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성경기초연구1,

공 상희 2011. 11. 18. 15:20

성경기초연구

 

(제 1 과) 사람이 사는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성 경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1.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

 

성경은 모든 만물에는 그 창조하신 분이 계심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 창조주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사야 40: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누구든지 무슨 물건을 만들 때는 그 물건을 만드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반드시 그 뜻과 목적을 지니고 계십니다.

 

 

골로새서 1: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만물 그 자체에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신 하나님 자신을 위하신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인간의 존재 목적

 

옛부터 인간에게 있어서 풀려지지 않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대체 왜 존재하고 있는가?

 

인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려고 무던히 애써왔지만 어떤 해답도 인간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데, 성경을 제쳐놓고 인간적인 방법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를 여기서 성경 적 방법에 의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2:7, 21-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인간은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있어서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은, 다른 것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말씀으로 창조되었지만, 인간만은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육체로 나타난 외형적인 모양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사도행전 10:34-35 참조).

 

돼지가 사람의 모양을 취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이 성품은 타락하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품성, 곧 그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성품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심령 속에서 성령에 의해 재창조되어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4:22-2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3)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을 다스리라는 권세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인간이 타락하기 전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산책도 하시고 대화도 하셨으며, 하나님이 들짐승과 각종 새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셔서 아담에게 그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갈빗대로 그의 아내 하와를 만드시고 짝지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여 주시고 동산에 각종 아름다운 실과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대리한 땅의 정복자로서 생물을 다스리는 지배자로서 즐겁고 기쁜 나날을 지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 님을 중심하여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고린도전서 10:31, 전도서 12:13 참조).

 

이 말씀으로 우리가 인간의 존재목적을 결론짓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할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첫째 요건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10 말씀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9 말씀에는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하셨습니다.

 

 

3. 타락한 인간의 존재

 

 

인간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 하여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생활에서 내어 쫓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만족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같은 인간의 상태를 인간의 타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존재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게 되고 마귀의 형상인 죄의 종으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8:34).

 

로마서 6: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타락한 인생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을 빼버리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성경은 그런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기를 “짐승과 같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49:12, 전도서 3:18-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러면 짐승의 자리에까지 이른 인간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로마서 1:28-3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없는 자기중심의 생활만을 도모합니다(누가복음 12:15-21 참조). 노아의 때의 사람이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생활도 하나님이 없는 철저한 자기중심의 생활을 해 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7:26-30 참조). 하나님을 떠난 생활가운데도 이 세상에는 선행이 있고, 덕행도 있으며, 양심적인 행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않는 모든 일은 인간의 창조목적에 위배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분을 이루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안에서란 말이 계속적으로 나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5.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다 고장 난 제품들입니다. 들어갈 곳이란 쓰레기통인데, 그곳은 인생 쓰레기를 모아 불태우는 곳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곳의 이름이 지옥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마태복음 10:28, 계시록 20:12-15참조).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사망에서 벗어날 것입니까? 성경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되는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12-13).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생활을 바라는 것입니까?

 

(1) 첫째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활을 당신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리는 생활로 인정하십니다.

 

요한복음 3:17-18, 6:27-2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둘째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생활을 원하십니다.

 

로마서 12:1-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3) 셋째로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에 두고 살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전서 10:3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우리는 우리의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임을 분명히 알고 살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제 2 과

 

성경은 무엇인가?

 

< 성 경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일 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1. 하나님의 계시는 왜 필요한가?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방법으로 다음 세 가지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활(요6:29 참조).

 

둘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생활(롬12:2 참조).

셋째는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목적을 두고 사는 생활 (고전 6:19-20 참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순응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인간의 육신적 감각이나 사고력으로는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4:2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자연 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창조하신 자연계를 통하여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밝히 보이셨는데, 이것을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로마서 1:2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우리가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관찰할 때, 그 창조의 오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과학이라고 하는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에 도전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함을 더욱 드러내 놓을 뿐입니다.

 

(예 1) 시험관 아기의 경우

 

한동안 시험관에서 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창조를 과학의 힘으로 증명해 준 일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정자와 난자까지라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내어 그것을 시험관 안에서 키워 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성경도 하나님도 부인할 수 있겠지만, 남자의 몸에서 정충을 취하고 여자의 몸에서 난자를 취하여, 그것을 어머니 뱃속의 환경과 온도 속에서 일정기간 배양하고 그것을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집어넣어 해산시키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신비에 의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더욱 명백하게 드러내 놓은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 2) 겨자씨나 풀잎 하나의 경우

 

인간들이 그 지혜와 과학적 방법으로 우주를 정복하고 별별 기이한 일을 다 가능하게 한다고 해도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 한 알조차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들에 깔린 풀잎 하나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신비와 그 웅대함과 놀라운 섭리와 그 오묘함을 볼 때, 그 가운데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가 자연과 만물 중에 분명히 밝히 보이건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누구이든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이나 하나님의 창조물에서 보여 주시는 일반적인 계시는 다만 하나님의 존재만을 인간에게 증거 해줄 뿐, 그 이상의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특별 계시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참모습과 영광을 알려주시고자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려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도 수다한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임을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더불어 아름다운 대 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화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버렸고,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과 인간과의 정상적인 대화는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브리서1:1-2 참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으로 ‘특별계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특별계시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임으로, 성경은 곧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들에게 모두 나타내 보여 주시는 특별계시입니다.

 

 

4. 자연 계시의 부족한 점

 

 

(1) 자연계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는 있지만, 그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거기에 없습니다. 자연계시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4: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데 그 길을 보여주고 있는 계시가 특별 계시입니다.

 

(2) 인간은 자연 계시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닫는 회개에 이를 수 없습니다. 특별계시만이 우리 인간의 무서운 죄를 지적하고 있고, 그 죄의 삯은 바로 사망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로마서 6:23 참조).

 

(3) 자연 계시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데, 자연계시는 이 사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직 성경에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를 연구 관찰하여 하나님을 인정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찾아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5:3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성경은 영생을 주는 책이며, 그 영생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기록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시대를 따라 변하는 책이 아니며, 역사를 따라 수정되는 책도 아니며, 어느 독재자나 혁명에 의하여 가감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이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차라리 쉬울 것이라고 증거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17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성경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4천년이 넘도록 한 자의 수정이나 한 획의 떨어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은 그 성경 속에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스스로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1) 성경에는 절대로 과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오가 없다는 말은 그 말씀에는 잘못이나 거짓이 절대로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읽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무오한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2) 성경은 그 자체가 너무도 명료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겸손한 자세로만 대한다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만 열어주셔서 믿음으로 받아드린다면 어린아이들까지라도 이해가 가능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완악하여 성령의 감동을 스스로 저버린다면 박식한 학자라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3) 성경은 어느 학문이나 어느 학자의 설명이 첨가되어야할 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스로 충족한 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경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아니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 66권으로 완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다른 계시를 주시거나 다른 뜻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갈라디아서 1:7-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기뻐하시며 또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죽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은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우며,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마땅히 할 바요, 하나님께 복 받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 3 과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 성 경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3).

 

1. 성경만이 밝혀 주시는 하나님의 존재

 

누가복음 3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우리 인간의 족보가 예수님의 족보와 똑같을 수는 없어도 노아 시대 이후로는 혈통으로 나와 있습니다. 38절 말씀을 보면,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뿌리는 하나님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으로 볼 때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이건 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하나님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한 계시에서, 만물 중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하여 자연계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계시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 특별계시를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시고 자기를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은 오직 성경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하나님은 영이시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

 

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누구나 만족할 만큼 흡족한 답을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들이요, 영에 속한 일은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첫째로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의 영적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우리 인간과 같은 육체적인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8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 말씀은 육신을 가진 자 중에는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뵐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2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인간 중에서 그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뵈고 살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만들어 섬기는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을 어떤 형상과 비교하려는 인간의 마음은 죄악에서 나온 악한 것입니다.

 

이사야 40:18-26, 로마서 1:21-25(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3. 하나님은 어디서 나온 분입니까?

 

 

하나님의 기원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 영원하신 분이라고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영원”이란 끝이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이처럼 그 발생의 시발점 또한 없는 분이십니다. 말씀의 기원에 대하여 요한복음 1:1에서 태초라고 나와 있지만, 이 태초란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을 가리킨 것입니다.

 

시편 90: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셨는데, 이 말의 뜻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출애굽기 3:13~15 참조).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나, 안 보이는 것이나, 오직 창조함을 받지 아니한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지금도 하나님은 이 만물을 섭리하고, 붙드시고, 주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1:36, 히브리서 1: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계십니다. 속성이란 말을 알기 쉽게 말하면,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유적 성품과 비 공유적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소유하고 계시고,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성품이 비 공유적 속성이며, 인간과 닮은 속성을 일컬어 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비 공유적 속성

 

하나님은 영이시다 ……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 인간은 흙으로 만든 육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 하나님은 무한하지만, 우리 인간은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 하나님은 영원하지만, 우리 인간은 잠시 잠깐후면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 하나님은 불변하지만, 우리 인간은 가변적입니다.

 

(2)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 :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유사한 점도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과 닮은 점이 있었는데, 이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존 재 : 실제로 살아 있다는 점에 있어서

지 혜 :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에 있어서

능 력 :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거 룩 : 죄가 들어오기 이전의 깨끗한 상태

선하심 :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선을 주는데 지금도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은 남아 있다.

진 실 : 거짓이 없는 참

 

대개 열거하면 이런 것들인데,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이 같은 속성이 하나님과 똑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우리는 다만 그 형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형상조차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함으로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없어졌다는 말은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타락이라고 부르며 타락한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예레미아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만은…” 이처럼 말했습니다(예레미아 17:9 참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던 존재가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순수한 지혜는 마귀의 간교한 지혜로 변해버렸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능력은 마귀의 도구가 되었으며, 거룩은 죄악으로 뒤바뀌고, 선은 악으로, 진실은 거짓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이 같은 인간의 상태를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 2:1, 요한복음 5:25 참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으며, 만물보다 더욱 가증한 자들이 되어, 마귀와 짝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며, 하나님 없는 바벨탑을 쌓고 있으며, 인간의 더럽고 추한 죄악이 쌓이고 또 쌓여 하늘에 사무쳤다고 했습니다(요한계시록 18:4).

 

이제 아무 소망이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는 비참한 존재로 멸망 받았을 것입니다.

 

결론 :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알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나를 모태에서 잉태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시편 71:6, 이사야 44:2 참조). 그러므로 그 분의 징계를 달게 받으며,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히브리서 12:9 참조).

 

(2) 이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피조물들을 수호하고, 지배하고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6:26 말씀에서, 주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9 말씀에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만 의뢰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해야 합니다.

 

(3) 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잠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하여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일은 있지만 이것은 우리의 유익과 축복을 위해서만 허용하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과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습니다(요한일서 4:8 참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 증거를 충분히 나타내셨습니다(로마서 5:7~8).

 

우리는 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진정이란 거짓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 거짓이 있다면 이는 헛된 경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령이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경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마땅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제 4 과 하나님의 삼위일체

 

< 성 경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 후서13:13).

 

1.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

 

소요리 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문 : 하나님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습니까?

답 : 한 분뿐이니 참 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문 : 하나님의 신격에 몇 위가 있습니까?

답 : 하나님의 신격에는 삼위가 계시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며,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십니다.

 

삼위일체는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리요, 교리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생겨 난 모든 이단은 이 삼위일체 교리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풀되, 성경에 제시된 진리의 말씀대로 깨닫지 못하고, 성경해석에 인간의 이성을 개입시켜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다가 이 삼위일체 교리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이 교리를 벗어 나게 되면 그 주장이 어떤 것이던 간에 그때부터 이단의 무서운 함정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삼위일체 교리란 다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오직 하나님은 한 분만이 계신다.

 

② 아버지도 하나님이시고, 아들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③ 이처럼 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위를 갖고 계신다.

 

④ 성부, 성자, 성령은 제각기 고유한 인격을 소유하고 계시면서도, 그 본체는 오직 하나이시다.

 

삼위일체 교리는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듯한 두 진리가 조심스럽게 옹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진리란 하나님의 단일성과 복수 성입니다. 단일성이란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복수 성이란 하나님이신 삼위가 계신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3. 삼위일체 교리는 왜 나왔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같은 교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을 옹립함에는 이 교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이단은 그 일차적인 출발점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는 절대적인 교리로서는 삼위일체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 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이란 말의 뜻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13-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 공유적 속성으로 영원하심, 무한하심, 유일하심, 자존하심, 전능하심 등을 배웠습니다. 만물 중에 오직 하나님만 이 같은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속성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다 이런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 위의 복수 성을 띠고 계십니다. 이렇게 복수 성을 띠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단일성이 강조되어 하나님은 절대 유일하신 한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6-27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했습니다.

 

위의 말씀 중에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란 말씀은 하나님의 복수 성을 나타낸 것이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나타낸 말씀인 것입니다.

 

 

4. 삼위 하나님의 성경적 증거

 

 

①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은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열왕기상 8:60, 고린도전서 8:5-6, 이사야 44: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② 성자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은 아버지뿐 아니라 아들도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 1:18, 이사야 9: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 앞에 엎드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요한복음 20:28참조).

 

그리스도안에는 하나님만이 소유하고 계시는 비 공유적 속성이 얼마든지 있음을 찾아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에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요한복음 1:5에는 그에게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그 생명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16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가 오직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이런 말씀은 그에게 적용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6말씀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3말씀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영원하신 신적 성질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며 그에게는 하나님만이 소유하고 계시는 속성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말씀은 진리로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③ 성령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은 또한 성령에 대하여도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에서 떠난 이단에서는 성령을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이나 감화력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하여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성령은 하나님이시라고 불려졌습니다. 3,4절 말씀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네가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당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성령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성령은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존경을 받으시고 위엄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2:31참조).

 

우리가 거듭나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데, 그 성전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5. 삼위일체 교리와 사단의 역사

 

 

사단은 부단히 교활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 진리를 가리우고 역 사 할 뿐 아니라 이 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결국 피조물의 자리로 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피조물이 만물을 창조할 수 있고, 그 창조 목적이 피조물인 자신의 영광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피조물이 그 영광이나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하며 하나님과 같은 경배를 받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는 성경에 천사로 나와 있는데, 예수님이 그 천사 중에 하나였다면 그 수많은 천천만만의 천사 중 우리가 죄를 지을 적마다 구약의 양을 잡아 속죄 제물을 드리듯 얼마든지 구세주를 보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일개 천사를 보내셔서 하신 말씀일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여러 이단적인 종파에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배격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성부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대명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결론 : 요한1서 4:1말씀에는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실 것을 시인하는 영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믿음만이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성경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주심으로 우리는 이 지식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 5 과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인가?

 

< 성 경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3~5).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에베소서 1:11~12).

 

 

1. 기독교 안에 교파는 왜 생겼는가?

 

 

기독교 안에는 여러 교파들이 있습니다. 왜 기독교가 하나 되지 못하고 많은 교파들이 생겼을까? 각기 교파마다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의 진리를 나타낸 책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방법이 여러 가지여서 서로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교파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해석에 지배를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교파에서는 제각기 자기들의 성경해석이 가장 바르다고 내세움으로 좀처럼 하나가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성경 교리는 무엇인가? 장로교회 세례 문답 조례 51문에는 이런 문답이 있습니다.

 

문 : 장로회의 교리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란 무엇이며 무슨 뜻인가? 우리는 오늘 이에 대한 성경 적인 해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2. 하나님의 예정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미 영원 전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것은 무엇이나 다 제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 사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자라고 성경에 흐르고 있는 진리와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를 깨닫게 된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 예정이 구원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하여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관련된 성경구절

 

⑴ 전도서 7:13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⑵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며,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⑶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⑷ 욥기 14:5 “그날을 정하셨고, 그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 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⑸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⑹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같은 모든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예정을 분명히 명시하는 말들입니다. 예정설에 입각하여 관찰한다면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이나 우발적인 것으로 생긴 사건이나 일들은 하나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도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원인이 반드시 따르는데, 그 궁극적인 원인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것을 간단히 간추린다면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모든 일들을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하나도 안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언제 예정하셨나?

 

 

인간의 계획은 모든 일을 얼마간 앞두고 세웁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연초에 그 해의 할 일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대로 100% 완전히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영원 전에 세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4, 디모데후서 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모든 일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 혹 다른 사람의 경우나 신․불신자간에 그리고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정확하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밖에 안 계시다는 사실을 또한 알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⑴ 우발적인 사건에 대하여

 

이 세상에는 우발적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며, 우연 또는 찬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작으로 도박을 하거나 윷놀이를 할 때 일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노라면 행운도 오고 비운도 오는 그러한 우연한 일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6:3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⑵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자유의지란 어떤 일을 당하여 한다, 안 한다는 선택권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경솔하게 결정된 사항이라도 내가 아무리 신중히 결정한 사항이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결정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죽였던 자들의 행악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

 

사도행전 2: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살인이 하나님을 거슬리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을 이루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무슨 예정을 하셨나?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인간의 예정에 대하여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습니다. 이것은 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순수한 자유 의지이니 만큼 아무도 이 결정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나의 자유의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뜻에 따라 된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4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⑴ 예정의 시기 :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에베소서 1:4).

 

⑵ 예정의 효과 : 영원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며,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

 

⑶ 예정의 기준 :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예정의 기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에베소서 1:9).

 

⑷ 예정의 목적 : 예정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6).

 

⑸ 하나님의 주권 적인 예정 : 이 같은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 적이고 단독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 나의 신앙을 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신앙을 가지기 전에 이미 나를 예정하셨습니다. 나의 선행을 보고 예정하신 것도 아닙니다. 내가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 이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믿고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최종적 구원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구원 여부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백성은 우리를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 드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하셨습니다(에베소서 2:10 참조).

 

하나님은 이 같은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시며 성령으로 역사 하시며 징계로 다스리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려 안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마땅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사실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행위로나, 지혜로나, 도덕으로나, 믿음으로나 보잘것없는 지극히 적은 자이지만 하나님은 이 같은 나를 기뻐하심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 앞에 무한히 감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예정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큰 격려와 확신을 주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1-3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나는 앞으로 나에게 하나님의 예정하신 작정에 대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나타날 것을 믿지만, 그리고 그것이 혹은 환난이나 질고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는 선한 일만 역사 하신다고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0-12, 로마서 8:2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제 6 과 하나님의 창조

 

< 성 경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1.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에 무관심한 이유

 

 

우주 만물의 존재에 대하여 인간의 지혜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과학도 아무 것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런 설명이나 증거가 필요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언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한 선언에 대하여 항거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매한 일이고 무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아예 우리 만물을 창조하신 이가 누구시냐 에 대하여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자꾸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나님을 부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후부터는 그 마음 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양심까지 속이고 있는 억지 주장임을 스스로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1:20-2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창조에 대한 세상이론

 

 

타락한 인간은 이 우주의 창조자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이 우주의 기원은 언제인가? 인간은 어떤 경로에 의하여 생겨난 것일까 하는 문제를 다루며 탐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창조 역사에서 하나님을 내어 쫓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인간의 지혜에서 얻은 결론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지구의 발생 기원은 수십 억 년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구는 태양의 한 모퉁이에서 떨어져 나왔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의 시조는 원숭이일 것이고, 더 위는 하등 생물이며, 그 더 위는 아마도 미생물일 것이다.’

 

‘아마도 인류의 기원은 적어도 200만년은 되었을 것이며, 아마 그 때부터 지금과 같은 인간의 모습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론은 현대 교육을 받은 많은 이들을 현혹시켜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무신론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윈이 생각했던 진화론이나 다른 공상가들의 과학적 추리는 순전히 인간 지혜로 생각해 낸 공상이나 예상이지 확실한 과학적 근거에 의하여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먼저 다음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1) 우주는 어디서 나왔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왜 생겼는가?

 

(2) 우주는 인력의 법칙에 의하여 운행되고 있는데, 그 인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3) 지구가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면, 지구 면적의 10분의 8에 이르는 물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4) 지구 안에 있는 수천수만 가지의 생물과 식물은 어떤 과정에 의해서 어떻게 생겨났는가?

 

(5) 인간의 시조가 원숭이라면, 왜 지금의 원숭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지 않고 있는가? 돌연변이의 현상이 왜 지금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가?

 

 

3. 하나님의 창조역사

 

 

세상에서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은 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 우주만물도 그것을 지으신 분이 계심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창조의 기이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3-14). 이처럼 누구든지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신비한 창조의 역사에 대하여 그의 영혼이 잘 알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1) 창조주

 

성경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가 계심을 말씀하고, 그 창조주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마땅히 섬겨야할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역사에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 관계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1: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여기서 나타낸 우리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창세기 1:1은 성부 하나님의 결정적인 창조 역사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 1:1-3 말씀은 성자 예수님도 말씀으로 이 놀라운 창조 역사에 들어가셨음을 보여줍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창세기 1:2절은 성령님이 창조 역사에 참여하셨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2) 창조연대

 

하나님이 도대체 언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가? 성경에는 다만 태초라고만 하였을 뿐, 그 태초가 언제를 가리키느냐에 대한 해답도 연대도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성경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의 것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일에 대해서만은 엿새 동안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 들은 이 사실이 과학과 충돌된다고 말합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우주 만물을 창조할 수 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사용하는 하루라는 시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혹은 24시간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시간이나 공간적 사실이지,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이 같은 인간의 시간에 얽매임을 받으시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그 생활에 적용하는 하루가 하나님께 있어서는 천년이 될 수 있고, 혹은 억만년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이 쓰는 시간이나 공간이나 역사에 구애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말하고 있는 억만년의 시간이 하나님께는 단 하룻밤의 지극히 짧은 한 경점만도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베드로후서 5:8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하루라 할지라도, 그 시간을 이용하시어 우리가 바라보는 이 우주와 같은 존재를 수 만개라도 창조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우리 주님이 물로 만드신 포도주는 아마도 현대 과학으로 분석했다면 수백 년 저장해 둔 포도주로 감정이 나왔을 것입니다.

 

(3) 창조방법

 

하나님은 창조 작업에 있어서 어떻게 하셨을까? 성경은 없는 것으로부터 있게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만물은 무엇으로 창조함을 받았는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창조의 목적

 

모든 만물을 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에베소서 1:5-6 참조).

 

그리고 이 하나님의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하셨다고 했습니다(에베소서 1:8-9 참조).

 

다음에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위하여 하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골로새서 1:14-17 참조).

 

결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모두가 선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그 창조 작업을 마치시고,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더럽혔습니다. 인간의 죄로 땅은 파괴되어, 곡식대신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은 다 탄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창세기 3:17-19, 로마서 8:22 참조).

 

하나님은 죄로 더렵혀진 이 처음 것들을 다 버리시기로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1 말씀에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도 사라집니다. 이 땅도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 땅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도 다 불에 소멸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새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창조하시는 일입니다. 이 새로운 사람을 성경에서는 새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참조).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받은 새 사람 만이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 창조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7 과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성 경 >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7-28).

 

 

1. 인간의 창조는 만물의 중심이 되어 있다.

 

 

우리가 첫째로 알 것은, 인간의 창조는 만물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다른 것들을 다 만들어졌지만 인간이 만들어져 있지 아니했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그 의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배는 호화판으로 거창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 배 안에 타야할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인간을 중심 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으며, 인간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의 운명과 같이 합니다.

 

창세기 3:17-19, 로마서 8:19-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그 아래 두었다고 하셨습니다(시편 8:3-9).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 세상에 인간이 없다면 그것은 선장이 없는 배와 같고, 목자가 없는 양떼와 같았을 것입니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다음으로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몇 가지 제시가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로새서 3:10).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지식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4).

 

여기서 ‘하나님을 따라’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 형상이 의와 진리로 비교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리의 마음의 사람, 곧 속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짐승에게는 인간과 같은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본능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짐승에게는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인데, 아무리 고등동물이라 할지라도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는 엄격한 일부일처제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도덕적 기준에 의하여 이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같은 본능을 주셨기 때문에 이런 본능에 의하여 움직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 외 다른 짐승은 의와 진리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빼어 버리면 다른 짐승과 다른 점이 별로 없고, 더욱 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인간을 성경에서는 죄 값으로 죽게 된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죄인의 마음의 상태가 끔찍스럽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8-3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 세상에 흉악한 짐승은 많지만, 이 같은 짐승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술 마시고, 집안 살림 두들겨 부수고, 길거리에서 남의 멱살을 붙들고 싸우며, 남을 속여 망하게 하고, 살인․강도질을 서슴없이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만들어 고의적으로 섬기며, 그 마음엔 더러운 생각이 꽉 들어찼으며……

 

대체 이 같은 짐승이 인간을 제외하고 또 어디서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그 마음에서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시편 49:20 말씀에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은 생령의 모습으로 창조함을 받았다.

 

 

창세기 2:7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령”이란 살아 있는 영이란 뜻으로 죄가 그 몸에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의 인간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주관하는 상태의 인간을 말합니다. 언제 이 같은 생령의 모습이 사라졌습니까?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비롯되었습니다. 죄 가 나를 지배하고, 나는 그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이제 생령이 아닙니다.

 

생령의 위치에서 떠난 인간의 모습을 창세기 6:3에서는,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육의 일은 영의 일을 싫어하고,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으며, 사람이 육으로 심고 썩어질 것으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죄로 잃어버린 이 하나님의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다시 주신 것입니다.

 

4.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 자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을 명령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러나 이런 축복도 죄로 그 권리를 스스로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 같은 약속은 죄가 사라지고, 인간 본래의 권리가 회복된 천년왕국의 새 땅에서 실질적으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5. 인간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택정함을 받은 백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어떤 사람은 불택자로 삼으셨는가에 대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에 대하여 우리 인간은 무슨 말로든지 하나님께 인간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9:17-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런 하나님의 오묘하신 일은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며, 우리 인간의 지혜로 헤아려 알 길이 없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신비한 지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1) 하나님은 택자에 대하여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하나님은 비록 택정함을 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까지 세상에 방임해 두심으로 모든 사람들은 그때까지 자기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 자의 가정에 태어나게도 하시며, 어떤 이는 일찍 예수를 믿게도 하시며, 어떤 이는 불신자의 가정에 나게도 하시며, 어떤 사람은 한쪽 강도처럼 운명 직전에 예수를 영접하게도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지 아니하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라도 다 평탄한 중에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난 청년 걸인도, 소경 바디메오도, 미문(美門)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인생의 큰 시련 중에서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라도 죄 중에 빠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유혹으로 인한 시험도 당합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은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 자기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는데, 그 때 비로소 자기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마음이 더러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역했던 죄에 대하여 회개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스스로 겸비해지고 하나님을 의뢰하기에 이르게 되고, 범죄하기를 피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 맺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더욱 정성을 기울일 것입니다.

 

(2) 불택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택자나 불택자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죄 때문에 그 마음이 악하고 강퍅할 뿐,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불택자라고, 그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악한 그 상태 그대로 놔두시는 것뿐입니다. 죄인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함에 하나님은 인간의 그 같은 죄에 대하여 그대로 방임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체의 죄악이지 하나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이해를 밝게 해 주시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불의, 탐심, 시험, 마귀의 간교에 빠지는 일에 대하여 상관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주기 위하여 마련된 은혜에 있어서도, 자기들 자신이 거역하기 때문에 그들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자신들의 죄악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아니하셨는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나를 택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하여 있든지, 그런 것이 내 일생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이 사실이 더 소중함을 깊이 깨달아, 내가 이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하는 감사의 마음이 솟구쳐야 하는 것입니다.

 

 

 

제 8 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 성 경 >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28-31).

 

 

1.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간섭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없어서, 지극히 적은 일에서부터 지극히 큰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지 않고 우연히 일어나거나 스스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람이 관찰할 때는 매사가 우연히 또는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일점의 오차도 없이 통치하고 계심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지배하신다는 사실은 성경이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길 역시 그 작정하신 대로 이루신다.

 

 

하나님의 이 같은 섭리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건이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이나, 또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이 어떻게 벌어져, 어떤 결실을 가져오건 간에 하나님이 미리 작정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과정에서 지내왔건, 그리고 우리 인생길이 어떤 경로를 밟아 지내왔건,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미리 예정하신 뜻에 조금도 모순 됨이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된 인생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지금의 불행이 찾아와서, 자기의 인생이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조금도 모순이나 잘못된 것이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완전한 인생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하여 하나도 모르심이 없으시며, 하나라도 빠짐이 없으시도록 우리의 인생길을 완전하게 작정하셨고, 그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우리의 인생이 마칠 때까지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2:8, 시편 37: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복음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는 저희로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베드로전서 2:17)고 말함으로 그것이 하나님 의 정하신 뜻이었음을 증거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는 숙명론을 배격한다.

 

 

여기서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으니, 매사에 노력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가만히 되어질 일이나 보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하고 반문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잘못하면 숙명론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숙명론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자기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참사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숙명론입니다. 성경은 이 같은 숙명론을 배격합니다.

 

① 바울의 경우 =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죄수의 몸으로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는 중에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배에는 276명의 죄수들이 타고 있었는데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을 보지 못하는 중에, 먹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살 소망마저 끊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약속에 따라 가만히 하나님의 구원만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배가 파선되었을 때, 선원들을 독려하여 있는 힘을 다 기울려 혹은 헤엄을 치게 하고, 혹은 널조각을 잡게 하여 생명을 다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섭리하실 때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우리로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우리와 인생길을 정하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예수를 믿고 구원함을 받을 수 있도록 작정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대로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파는 일로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

 

사도행전 1:16, 2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② 아랍의 어느 운전사의 경우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는 제 2차적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랍지방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다 회교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라신’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알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라를 절대 신으로 섬기며 모든 일에 알라신의 뜻대로 될 것으로 알고 모든 일을 알라신의 뜻에 맡겨 버립니다. 어느 기독교인이 터키에 있는 산악지대를 다닐 일이 있어서 알라신을 섬기는 회교도 운전사를 고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운전사는 산을 내려가는 절벽이 있는 위험하게 굽은 길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의 주인인 기독교인은 그에게 위험하니 차를 좀 천천히 운전하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운전사는 말하기를 사람은 이미 죽을 날짜까지 알라신께서 다 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이 날에 자기가 죽을 날로 알라신이 정해 놓으셨다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고 해도 역시 죽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구태여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운전사는 매우 옳은 말을 하기는 했습니다. 사람의 죽는 날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일에 있어서, 제 2차적인 원인이 없이는 죽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만약 자동차 사고가 그 산길에서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사고가 아무런 원인이 없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 운전사가 자기의 운전 부주의로 운전 사고를 내어 죽게 되었다면, 그의 부주의로 그는 사고를 낸 것입니다. 그러나 운전에 조심만 하였더라면 그 조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혜롭게 처신하며, 최선을 다하여 어떤 경우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은 운명론자나 숙명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혜롭게 처신하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는 한 나라와 한 민족에도 미친다.

 

 

성경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무관한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전쟁이나 혹은 혁명이나 국가체제를 바꿀만한 큰 사건들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의하여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실진대, 어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 일국의 국가원수가 암살을 당할 수가 있겠으며,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아니시고 서야 어찌 한나라의 대통령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3:1, 다니엘 4:2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하여 찬송하기를,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며, 지혜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 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도다”고 했습니다(다니엘 2:21).

 

 

5. 택하심을 받은 자의 태도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을 다스리십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사무엘상 2:6~7).

 

그러므로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28 참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을 잘 깨달아 그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30 참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로마서 8:31 참조).

 

그 아들을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로마서 8:32).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그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로마서 5:7-8).

 

하나님은 나를 택하시고, 나를 위해 나의 인생을 정하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를 부르셨음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내게 환난이 있어도, 내게 어려움이 있어도, 내게 생활의 궁핍으로 굶주림이 있어도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심”을 하나님은 나에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 참조).

 

결론 :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처럼 우리의 인생을 운명에 맡기지 아니합니다. 나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선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보며, 그 손에 잡혀 이끌려 가는 생활을 원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생명을 얻는 길이며, 영생을 취하는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시험이 와도, 환난이 와도,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를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려고 우리들을 그리스도안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승리 적인 축복의 생애가 그리스도안에서 보장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제 9 과 하나님과 사람의 최초의 언약

 

< 성 경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1. 행위언약(하나님과의 최초의 언약)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에게 하나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아담을 향하여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에게 어떤 행위를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지키면 생명을 주시는 약속이 있으므로 “생명언약”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행위언약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최초의 언약입니다.

 

 

2. 순종의 조건을 주신 이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의지를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일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1:3-1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하나님은 여기서 하나의 순종의 조건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사람은 먼저 이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합격한 후에,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과 만물을 지배하는 축복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찬송과 영광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두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만드신 유일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많은 피조물들은 자기들이 생을 누릴 수 있는 본능적인 것만 알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로마서 12:2).

 

두 번째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시험하시기 위해 아담과 선악과를 통한 행위계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언약자 : 하나님과 아담

내 용 : 선악과를 먹지 말라.

조 건 : 순종할 때 - 생명을 주심(창세기 1:28).

불순종할 때 - 사망을 주심(창세기 1:16-17).

결 과 : 아담이 불순종함(실패)

불순종 - 죄(로마서 5:12).

죄 - 사망(로마서 6:23).

사 망 : 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로마서 3:23).

② 영적인 사망으로 하나님과 두절됨(에베소서 2:1-3).

③ 육신의 죽음을 가져옴(창세기 3:19).

④ 둘째 사망에 들어감(요한계시록 21:8).

 

 

3. 아담이 왜 불순종하였나? (그 이유)

 

 

(1) 아담에게 불리한 언약이 아니었습니다.

 

선악과의 언약은 아담이 지키기에 너무 어려웠던 것이었나? 아담이 능히 감당할 수 없었던 어려운 요구 조건이었나?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미쁘사 아무에게도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0:13 참조).

 

그리고 아담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아담의 신분은 죄의 종이 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죄와 싸울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에덴동산 안에 아담이 먹어도 좋을 많은 과실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 볼 때, 아담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지극히 적은 순종의 조건이었음을 누구나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담은 이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함으로 자기 자신이 사망의 형벌을 받았고, 그 후손들까지도 아담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자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로마서 5:17-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아담은 마귀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마귀가 자기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믿는 사람은 아담처럼 넘어집니다.

 

(3) 아내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가르치지를 못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아내가 뱀에게 한 말은 “죽을까 하노라”였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단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알 때 그것이 이단이 됩니다. 말씀은 성령의 예리한 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반드시 진리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험 중에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사단의 시험에서 넘어진 것은 말씀이 진리에서 이탈되었기 때문입니다.

 

 

(4) 아담은 말씀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의 칭찬을 받은 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지켰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꼭 지켜야 합니다. 말씀은 지키는데 생명이 있습니다.

 

(5) 아담은 하나님보다 아내를 따랐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문제와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의 실패자로 삼손을 들 수 있습니다. 자기 아내 드릴라가 삼손의 힘의 출처를 물을 때, 얼마나 졸라댔던지,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결국 비밀을 실토하여 죽게 되었는데, 아담도 역시 하와의 권고에 못 이겨 삼손처럼 죽을 지경에 이르러, 할 수 없이 하와가 내민 선악과를 먹었고, 결국은 죽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을 버리라고 하였으며, 세상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라고 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께 합당치 아니한 일을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7-3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아담을 시험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믿음이 약한 형제들로부터 이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에게 이 같은 시험을 주셨는가”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있었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예정을 세우셨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이 실패할 줄 알면서 왜 그처럼 아담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드셨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처럼 작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그 책임이 어찌 아담에게 있다고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밝혀 놓으시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하여 완벽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이 문제에 대한 비밀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하신 일이 아니십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33).

 

하나님은 우리가 측량치 못하는 판단을 하시며,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깊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우주 만물을 섭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사단은 아담을 시험하여 그의 생명을 파멸시켜 버렸지만,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야고보서 1:4)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섭리 중에 불순종함으로 죄악의 길을 걸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편 145:17)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지혜로서는 언뜻 보기에 모순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더욱 크신 은혜와 사랑의 뜻이 반드시 들어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예정하시고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6, 마태복음 25:31-3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인간들은 아담 안에서 다 행위언약에 실패자가 되었으므로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나 소망이 없는 사망의 자식들이었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더욱 큰 축복을 주셨으니, 그 축복은 천국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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