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가지신 3 대 의식, 요한복음 8:28-30
이 시간에 “예수님이 가지신 3 대 의식”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요8:12절에,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 절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 “네가 누구냐 ?”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25 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지금껏 자신이 주장해 온대로, 자신이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인류의 구세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3가지 확신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3가지 확신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3대 의식은?
1. 사도의식 (29 절 )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άπόστέλλϛ(아포스톨로스)입니다. 이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29절에 보면, 예수님은‘나를 보내신 이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나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을 보내신 이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자신을 보내셨다는 확신을 가지셨습니다. 이것이 사도 의식입니다.
♣신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세상에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의 지극히 일부분을 건설하는 일군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명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도 있습니다.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요? 그것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공통점입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뜻하지 않게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우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도 역시 보내심을 받은, 사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17:18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오신 것처럼, 자신 또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 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사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나를 보내신 분이 계시다. 나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 주님이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파송을 받고,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생명과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파송을 받았다는 확신 있는 사명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나는 하나님이 부르셨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사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그런데 어디로 보내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거기가 학교이든, 회사이든, 가정이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임재의식 (29 절 )
♣임재가 무슨 말입니까 ? 한문으로는 임할 임 (臨 )자에, 있을 재 (在 )입니다. 한문을 풀이하면, 임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임재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 임하셔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29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혼자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이것이 임재의식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의식이 충만하셨던 것입니다.
요 16:32을 보면.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때가 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예수님은 혼자 있게 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확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 속에 사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임재의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임재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28:20에“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전 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 속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임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3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➀편재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편재 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문으로는 두루 편 (遍 )에, 있을 재 (在 )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은, 하나님께서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속성입니다. 다른 말로는 편만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충만하게 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도 계시고 가정에도 계십니다. 학교에도 계시고 직장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 계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편재성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➁홀대의 단계입니다.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고전 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성전으로 삼고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하나님을 홀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소홀히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슬픔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나 계시지만 특별히 믿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홀대하는 단계입니다.
➂동행의 단계입니다.
♣동행은 함께 길을 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같은 길을 간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교제하며, 같은 곳을 향해서,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동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편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동행은, 함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여 행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볼펜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볼펜을 제가 양복 주머니에 꽂아놓고 다니면, 이 볼펜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나 볼펜을 사용하려면. 볼펜을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볼펜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함께 있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손에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려면, 하나님과 동행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임재의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편재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내 속에 오셨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임재의식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편에서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3. 사역의식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사역 (使役 )’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누군가로부터 시킴을 받아 행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사역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목적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알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사역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29절에 보면,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사역의식이 있었습니다.
♣ 28절에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것도 당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뿐만 아니라. 말도 스스로 당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하셨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일하셨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식을 본받아야 합니다. 범사를 스스로 자기 뜻대로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사역의 최고봉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께도 힘든 일이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원하셨지만, 예수님의 육체는 십자가를 받아드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그 잔이 지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잔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리고는 십자가를 받아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받아드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받아드리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의식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딤후 4:7-8을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합니다.”죽음을 목전에 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을 하나님의 일에 힘을 써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자신이 사역의 길을 달려왔다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열심히 사역을 한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일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 중에 선한 싸움의 상대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➀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와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➁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가치관으로, 우리와 대립 구도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➂육체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나,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려고 합니다. 이때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내 뜻대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건강한 사역자이고 건강한 사역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가지신 3 대 의식을 말씀드렸습니다 . ➀사도의식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➁임재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별히 믿는 자 속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을 믿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➂사역의식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내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도 의식과, 임재 의식과, 사역의식을 가지고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 감당하므로, 능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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