남김없이 쓸모 없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도 찾지 아니는 사람들입니다. 칼빈은 “다른 모든 것을 다 배우고도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진정 공허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후 윌리암 제이는 “나의 기억력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만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 하나는 나는 큰 죄인이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세주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죄를 떠나 바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광명에 비췸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서 깨끗하다 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도 시편 51편 1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이라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벌레 같은 사람, 구더기 같은 인생이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많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온 국민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민족이 되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아 하나님의 축복 받는 나라 되기를 바랍니다.

박조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