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어리석은 농부의 착각 (눅 12:16-21)

공 상희 2019. 10. 5. 06:21

어리석은 농부의 착각 (눅 12:16-21)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시간에 “어리석은 농부의 착각”이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가지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허태균의 '가끔은 제 정신'이라는 시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평균이라는 착각, 나만, 혹은 나는 아니라는 착각,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 우리는 하나라는 착각,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 하지만 착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착각은 자유다. 그래서 행복하다. 착각을 즐겨라” 이처럼 착각이 있어서 더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착각입니다. 한 농부가 있어 추수 때가 되어 소출이 풍성하매 이런 계획을 세웁니다. “곡식 창고를 헐고 다시 크게 짓자. 그리고 가득히 쌓아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농부와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착각은 그들의 잘못된 인생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농부의 어리석은 인생관은 어떤 것입니까?


1. 이기적인 인생관입니다.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그랬습니다. 자기만을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인생관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농부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영어성경(NIV)을 보면 ‘내가’(I)라는 단어와 ‘내’(my)라는 단어가 한글성경에서는 각각 6번과 5번 = 해서 11번이 나옵니다. 이처럼 이 농부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습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족을 만드시고 교회를 한 몸으로 부르신 것도 사회적인 인간임을 의미합니다. 나라를 배에 비유한 것도 우리가 공동운명체임을 알려줍니다. 지금은 글로벌시대라 해서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와 담을 쌓고 우리식으로 산다. 이것은 죽자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거미와 같은 인생, 개미와 같은 인생, 꿀벌과 같은 인생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혹은 마이너스(minus) 인생, 이콜(equal) 인생, 플러스(plus)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농부와 같이 이기적인 사람은 거미와 같은 있어서는 안 될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면서도 나만 살면 된다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노사 간의 갈등도 이기심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지구의 온난화도 우리만 경제적 부흥을 이루면 된다는 국제간 이기주의의 산물입니다. 이기적인 인생 속에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란 신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만을 위한 것으로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자본주의는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재능과 소질을 다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며 자기가 가진 자본을 다하여 사업을 하고 번창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사는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내는 세금과 중소기업 대기업이 내는 세금이 얼마고, 복지에 투자하는 돈이 얼만데 우리는 이 세금만 가지고도 자본주의의 약점을 충분히  커버하고 있으며, 다른 사회주의 국가보다 이미 몇 배나 더 큰 파이를 나누고 있고 더 많은 것은 국민들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쇠고기국에 이밥, 우리는 그 수준을 넘은지가 이미 수십 년입니다. 사회주의가 말하는 그 이상세계를 이미 뛰어넘었습니다.


세계인이 한국을 로망하며 몰려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중국식 토지제도에 북한식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입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가난해지고 권력의 허가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공산주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사랑 안에서 섬기는 이타적 인생관이 있을 뿐입니다.


2. 물질주의 인생관입니다.


18절에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이것은 지극히 물질주의 인생관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제일이요, 돈만 있으면 뭐든지 된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하나님을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주의를 주장한 학자가 칼 마르크스입니다. 그는 유물론자로서 물질의 가치를 최고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본질 역시 물질일 뿐 영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공산주의가 나왔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짓되고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많은 고통을 주고 가장 못 살게 만들며 가장 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괴물이 바로 이 유물론 공산주의입니다. 물질이 최고가 아닙니다.


CNN 사장 테드 테너(Ted Turner)는 “당신 같이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느낄까요?” 라는 질문을 받고 “종이 봉지 같지요. 사람들은 모두 그 봉지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봉지를 갖게 되면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는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하면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물질을 위한 생을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생의 목적이요, 돈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돈을 모으다 죄를 짓고 또 병들어 죽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굶어 죽이지 않습니다. 절대 가난하게 살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형통함 주실 것입니다.


3. 쾌락주의 인생관입니다.


19절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쾌락주의 인생관입니다. 그의 물질은 즐기기 위한 향락의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육신적인 쾌락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오늘날 방종과 방탕한 성문화가 크게 확산 되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는 불륜을 주제로 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도 가정 파탄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먹고 마시는 음식문화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먹방 프로가 대인기입니다. 잘 먹는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인병은 대개가 잘 먹어서 오는 병입니다. 음주 문화도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알코올 소비량이 세계 제 1위입니다.


우리 믿음도 육신 좋다는 대로 해주면 버립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좀 더 편해보자는 주의로 나가면 그 믿음은 죽습니다. 우리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까지도 드려 하나님 섬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4:3-8)


4. 비양심적 인생관입니다.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은 농부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처럼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그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비양심적 인생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왜 그리 손이 작은지 우리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시고 승천하시고 또한 그리고 부르셔서 영원히 구원하신 하나님이신데 무엇이 아깝습니까? 주를 위해 살지 못하는 우리 모습이 너무나 비양심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는데 한 명밖에는 사례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감사보다 그들의 마음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최소한 양심적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은 무수한 착각 속에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인생을 살지 마십시다. 이기적인 인생, 물질적인 인생, 쾌락적인 인생, 비양심적 인생을 멀리하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고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령 충만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