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복

공 상희 2006. 8. 2. 16:12
 

 

 

 

 

 

본문: 시편 84편 1-4절 

 

오늘 저는 본문을 중심해서 2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성도가 교회를 통해서 복을 받으려면  교회에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성장하는 교회를 연구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섬긴다는 것은 그 안에 쌓일 수 있는 불만이나 허물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며 극복했다는 말 일 것입니다. 

요즈음은 왠일인지 내 교회라는 주인의식이 사라지고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참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떠나는 사람도 이유가 있고 더 잘 섬겨 보려는 의도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방랑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기둥이 되겠다는  목표를 꼭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교회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담임목회자를 좋아해야 합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막히고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뚫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사람관계가 막히면 은혜의 통로도 막힙니다. 특히 담임 목회자와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목회자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면 교회에서도 마음이 멀어지게 됩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목회자에게 마음이 닫히면 판단할 것을 보이지만,,,,,,,,, 목회자에게 마음이 열리면 내게 달던 쓰던 말씀과 권면을 통해서 아멘 아멘 하면서 비전을 품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멀리하게 하는 제일 첫째 전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까닭 없이 목회자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농간에 붙잡히지 말고 목회자도  언제나 순간적인 잘못에는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때로 큰 잘못이나 지속적인 잘못이 아니면 목회자의 잘못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이해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해가 없으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교회의 기둥이 되려면 목회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성도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둥이 되는 분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잘 노는 사람들입니다. 일주일에 5-6일을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얼마나 다른 성도들과 잘 어울리는지 모릅니다. 어울림 속에 진리가 있고, 어울림 속에 행복이 있고, 어울림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항상 긍정적이여서 어디를 가든 무슨 모임이든 분위기를 화평하게 하고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이렇게 어울릴 줄 아는 분들이 결국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 일이라면 끝까지 남아 처리하고, 교회 행사라면 빠짐없이 참석하고,  언제나 동참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사실상 교회 일은 아무리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고,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필요로 할 때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이라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자리를 지키는 성도여야 한 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은 자신의 판단과 상식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과분한 정도로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의 기회를 포기하면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섬겨야 합니까? 나만 혼자 일하는 느낌이 들어서 억울할 정도로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억울함을 반드시 보상해 주시기 때문 입니다.  

 

특히 헌신의 순간에 앞장서야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잠잠히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의 기둥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교회의 기둥이 되는 일에  꿈도 꾸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잘 사는데 교회의 기둥이 되어서 부담을  왜 지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둥이 되는 축복은 이 세상의 어떤 축복보다 소중한 축복이고,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입니다. 교회를 힘써 사랑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저는 1, 목사남과의 관계가 좋아야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교회일에 십자가를 지고, 섬기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아무리 열심히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충성 한다고 해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할 수 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하고 능력 주심을 감사하고 모든 일은 주께서 나를 도구로 쓰셨으니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 하신다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돈키호테의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자기는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담임 목회자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면 큰일 납니다, 

담임 목회자의 마음에 빤짝 빤짝 빛나는 별과 같아서 누구만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하고 축복하고픈 마음이 생겨서 흥분이 되야  하는데,  누구만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을 목회자가 오래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큰 두 번째로 교회를 사랑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본문의 시편을 지은 고라 자손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 교회도 자연히 사랑했습니다. 가끔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면 교회도 사랑할 것입니다.  

 

교회를 싫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교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는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댑니다.  

교회가 싫어진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교회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 답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언제나 문제는 있기 마련입니다, 제대로 된 성도라면 교회의 약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더 사랑하고, 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마음을 다해 교회를 사모하는 삶 > 

오늘 시편을 쓴 고라 자손의 눈에도 하나님의 장막이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막도 사랑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장막을 상사병이 걸릴 정도로 사랑하면서 그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얼마나 보기 좋고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사람은 무엇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지고, 그 인격이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다 소중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해졌다고 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교회를 사모하여 쇠약해졌습니까? 그 정도까지는 못해도 공적 예배에 빠지지 말고 예배 시간에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사모하는 모습은 사실 예배하는 모습을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조금 일찍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또한 교회를 사모하는 모습은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겸손한 모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여 각 사람에게 능력이 임했는데도 서로 겸손하여 사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말씀을 받는데 시간을 더 많이 들였습니다.  

 

또한 교회를 사모하는 모습은 교회를 향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라 자신은 자신의 마음과 육체를 다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대개 진실한 기도자입니다.  

 

<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중심적으로 살기를 힘쓰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누구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성전과 회당의 개념을 다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아끼는 자에게 반드시 칭송 받게 하시고, 친구를 얻게 하시고, 치유의 문과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에도 유익이 되겠지만 자신에게 보다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오지 선교를 하면서 교회 지어주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때 한 사업가가 자신도 교회 하나를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업이 부도를 맞았습니다. 손에 남은 돈이 5백만 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돈으로 교회를 지어 바치기로 결정하고 그 돈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파나이 섬 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조그만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가를 위해 파나이 섬 교회의 전 교인이 매달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도 났던 사업가의 사업이 다시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든 막혔던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는 너무 아름다운 성전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성전 건축의 은총이 우리교회가 품고 있는 세계 속에 주님의 정신을 심고자 하는 꿈과 그 동안 물질과 기도로 도운 선교 현장의 교인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선교의 꿈과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번 교회 건축 과정에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드렸던 선교사님과 성도들이 얼마나 감사하면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했을까요? 필리핀. 중국 , 태국 등에서 그동안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준  한국의 평강 교회에 복을 내려주세요."  

하며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 기도에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그저 진실함과 순수함으로 무장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그 진실하고 순수한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였겠습니까? 그 기도가 우리 교회 건축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반드시 꿈과 같은 축복의 열매를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