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말씀을 따라 사는 삶 (잠 13:1-3)

공 상희 2018. 9. 30. 06:01

말씀을 따라 사는 삶 (13:1-3)

 

이 시간에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인되고 어떻게 영원히 길이 남을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12:4에 그 답이 나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이처럼 내 주장 버리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심과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의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지혜로운 아들은 훈계를 듣습니다. 본문의 아비의 훈계란 무엇일까요? 잠언에서는 원문 연구와 아울러 비교한 대구를 참고해야 합니다. 그 답은 꾸지람입니다. 꾸지람이란 잘못하는 우리에게 뭔가 변화를 요구하는 의의 교훈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말씀은 부담스럽게 여기는데 그래서는 말씀을 따라서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의 편식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다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요구에 늘 결단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변화를 거듭함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회개와 변화를 바라는 의의말씀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히5:12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성도가 되려면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는 자란 의미가 무엇일까요? 다른 번역서를 참고하면 훈련이나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징계의 훈련을 통해 뼈저리게 체득한 산 지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그 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징계의 강력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걸 통해서 비로소 교만이 꺾어지고 의의 말씀의 참된 교훈 안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이런 산 지식은 진정 뼈저린 체험 속에서 진정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단단한 의의 말씀을 먹을 수 있고 갈망하게 됩니다. 믿을 것은 믿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힘쓸 것은 힘쓰시기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 두려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 때 우리의 신앙은 정상의 궤도를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광야의 학교에서 참 진리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편식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하여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2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사람이 당하는 많은 사건의 원인이 대부분은 타인보다 자신의 문제에 있다는 교훈입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하고 아름다운 말과 행위로 사랑을 받기도 하고 포학한 마음과 행동으로 강포를 당하기도 합니다.

 

본문에 여러 변화 받아야 할 부분들이 보입니다. 입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궤사는 꾀 계략 모략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강포를 당한다는 것을 보면 마음의 수준을 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궤사가 마음의 수준을 벗어났기에 당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잠언 기자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과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 인격적인 변화가 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흘려듣지 말고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복음 안에서 내가 새 사람임을 확신할 뿐 아니라 삶의 변화를 위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적용해야 만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그래야 온갖 아름다운 복록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약1:22-25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영적 지식과 영적 수준은 다릅니다. 알고 행치 않는 죄가 더 큽니다. 영적 지식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도리어 교만하여 신앙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호14: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엎드려 마음을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언어가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변하면 말도 변할 것 같지만 오랜 습관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부부 간에도 마음으로 사랑해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보지 않은 부부는 잘못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데도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표현을 못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언어생활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용어 선택도 바뀌고 억양도 바뀌고 언어의 내용도 장소도 때도 길이도 바뀌어야 합니다. 믿음의 말, 사랑의 말, 지혜의 말,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침묵할 때도 있고, 외칠 때도 있습니다. 명령하고 선언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짧게 할 것인가? 길게 할 것인가?

 

입술의 열매를 통해 복록을 누린다 했는데, 여기 복록은 원문에는 토브인데 선하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최상의 부귀와 행복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입술이 바꿔지시기 바랍니다. 삶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3: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했습니다. 28:13에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함으로 말씀을 따라 살고 또 아름다운 복록을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3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이 말씀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상이한 언어생활로 인해 다르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부각시키는 대조적인 표현입니다. 말의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 그런데 말에 따라 생명이 보존되고 멸망이 판가름 나는 상황이라면 예사로운 상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르다를 보세요.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나 됐을 때 주님께서 마르다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 앞에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구주이심을 고백하고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님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하신 말씀에 마르다는 두 번이나 나는 지금이라도 주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면하나님께서 무엇이나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하면서 자신 있게 말하지만 무덤 앞에 가서는 어떻게 됩니까? 말이 바뀝니다.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표현이 아닙니다. 안 되겠어요. 예수님, 그런 말입니다. 시체가 썩어서 가능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책망하시고 나사로를 불러 살리십니다.

 

이처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고 힘차게 승리의 찬송을 부르지만 정작 삶의 현실에서는 믿음대로 살지 않습니다. 상식대로만 삽니다. 경험을 따라 삽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졌지만 기적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지키는데 목숨 거시기 바랍니다.

응답의 약속에도 생명을 거세요. 21:21-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풀무불이 앞에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이 기다린다 해도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봉착해도 성경의 약속을 버리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만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말씀 따라 세상에 오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 산 것처럼 말씀을 따라 살 때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고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 없이 받아들이고,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여 진실로 회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따라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