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예수를 깊이 만나자 (눅 2:15-20)

공 상희 2018. 12. 25. 06:33

예수를 깊이 만나자 (2:15-20)

 

이 시간에 예수를 깊이 만나자.”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만남입니다. 누구와 만났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세 번의 만남을 가진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이것은 자기 의사와 전혀 상관이 없이 만나는 만남입니다. 두 번째는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잘 만나게 되면 제 2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의 만남이 있습니다. 이 만남은 너무나 중요해서 현세는 물론, 영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바로 하나님과 만남,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납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를 깊이 만나는 것일까요?

 

1. 예수만을 사모할 때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아기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베들레헴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 목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것을 알려면 그들이 살던 곳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양을 치던 베들레헴 들판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 지금의 라못라헬이라는 곳으로 벧학게렘이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그 벧학게렘은 분문이라 해서 분뇨를 푸던 문이 있던 곳으로 3:14을 보면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그곳을 중수하고 문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목장은 레갑 자손들이 양을 치던 곳입니다. 레갑 자손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조상 요나답이 후손들 신앙의 타락이 염려되어 집을 짓지 말고 파종하지 말며, 포도원도 만들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범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기 위해 양을 치며 살라 한, 그 명령을 300년 동안이나 지켜온 경건한 백성들입니다. 그 신앙이 아기 예수 오실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주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이 침략해 왔을 때도 비천한 백성이라 해서 그들만은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 남아 순수하게 메시아를 기다리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헤롯을 비롯해서 바리세인 서기관 할 것 없이 모두 타락했어도 그들만은 신앙을 이어가고 있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깊이 만나려면 예수만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 것 다 사랑하면서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레갑 자손이 세상과 타협하고 우상과 타협할까봐 다 포기하게 하고, 양떼만 치며 목동 생활했던 것처럼, 진실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날마다 경배하는 자가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시므온이 나옵니다. 2:25부터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을 소개하면서 성령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25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성령의 감동으로성령, 성령, 성령,,, 그의 신앙의 특징은 성령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었기에 그는 의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를 의롭게 하고, 그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고, 성령과 지시를 받게 한 그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경건했다는 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그가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도 그 입에서는 찬양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2:28-32절에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예배 신앙이 바로 서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자기를 영화롭게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이 신앙만 바로 세워지면 우리는 주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고, 주님과 함께 동거 동행 동역할 수가 있습니다.

 

3. 말씀을 목숨 걸고 붙드는 자가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예방합니다. 그들의 손에는 황금 유향 몰약이라는 3대 예물이 있었습니다. 이 예물은 왕에게 바치는 예물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가 왕으로 나신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럼 동방박사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직업은 점성가로서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입니다. 그런데 학자들 중에는 이 동방박사들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볼 때 그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해방될 때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헤롯 궁에 와서야, 태어나실 곳을 알았다는 점에서, 변변한 성경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별 따라 왔는데, 그런 개념은 어디서 얻었을까요? 그들은 성경은 없었지만 구전으로 조상적부터 내려온 민24:17의 한 구절만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몰랐다면 유대인의 왕이 났다고 별 따라 올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동하게 됩니다. 성경도 없지 그들이 아는 것은 민24:17 한절 뿐, 그러나 그들은 그 한 말씀일지라도 그것을 목숨 걸고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실까? 메시아를 기다리기 위해 태어날 왕에게 드릴 예물부터 마련하면서 별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별 하나가 나타나 계속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름 모를 그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많이 알지 못할지라도 한 말씀이라도 생명 걸고 붙들면 예수를 만납니다. 그들이 따라간 길은 수천리길 험한 광야였습니다. 헤롯이 그들에게 듣고 별이 나타난 시점을 계산하여 두 살 아래 아이들을 학살한 것을 보면 그 여행길이 1년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 박사들은 가스팔, 메키울, 발다살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별을 발견하고 출발하였을 때 4명이 함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타반 박사는 도중에 무슨 일로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일행을 찾아 아무리 헤매어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예수님을 찾아 헤매다가 3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겨우 찾았는데 벤허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모했으면 일생을 찾았을까요? 그가 출발할 때는 청년이었지만, 주님을 만났을 때는 백발이 허연 노인이었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는 그 한 말씀 붙들고, 자기 일생을 다 투자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한 말씀이라도 목숨 걸고 실행하며 충성하면 예수를 만납니다.

 

4.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 예수를 만납니다.

사모하여 예수를 만난 사람이 안나입니다. 안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2:36-37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합니다. 그리하여 그 때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선지자 안나의 믿음의 포인트는 자기를 이김입니다. 말이 그렇지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젊은 나이에 과부 되고 팔십사 년 동안 얼마나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을까요? 기도가 아니면 이길 수 없기에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나를 죽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예수를 깊이 만나려면 나를 죽여야 합니다. 자아를 포기해야 합니다. 나를 죽여 겸손해야 합니다. 자아가 죽을 때 예수가 나타납니다.

딤후2:11-12"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씨를 파종했어도 엄동설한에는 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도 내가 강하면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나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했습니다.

자랑하는 나, 교만하는 나, 탐욕 품는 나, 말씀 떠나 빗나가려는 나,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나, 묻지 않고 하려는 나, 월권하는 나, 내 기분으로 사는 나, 게으른 나, 외식하는 나, 담대하지 못하는 나, 나 나 나 나를 이겨야 합니다. 나를 죽여야 합니다. 나만 죽으면 만사형통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적은 가까운데 있습니다. 나를 죽이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안나처럼 엎드려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아기로 나실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많았지만, 아기 예수를 만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는다면서 얼마나 깊이 만나셨습니까? 목자들처럼 예수만 사랑하십시다. 시므온처럼 날마다 예배의 삶을 삽시다. 동방박사들처럼 말씀실행에 목숨을 거십시다. 여선지 안나와 같이 나를 이기십시다. 이 한 가지라도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더 온전히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