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세 기

가인에게 임한 심판(창 4:8-15)

공 상희 2006. 7. 20. 15:31
가인에게 임한 심판(창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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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제물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제사는 제물만 드리면 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제물못지 않게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과 제물이, 사람과 예배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의 사건이후 예배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데서 예배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인에게는 거절의 상처가 생겼습니다. 거절에서부터 상처가 생깁니다. 부모로부터의 거절, 친구로부터의 거절, 아내와 남편으로부터의 거절등 누구든지 거절을 당하면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분노하게 되고 분노하면 얼굴색이 변합니다. 하나님은 분노하며 얼굴색이 변한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였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하고서도 도리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소리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화도 많이 냅니다.

만일 잘못을 했다면 화를 내고 얼굴색이 변할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분노하고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평생에 죄가 너를 지배할 것이고 죄가 너를 따라 다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겸손히 회개하는 사람에게서 죄는 떠나갑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죄가 평생 따라다니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겸손하게 회개하면 그 즉시 죄가 떠나갑니다.


8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의 잘못된 제사를 하나님은 거절하셨고 거절로 가인은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로 인해 분노가 생겼습니다. 분노로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만일 가인이 죄를 회개하고 다시 제사를 드렸더라면 죄는 떠나가고 죄는 가인과 상관이 없어졌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가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8절에 나옵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고했다’라고 말했는데 고했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이야기했다’이지만 사실 이말은 가인이 아벨에게 화풀이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하나님에게 거절당한 이유를 아벨에게 뒤집어 씌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를 하면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누구에겐가 전가하고 변명하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가인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거절당한 상처를 아벨에 대한 화풀이로 보상받고자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인과 아벨의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날 아무도 없는 들판에 둘만 있게 되었을 때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계획된 살인입니다. 미움은 살인을 낳고, 분노는 살인을 가져 오게 됩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 마음 속에 있는 작은 미움과 분노까지도 예수 이름으로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와 갈등과 미움들이 모두 치유되기를 축원합니다.


8절에서 우리가 한가지 더 살펴볼 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또는 이익이나 돈 때문입니다.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전쟁을 하고 윗 자리에 오르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고 미워하고 죽이고 파멸시킵니다. 또 사랑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삼각관계가 생기면 한 사람을 독점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 말씀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사랑이나, 권력이나 먹을 것 때문이 아닌 ‘예배’때문이었습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가인의 예배일수도 있고 아벨의 예배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도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형태는 모두 같지만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형식적으로 주일날 그저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이 예배를 받으십니다. 거짓되고 종교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는 몇 십년을 드려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과부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부흥하는 길은 ‘진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많지만 모두 진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며 교인이 많지만 모두 진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예배를 드리면 그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성령이 임하며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들어가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예배때문에 순교했습니다. 예배는 순교할 만큼 중요합니다. 순교할 각오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예배의 절정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 앞에서 예수께서 기도했던 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되고 우상적이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예배에는 언제나 사탄이 영광을 받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에는 언제나 성령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그 영광을 받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아담에게 질문을 하시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벌거벗었음을 알고 숨어 있는 아담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며 찾아 가셨습니다.

그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면서 도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라고 질문을 계속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가인은 아벨을 살인하고 암매장한 후 그 자리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덧붙여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세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돌아서지 않고 찾아가서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가인이 죄를 지었는데도 찾아가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찢어지는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마치 죄를 지은 자식을 심판할 수도 없고 죄를 인정할 수도 없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울고 계십니다. 가슴을 치고 계십니다. ‘가인아,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가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와서 질문할 때는 무엇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고백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계시지만 여러분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두번째, 우리가 배우는 것은 가인이 모른다고 부인하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항변을 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부인하고 감추었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의 눈을 가리면 세상이 모두 가려진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으로 우주를 가릴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우주를 가리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용서받지 않은 죄는 털끝만한 것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썩지만 죄는 썩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그 죄를 적시면 그 죄는 순식간에 모두 없어집니다. 아무리 큰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면 없어지지만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수천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죄는 여러분을 고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가인에게 했던 질문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네 남편은, 네 자녀는, 그리고 네가 팽개친 부모는 어디 있느냐? 네 친구나 사랑하는 동료들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전 몰라요. 알아서 살고 있겠죠’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전 바빠요’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우리의 대답이고 가인의 대답입니다. 이 모든 대답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할줄 모릅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자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부모는 모를수도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천길 만길 따로 가고 있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자고 살아 갑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중심을 이해하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고 격려하며 축복하고 전도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인은 유감스럽게도 모른다고 변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마시고 회개하십시오.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죄가운데서 깨끗케 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길 원하십니다. 돌아오십시오. 그분에게로 나오십시오. 여러분의 죄는 눈과 같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세번째,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우는 또 한가지 사실은 아벨이 흘린 순교의 피는 죽었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고 매장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육신이 죽었지만 피는 땅으로 들어가서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인의 죄가 부인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벨의 피도 땅에 흘려져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피는 소리를 지릅니다.

의인은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죄인도 죽지 않습니다. 죄인이 죽어 육신은 땅에 들어가겠지만 그는 영원히 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영광스런 신적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합니다. 동물은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은 순간부터 고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자살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의 댓가를 영원히 받아야 합니다. 그저 몇년동안 형을 받고 그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라톤선수가 달리기를 하는 것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뛸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이 없이 영원히 뛰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같이 죽음으로 죄가 끝나지 않고 죄도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알고나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절의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는 말씀은 구약에서의 첫번째 부활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1장 51절에서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벨은 성경에서 나타난 첫번째 제사장입니다. 선지자의 반열에 아벨이 있었습니다. 아벨의 피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피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사건은 지금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죽음 이후에는 큰 사건입니다. 유정란과 무정란은 겉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암닭의 품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20일이 지난후에는 어떤 계란에서는 병아리가 나오지만 어떤 계란은 썩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알수 없지만 육체의 죽음이 올때 한 영혼은 영원한 천국으로 또 다른 영혼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영원한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천국에 갈 확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혹시 그런 믿음이 없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음으로 말이암아 여러분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줄 믿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우리가 땅에 피를 쏟았기 때문에 땅은 인간을 저주합니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인류의 삶을 보면 저주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병과, 고통과, 아픔과, 배신과, 싸움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없이, 하나님없이 저주를 품어 내고 있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한 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모든 저주가 끝나기를 축원합니다. 아벨의 피로 인해 땅은 인간에게 저주를 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는 사라지고 질병과, 갈등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살인한 피를 받은 땅이 인간에게 한 첫번째 저주는 ‘밭을 갈아도 효력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은 ‘건강이 옛날같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에는 땅을 갈면 농사가 잘 되었는데 죄를 짓고난 후에는 무엇을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을 해도 잘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방황’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저주는 방황입니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것이 방황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는 방황이 있습니다. 방황이라는 말은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운 말일지 모르지만 실존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방황의 끝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편안하게 영접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네게로 돌아가리라’‘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살인자에게 내린 벌은 ‘땅은 너를 저주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드디어 가인은 죄의 짐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지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죄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살았는데 실제로 죄의 무거운 짐에 눌려보고 나서야 죄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서 죄의 댓가인 벌을 감당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할수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죄의 짐과 고독과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영적인 죄의 무게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죄를 지은 가인에게 하나님은 표를 주시고 죽임을 면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시는 유산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분의 영광스러운 은혜안에 들어오셔서 인생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인생을 사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