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명(출애굽기 20:12)
미국
서부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필라델피아교회에, 26년 동안을 하루같이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한 짜비스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딸 안나가 어머니가 하던 주일학교 교사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자신이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게 된 것이 어머님의 가르침과 사랑 때문인 것을 깊이 깨닫고 그 해 5월 2일 주일 아침에 교회 강단에 꽃 한 다발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1914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국회에서 어머니 주일을 제정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1930년에 구세군에 의해서 최초로 어머니
주일이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농업위주에서 산업화로 되어 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농업사회에서는 가정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모든 필요한 것이 부모로부터 전수되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거두어야 하는지 부모의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씨를 뿌리라면 뿌리고 거두라면 거두었습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사를 짓는 땅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 그 아들이 아들에게 땅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는 것도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님이 불러 앉혀놓고
"아랫마을 아무개네 집하고 혼사를 정했으니 그리 알아라" 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권위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점점 산업화되면서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지식은 학교에서 배워서 부모보다 더 유식하게 되었습니다. 또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게되니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잘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모
마음대로 결혼을 시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권위가 사라지게 되자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바뀌어지고, 부모와 자녀의 위치가
바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분명한 질서를 세워주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말씀했습니다. 또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가정의 주인으로 세우셨고, 아내를 남편에게 사랑 받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질서가 깨졌습니다. 요즘에는 아내들이 가정의 주인이 되고 남편들이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에는
부인들이 자기 남편을 소개할 때에 "제 주인 양반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했는데, 요즘은 "우리 집 아빠예요" 소개를 합니다. 이 말 속에는
"당신이 어떻게 주인이냐, 당신은 아빠고 나는 엄마다, 우리는 평등하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의 권위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이들에게 야단을 쳐도 아이들은 겁을 안 먹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한번 눈만 흘겨보십시오. 아이들이 무서워서 부들부들 떱니다. 저희 집에서도 아침에 제 집사람이 아이들을 깨우면 10분 동안 깨워도 안
일어납니다. 이때 제가 나서서 "이 녀석들아, 하나, 둘, 셋"하면 벌써 세수하러 가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각각 다른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을 잃어버리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 아버지들이 어떻게 합니까? 모처럼 집에서 하루를 쉬는데 어머니가
아이들을 야단치면 어떻게 합니까? "가만 둬, 왜 애는 밤낮 야단치고 그래"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합니다. 또
평소에 잘해 준 것이 없으니까 시간이 나면 데리고 나가서 장난감도 사주고 저녁도 사줍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위엄을 나타낼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또한
에베소서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입니다. 그런데 이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세대 차이가 나서 못살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말을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용합니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마주 앉아서 "요즘 젊은것들은 도대체 ---" 그랬습니다. 어른들을 기준으로 세대차이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세대차이라는 것이 아이들 세대를 기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비해서 어른들이 뒤쳐진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이
어른보고 "세대 차이가 나서 못살겠다"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권위에 순종하기보다는 거꾸로 어른들을 자기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아도 전부 아이들 기준으로 되어 있지 어른들이 볼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를 겪을 때에도 전혀 불황을 타지
않았던 사업이 하나있습니다. 아동복 가게라든가, 장난감 가게라든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이들 기준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사를 간다고 하면 남편 직장이 가까운 데로 가겠습니까? 아이들 학교가 가운데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갈 것입니다. 학군이 좋다고 위장전입을 하는 세상에 그 정도는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부모 기준이 아니라 아이들 기준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돈을 펑펑 써도 아깝지 않은데 부모님들에게 쓰는 돈은 세어보고 또 세어보는 것이 여러분들의 모습 아닙니까? 그래서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부모된 여러분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책임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반드시 자기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사는 법칙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른다면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시어머니가 있는데 하루는 미장원에 갔답니다. 가서 머리를 하는데 옆자리에 젊은 주부가 둘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니네 시어머니는 아직 새파랗게 젊었던데 몇 살이나 먹었니?" "응. 아직 쉰 다섯이야" "너도 앞으로 시집살이 꽤나 하겠다. 언제 죽을 때까지
기다리냐?"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크면 똑같은 이야기합니다. "언제 죽을 때까지 기다리냐?"
여러분이
가지고 계시는 찬송가 맨 뒤에 있는 십계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은 말 그대로 열 가지 계명입니다. 처음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에 대해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은 다른 사람에 대해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열 가지 계명들을 두 개의 돌판에 새겨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열 가지 계명이 두 개의
돌판에 새겨졌다면 한쪽에 몇 개씩 새겨졌겠습니까? 성경에 그 해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제가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쪽에 몇 개씩 써있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열 가지 계명이니까 둘로 나누어 한쪽에 다섯 개씩 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니까 한쪽에 쓰고 또 여섯 가지 계명은 사람에 대한 것이니까 다른 한쪽에 썼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담아둔 언약궤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해답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십계명을 자세히 보십시오. 처음 계명부터 다섯 번째 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까지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다섯 계명은 한쪽 돌판에,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다섯 계명은 다른 돌판에 기록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 계명도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왜 여기에만 특별히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하나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모님들을 통해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님들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부모를 향한 효도를 같은 것으로 보는 말씀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3절은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부모를 경외하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가 같이 붙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절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말씀했습니다. 주님 안에 사는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3장 20절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곧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믿음이 있는 자는 당연히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부모를 향한 효도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부모를 무시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짓는 죄와 똑같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장에서도 말세가 되어 세상이 타락할 대로 타락하게 되면 이런 징조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부모를 거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부모를 공경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과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 중에서 특별히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계명에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는 하나님의 약속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여러분의 배우자, 여러분의 자녀, 친구들보다 먼저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은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센머리라고
하는 말은 흰머리, 즉 백발을 의미합니다. 센머리 앞에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어른이 나타나면 자리에 앉았다가도 일어서야 합니다. 어른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의자가 필요하면 의자를 내어 드리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떠다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노인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하나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반드시 노인을 공경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어른을 무시하면서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와 부모를 거역하는 죄를 똑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 앞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들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합니다. 이것저것 사달라고 하고, 불평도 하고 원망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선뜻하기가 어렵습니다. 섭섭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있어도 입에서 말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정을 자녀 된 여러분들이 먼저 알아서 해드리셔야 합니다.
혹
부모님들이 고집을 부르시거든 그냥 그대로 따르십시오. 이치에 안 맞는 말씀을 하셔도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떡이십시오. 그것이 옳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실수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모님들은 자식이 죽을죄를 지었어도 용서합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하여도 "다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고 하시면서 감싸주십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의 자그마한 실수를 이해하지 못합니까? 부모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감싸주시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부모님을 사랑하고 보살펴드리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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