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믿음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30. 18:44

 

 

믿음에 대한 예화 모음 배경음악 첨부

 

추앙받은 외국 퍼스트레이디들

▼ 프랑스 ▼

2차대전의 영웅이자 프랑스 제5공화국을 세운 샤를 드골의 부인 이본은 검소한 퍼스트 레이디의 표본으로 아직까지 프랑스 국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드골이 대위였던 1921년 결혼을 한 이본은 프랑스 북부 칼레지방의 명문가 출신으로 당시 남편(31)보다 10년 연하였다. 2차대전을 겪으며 조국을 「잃은」 군인 남편을 뒷바라지 해온 전형적인 장교 부인이던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가 된 뒤에도 삶의 틀을 바꾸지 않았다.


지난 59년 1월 엘리제궁에 입성한 뒤에도 하녀 한명의 도움을 받으면서 매일매일의 식단을 꾸렸다. 가끔은 운전사 한명만 대동하고 파리시내로 나가 남편이 좋아하는 치즈 등의 지방특산품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잼, 차 등을 손수 구입했다.


엘리제궁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족상황까지 일일이 챙기는 그녀의 별명은 「이본 아줌마」였다. 총리나 장관의 부인들을 크리스마스 등에 불러 작은 선물을 주면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자고 격려를 하기도 했다. 이본은 대통령인 남편이 프랑스를 위해 헌신했듯 남편만을 위해 헌신했을 뿐이라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69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10년동안 계속된 그녀의 삶은 드골의 부인이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만큼 검소하고 소박했다.


그녀는 남편이 하야한 뒤 함께 지내던 시골마을「콜롱베 쉬르되제 글리즈」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끊은채 9년을 지내다 생의 마지막 1년을 파리의 양로원에서 보냈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남편 덕분에 괜히 국민앞에 나서는 것이 싫어 프랑스를 방문하는 외국원수 부인의 안내도 총리부인에게 맡겼던 이본 여사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며 추억이 깃든 거리를 거닐다가 노환이 악화돼 79년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남편 샤를 드골의 장례식처럼 아무런 헌사도 없는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프랑스의 언론들은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퍼스트 레이디의 부음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한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 「마침내 끝난 운명」 등이 당시 신문의 제목이었다.


▼ 美國 ▼

미국의 경우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관심은 여러 갈래다. 남편의 정책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에서부터 성격 가정생활 사회활동 의상 취미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얘깃거리다. 그러나 금전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한번도 없다. 백악관 안주인의 축재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검소하고 절약하는 형이었다. 지미 카터대통령(76~80년)의 부인 로절린 카터가 백악관에 들어오면서 남편이 조지아주 주지사 시절에 쓰던 낡은 옷보따리를 들고 들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중동 평화협상의 기초를 마련한 캠프 데이비드회담 때 매일 남편으로부터 회담 진행상황을 보고받을 정도로 정치에 깊이 개입한 그녀였지만 생활 자체는 검소했다.


조지 부시대통령(88~92년)의 부인 바버라 부시 또한 검소했다.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를 연상케 했던 그녀는 한때 패션잡지들에 의해 「옷을 가장 잘 못입는 퍼스트 레이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는 최고였다.


남편을 위해 방송국을 사서 운영했던 린든 존슨대통령(63~69년)의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도 근검 절약했다. 그녀는 존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의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물려받은 유산에다 은행으로부터 빌린 1만달러를 합쳐 당시 파산직전에 있던 텍사스주의 라디오방송국을 사 이를 유수의 방송사(TBC)로 키워낸 장한 아내이기도 했다.


겸손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는 야구 실력 외에도 많은 칭찬을 듣고 있는 좋은 선수입니다. 투수실력도 특급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심성도 특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모자를 벗어 심판에게 깎듯이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혹 고전하더라도 절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단주 '오말리'는 박찬호 선수를 '엠베서더'(대사)-'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외교관' 이라고 부릅니다. 메이저 리그에서 갑자기 스타가 된 다른 선수들 중에는 경기중 감독이 투수를 교체하라고 사인을 보내면 글러브를 땅에 팽개친다거나, 심지어 입고 있던 자기 유니폼을 찢어 버리는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찬호 선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하게 행동하는지 모릅니다. 한사람의 고상한 인격이 우리 나라를 이렇게 온 세상에 동방예의지국으로 널리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상을 받습니다.(잠언 22:4)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는 요즈음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어떤 시인도 있지만 순식간에 오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각계의 지도자들을 봅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탐심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탄식과 분노와 실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나의 손은 깨끗합니까? 옳고 그른 것을 제대로 분별하여 정직하고 의롭게 살고 있습니까?

내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세상이 이 모양이라는 생각은 안해 보셨습니까? 정죄로 가득찬 돌을 잡아들기에 앞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출 때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고전 10:12)하면서 말입니다.



링컨의 겸손

전세계 인류에게 영향을 준 미국이 낳은 위인 한 사람만 꼽으라면 누구나 링컨을 꼽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었기 때문도, 남북전쟁을 치렀기 때문도 아니다. 적어도 그는 열두 번 직업을 바꾸었다. 뱃사공, 농부, 노동자, 장사꾼, 군인, 우체국직원, 측량사, 변호사, 주의원, 상원의원, 대통령 등이다. 그는 독학으로 계속 발전해 나갔다.


'나는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리라'는 그의 표어처럼 그는 날마다 책을 읽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훨씬 젊은 사람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를 힘썼다.


57세로 암살 당하는 순간까지 그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았다. 링컨의 세익스피어 연구는 전문가 수준이었고 그의 성경지식은 신학자 수준이었다고 한다. 링컨은 스무살 때까지 도끼를 안 잡은 날이 없을 만큼 고생했고 학교 공부는 모두 합해서 1년 정도로 불우한 환경이었으나 통나무집에서 자라면서도 혼자 공부해서 문학을 연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따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

워싱턴이 미국의 수도로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수도라고는 하지만 아직 도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집들은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고, 워싱턴 거리는 비만 오면 온통 진흙탕길이 되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진흙탕길 위에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널빤지를 깔아 놓고 흙탕물이 튈까 봐 조심조심 길을 건너곤 했다.


어느 날, 버지니아의 존 란돌프와 캔터키의 헨리 그레이라고 하는 두 사람의 하원 의원이 진흙탕길의 좁은 널빤지 위에서 마주쳤다. 어느 한 편이 진흙탕 속으로 내려서서 길을 비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평소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던 둘은 얼굴이 굳어진 채. 서로 상대편이 먼저 비켜 주기를 기대하고 서 있었다.


성미가 급하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없는 란돌프는 전부터 예의 바르고 깍듯한 그레이가 잘난 척한다 싶어 몹시 싫어했다. 그는 좁은 길에서 마주친 그레이에게 길을 비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잠시 후 란돌프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은근히 비꼬듯 말했다.

"나는 악당에게는 길을 비키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레이가 품위 있는 모습으로 공손히 인사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악당에게는 길을 비켜줍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흙탕물 속으로 발을 내딛는 그레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란돌프는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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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바다에 비유한다

어느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과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학문은 바다에 비유하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상대성이론 발견으로 크게 성공을 하고도 대자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을 인정한 겸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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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지도자

남침례교단의 유명한 빌 핸드릭스라는 교수님이 계신데, 교단 전체에서 존

경을 받는 대단한 학자이십니다. 침례교단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이 골든게이트 신학교의 학장으로 모시기 위해서 그분에게 부탁을 했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핸드릭스 박사께서 그 부탁을 거절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교장을 할 자격이 없읍니다. 저는 가르치는 교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지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그런 지도력이 저에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을 한 분 추천하겠읍니다. 제 제자 가운데에 폴랏트 박사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고 하면서 자기의 제자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의 추천을 참고해서 폴랏트 박사가 골든게이트 신학교의 학장이 되었답니다. 학장이 된 다음에 폴랏트 박사를 가르쳤던 스승인 핸드릭스 박사는 자기의 제자 밑에서 교수일을 하면서 신실하게 자기의 제자를 섬기면서 그 학교의 발전에 혁혁하게 기여했다는 간증을 들으면서 제 마음은 찡하고 울려왔읍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지겠읍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그것을 망각하는 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어두움이 초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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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삶의 기쁨

"연말 결산을 하는데 1백만원이 펑크난 거예요. 돈을 메꿔 넣는 것도힘든 일이었지만 은행에 면목이 없어 견딜 수가 있어야죠."


서울 외환은행 방배동 지점 입.지급계에 근무하는 행원 배순덕(36)씨.

6년전의 일이었다. 괴로운 마음에 성당을 찾았다.

"하느님! 이 돈만 찾게 해주신다면 앞으로 한 달동안 성당 변소 청소를 하겠습니다. 제발 찾게 해주십시오!"

기도 덕분이었는지 며칠 후 1백만원은 후배의 계산 착오였음이 밝혀졌다. 그때부터 배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성당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한달만 하겠다던 약속이 벌써 6년째다.

"낮 12시 미사가 끝나면 대걸레와 왁스를 들고 화장실을 찾는 것이 일요일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휴지통을 치우고 왁스로 깨끗이 바닥을 닦아내다보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지요."

배씨의 특별한 행복의 순간이다.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 등에 들춰업었던 첫딸 다영이도 이젠 자기가 대걸레를 밀겠다고 소리지르며 달겨드는 여섯 살짜리 꼬마로 자랐다.

처음엔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일요일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냐며 조용히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배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은행 나가랴, 집안 살림하랴, 딸 둘 키우랴. 바쁘게 살다보면 문득 저만을 위해 허겁지겁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때가 많지요. 사소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한다는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는 배씨에게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세상살기의 철학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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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일한다면

무릎을 꿇고 비석을 다듬는 석공이 있었다. 석공은 땀흘리며 비석을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비석에 명문을 각인했다. 그 과정을 한 정치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작업을 마무리짓던 석공에게 다가가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처럼 유연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에 명문이 새겨지듯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에 내 자신이 새겨졌으

면 좋겠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석공이 대답했다. "선생님도 저처럼 무릎 꿇고 일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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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잘것 없는 존재

신학자 풀리쳐에게 한 신학생이 찾아와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유능한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까?"

풀리쳐 박사는 조용히 그 학생에게 대답했다.

"자네가 유능한 전도가작 되기를 원한다면 이 한 가지를 잊지 말게나!

그것은 `영국에서 내가 가장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자세를 갖춘다면, 그때에 비로서 하나님께서는 자네를 통해 일하실 것이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할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기쁘게 사용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능한 사람이나 실력있는 사람의 능력 때문에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 앞에 순종하고 겸손함을 겸비할 때였음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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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여 잠잠하라

대영제국 시절 영토를 크게 넓혀 나가던 왕이 있었다.그러나 이 왕은 하나

님 앞에서 겸손했다. 어느날 신하들이 호화스러운 왕관을 씌워주며 "이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왕은 이런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파도여 잠잠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파도는 계속 일렁거렸다. 왕은 말했다."보아라. 내 명령을 듣느냐? 이 우주에서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이 거역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왕관을 쓸 수가 없다" 가누트 왕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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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

영국의 `머세르 프라임'이라는 고등학교 여교사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가정교육에서 자녀들에게 강조한 말이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니 그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변하지 말라는 것과, 세상은 변해도 부모의 은혜는 변하지 않으니 지극히 도덕적 윤리심을 버리지 말 것이며, 세상은 변해도 인간은 그저 인간이니 하나님을 능가하겠다는 헛된 망상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변하는 세상이 아니라 한 시간이 멀다하고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생각만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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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청소하는 학장

카 통 카우는 필리핀 부자 사업가의 아들로 마니라에 있는 성서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간 첫 날,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 매우 지저분한 욕실과 화자실을 둘러보고는 기겁을 했다.

기분이 몹시 언잖아진 그는 곧바로 학장실로 달려갔다.

"학장님 이 곳 기숙사의 욕실과 화장실은 왜 이렇게 지저분합니까? 청소부는 뭣하는 겁니까? 정말이지 학교에 다닐 마음이 싹 사라질 것 같습니다."

"기숙사 방 번호를 적어 놓고 가면 내가 곧 조치를 취하겠소. 방으로 돌아가 있으시오" 학장의 간단한 대답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그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청소부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쯤 지난 후, 욕실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카 통 까우는 욕실문을 덜컥 열어 젖혀보았다.

이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일하던 사람이 문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카 통 까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청소부는 학장이었다. 학장은 비누거품이 잔뜩 묻은 솔을 든채 웃고 있었다.

"아니 학장님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청소부는 어디에 가고..."

"자네가 아까 욕실이 더럽다고 하지 않았나. 이만하면 깨끗하지? 카우군, 우리 학교는 부자 학교가 아니라 기숙사 청소부를 따로 둘 만한 여유가 없다네. 그러니 우리 학교를 다니려면 청소 쯤은 제 손으로 해야 한다네. 여기서는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학장의 솔직한 웃음소리를 들은 카 통 까우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 올랐지만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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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머니

워싱턴의 어머니인 메리 보울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후 처음으로 고향인 마운트 버넌을 방문했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문앞까지 나가 아들을 맞았다.

“죠지 정말 잘 왔다. 나는 너에게 주려고 지금 맛있는 과자를 만들고 있단다”

 반갑게 아들을 맞이한 메리 보울은 빵가루 투성이의 손을 닦으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워싱턴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너무도 놀랐다. 그러나 워싱턴은 더 없이 기쁜듯 주의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분, 내 어머니가 과자를 만들어 주신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만든 과자를 즐겨 먹었습니다. 자, 사양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가 만든 과자를 다함께 먹읍시다!

 잠시 후 워싱턴은 조용히 어머니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어머니, 이제 집안일은 직접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려운 일은 하인들을 시키시고 그저 감독만 하십시오. 그러자 메리 보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대통령이 나온 마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나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내가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 수입을 늘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란다. 만일 대통령인 네가 끝내 내게 일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부리라고 한다면 나는 대통령의 어머니 따위는 언제라도 그만둘란다!”

 대통령의 어머니로 허세를 부리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신앙인 어머니가 만든 자식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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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으로

미국의 「헨리 누엔(Henri Nouwen)」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이자 교수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명문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메사추세츠」에 있는 작은 정신 박약자 수용소인 <데이 브레이크(Day Break)>학원의 직원으로 자청해 가서 봉사했다. 여기서 그는 정신박약자들 에게 용변 보는 법을 가르치고, 식사와 세수를 돕고 옷을 갈아 입히는 일을 하며 지냈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서 신동이란 별명을 들었던 사람이고, 「하버드」대학 교수가 된 후 책도 20여 권을 집필했으며, 그 책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누구나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기를 원할만큼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그 길을 포기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 때, 그는 <예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의 요지는 ꡐ예수를 진정으로 알려면 내리막길을 체험해 보아야 한다ꡑ는 것이었다. 주님이 말씀하고 몸소 행했던 복음의 교훈은 내리막길에서만 체험된다는 것이다. ꡐ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로만 전진하다 보니 예수는 안보이더라ꡑ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높은 곳으로 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가장 낮은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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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광고의 허실

카터를 망신시키고 대미국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킨 사건이 이란의 인질 구출 작전이었다. 6개월 동안이나 훈련을 받은 프로페셔널들이 어째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패를 하였을까?

<뉴스위크>지의 데이비드 마틴에 의하면 실패의 원흉은 하부우브스라고 부르는 사진(砂塵)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동 사막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자연 현상으로 강풍이 모래를 하늘 높이 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 곳 모래는 몹시 가늘어서 하부우브스에 둘러싸이면 대낮에도 상하좌우를 분간할 수 없는 암흑세계에 잠겨 버린다고 한다. 미군 특공대는 운 나쁘게도 하부우브스에 걸려 수송기와 헬리콥터가 충돌하는 참상을 겪었던 것이다.

하부우브스는 개인생활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과대광고는 실속이 없는 제품에 치는 연막이다. 연설이나 설교에서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은 내용이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속임수를 가리기 위한 선심공세도 자주 쓰여지는 인간의 술수이다. 그러나 뒷자락을 엄폐하려고 증거를 없애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척'할 필요가 없다. 아내에게도 친구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보이는 것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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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고등학교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에는 영국의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인 웨스트민스터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에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습니다.

일년에 하루 정한 날이 되면 모든 교사들은 모자를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 날에는 영국 국왕이 학교를 방문하는 데 왕이 교실에 들어오더라도 교사들에게 모자를 벗지 않으며, 국왕이라 할지라도 이 날만은 교사들에게 악수를 청해야 왕이 교사와 악수할 수있는 전통입니다.


이 전통이 유래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에 영국을 통치하던 찰스1세 때입니다. 리차드 버스비가 웨스트민스터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버스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느닷없이 찰스 1세가 그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위대한 왕의 방문을 받은 학교는 나너없이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찰스 1세가 버스비의 교실에 들어가자 학생들은 모두 일어서서 왕에게 인사하려고 했습니다. 버스비는 모자를 쓰고 가르치다가 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모자도 벗지 않고 학생들을 꾸짖어 계속 수업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화가 난 찰스 왕은 버스비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네가 일개의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대영제국의 왕앞에서 감히 모자도 벗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배짱이냐?" 그러나 버스비는 왕앞에서 당당히 대답하기를 "내가 가르치는 이 교실 안에서는 그 누구도 높은 자가 없습니다. 오직 가르치는 선생과 학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찰스 1세는 오히려 자기가 교육에 문외한이어서 그렇게 호통쳤음을 사과하고 누구든지 가르치는 동안에는 왕앞에서도 모자를 쓸 수 있게 허락을 하였습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것은 이 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 교육자의 권위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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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그는 백악관 현관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비서가 이 광경을 보고는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몰라하며 말했습니다.

"각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이라니?"

"대통령의 귀하신 몸으로 구두를 닦으시다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링컨 대통령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시면서,

"제임스 군, 자기 구두를 자기 손으로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어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구두를 닦는 일을 천한 일이온데 각하께서 손수

구두를 닦으시는 것은 황송한 일이옵니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야.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같이 세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일세. 세상에 천한 일이란 없는거야. 나도 어렸을 땐 구두

닦이도 하였었지..."

"각하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니까 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 세상에 천하고 귀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다만 마음이 착하냐, 나쁘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네."

비서는 대통령의 겸손하고 사리에 맞는 말에 감탄하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항상 자기 일은 자기가 하시며 사람들에게 많은 산 교훈은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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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도 있는 것

스웨덴에서 한 미군 병사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옆 사람과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미국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군 병사는 "백악관에 가면 누구든지 정해진 시간에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 미군은 자기 나라의 민주주의를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점잖은 스웨덴 신사가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이렇게 자랑합니다. "미국도 좋지만 스웨덴은 더 좋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왕도 백성들과 같이 시내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나라이니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입니까?" 이 말을 들은 미국 병사는 조금 이상하다 싶어 그 사람이 내리자마자 한 승객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옆 사람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 신사는 구스터프 아돌트 6세 왕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버스를 타고 여행하시는 분입니다." 그 말을 듣고 미국 병사는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누구든지 자지가 자랑할 것이 있으면 남도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남도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남을 존경하고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만 그리스도의 나라에 합당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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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칸이 없어서요

슈바이처(A.Schweitzer 1875-1965 독일 루터교신학자. 철학자. 음악가. 아프리카 선교사. 노벨평화상(1952)수상)가 자기 재산을 모두 병원 유지를 위해 기부했으나, 그것으로는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각지로 다니며 부득이 모금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던 중에 자기 고향인 알자스에 들르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친지와 동료 그리고 각계 인사들이 기착역에 모여 `20세기 성자'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다.


기차가 도착하자 환영 나온 사람들과 기자들은 1등실 앞으로 우르르 몰려 갔다. 그러나 위대한 슈바이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허둥대는 사람들의 눈에, 맨 뒷칸 3등 열차에서 내려 초라한 모습으로 플랫폼으로 걸어 나가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슈바이처 박사였다.


사람들이 달려가서 그를 붙들고 "아니, 박사님! 어째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하고 원망스럽게 물었다. 그 때 슈바이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4등칸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3등칸을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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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섬김이다

1878년 윌리암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한 남자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입대하기 위해서 건너왔다. 사무엘 브렝글은 구세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훌륭한 목사의 직분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부스 사령관은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부스는 그에게 ꡒ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왔습니다ꡓ라고 말했다. 그리고 브렝글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에게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를 닦는 일을 시켰다. 이에 실망한 브렝글은 ꡒ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나의 꿈을 좇아왔단 말인가?ꡓ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발을 씻으려고 엎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주님' 그는 속삭였다. "당신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저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사무엘 로간 브렝글이 기꺼이 그리고 사랑스럽게 그들의 더러운 군화를 닦으려고 했을 때 그는 청지기의 사명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경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처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것은 가치있게 경험한 교훈이었다. 브렝글은 의미깊은 청지기의 직분을 경험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감독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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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교만과 우상숭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방법들을 찾아 삶에 대처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교만을 미워하신다: "나는 교만과 거만과...미워하느니라"(잠8:13).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


교만을 드러내 보이는 것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셨고 또 행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잊어버리는 것(신8:11-18)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시10:4)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시12:3-4)

◉하나님 대신 돈과 우리의 능력을 믿는 것(렘9:23-24,48:7)

◉우리 자신을 높이는 것(잠12:9,25:14,27:2;롬12:3)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잠14:21)


웃시야가 그 일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16살에 왕이 되었을때,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24:4-5). 그러나 웃시야의 업적이 기록된 후에 성령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대하 26:16) 하나님은 그에게 문둥병이 들게 하셨고, 그렇게 문둥병자로 죽게 놔두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러야 할 영광을 높여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가 대신 들어갈 때, 그때도 우리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전3:18)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교만도 다른 사람에게 숨겨질 수 있다. 교만은 역겨운 행동이나 업적에 대해 자랑하고자 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부드럽게 우리에게 속삭여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게 한다.


매 순간, 매 시간마다 당신은 당신을 높이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높이는가? 성공했을 당시, 당신이 이루어 놓은 그 일의 성공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고 영광과 찬양을 드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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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큰 것

아주 먼 옛날에 아주 머리가 똑똑한 쥐 한마리가 살았습니다. 이 쥐는 너무 똘똘해서 그 쥐의 형제 자매들이 "큰머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큰머리"는 자기 형제자매들과 숨박꼭질놀이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 쥐는 자기가 너무 똑똑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숨박꼭질 같은 놀이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큰머리"쥐와 가족들은 학교 마루바닥 아래에 살았습니다. 이 곳은 "큰머리"쥐에게 아주 안성맞춤의 장소였습니다. 하루종일 "큰머리"쥐는 선생님 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큰머리"쥐는 큰 말을 많이 배웠습니다. "큰머리"는 이 큰 말들을 가지고 자기형제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했습니다.

어느날 밤 저녁식사가 끝난 후 "큰머리"는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배운 큰 말이 무엇인지 알겠니? 나는 수학, 지리, 경제...등의 말을 배웠어"라고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큰머리"쥐가 마루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아래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큰머리"는 자기가 배운 큰 말들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양이의 발톰이 갑자기 그 구멍아래오 내려와 "큰머리"쥐를 잡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큰머리"는 사라졌습니다.

"큰머리는 하늘로 올라갔단다"라고 어미 쥐가 말했습니다. 그 옆에 있던 아빠쥐가, "여보 헛소리 하지마, 고양이가 잡아가서 먹어버렸어"라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쥐들은 "큰머리"쥐의 처지에 대하여 애처롭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시간쯤 지난후 "큰머리"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다른 모든 쥐들이 "어찌된 일이니?"라고 물었습니다.

"큰머리"쥐는, "고양이가 나를 거의 다 먹어버렸어. 그런데 고양이가 나를 막 먹어버리려고하는 찰라에 나의 큰말 한마디를 사용했지. 나는 고양이에게 "당신이 나를 먹으면 당신은 <소화불량>이 될거야"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고양이가 "소화불량?" 소화불량이 무엇인데?라고 묻잖아! 그래서 나는 그 고양이에게 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하여 내가 알고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었지. 내 고양이를 다 들은 고양이는 기겁을 하면서 나를 놔 주었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형제 쥐 가운데 한마리가, "네가 돌아와서 정말 기쁘구나, 정말 기쁘다."라고 했습니다. 큰머리 쥐도 "나도 기뻐"라고 했습니다.

큰머리 쥐는, "나는 너희들을 다시는 못보는 줄 알았어. 이제 나는 큰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형제들과 작은 말 `사랑'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라고 말했습니다.

큰머리 쥐는 "나하고 숨박꼭질 안할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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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있다

남의 은혜를 입었으면 겸손할 일이다. 안드레이 크릴로프의 우화. 독수리가

힘찬 날갯짓으로 높은 산 위에 올라갔다. 독수리는 세상을 한 눈에 바라보면

서 자신을 이렇게 지어준 신에게 감사드렸다. 그런데 "야, 세상에 너만 있는

줄 아니? 나도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보니 벼랑의 나뭇가지에 거

미 한 마리가 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올라왔니?" "저 아

래 있을 때 네 몸에 착 달라붙어 올라왔지" 그 순간 돌풍이 불어 거미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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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원인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에 보면 소인국에서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수만명이 죽게된 장면이 나온다. 싸움의 원인은 삶은 계란을 넓은쪽 끝을 깨트려 먹느냐, 좁은쪽 끝을 깨트려 먹느냐는 의견차이 때문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싸움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사실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부부싸움도 대부분 세계평화나 민족통일 등 거시적 문제가 아닌 자존심ㅂ 싸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솝우화에 보면 어느날 저마다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의 짝을 찾는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도 약한 한쌍의 부부가 탄생되었는데 다름아닌 `교만의 신'과 `싸움의 신'의 결합이었다. `싸움의 신'이 `교만의 신'을 맞이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어디든지 어떤 곳이든지 당신을 따라 다니겠소!"라고 하였다. 그후 교만의 여신이 가는 곳마다 언제나 싸움의 신이 따라 다니며 일을 거들게 되었다. 이 부부는 가는 곳마다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싸움의 원인은 언제나 교만때문이다.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는 큰 일을 큰 일로 처리할줄 알고 사소한 문제로 인해 임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다. 본질적 문제보다 비본질적 문제로 에너지 낭비를 많이 하게 되는데 성숙한 인격자의 모습은 아니다.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도 참으로 소중하다.

모든 싸움이 교만에서 비롯되었다면 겸손이 활동하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의미없는 일에 시간이나 힘을 소모하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져야겠다. 우리의 싸움에 명분이 있는지 분석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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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배의 단맛 뒤에

18일 오전 미국의 TWA항공사 임직원들은 전년에 비해 경영실적이 400%

신장한 것을 자축하며 축배를 들었다.

미국항공계의 개척자인 TWA는 그동안 경영악화로 `수직하강'하다 최근

경영이 호전돼 활기를 띠고 `수직상승'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축배의 단맛'이 채 가시기도 전 이날 밤 8시

승객 2백30명을 태운 TWA800기는 대서양상에서 공중폭발하고 말았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알수

없음이니라"(잠언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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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여주인공

할리우드 영화의 간판 스타로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를린 먼로는 스크린에 비친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배우이다.

1926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날 당시 그녀의 이름은 노마 진 베이커였다. 노마는 어머니의 정신질환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입양후에는 양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열여섯 살때 결혼하여 매일 10시간씩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첫번째 결혼을 4년으로 끝냈다.

얼마 후 노마는 자신의 누드사진을 본 한 감독에 의해 20세기 폭스사의 여배우가 되었다. 이때 그녀에게 마를린 먼노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는데 마를린은 당시 유명한 여배우의 이름이었고 또 그녀 자신이 미국 대통령 먼로의 후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마를린 먼로는 단역만을 맡으며 간혹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추다 ꡐ아스팔트 정글ꡑ에 캐스팅되면서 조연으로 올라섰고, ꡐ이브의 모든 것ꡑ에는 주연급으로 발탁되었다.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누드사진이 공개되면서 먼로의 인기는 끝날 것 같았으나 어쩐 일인지 이 사진으로 그녀는 더욱 유명해졌고, 1954년에는 신화적 인물이었던 야구선수 죠 디마지오와 당당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 먼로는 영화 ꡐ7년만의 외출ꡑ에서 지하철 통풍구의 바람으로 치마가 치켜 올라가는 유명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이 영활로 그녀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남편 디마지오는 이런 선정적인 모습을 매우 싫어하여 결국 이혼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스스로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예술성 있는 영화를 제작하려 했다. 당시 먼로는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심한 지성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어 늘 촬영장에 유명한 서적들을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고, 이러한 컴플렉스로 말미암아 아서 밀러라는 극작가와 결혼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결혼도 행복하지 못했으며, 파경 후에는 과다한 약물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황폐해져 갔다.

그 후로도 먼로는 끊임없이 소문을 몰고 다녔는데, 케네디 가문과의 정치적 스캔들로 결국 커다란 불행을 맞게 되었다. 당시 먼로는 존 케네디의 취임식에도 참석하는 등 케네디가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존 케네디가 자신의 인기를 이용했음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더욱 심한 약물남용에 빠져들다 1962년에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둔채 발견되었다. 화려한 은막의 스타 마를린 먼로는 자신이 고백했던 것처럼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던 삶을 살다간 불행한 여주인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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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

세계 헤비급 권투 선수였던 미국의 모하메드 알리가 비행기에 오르자 많은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 앉자 시트벨트부터 매는데 알리는 어깨에 힘을 주고 씩씩거리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승무원이 점검을 하며 지나가다가 "시트 벨트를 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리는 퉁명스런 어조르 "슈퍼맨에게는 시트 벨트 따위는 필요없소"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여승무원은 "슈퍼맨은 시트 벨트가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필요없는 겁니다. 시트 벨트를 매십시오."라고 했다.

당신이 헤비급 참피언은 될지 모르나 슈퍼맨도 아닌 주제에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6공화국 시절, 청화대 모비서관들이 대통령이 업무를 돕는 일보다 이권개입에 더 관심을 두고 일하다 결국 비리에 연류돼 망신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완전히 번지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가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잘못 찾아온 사람에게 `You are in the wrong office.' 또는 `You have come to the wrong office'라고 말하는데 이는 번지수가 틀린 곳에 왔다는 말로 매우 재미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착각은 자유지만 한 사람의 착각으로 많은 사람이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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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자만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해 들어

가려고 할 때의 일이다.

출정 전날 그는 한 귀족 부인에게 승전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듣고 있던 부인은 "인간이 계획하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황제는 껄껄 웃으며 "부인, 모든 것은 제가 계획하고 제가 이룰

것입니다."라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몇 달 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대패하고 1814년 퇴위, 엘바 섬에

유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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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땅

묵은 땅은 본래는 좋고 부드러운 땅인데 쟁기로 갈지도 않고 김도 매지 않은 채 오래 내버려두어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성한 밭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과 때때로 적셔주는 좋은 비를 받지만 묵은 땅은 거기에 대한 보답이 없는 쓸데없는 땅입니다. 오히려 장해가 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잡초의 씨들은 그 옆에 옥토가 있으면 날아와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잡초를 나게 만듭니다.


이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본래는 착한 마음이었으나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가운데 그 마음이 굳어져 좋지 못한 습관이 생기고 그 뿌리가 깊어집니다. 즉, 세상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 이생의 자랑과 교만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마음속이나 그 생활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만 없는 것이 아니라 초신자나 열심있는 성도의 옥토와 같은 마음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묵은 땅은 예리한 보습으로 굳은 땅을 깨뜨리고 부드럽게 갈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불살라 버리고 새로운 옥토로 만든 후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길이 박혀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을 때 심한 고통이 따르듯 철저히 회개하여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요나 선지자나 마가, 요한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마음이 옥토같았으나 어쩌다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져 자기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잘못을 회개하여 다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묵은 땅이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권세없고, 돈 없을 때는 옥토였는데 지금 묵은 땅이 된 심령은 없습니까? 지체말고 마음밭을 개간하여 옥토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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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나병환자

열 명의 나환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제각각 이었다.


"진짜 나았는지 확인해야지."

"나았지만 앞으로 재발하지나 않을까?"

"주님께 천천히 감사드려도 괜찮겠지."

"이제보니 내 병은 나병이 아니었던 것 같아."

"다 나은 것이 아닐거야. 약간 나은걸거야."

"제사장에게로 가야지."

"주님께서 날 위해 특별히 애쓴 것도 없는데 뭐."

"랍비들도 이런 일은 할 수 있을거야."

"사실 나는 이미 회복되고 있었다구."

"예수님께서 내 병을 낫게 하셨으니 감사하러 가야지."


열명의 나환자가 똑같이 예수께 고침받았으나 진정으로 감사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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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안하는 이유

노총각이 친구를 만났다.

"자네는 어찌하여 아직 결혼을 안했는가?"

"얘기를 들어보게. 나는 이상적인 여자만 찾고 있었지."

"그래, 아직 그런 여자를 못 찾았는가?"

"오, 찾았지, 그러나 또 글렀지 뭐야. 그 여자는 이상적인 남자만을 찾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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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멋대로 보는 성경

어느 젊은 신자가 성경을 체계적으로 잘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매일 아침 성경을 되는대로 펼쳐서 맨 처음에 눈에 띄이는 성경구절을 하나님이 그날에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조심스럽게 성경을 펼치니 그의 눈에 들어온 첫번 구절은,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였음으로 이 말씀이 그날에 자기를 위하여 주시는 말씀으로는 여길 수가 없음으로 다시 한번 펼치기로 하고 두번째 펼치니 이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는 말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한 나머지 다시 한번 펼치기로 하고 다시 펴니 이번에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13:27) 였습니다. 그는 다시는 제 멋대로 성경을 보지 않기로 작정하고 회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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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어떤 화가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을 그리기로 하였다. 특별히 이 그림 속에 마음의 정경과 함께 마을 사람 한 명을 그려 넣기로 하고 여러 사람을 살펴보았다. 저명 인사를 그려 넣을까. 그 마을의 귀염둥이 소년을 그려 넣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화가는 그 마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다니는 청소부를 그려 넣기로 하였다. 화가는 그 마을의 청소부에게 가서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고 청소부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타나난 청소부를 본 화가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청소부는 목욕도 하고, 면도도 하고, 옷도 허름한 옷을 벗고는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청소부의 모습은 화가가 그리려고 하는 그림에 어울리지 않았다. 화가가 원한 것은 신사가 아니라 평소에 마을을 열심히 청소하던, 먼지를 뒤집어 쓴 청소부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죄악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주 앞에 나가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오길 원하신다. 내 노력으로 많은 선을 쌓고 그것으로 자랑을 삼아 교만한 모습으로 주 앞에 서서는 안된다. 주님께 죄를 자복하고 겸손히 통회하는 마음으로 엎드릴 때 주님이 주시는 의의 흰옷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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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한 방문자는 스승앞에 자기의 고민거리를 한참 이야기하고는 다시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문다의 찻잔에 차만 계속하여 따랐다. 차는 찻잔에 흘러넘쳐 앉은 자리까지 홍건히 젖었다. 스스로의 아야기에 도취되어 떠들어대던 방문자는 놀라 스승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잔이 넘쳐서 흐르는데 어찌하여 자꾸만 따르시는지요?" 그제서야 스승은 입을 열였다. "이 찻잔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은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르쳐 드린다 해도 다 넘쳐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장래의 길을 갈 때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교만과 질투로 빈틈이 없다. 돈이 많아서 예수를 못믿는 사람들이 많고, 사업이 잘되어 주일을 못지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지식 때문에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예수 앞에 나올 때는 없는 것보다도 있는 것이 죄가 되고 참된 축복의 거침돌이 되는 일이 많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

스펄전 목사는 소유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믿는 자여, 그대는 아무 자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교만을 물리치라. 그대가 무엇이든지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가 많은 것을 소유하였으면 오히려 그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빚쟁이란 것을 자랑할 수는 없다. 그대의 속성을 생각해 보라. 그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지혜로운자와 어리석은자

연못가에 서 있는 갈대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이리 저리 나부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떡갈나무가 이 갈대를 보며 동정하였다. "이봐요 갈대, 자네는 바람이 조금만 불거나, 물위에 여울이 져도 머리를 숙여야 하니, 자네의 가냘픈 몸집이 자네 자신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겠는걸." 하며 떡갈나무가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내 건강한 머리를 좀 보게, 햇빛을 멈추게도 하고 강한 폭풍까지도 힘차게 맞설 수 있지. 삭풍이 자네에게는 폭풍이지만 나에겐 미풍만도 못하네. 자네가 내 몸 밑에라도 태어났던들 나의 그늘을 은신처로 삼고 고생이 없을 텐데. 내 생각으로는 자연은 불공평한 것 같네."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동안 말없이 듣고 있던 갈대는 "나를 동정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다지 걱정은 마시오. 모든 바람은 나에게보다 당신에게 위험스럽소. 바람이 불면 나는 굽히기는 하지만 꺾이지는 않는다오."라고 말하자, 떡갈나무는 괘씸하게 생각했다.


이윽고 지평선 저쪽에서 북풍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떡갈나무는 몸을 굽히지 않고 바람에 맞섰다.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왔다. 가냘픈 갈대는 당장 쓰러질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기울일 뿐 아무 괴로움도 없었다. 한편 떡갈나무는 강한 바람에 힘을 다하여 맞섰다. 바람은 무척 세게 불었다. 떡갈나무는 머리를 하늘을 향하여 쳐들고,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었다. 그러나 끝내 뿌리채 뽑히고 말았다.

어느 대학생의 기도


대학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이 전혀 공부를 않고 있다. 대신 교회 일엔 여간 열심이 아니다. 그 학생에게 지금은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당사자인 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열심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당사자인 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아무 염려 마십시오. 본때 있게 합격해 보일테니 정말 자신 만만한 태도다.

드디어 대학시험 때가 닥쳐 왔다. 삼류대학 들어갈 실력도 안되는 그가 한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원서를 접수시켜 놓고 기도원엘 들어간다. 이 학생의 기도 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약속하신 주님,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서울대학에 입학할 것을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더 잘알고 계실 것입다.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오니 대학 입학의 문을 활짝 여시사 믿는 자를 조롱하던 마귀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신 능력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는 일주일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결국 미역국을 먹었다. 한국교회의 신앙이 이런식으로 변질되어 간다면 기독교 때문에 개인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둑놈이 "오 주여 날 선량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밤낮없이 기도하면서 여전히 밤이슬을 맞고 다닌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2:26)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죽었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처음부터 없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기쁠 때에 하는 기도


1964년 7월 6일, 그날까지 나는 사실 기쁜날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다. 그날은 내가 응모한 소설 [빙점]이 입선되었다는 전화가 왔던 날이다. 그날은 내 생애에 있어서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기쁨의 날이었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에 나는 곧 미우라에게 입선 소식을 전했다. 그날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돌아온 미우라는 곧 나를 이층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나를 꿇어앉게 하고는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기도였다. 그리고 그때 미우라가 나에게 ꡒ천만원의 상금을 받고 유명하게 되면 인간 바보가 되기 쉽지요ꡓ라고 한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참으로 많은 분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진 것은 미우라가 말했던 ꡒ바보가 되기 쉽지요ꡓ라는 말과 정성들여 기도해주던 모습이다. 여러 번 다른 데서도 썼지만. 인생의 위기는 사실 기쁠 때에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옛날부터 ꡒ위험한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사람은 평탄한 길에서 넘어진다ꡓ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때 만일 미우라가 다만 ꡒ잘했다. 우선 한 잔 할까.ꡓ하고 말했다면 나는 그때 그 커다란 기쁨을 과연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때 미우라는 내가 우쭐할 것을 경계하여 받은 상금을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주었다. 기뻐서 마음이 들떠 있을 때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기도해야만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알게 되었던 것이다.



교만한 마음


일본에서 일했던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일본 동경 중심부에다가 한국 유학생과 재일동포 학생들을 위해서 기숙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돈많은 실업인들을 초청해서 그 계획을 설명했더니 ꡒ아.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인재는 키워야 합니다ꡓ하고 모두 동의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인 20여 명의실업인들에게 ꡒ20분의 일씩 자금을 헌납하지요ꡓ 했더니 모두들 ꡒ아니요.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내가 혼자 몽땅 지어드리지요ꡓ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숙사는 십 년이 넘도록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혼자 하겠다는 겁니다. 이 영웅심, 이 썩은 영웅심, 누구의 이름이 나면 무엇합니까. 교회에서까지 이런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교포들이 멸시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구제할 줄 몰라서 입니다. 각 부인회에서 전부 돕는데 한국 사람만 유독 땡전 한 푼 안 내려고 듭니다. 흑인들에게도 미움받는 것, 그들의 지역에서 실컷 돈 벌어서 전혀 그들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백인 지역에서 호화롭게 산다고 흑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이 구제는 어느 누구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힘들이 많이 모아져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서 구조적인 불행을 우리가 구조적으로 도와야 하고 구조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주제파악


신의 모습을 조각한 상을 실은 나귀가 동네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거룩하신 신의 모습을 보고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모든 사람이 나귀 앞에서 절을 하자 나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하는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나를 이렇게 존경하여 절을 하고 있는데 나는 여지껏 내가 이렇게 위대한 존재인 줄 몰랐구나.' 이 때 무척 지위가 높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지나가다가 나귀를 보고 절을 했다. 주인보다 훨씬 훌륭해보이는 어른이 절을 하는 것을 보자 나귀에게는 더욱 더 교만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존경하는데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때 주인이 회초리로 나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꾸물거리고 있는 나귀에게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매였다. 그러자 더욱 약이 오른 나귀는 앞 발을 들고 벌떡 곤두서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뻗대었다. ꡒ이 놈의 나귀가..ꡓ 화가 난 주인은 한 번 더 나귀의 등을 내리쳤다. 그러나 나귀는, '흥' 나는 짐을 싣고 다닐 천한 나귀가 아니란 말이야. 이젠 주인에게 고분고분 하지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매를 들어 나귀를 때리려던 주인은 왜 나귀가 꼼짝도 하지 않고 주인의 약을 올리는 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주인은 더 굵은 몽둥이로 나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ꡒ바보같은 나귀 새끼야. 사람들이 너를 보고 절을 하는 듯 싶으냐. 만약 네가 지금 싣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면 이처럼 잘난 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들어둬라. 너는 지금 신의 상을 등에 싣고 있단 말이다.ꡓ 주인에게 호되게 얻어 맞은 나귀는 그제야 비로서 사람들이 절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이 번창하자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제국을 다스려보겠다는 마음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치 나의 것인양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집

중세기의 전쟁 이야기 가운데, 유명한 로랑 장군의 이야기가 있다. 로랑은 프랑스의 황제 "샤르 마뉴" 대제의 12용사 중의 한 사람이다. 무어인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로랑이 이끄는 군대가 포위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옛날 전쟁에서, 이런 경우에 구원군을 부르기 위하여, 뿔나팔을 대장이 휴대하였었다. 그러나, 로랑은 자기의 체면 때문에 뿔나팔을 불지 않았다. 결국은 부하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아주 위급해졌지만은, 로랑의 고집은 자기 자신이 죽을 순간까지 뿔나팔을 불지 않고 만 것이다. 로랑의 체면 유지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부하를 전멸시키고 말았다. "나폴레온"이 러시아를 침공하고 큰 패배를 맛본 것도, 체면과 고집에 기인되었음을 역사는 말한다. 그 해 겨울이 예년보다 몹시 추우리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나폴레온은 사전에 들었던 것이다. 철새가 다른 때보다 빨리 날아갔고, 여러가지의 경험과 과학적인 예를 들어전문가들은 러시아 원정을 연기할 것을 나폴레온에게 충고하였으나, 나폴레온은 웃어 넘기고 말았으며, 심지어는 "힘없는 인간의 충고가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인가? 나는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엉뚱한 교만과 고집을 내세워, 결국은 수 많은 인명을 얼음속에 쓰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느 왕비의 무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젊고 아름다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궁리 끝에 왕은 아주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왕은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데 없었읍니다. 동쪽엔 미남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아름답기 그지 없었으며 더할 나위없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명하였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을 중심에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가문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생각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


John Wooden은 미국 농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코치라는 평을

받았다. (1975년 은퇴) UCLA 농구팀을 10년간 참피온의 자리에 머물게

하는 신화를 낸 명코치였다. 그가 침을 훈련할 때 언제나 강조한

한개의 표어가 있는데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것" (selflessness)

이었다. 자기가 아무리 우수한 개인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시하려고 하면 팀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다.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것이 좋은 선수가 되는 비결이다.


지나친 과신


富와 학문으로 유명했던 아시아에 있는 리디아왕국(Lydia王國)의 수도

사데 (Sardis)는, 대부호 독재자인 크로이서스(Croesus)의 요새였고,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의 근거지이기도 했읍니다. 그렇지만 부와 학문도

근본적인 보증을 주지는 못했읍니다. 참으로 그들은 큰 재앙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했읍니다. 이것이 바로 두번씩이나

경계를 소흘히 하여 파멸되었던 교만한 성읍 사데의 비극이었읍니다.

사데는 앞에는 팍톨로스(Pactolus)강이 흐르고, 뒤에는 트몰루스(Tmolus)

산 절벽이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기 때문에, 바사의 고레스왕의

침공에도 잘 견디어 낼 수 있었읍니다. 고레스왕은 문제의 심각함을 깨닫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내는 자에게는 큰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읍니다.

그러던 중 파르디아 출신의 한 병사인 히에로에데스가 한번은 리디아 병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투구를 솜씨있게 내려와서 찾아가는 것을 보고, 그날 밤

그 병사가 올라가던 방법대로 조심스레 절벽을 기어올라가 보니 놀랍게도 그

성읍은 너무나 자신한 나머지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사데는 순식간에 완전히 망해 버렸읍니다. 그 후에도 그 성읍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너무 과신하다가 두번째도 꼭 같은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데 교회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경고하셨읍니다. 지금도 거룩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는 늘 깨어 있도록

요구되고 있읍니다.


자만


자만심은 운명을 박차고 죽음을 비웃고 야망에 사로잡혀 지혜도 은혜도

ㅈ두려움도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죄다(섹스피어)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의 소유물이다(헤로드토스)

교만은 모든 죄악의 왕이다. 교만이 올라오면 모든 덕은 물러간다.

ㅇ 너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현재 생ㅎ롸ㄹ은 통곡할 만하고 죽은

뒤를 생각하면 두려운 것 뿐이니 사람이 3가지를 늘 생각하면 능히 교만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성 베르나르드)

ㅇ 교만은 덕 속에 나와서 덕의 모습을 가장하고 덕을 해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 벌레가 나무에서 나서 나무를 해하는 것과 같다. 다른 악은 외부를 치는

것이나 교만은 영을 치는 것이다. 악은 한쪽만 치나 교만은 여러면을

친다.(성 어거스틴)

ㅇ 대개의 큰 과오 밑에는 교만함이 있는 것이다.(존 러스킨)

ㅇ 교만 중에 영적 교만이 제일 크다(라인홀드니버)

ㅇ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하고 겸손은 사람으로 천사가 되게

한ㅁ다.

ㅇ 교만은 어리석은 자에게 ㅁ반드시 따르는 악덕이다.

ㅇ 자기애는 교만의 시초이다. 교만은 자기애이다. 억제되지 못 하였을 때

그 형체를 나타낸다

ㅇ 인간의 교만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권력의 교만, 지적교만, 도덕적

교만이다.(라인홀드 니버)

ㅇ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성안토니)

ㅇ 파리 한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그다지

교만해지지 않는다(탈무드)


겸손할 자는 항상 이긴다

미국의 독립 전쟁 당시, 군인들이 전투 준비를 하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는 동안 사복 차림의 한 사람이 부하들에게 무거운 지렛대를 들어 올리라고 거만 스럽게 명령하고 있는 하사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그 하사에게 "왜 저 군인들을 도와 주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대답은 화가 치솟은 목소리로 되돌아 왔다.

"난 하사란 말이야!"

신사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나서 코트를 벗어놓고 달려들어 군인들을 도와 주었다. 일이 다 끝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사님, 일할 사람이 모자라면 언제든지 사령관에게 찾아오시오. 내가 기꺼이 도와주겠소."

이 말을 남기고 조지 워싱턴은 코트를 입고 사라졌다.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간혹 자신을 비하해야 한다. 겸손한 자는 항상 이긴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그 표본이시다. 그 분은 가장 천대를 받던 문둥병자와 거지,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인류는 그 분을 존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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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어떤 화가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을 그리기로 하였다. 특별히 이 그림 속에 마음의 정경과 함께 마을 사람 한 명을 그려 넣기로 하고 여러 사람을 살펴보았다. 저명 인사를 그려 넣을까. 그 마을의 귀염둥이 소년을 그려 넣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화가는 그 마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다니는 청소부를 그려 넣기로 하였다. 화가는 그 마을의 청소부에게 가서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고 청소부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타나난 청소부를 본 화가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청소부는 목욕도 하고, 면도도 하고, 옷도 허름한 옷을 벗고는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청소부의 모습은 화가가 그리려고 하는 그림에 어울리지 않았다. 화가가 원한 것은 신사가 아니라 평소에 마을을 열심히 청소하던, 먼지를 뒤집어 쓴 청소부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죄악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주 앞에 나가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오길 원하신다. 내 노력으로 많은 선을 쌓고 그것으로 자랑을 삼아 교만한 모습으로 주 앞에 서서는 안된다. 주님께 죄를 자복하고 겸손히 통회하는 마음으로 엎드릴 때 주님이 주시는 의의 흰옷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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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은사

저의 남편과 제가 지난 25년간을 함께 목회하는 동안 저희 교회에 수많은

협동 목회자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경우도 많았습니다. 후에 우리는 강단에서의 설교 경험이 있고 교회의 궂은 일까지 열심히 했던 분들이 성도들을 잘 섬김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약 2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봉사했던 한 부부가 다른 도시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강단에서 설교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그들이 교회를 개척하려 떠난다고 했을 때. 저는 걱정이 되어 속으로 `오, 주님! 이 젊은 목회자들이 주님의 뜻을 올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이 교회에서 실제로 필요한 많은 일들을 봉사하였지만. 설교 경험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실제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는 능력이 있었으며 실제로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주 유능한 교사나 설교자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가르침과 설교를 듣고 있는 회중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볼 줄 모른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섬기는 은사를 받은 신자만이 목회자로 부름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섬기는 은사를 받은 목회자가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회의 여러 사역 중 어느 부분에 속해 있든지 목회에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종의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유명한 것, 훌륭한 것

엔리코 카루소(1873-1921)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가수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많은 노력으로 폭넓은 음성영역을 구축하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만 607회나 출연하는 진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도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곳에서나 꺼리낌없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은 그를 자존심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어느날 그가 시내를 걷다가 옛친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음식을 청할 때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요리사 아저씨! 테너 가수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 종업원의 말이 떨어지자 요리사가 즉시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한 태도를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이곳에서 뵈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들려드리지요"하고 카루소가 아주 쉽게 말했다. "정말요? 선생님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노래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요리복을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그가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하고 카루소는 그를 위안시키고 즉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식당 홀 안에 가득히 울려퍼졌다. 노래가 끝났을 때, 모든 손님들은 그가 카루소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아름다운 선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요리사는 더욱 감격해 했다.


잠시후, 식사가 시작되어 친구가 카루소에게 왜 아무곳에서나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네. 더욱이 저 요리사도 요리를 맛있게 해서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예술가가 아닌가. 예술가를 위해 노래 하나 하는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명하다는 것과 훌륭하다는 것은 다르다.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유명한 것이지만, 어렵고 딱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행위는 훌륭한 일인 것이다. 카루소의 폭넓은 인간존중 정신을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

매년 방학이 되면 정신여고 틴 라이프 중창단이 미주 지역을 순회하며

연주 활동을 벌이곤 했습니다. 오래 전 인솔자와 함께 중창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고등학교, 교회, 대학들을 순방하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단원은 모두 15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차를 타야 할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차 있는 데로 뛰어가 서로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다투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날 동행했던 장로님 한 분이 지켜보고 있다가 인솔자에게 물었습니다. ꡒ왜 저 학생들은 차를 탈 때마다 앞을 다투어 뛰어갑니까?ꡓ 인솔자의 대답은 자동차의 좌석이 열두 좌석밖에 안 되기 때문에 세 명은 차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서로 먼저 타서 엎드리기 위해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장로님이 직접 차 있는 데로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뛰어간 두 여학생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날 그 장로님은 정신여고의 중창단을 위하여 15인승 봉고차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그것은 엎드리고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지닌 위치나 소유나 입장을 내세워 엎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고넬료보다 더 위대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고 엎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괴짜 임금

영국에 왕관을 쓰지 않은 괴짜 임금이 있었다. 카누트 황제 (King

Canute 1014-1035) 이다. 신하들이 지나치게 자기를 찬양하는 것이

싫어서 어느 날 왕좌를 해변에 옮기게 했다. 밀물이 들어올 때

"바다여 멈추어라!" 하고 명령했다. 여러번 명령했지만 물결은

사정없이 밀려들어 왕좌의 절반까지 들어와 파도에 밀려 임금이

왕좌에서 떨어졌다. 이때 카누트 왕은 "보았느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너희가 의지할 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고 가르치고 그날부터 왕관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백인부부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백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을 잃게 된 여인은 농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하녀의 딸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주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벌판에서 주워서 가지고 놀던, 소녀가 가장 아끼던 광채나는 큰

돌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여자는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임을 알았고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어느날

불현듯 흑인 소녀를 기억하고 싸구려 인형을 하나 사서 보내어 주었습니다.

흑인 소녀는 그 인형과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매일 인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나이들었을 때에 그 인형을 자기의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 딸은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형과 다불어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생 그 자체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자가 된 백인 여자는 돈 때문에 파생되는 자식들과의 불화와, 자신의

돈을 노리는 온갖 사람들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자식들은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들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도 일생

돈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될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늘도 무엇을 자식에게 남겨 주려고 앴쓰고 있습니까? 진실된

당신의 삶을 물려 준다면 그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만 주려 한다면

그들은 고통의 감옥 속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나이팅게일

영국의 간호원 나이팅게일은 러시아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싸움인

크리미아 전쟁(1853-56)의 참상에 대한 타임즈 통신원 럿셀의 보도가

전해진 후 어린 날의 친구였던 육군대신 허버트의 위촉을 받아

34명의 간호원과 함께 전선으로 나갔읍니다. 이곳 저곳의 병원을

천사처럼 돌아다녔음니다. 그로 인해 그 녀의 이름은 모든 병사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광명부인: The lady with the lamp>이라는

이름까지 주어졌읍니다. 그리고 보도진은 저마다 그녀에게로 달려와서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읍니자.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그

모두를 거절하고 자기를 잊어버려 주기를 부탁했읍니다. 그 녀는

그리스도만이 그 녀가 한 일의 모든 축복을 당연한 소유자임을

사람들이 알아 주기를 오로지 바랬던 것입니다.


유태 속담

유태인들의 속담에 "지식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와 같은 이치로 오만한 마음에는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지

않는다. 지식을 얻으려면 겸허해야 한다. 또한 이 지식의 물을 담아두는

그릇은 나무 그릇이다. 쇠 그릇 속에서는 물이 부패하고 나무 그릇 속에서는

물이 부패하지 않는다. 또한 "돈이 너무 많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식이

들어가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돈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잘

들어간다"라는 말도 있다. 부잣집 자식이 반드시 학문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해되는 것이다.

신앙도 낮은 자가 받아들인다. 나무그릇은 물을 받아들이면 그 물이

촉촉히 배지만 쇠그릇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백부장의 신앙도 나무그릇에

담긴 겸손한 신앙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세와 부와 학문에 대해 겸손했다.

어깨에 힘을 주고 거만히 굴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신분이 낮은 종의

구원을 청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했던 사람이었다. 겸손은 모든 덕의 기본

뿌리이며 기독교인이 갖춰야 할 덕목중의 하나이다. 주께서 백부장의 겸손한

마음의 믿음을 종의 병을 고쳐주신 것처럼, 진실로 겸허한 마음 밭에서만이

말씀이 심겨져 믿음이 자랄 수 있으며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신다.



겸손

ㅇ 불손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공손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ㅇ 유능한 매는 ㅈ발톱을 감춘다.

ㅇ 겸손은 검보다 강하다. 승리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ㅇ 숯불이 아름다우나 재로 묻지 아니하면 곧 사라지는 것 같이 덕의 빛이

크나 겸손으로 덮지 아니하면 오래가지 않아 소멸된다.

ㅇ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ㅡ를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ㅇ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어거스틴)

ㅇ 겸손이란 독일말로 Demut 즉 '힘'이란 의미이다.

ㅇ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이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 (웨슬레)

ㅇ 칭찬을 받았을 때가 아니고 꾸지람을 들었을 때 그 때에 겸양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겸손한 사람이다(J. 파울)

ㅇ 겸손한 자는 남을 비판하지 아니한며 또한 비판하는 소리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ㅇ 영안으로 온 세상을 보니 마귀가 온 땅에 그물을 편 것을 보고 두려워

탄식하기를 누가 능히 이 그물을 벗어나겠는가? 하니 한 천사가 대갑하기를

겸손한 자 만이 능히 이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있다. 마귀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안토니)

ㅇ 영국의 프리처박사에게 한 전도자가 가서 어떻게 하면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전도자가 되겠는가 물으니 그때 박사의 말은 영국에서 제일 작은

자가 되라고 하였다.

ㅇ 동전이 가득찬 단지는 동전이 들어갈 때 조용하다.


 

믿음의 그릇
어떤 군목이 최전방에서 군목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벌통을 쳐서 꿀을 땄습니다.
아주 좋은 꿀을 따서 부대에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광고를 하여 누구든지 빈그릇을
가지고 와서 꿀을 타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군인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와서 꿀을 받아갔고, 어떤 군인은 링게르병을 가지고 왔고, 또 어떤 이는 스페아
깡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군목은 군인들이 가지고 온 빈병에 다 꿀을 가득히 넣어 주었습니다. 박카스병은
박카스병만큼, 링게르병은 링게르병만큼, 스페아통은 스페아통만큼 꿀을 부어 주었
습니다. 그후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공평하지 않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었습니
다.
그랬더니 군목이 대답하기를 "누가 박카스병을 가지고 오라고 했소? 나는 빈 그
릇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빈 그릇대로 채워 줬을 뿐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깨어 믿음 위에 굳게 서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外飾)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
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벧전 2:1,2.
시기와 비방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비방을
할 때, 사람들은 문제가 되는 그 사건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습니
다. 여러 가지 주변 것들을 긁어 모아 어찌 되었든 무조건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조금 섭섭한 일을
했다고 해 보십시오. "그래, 그 사람 눈 좀 봐. 냉정하다 못해 독기가
서려 있쟎아."하고 애매한 눈까지 들먹여 그 사람을 눌러 버리려고 합
니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라는 식입니다. 그
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갑자기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낮은 사람으로 전락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낮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조심하십시오. 깨어 믿음에 굳
게 서서 강건하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주님, 저희로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비방하고, 판단함으로써
스스로 파멸해가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기쁨에서 내세의 소망을 품고 사 는 그 날까지 열심히 일해야 하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수단으로 하여 쉽게 돈을 벌겠다는 엉뚱한 생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돈을 벌겠다는 상업적인 발상에서 신앙을 약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를 복이나 받게 하는 물질의 종교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부자 되는 종교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려 기독교를 구속의 종교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게 하였다.


기도와 믿음
-마틴 루터
종교개혁 당시 강력한 원수들이 온 힘을 합하여
개혁파의 신앙을 뒤집어 엎으려고 하고 무수한 칼날이 칼집에서 뽑혀지려고 할때 루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단은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경건치 않은 승려들은 공모하고 있으며,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사람들을 권할 것이다.
그리하면 원수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복되어 잠잠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급한 것은 기도이다.
이 싸움에 사용되어야 할 무기는 오직 성령의 검뿐이다."
온 세계를 동요시킨 위대한 종교개혁의 큰 능력은 밀실의 기도에서 나왔다.
아우크스부르크의 투쟁의 기간 동안에도 루터는 적어도 하루에 세시간 기도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것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그렇게 하였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
가끔 자동차 안에 열쇠를 놓아둔 채 문을 잠갔다가,후에 문을 열기 위해 고생한 경험이 있다.아무리 고급 승용차라 할지라도 그 열쇠가 없다면,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고,운전을 할 수도 없고,원하는 곳에 갈 수도 없다.

지글러라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의 저서에서 지적하고 있다.그것은 정직한 사람,원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성실한 사람,신념이 넘쳐 있는 사람,충성된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이런 성공의 공통점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은 믿음의 기도 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열쇠를 주었다.삶의 놀라운 열쇠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면,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복을 얻을 수 있다.우리 모두 기도하는 시간을 우선 순위를 삼고 생활하자.“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5)”

믿음의 기도는 실패가 없다
아일랜드의 한 청년이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랑하는 약혼녀가 익사하는 아픔을 당했다.그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졌다.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이 청년은 아픔의 장소를 피하여 캐나다로 갔다.그러나 그곳에 안주하기도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는 죽고 싶었다.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자기를 향하여 토네이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 청년은 힘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흐느끼며 부르짖었다.“예수님!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세요.응답해주세요.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고 결단의 기도를 드렸다.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평화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이때 떠오른 영감은 뒤에 “시험 걱정 모든 괴로움없는 사람 누군가.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찬송가 487장)라는 유명한 찬송가가 됐다.

그는 고향에 전화해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그는 중병을 앓던 어머니가 거짓말처럼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이 청년이 바로 조지프 스크리븐이다.스크리븐이 울부짖으며 드린 기도는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다.이처럼 기도에는 실패가 없다.우리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는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하겠다.

믿음과 기다림
존은 열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에 할머니로부터 우표 앨범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다가 왔지만 우표앨범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다 놀러온 친구들은 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경하길 원했다. 존은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것은 할머니에게 받은 우표 앨범...이 건..."
"존, 아직 할머니에게서 우표 앨범이 오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을 했니?"
존은 이상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우표 앨범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받은 것과 같아요."
존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방해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났으나 할머니에게는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존의 어머니는 왜 할머니가 우표 앨범을 보내지 않는지 마음에 강한 의심을 가지고 아들에게도 이렇게 떠봤다.
"존! 할머니께서는 너에게 약속한 것을 잊으셨나보다."
"엄마, 결코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께서 잊어버리시다니요."
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뢰에 찬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엄마, 할머니께 앨범 고맙다고 하는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요?"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구나. 자, 한번 써 볼까?"
존의 어머니는 이렇게 용기를 주었다. 순식간에 편지를 쓴 후 우체통에 넣었다. 존은 할머니를 믿으며 휘파람을 불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며칠 안되어 답장이 날아왔다.
"존에게... 존! 할머니는 너에게 우표 앨범을 사 준다고 한 약속을 잊은 게 아니란다. 너의 마음에 드는 앨범을 구하려고 찾아보았으나 좀처럼 없더구나. 그래서 나는 뉴욕에 주문편지를 보냈단다.
그런데 뉴욕에서 보내온 앨범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도착한 데다 너무 좋지가 않아서 다른 것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여기 3달러를 보내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그곳에서 사가지렴. 할머니로부터."
편지를 읽은 존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찼다.
"엄마, 제가 말한 대로지요?"
존은 할머니와의 약속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가 믿고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노력하고 있었다.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믿음
 
성 구 " 가라사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막 14:36)
마틴 루터 킹 Jr. 목사님의 자서전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킹 목사님이 '몽고메리 버스 스트라이크'를 주도하고 계실 때 많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와 폭파 협박에 시달리셨다. 그들의 테러와 폭파 협박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여서 우직한 킹 목사님도 두려움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목사님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이제는 이 일에서 손을 떼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 순간 기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다. 지금 혼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때 머릿속에서 조용히 확신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 마틴 루터, 정의를 위해서 일어서라. 평등을 위해 일어서라. 진리를 위해서 일어서라.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결코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싸움을 계속하라. " 는 목소리를 들은 마틴 루터 킹 Jr. 목사님에게 고난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의연히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부부의 믿음
한 농부가 부인의 동의를 얻어 더 좋은 말과 바꾸려고 키우던 말을 끌고 시장으로 나갔다.가는 도중에 살진 암소에게 마
음을 빼앗겨 말과 바꾸었다.또 길을 가다가 그 암소를 양과 바꾸었고,조금 더 가다가 양을 거위와 바꾸었으며 또 그 거위
를 붉은 벼슬을 가진 수탉과 바꾸었고 마지막으로 수탉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다.
날이 저물어 여관방에서 만난 귀족 두 사람이 농부의 사연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면 부인이 화가 나서 당신을 받아들이
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그러나 농부는 “참 잘했다고 할 것이오”라고 반박했다.그러자 귀족은 만약 그렇다면 자기
가 가진 금화를 몽땅 주겠다고 했다.
이튿날 집에서 그간의 사연을 들은 농부의 아내는“그러잖아도 식초를 만들기 위해 썩은 사과가 필요했는데 참 잘되었군
요”라고 말했다.결국 농부는 내기에 이겨 부자가 되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배우자의 능력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배우자를 존중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안데르센
의 동화다.


배울 것은 믿음과 낙천적 사고방식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목사님 당신은 낙천적 사고방식을 외치십니다. 당신은 믿음만 가지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 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건가요?"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야 합니다. 특히 믿음과 낙천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세상에 문제 없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이 중 요하다.

나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명심하고 문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 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니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나는 인내를 가지고 있다. 인내의 복음을 믿는 나는 인내로 많은 일을 처리할 것을 확신한다.


한 사람의 믿음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80세 생일 잔치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는 허황된 계획을 꾸민 적도 있었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진 때도 있었소.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불평을 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답니다.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나를 믿어준 아내의 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당신을 언제나 믿어주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니므이 뜻이니라](살전5:18) 기독교의 신앙은 '감사'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란 다름 아닌 "창조와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고 감사하는데 바로 이 감사가 예배의 동기이다. 구약성서에서 감사라는 말은 동사 [야다](감사를 드리다)와 명사[토데](감사를 드림)로 표현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쓰이고 있는 이 [야댜]와 [토데]는 "마음의 샘줄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마음에서 샘줄기가 흐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유카리스테오스](감사한 마음을 가지다. 감사를 드리다),
[카리스](감사)라는 말이 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사라는 말은 또 영어로는 THANKS인데 이 말은 "생각한다"란 뜻을 지닌 THINK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감사는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 저절로 나오는 행동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지를 보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감사의 표현은 구약과 신약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구약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신약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먼저 구약성서에서의 감사는 모든 시편마다 언급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주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감사 드림'은 이스라엘의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민족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잇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민족은 감사함으로 성전에 들어갔으며, 예배를 드릴 때에도 감사의 노래를 불었으며, 서원을 드리는 제사를 올리면서도 감사를 하였다. 또한 그들은 감사를 번제 대응으로 하였으며, 야훼의 제단 앞에서 행하는 "재판"에도 감사드림이 따랐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다름 아닌 야훼의 이름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민족의 감사는 바로 신앙에서 온 것이었다. 이스라엘민족은 야훼가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지키는데 신실하게 언제난 감사를 표했다.이러한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신들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감사는 신약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구약에서의 감사였다면 신약의 감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구속적 감사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 보면 생전에 예수를 안 사람들은 예수가 행한 일과 그의 인격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도래하는 왕국에 참여할 것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 데 대하여 ◇특별한 영적인 은사에 대하여 ◇ 육적인 음식에 대하여 ◇ 세상데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하여 ◇신앙의 전파에 대하여 ◇ 형제들의 사랑과 신앙에 대하여 ◇하나니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감사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역설했다. 바울이 감사생활을 강조한 것은 감사가 믿음을 온전케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은혜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예에 감사하게 될 때 교인들은 더욱 더 그 은혜안에서 귿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사는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며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해준다. 감사는 또다른 감사의 역사를 경험케 하며 이러한 계속적인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누게 한다.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아무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밖에도 일반적인 생활에서의 감사(살전5:18)가 있는데 이 감사야말로 긍정적인 신앙생활의 원동령이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감사가 없다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가질 수 있는 믿음의 기도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분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로다(시55:22).
기도를 계속하면 당신은 계속 어떤 것을 추구하여 달성시키는 능력도 얻게 된다.
나는 세계 2차 대전 때 한 유대인이 독일의 지하실 벽에 새긴 이 말을 좋아한다.
"햇볕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태양을 믿는다. 비록 느끼진 못하더라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비록 잠잠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은 기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다.


성장하는 믿음을 소유하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 5:12.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 6:11,12.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
는 이것이니라”-요 4:34.

봄이 되면 농촌에서는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를 뿌립니다. 볍씨는 일정 기간
동안 못자리에서 잘 자랍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면 더이상 자라지 않
습니다. 그 이유는 못자리가 좁기 때문입니다. 그때쯤되면 농부들은 못자리
에서 모를 뽑아 큰 논에 이양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모는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내놓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초보 단계
에 있을 때는 목사나 선생의 양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 동
안 양육을 받았으면 모내기를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을 모내기해
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한 것만 너무 좋아한 나머지 늘 피양육자 노
릇만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은 대체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
므로 어느 정도 양육을 받았으면 피양육자의 단계에서 벗어나 교사로, 직분
맡은 자로 봉사함으로써 성장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젖먹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지 말게
하옵시고, 성장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승리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휘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포위했다. 펠드리히 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사태를 논의했다. 미리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한 사제가 일어나 말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사제의 말에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찬성하였고 펠드리히 시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리고 기쁨에 찬 찬송소리가 퍼져나갔다. 이 소리를 들은 프랑스군 진영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구원병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돌려 다른 곳으로 퇴각하였다. 펠드리히 시민들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막강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맞아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은 이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낸다. 당신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믿음으로 감사하는 참된 삶
염려와 근심은 믿음없는 행위이며 소유욕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염려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염려는 세상일의 특징이며 이방인들이나 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염려하는 자들에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들꽃을 가리키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화려한 영화를 대표하는 솔로몬도 들꽃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들꽃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들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을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염려와 근심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나 헛된 망상이 아니라 내 의지와 욕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원칙에 충실한 삶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후에 광야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광야길은 힘들 때나 형통할 때나 믿음의 행진이어야 했습니다.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고픔 때문에 모두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그들은 애굽에서 먹던 떡과 고기를 생각하며 불평했습니다.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 16:3)고 약속하셨습니다.약속대로 하나님은 저녁에는 메추라기,아침에는 만나를 공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필요에 따라 거두도록 하셨습니다.처음에는 많이 거둔 자도 적게 거둔 자도 있었지만 부족함이 없이 각자 먹을 만큼만 거두었습니다. 둘째는 거둔 양식을 다음날 아침까지 두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탐욕에 빠진 자들이 약속을 어기고 다음날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적은 것으로도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을 믿고 욕심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상을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상은 눈에 보이는 것,물질의 풍요를 갈망하는 상징입니다. 또한 가나안의 우상인 바알을 섬길 수 없도록 하나님이 엄히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우상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곡물의 신이었습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자는 믿음으로 살거나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세상이 감사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소유욕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소유하는 것이 많아지면 교만하기 쉽고 자기를 채우면 채울수록 염려가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자기 주변을 가볍게 그리고 단순하게 하십시오. 빈틈이 좀 있어야 여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소유욕에서 생기는 염려와 근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육의 바탕은 믿음이다
조선조 영조(英祖)때 이재라는 이름난 학자가 있었다. 이재는 일찍 아버지
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머니는 이재가 12살 되던 해 시동생인
당대의 정치가 이만성에게 데리고 가 올바르게 키워줄 것을 부탁했다. 며칠
후 이만성은 "공부를 안 해 매를 들어 때렸는데 그만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재의 어머니는 슬퍼하면서도 "가르치다 그런 걸 어떡합니까. 괜찮습니다."
락 말했다. 그러자 이만성은 "사실은 죽지 않았고 나를 얼마나 믿고 맡기나
보려고 했다."고 하며 이재를 열심히 키워 대학자가 되게 했던 것이다.

 

두려움의 안경과 믿음의 안경
중세기 종교개혁가 루터의 이야기다. 그의 학창시절에 독일 고학생들은 노래를 잘하면 남의 집 창문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돈을 받아 학비를 마련하곤 했다. 물론 노래가 너무 엉망일 경우나 창문 안 주인의 성품이 곱지 못하면 무안을 당하고 빈손으로 쫓겨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한번은 루터가 어느 부잣집 창문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체격이 크고 무섭게 생긴 사나이가 창문을 척 열고 바라보더니 냅다 뛰어나오는 것이었다. 루터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자기 노랫소리가 듣기 싫어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계속 쫓아왔다. 결국 발이 빠르지 못한 루터는 붙잡혔는데,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루터에게 그 사람은 돈 뭉치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루터에게 장학금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자선가였다. 루터는 그때를 회고하길, '나는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 라는 열등의식 속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그 사나이가 뛰어나오는 것도 자기를 해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루터는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만사가 다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고, 믿음이라는 안경으로 갈아 끼면 세상이 다 감사하고 좋게 보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고 했다.
사실이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을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고, 그 해석에 따라서 행복이 달라진다.
미국의 한 신발회사에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두 명의 사원을 시장조사차 보냈다. 그때 한 사원은 보고하기를 "이곳은 모든 사람이 신발을 신지 않으므로 판매 불가능" 하다는 전문을 보냈다. 그러나 다른 한 사원은 "이곳은 아직 아무도 신을 신지 않았으므로 판매가능 무진장"이라는 보고를 띄웠다. 전자의 불가능 사원은 평생을 말단 사원으로 마쳤지만, 후자의 무진장 사원은 그 신발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이것은 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가치관의 차이이다.

시련과 믿음의 성취
본문: 단 3:13-18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병고, 즉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홍역을 앓기도 하면서 자라는 것과 같이 신자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시련과 장애물들이 있어서 이것들과 싸워서 이겨야 믿음이 점점 자라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용사가 되고 큰 일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기도원에 갔었는데 그 곳에 계신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어떤 사람이 큰 목적을 가지고 산 속에 들어가 며칠 동안 울부짖으며 기도하다 소나무를 뿌리채 뽑아냈는데 그 후 응답이 왔다는 간증을 하니까 그 말을 들은 어느 사람이 자기도 문제가 있는데 산에 가서 소나무를 하나 뽑아야겠다면서 산에 올라가서 과히 어렵지 않게 뽑을 수 있는 소나무를 붙잡고 그날 밤 끙끙대다 하나 뽑고서 내려와 하는 말이 "나도 소나무를 뽑았는데 응답이 오지 않는데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믿음은 "믿습니다"하고 고성(高聲) 기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믿음의 성취는 몇 개의 고비를 넘겨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성경: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설원이라는 중국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우는 맹수지만 의심이 많아서 머뭇 머뭇하여 실천하는 일이 적은데 , 그렇다면 벌이나 반딧불이 독을 쏘는 것만 못하다"
이 말은 헛된 이론만 숭상하고 실상이 없는 것은 시원치 않는 사상과 말로 실행한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줄줄 외우고 형편에 따라 잘도 인용하면서 실제 행동을 보면 한심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여우는 조그마한 벌 한 마리 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늘도 행함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산을 옮긴 믿음
미국 알라스카의 스티브라는 청년이 처음 교회에 나갔다. 그날 목사는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 길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그의 집 뒷산에는 겨울이면 눈사태가 나서 골치를 앓고 있던차, 그 설교를 들은 스티브는 눈이 확 뜨였다.
그는 자기가 그런 일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믿음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다. 이 소식이 설교를 한 그 목사의 귀에 들어갔다.
목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서 설교는 했으나 아직까지 산을 옮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스티브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요, 그리고는 낙심할 것이 뻔한 일이므로 그 목사는 그의 뒷처리를 좀 잘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스티브의 기도는 열흘이 가도 스므날이 가도 후퇴하지 않았다.
목사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40일째 되던 날 스티브는 벙글벙글 웃으며 목사실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20세기는 산을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옮기시더군요"라고 하고는 새로 생긴 고속도로에 흙이 필요하다고 하며 큰 트럭들이 와서 그 흙을 계속 실어간 산이 거의 다 없어져 가는 것을 보고 왔다고 했다.


믿음의 선언
1812년 3월 12일, 인도의 세람포르에서 화제가 발생했다. 윌리
암 케리와 그의 동료들이 수 년에 걸쳐 갖은 고생을 감수하여
번역한 책들이 삽시간에 연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 성경 번역을
위한 원고들의 손실은 막대한 것이었다. 새로 주조된 타이프와
중국 금속타자기가 전손(전손)되었다. 애를 써서 편집한 원고,
문법책, 사전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 때의 손실에 대해 케리는
이렇게 썼다. `인쇄기 외에는 아무것도 건져 내지 못했다. 이것
은 너무 큰 타격이어서 앞으로 오랫동안 성경을 인쇄하지 못하
게 될 것이다. 12개월 동안 열심히 일한다 해도 회복되기는 어
려울 것이다. 재산, 원고 등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상황
은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원고의 손실
에는 거의 모든 인도 성경과 카나레스 신약 성경과 산스크리트
어로 번역한 2권의 구약 성경과 많은 페이지의 벵갈어 사전과
테루구 문법책 전부와 푼자비 대부분과 산스크리어트어 고급사
전 전부와 그의 언어 사업의 걸작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동역자들에게는 믿음의 선언이 뒤따랐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좋지 않은 일을 통해서 우리의 이익을 증진시
키실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났다.
`그 재해는 영국 그리스도인들의 귀를 열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들은 그 사업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보았다. 그리
고 그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이와 같이 파멸은 선교열에 불타
는 친구들을 증가시키는 횃불인 것이 입증되었다.`


소망과 믿음의 승리
약 100년 전 애굽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 옆에 곷병이 하나 있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사람의 실수로 떨어뜨려 깼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쭈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다. 3천년간 침묵을 지킨 생명이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은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뤄지고 만다.
그러기에 세계 제 2차대던째 독일 콜론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 포로가 장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글일 것이다.


두려움의 안경과 믿음의 안경
중세기 종교개혁가 루터의 이야기다. 그의 학창시절에 독일 고학생들은 노래를 잘하면 남의 집 창문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돈을 받아 학비를 마련하곤 했다. 물론 노래가 너무 엉망일 경우나 창문 안 주인의 성품이 곱지 못하면 무안을 당하고 빈손으로 쫓겨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한번은 루터가 어느 부잣집 창문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체격이 크고 무섭게 생긴 사나이가 창문을 척 열고 바라보더니 냅다 뛰어나오는 것이었다. 루터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자기 노랫소리가 듣기 싫어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계속 쫓아왔다. 결국 발이 빠르지 못한 루터는 붙잡혔는데,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루터에게 그 사람은 돈 뭉치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루터에게 장학금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자선가였다. 루터는 그때를 회고하길, '나는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 라는 열등의식 속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그 사나이가 뛰어나오는 것도 자기를 해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루터는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만사가 다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고, 믿음이라는 안경으로 갈아 끼면 세상이 다 감사하고 좋게 보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고 했다.
사실이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을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고, 그 해석에 따라서 행복이 달라진다.
미국의 한 신발회사에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두 명의 사원을 시장조사차 보냈다. 그때 한 사원은 보고하기를 "이곳은 모든 사람이 신발을 신지 않으므로 판매 불가능" 하다는 전문을 보냈다. 그러나 다른 한 사원은 "이곳은 아직 아무도 신을 신지 않았으므로 판매가능 무진장"이라는 보고를 띄웠다. 전자의 불가능 사원은 평생을 말단 사원으로 마쳤지만, 후자의 무진장 사원은 그 신발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이것은 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가치관의 차이이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어떤회사에서 물만 부으면 되는 케익용 가루를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측에서는 그 제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기대 이하로 그 제품의 인기도는 너무나 저조했습니다. 이에 고심을 하기 시작한 회사측은 수많은 여론조사 끝에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케익을 만드는 방법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측에서는 부랴부랴 제품의 내용물을 바꾸어 물과 계란을 넣으면 되는 케익용 가루를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건 너무 쉬우므로 그것에 선행을 곁들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저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믿음의 모본
성경: 엡6:4 * 찬송: 305장, 492장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그 근처에 사는 교인댁 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 댁을 심방하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목사님의 방문을 받으니 심방 받는 집에서는 반갑게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목사님은 자리에 앉아 말했습니다.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어서 한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성경책을 좀 가져오십시오" 그때에 그 교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얼마나 잘 믿고 있는지 목사님께 보여 드려야지.' 그래서 아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얘, 너 안방에 가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책을 가져다주겠니?" 목사님 들으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꼬마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들고 나오는 책은 성경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그 가정의 신앙정도는 그 가정의 어린아이 말과 행동에서 밝혀집니다. 자녀교육의 첫 번째 법칙은 가르치는 교훈이나 개념보다는 본보기에 훨씬 많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됨됨이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우세합니다. 자녀들은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정보원"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자녀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고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부모가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부모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처럼 자녀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은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로서의 나의 모습이 자녀에게 과연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믿음의 모본을 보입시다. 자식은 부모의 행위를 그대로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신6:1-9)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정이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분량대로 섬김
본문: 로마서 12:1∼8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절)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교회)이 있습니다. 100년전만 해도 세계 최대의 교회, 최고수준의 회중, 최고의 건물, 몇 세기에 한번 날까 말까하는 설교자를 갖추었던 그 교회가 1세기도 가기 전에 얼마나 초라하게 몰락했는지 모릅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까요? 런던도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었지만 교회만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변화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또한 이 변화는 삶이 뒤따르는 변화입니다. 인격과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음에 인격적으로 모신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변화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생활이 따라주는 인격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무엇을 하려고 하는 데에 교회의 교회됨을 상실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어떤 신앙인은 직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직분이란 하나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지 그 직분이 계급의식을 갖거나 차별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할 것들 하나가 바로 계급입니다. 교회는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서로 섬기는 곳이요,서로 높여주는 곳이요, 서로 세워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정신과 그릇됨을 알아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무엇입니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섬기는 분들이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첫째,타성에 빠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야 합니다. 옛것을 우려먹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내가 섬기는 교회에 희망과 환희 그리고 영적인 감동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늘 처음 만났던 그 감격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겉늙음으로 인하여 안일과 자기 만족에 도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잔칫집에서 잔치를 벌이다 보면 접시 하나 깨지고 밥그릇하나 깨지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것을 깨지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 잔치가 아니라 그릇이 깨져도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잔칫집입니다. 정말 신실하게 섬긴 이는 실수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밤잠 못 자고 애태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수가 유익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듣고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언제나 하나님을 찾고 부를 수 있다면 돌파구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 기도: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저에게 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섬기게 하옵소서 아무도 모르는 자리라 해도 감사함으로써 섬기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력인가 믿음인가
어느 날 화이트 부인에게 한 손님이 찾아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화이트 부인은 “저는 확실히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화이트 부인이 구원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손님은 “부인은 화이트 부인이 되려고 노력하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녀는 “아니요, 제가 화이트 부인인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화이트씨의 부인이셨습니까?”라고 손님이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손에 있는 결혼 반지를 만지며 “이 반지를 끼었을 때부터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구원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노력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손해보며 사는 것 입니다.
미국의 선교사 중에
제임스 엘리어트라고 하는 선교사가 있었다.
그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뜻을 같이 하는 네 명의 친구와 함께 남미 에콰도르 인디안 부족이 사는 마을로 선교를 위하여 떠나게 된다. 그러나 저들은 그곳에서 선교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창을 든 인디안들의 공격을 받아 현장에서 모두 순교 하고 말았다.그런데 선교사들은 정글의 맹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 하기 위하여 허리에 총을 차고 다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인디안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 총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에 맞아 순교의 피를 흘렸다. 만일 저들이 정당방위였다고는 하지만
'자기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총을 꺼내어 인디안들을 죽였다' 라고 하면 그곳에 선교의 뿌리는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저들은 그것을 생각하고 총이 있었지만 총을 쓰지 않고 창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초에 있었던 이 사건은 미국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 기독교 잡지사 기자가 그 엘리어트 선교사 부인에게 찾아가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분노하며
선교사 부인을 위로하기 시작 햇다.
그때, 선교사의 부인은 그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을 한다.
"말씀을 삼가하여 주십시요. 비극이라니요.
제 남편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그곳에 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어트 부인은 남편이 대학 다닐때에 썼던 큐티 노트 한 부분을 공개했다. 그 글은 미국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다.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국 붙들고 있을수 없는 그것을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위하여 바칠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날 구원 하신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내 삶을 결산하기 위해 이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나를 부르신 소명 앞에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겠다. 놓쳐서는 안될 그것을 위하여 결코 끝까지 붙들고 있을수 없는 그것을 바치겠다. 젊음은 지나가는 것이다.
명성도 자기만족과 쾌락도 그리고 물질도 결국은 붙들고 있을수가 없다. 그리고 버리고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오! 하나님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제 삶이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태워 주소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6·25 때 아이젠하워 장군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부산의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었다. 미군 당국은 당황했다. 말이 묘소이지 황량한 벌판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늦겨울이어서 잔디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현대상사의 정주영 사장이 그 소식을 듣고는 미8군 당국자를 찾아가 자신이 묘지에 풀이 나게 할 테니까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급한 나머지 그에게 실비의 3배를 주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그 길로 정주영 사장은 그 주위의 보리밭을 모두 사들였다. 때마침 보리싹이 새파랗게 솟아오르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파내어 묘지를 입혔다. 예정한 날 아이젠하워 장군은 유엔군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갔다. 묘지마다 새파란 싹이 덮여 있었으니까 보기에는 좋았을 것이다.그러나 사흘 뒤 묘지는 누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보리에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영혼이 메말라 버릴 수밖에 없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자.


마음으로 믿는 믿음- 순종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하신 일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와 마음으로 그리고 삶 전체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것과 그의 전기에 나오는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를 믿거나 의지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을 포함합니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당신이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거하기 위해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용납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해주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구원해달라고 그분께 기도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10:13). 당신이 부르짖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더라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순종하고자 하는 새로운 태도가 없다면, 그는 구원받을 만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믿음과 순종
본문: 여호수아1:1-9
위대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16년동안 아프리카에서 험한 세월을 보내고 자깐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27번째로 열병을 앓아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또한 사자에게 물린 한쪽 팔은 힘없이 몸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글래스고 대학생들 앞에서 설교하면서 감동적인 간증을 했습니다.
"힘이 들고 고독한 선교사 생활 가운데서 저를 지탱해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었습니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 그는 몇 년 후 치덤보라는 작은 마을에 임시로 마련된 오두막에서 새벽 4시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주님이 기다리시는 영광의 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임마누엘의 약속을 지켜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면서 그가 그처럼 영웅적인 삶을 살며 사역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으면 그 믿음 자체가 엄청난 생의 에너지를 갖게 합니다.


소망과 믿음의 승리
약 100년 전 애굽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 옆에 곷병이 하나 있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사람의 실수로 떨어뜨려 깼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쭈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다. 3천년간 침묵을 지킨 생명이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은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뤄지고 만다.
그러기에 세계 제 2차대던째 독일 콜론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 포로가 장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글일 것이다.


 믿음의 삶으로 부르신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그네 타기 곡예를 즐겨 보았다. 당시 89세이시던 아버지가 이곳(데이브레이크)에 방문하시면서부터 나는 서커스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난 서커스 구경을 가기로 결정했고, 그날 저녁 우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그네 타기 곡예사 다섯 명이 진행하는 서커스를 보았다. 세 명은 ‘나는’ 역이었고, 두 명은 ‘잡는’ 역이었다. 한마디로 공중 무도회였다! ‘나는’ 사람들은 공중으로 치솟았다. ‘잡는’ 이의 강한 손에 붙들리기 전에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다.
공연 때마다 나는 곡예사들의 용기에 끊임없이 감탄한다. 곡예사들은 잡아 주는 이의 든든한 손에 자기 손이 빨려 들면서 비행이 끝나리라는 것을 믿는다. 자신이 붙잡고 있던 튼튼한 그네를 놓아야 반대편 그네까지 우아한 반원을 그리며 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상대방이 나를 잡으려면 일단 놓아야 한다. 이렇게 기꺼이 내려놓으려는 자세로 사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 중 하나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명성이든 우리는 수많은 영역에서 어떻게든 움켜쥐려 한다. 내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움켜쥐어야 한다는 신념은 인간이 고난을 겪는 커다란 원천 중 하나다. 그러나 소유와 계획과 사람을 내려놓으면, 비록 모험이 따를지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자유의 삶에 들어설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기꺼이 내려놓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는 또 하나의 스텝은 지금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는 것이다. 안심할 수 있는 안전 지대를 확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나 다른 이의 삶을 스스로 안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따르고 싶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다 내어 드리는 것이다.


소망과 믿음의 승리
약 100년 전 애굽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 옆에 꽃병이 하나 있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사람의 실수로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쯔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다. 전문가들 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다. 3천년간 묵을 지킨 생명이 집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은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뤄지고 만다. 그러기에 세계 제 2차대전 때 독일 콜론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이뤄주실 것이다. 히뉴원굴 기자는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며 휘장안에 들어간다`(히6:19)고 하였다.


믿음의사랑
리챠드 범브랜드 목사가 약 30명의 크리스챤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김옥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 쳐 던져졌는데,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 왔는지 너무나 의아해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 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 보내라고 했다. 수줍어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 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했다.`대위님,당신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에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위는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년을 부둥켜 안고 눈물로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믿음으로 사랑
믿음과 기도는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바퀴처럼 서로 의존적이다. 따라서 믿음과 기도의 밀도와 열도는 항상 정비례한다. 믿음이 식어지면 기도도 식고 기도가 뜨거우면 믿음도 뜨겁다. 또한 믿음과 기도는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강해지나 쓰지 않으면 무위해진다.
한편 믿음과 기도는 성도의 생산과 창조의 도구이기도 하다. 믿음과 기도의 펌프로 지하의 무진장한 하나님의 유전에서 능력과 지혜를 퍼내야 하겠다.
재정도 퍼내고 사랑도 퍼내자. 두가지 개념을 주목하라. 1.명령과 2.약속이다. 성서는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는 약속이 있다.(요일 5:14)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 행할 것을 기도하면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으로 사랑의 생산자가 되자.


믿음 속의 사랑
스위스의 어느 심리 학자가 많은 임상 케이스를 기록한 가운데 30여 세가 되도록 사람을 전혀 믿을 수 없고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고아 출신인데 어떤 사람이든지 의심을 가지고 대합니다. 그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너무나 심한 천대와 학대와 사기를 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그 부인의 고민은 자기가 사랑한다는 진정을 남편이 믿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3-4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자기의 진실과 사랑을 그의 마음속에 깨우쳐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자기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람을 믿지 아니하면 사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둘에다 둘을 더하면 넷이라는 자명의 진리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무한하시고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하여 우리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신앙적인 인식입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2)


 믿음
믿음은 두 가지 요소,
 즉 믿는 것과 신뢰하는 것으로 이루져 있습니다.
 당신은 은행이 당신을 위해 당신의 돈을 보관할 수 있다고 믿지만 당신의 돈을 은행에 맡길 때까지는 은행에 대한 믿음을 행사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차가 당신을 어떤 곳에 태워다 줄 수 있다고 믿지만 당신이 기차를 타고 그것이 당신을 목적지에 데려다 줄 것을 신뢰할 때에만 기차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그의 모든 전투 때마다 그를 따라다닌 좋은 의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를 질투한 어떤 사람이 그를 없애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의사가 어느 날 아침 알렉산더 대왕의 컵에 독약을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 의사를 당장 처형시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 식사 때 알렉산더 대왕은 그 편지를 모인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자기가 의사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컵을 집어 그 안에 든 것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의사를 믿고 그 의사를 신뢰하였습니다.
 복음은 그처럼 단순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은 그의 영혼과 영원한 행복을 걸고 예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믿음
 캐나다에 '성(聖) 앤"이라는 아일랜드의 성자가 살았습니다. 소녀였을 때, 그녀는 대단히 잔인한 주인 부부 아래에서 매우 빈약한 급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소녀에게 일 마일이나 떨어진 가파른 언덕에서 물을 길어오게 했습니다. 한때는 근방에 샘이 있었으며 지금은 메말랐으나 여러 해 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녀는 아주 피곤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읽었습니다. “내가 골짜기 가운데 샘들을, 솟게 하리라. 마른 땅에서 물이 솟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소송을 일으키라.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이 말씀은 앤을 감동시켰으며 그녀는 주님 앞에 탄원을 했습니다. 물이 그들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가파른 언덕을 물을 지고 나르는 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고된지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는 누워서 잠들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기도를 탄원했고 그녀의 확실한 증거를 보였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가 물통을 가지고 샘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녀는“샘에 물 길러갑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그건 말랐는데”라고 그 사람이 놀라서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앤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를 믿었는지 누구에게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샘 속에는 팔십 삼 피트나 되는 깊고 맑은 찬 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탄원을 하십시오. 확실한 증거를 보이십시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역사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믿음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무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는 의식을 주는 마귀의 미소 루이스는 유명한 [악마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마음밭 비유를 가장 탁월하게 설명했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대영제국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그의 습관적인 태도로 그날도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책 중에서 손에 쥐어진 책이 신앙에 관한 책이었고, 이 책을 읽어 보다가 노신사의 마음 속에는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 속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점심 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그는 잠시 전 마음 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의식을 누르고 식탁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에 악마는 그 마음 속에 다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 악마에게 감동을 받은 노신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루이스는 이런 인상 깊은 그림을 그립니다. 마치 자신에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이 노신사 뒤에서 악마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믿음과 두려움
 시 56:3; 사 12:2; 눅 8:50; 막 5:36
  한 스코틀랜드인 신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여보게, 나는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아주 훌륭한 교훈을 발견했다네.""오, 그래? 그럼 내게도 그것을 들려주게."
 "그래, 읽어 주지."
 말을 건넨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그가 발견한 성구를 읽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바로 시편 56:3이라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도 동의하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참 훌륭한 말씀이군 . 그런데 말야, 나도 오늘 아주 훌륭한 교훈을 발견했지. 자네가 발견한 것보다도 더 훌륭한 의미가 있는 말씀이라네. 자, 이사야 12:2을 보게나. 그 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네.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자, 어떤가?" (MOODY MONTHLY)
 
 믿음과 순종
 심상 15:22; 딛 1:6; 롬 1:5; 느 9:34
 멕시코에 있는 쿠이케텍 인디언과 체르탈 인디언의 방언에는 `믿는다'라는 말과 `순종한다'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는다. 한 단어에 두 의미가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초기 선교사들은 미개한 인종의 언어라서 언어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언어는 불완전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그들은 두 단어를 구별하려는 문명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그들 언어의 불완전성은 문명인들에게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두 말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믿으면 순종하게 되지 않습니까? 순종한다는 것은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만문한다. 그들의 생각은 옳다. 오히려 문명인들이 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뻔뻔스러운 존재, 즉 외식자(외식자)로 우리 자신을 만들고 있다. 오히려 쿠이케텍 인디언과 체르탈 인디언이 비록 미개한 민족이라 하더라도 문명인들보다 진리에더 접근해 있다. 적어도 그들은 문명인들이 빠져 있는 종교적 자가분열증에는 걸려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문명인들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불열신앙은 갖지 않은 것이다.
 
 믿음과 의심
  어느 교회 사모님이 몸이 허약해서 늘 근심이었다. 병원에 검진을 하고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인 목사인들 편할 리가 있겠는가?
 말씀보고 기도하고 안정 부절 못했다.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하나님 말씀에 두려하지 말라 주께서 붙들어 주신다고 전해 주었다. 그러나 당사자는 불안을 감출길 없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 다음날 결과를 알아보려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의사가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상입니다."그러자 사모의 얼굴에 화기가 돌고 얼굴이 밝아 졌다. 다음주 설교 시간에 남편이 강단에서 사람이 의사의 과학적인 토대로 한 말에 대해서는 금방 쉽게 받아 드려진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기도한 목사의 말, 아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디 믿는다고 꼬집었다. 그렇다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연약하다. 목사도 기도하지 않고 말씀 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날 진단을 하던 날 사모님이 먼저 병원에 가고 목사님이 병원에 뒤 따라 갔는데 시간이 남고 해서 혈압을 쟀는데 평상시 혈압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목사가 말로는 하나님께서 붙드신다고 아내에게 위로했지만 목사 역시 불안했던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믿음이 강한 것이 아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치다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주시리라."...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믿음앞에 능치 않음은 없다
링컨은 게티스버그의 결정적인 전투전야에 매우 침착했고 자신에 차 있엇다.
 그의 이런 모습은 장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다.
 "국가의 장래가 불투명한 기로의 시간, 어떻게 이처럼 담대하고 평온하실 수 있습니까?"
 장교들이 링컨에게 물었다. 링컨은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지금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국가의 장래를 맡겼소. 그분은 국가가 보전되리라는 것과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오."

 믿음에는 노력이 포함되지 않는다
 행 27:25; 요 20:27; 막 16:14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너력하는 것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오늘 일어난 일을 내게 말햇다고 하자. 나는 그를 향하여 "나는 당신이 말한 것을 믿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면 그의 말 역시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를 성실치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믿는다는 사실 중에는 `노력한다'는 요소는 조금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구원이 있다."라고 선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아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거나 하는 둘 중의 한쪽을 선택해야 된다.(C. H. 스퍼전)
 
 믿음으로
  1973년 2월. 그때는 버스 사역이 대단하던 시기였는데 그때 나는 버지니아 주의 린치버그에서 열린 교역자 회의에 참가했었다. 제리 포웰 목사의 버스 사역에 대한 간증을 통해 그 자리에 모인 우리 5천 명은 버스 사역에 대한 꿈을 갖도록 도전받았다. 나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존. 너는 1년이면 네가 처음 왔을 때의 교인 수만큼을 이 버스 사역을 통해 더 얻을 수 있을거다.” 당시 우리 교회 평균 교인 수는 418명이었다. 그런데 나는 버스 한 대조차도 없었다. 나는 나의 숙소로 돌아와 누우면서 말했다. “하나님. 정말로 제가 버스 사역을 하길 원하십니까.” 포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내일은 여러분에게 카드를 나눠드릴 겁니다. 여러분은 1년 내에 버스로 사역하고 싶은 신입 교인의 숫자와 여러분의 이름을 적어 제출하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앞으로 가져다가 여러분에게 읽어드릴 겁니다.” 나는 생각했다. “아냐. 말도 안돼. 온 세계에서 온 5,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이것을 발표하겠다고.” 나는 밤새 씨름했다 그 다음날 나는 그 카드를 받아들고는 418이라고 기록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는 카드를 제출 했고 그것은 5,000명 앞에서 읽혀졌다. 나는 “내 생애 최대의 실수를 저질렀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연고로 나에게는 전도의 동기가 주어졌다. 포웰 목사는 우리 교회 임원회에 편지를 보내서 나의 목표를 알렸고. 나는 이 계획이 임원회에 상정되기도 전에 버스 구입을 위한 기금 마련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년의 기한 내에. 글자 그대로 그날로부터 딱 1년 만에 우리는 버스 사역으로 438명을 얻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서 꿈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에게 도전이 되는 것들은 감싸안고 앞에 놓여질 난관을 그려보라. 그리고 부정적이 아닌 적극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연습을 하라. 그래서 그 도전들로부터 발견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하라.

 믿음으로냐, 두려움으로냐
 대하 20:20; 막 4:40; 약 1:3
  청년들이 보트를 타고 물가의 휘어져 굽은 곳을 건너자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런데 도중에서 풍랑이 심해지자 보트가 몹시 흔들렸다. 그러나 청년들은 침착하고 힘차게 노를 저음으로써 보트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리어 풍랑과 싸운 것을 통쾌하게 여기며 즐겼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 소녀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물결이 보트를 휩쓸때마다 놀라 떨며 부르짖었다.
 어쨌든 그녀도 배와 함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단지 차이점이있다면 한편은 걱정과 공포로 여행했고, 다른 한편은 신념과 용기로 여행을 즐겼다는 것이다. (린드벅)
 
 믿음은 생명을 지켜주는 빛
 어느 날 영국의계관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같이 후원을 거닐며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는 테니슨에게 물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 걷다가 가장 아름다운 꽃앞에 와서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여보게, 나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이 꽃과 저 태양의 관계와 같다네. 이 꽃은 태양의 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믿음은자라난다
  나는 1947년에 처음 내가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지금이 더 많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의 성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947년에는 적은 믿음이었던 것일 따름입니다. 그것은 둘 다 적은 믿음이며. 단지 지금은 약간 더 커진 상태의 적은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두 종류가 모두 풀어놓아지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였을 때마다. 나는 내가 좀더 많은 믿음을 풀어놓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가 또다시 물 위를 걸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금광 탐색자가 귀한 광물을 아주 조금밖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당신이 적은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낙심하지 마십시오. 금탐색자는 아주 적은 금부스러기라도 나온 곳에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의 금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는 그것으로 인해 계속 금을 채굴하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당신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하여 내리칠 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계속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줄까요. 그것은 당신이 가진 적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아주 작고도 작은 조그만 부분입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단지 적은 믿음을 가지고서 그처럼 엄청난 일을 했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믿음조차도 의심과 섞여 있었던 믿음이란 사실을. 이처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받으셔서 그것으로써 이적을 행하시는 아주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격려
 윈스턴 처칠 수상은 후배들과 수행원들을 잘 격려해 주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자기의 후배 중 국회의원이 된 사람 하나가 국회에서 처녀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연설이라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읍니까. 그래서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처칠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연설 도중에 이 사람이 메모를 받았습니다. 그 메모의 맨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는 해낼 것이다. 처칠.”
 이 격려로 그는 용기 백배하여. 연설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믿을 만한 한 사람의 격려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 만물을 손에 쥐고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이 형통하지 않겠읍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내 음성을 들어라.
 그리고 내 음성에 순종하라.”
 만약 이런 말씀이 나에게 들려와 내가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면..
 우리의 눈이 열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귀가 열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인생은 황무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황무지를 가나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황무지와 계곡이 도사리고 있는 험준한 땅 속에 젖과 꿀이 흘러내리는 기적을 창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교훈
  어린이들은 아주 작은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미쓰씨 가정의 잭키는 사랑하는 개가 갑자기 죽어버려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잭키를 위로하였다. “잭키야. 네 마음이 어떨지 잘 안다. 그렇지만 이걸 기억해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다 아시고 보살피고 계신다는 걸. 성경에서 이렇게 말했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개에 관한 일도 알고 계시지 않겠니? 잭키야. 주님께서는 어떤 목적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대신 더 좋은 것을 주실 때가 참 많단다.” 이틀 후 친구가 조그만 콜리종 강아지를 가져다 주었을 때, 잭키는 믿음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잭키는 언제나 콜리종 개를 가지고 싶어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개를 사줄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제 잭키는 아버지가 설명해 준 바로 그대로, 주님께서 그 강아지를 자기에게 보내주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쟁, 폭동, 휴전위반, 불신앙과 그외 수많은 일들은 그들에게 극심한 당황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들은 이 모든 문제들이 어떻게 여러 시대를 거쳐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모가 세상의 일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에 비추어 해석해 주는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는 훨씬 더 평화로울 수 있으며 또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믿음의 그릇
  어떤 군목이 최전방에서 군목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벌통을 쳐서 꿀을 땄습니다.
 아주 좋은 꿀을 따서 부대에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광고를 하여 누구든지 빈그릇을 가지고 와서 꿀을 타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군인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와서 꿀을 받아갔고, 어떤 군인은 링게르병을 가지고 왔고, 또 어떤 이는 스페아 깡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군목은 군인들이 가지고 온 빈병에 다 꿀을 가득히 넣어 주었습니다. 박카스병은 박카스병만큼, 링게르병은 링게르병만큼, 스페아통은 스페아통만큼 꿀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후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공평하지 않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군목이 대답하기를 "누가 박카스병을 가지고 오라고 했소? 나는 빈 그릇을 가져 오라고 했고 그 빈그릇대로 채워 줬을 뿐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기도
  중요한 수술로 어머니가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적이 있었읍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생전 처음으로 목격했읍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읍니다. "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 몇 시간을 주기로 크게 위급한 상태가 반복되고 있단다. 심장의 박동이 멈춘 적도 있었다고 하더라. 의사 선생님은 네 어머니가 얼마 더 살지 못할 거라고 하는 구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읍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읍니다. 그 이튿날 아침, 마치 내 기분을 말해 주고 있기나 하듯,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읍니다. 나는 속으로 흐느끼며 길을 걸었읍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럴 수는 없어요. 제발 우리 엄마가 죽지 않게 해 주세요. 내게는 엄마가 있어야 돼요. 아빠에게도 엄마가 있어야 돼요. 우리는 모두 다 엄마를 필요로 해요... 나는 주님께서 엄마를 고쳐 주실는지 정말로 알고 싶어요. 엄마를 살려 주실지 제게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제발 어떻게 해서든지 제게 좀 보여 주세요. 주님!" 이렇게 나는 간절히 기도했읍니다. 이렇게 기도해 놓고서 나는 난처해졌읍니다. 어떤 방법으로 보여 달라고 한다지? 하는 머리 위에 시커멓게 몰려 있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얼결에 "주님, 엄마를 낫게 해주실 것이라면 지금 저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도록 해주세요"라고 말했읍니다. 거의 순간적으로, 구름이 갈라지면서 햇빛이 쏟아져 내렸읍니다. 곧이어 틈은 다시 메꿔져 버렸읍니다. 그렇지만 나는 알았읍니다. 사흘 후 우리 형제들이 거실의 낡은 청색 카펫트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읍니다. 아빠의 기뻐하시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 왔읍니다. "위험한 순간은 지나갔다. 엄마는 곧 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의심할 수 있었겠읍니까?

믿음의 기도
 어떤 가련한 과부는 많은 액수의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치뤘는데도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치룬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 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그녀가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그것을 잡아 학습 과제물에 보탤 욕심으로 그것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의 등 위에 내려 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들어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혼자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제끼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존귀케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깊이
 블론딘이라는 유명한 곡예사가 세계 최대의 폭포인 나이애가라에 쇠줄을 매달고 그 줄위를 자전거로 건너가는 묘기를 선보였다. 수천명의 관중들은 환호했다. 블론딘은 "이번에는 아이를 업고 줄을 타겠소.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관중들은 "할 수 있소"라고 외쳤다.
 그러나 블론딘이 "여러분의 자녀중 일곱살 미만의 아이를 올려보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관중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인생을 맡기라"고 하면 침묵하는 것이 현대인의 나약한 모습이다.

믿음의 나락
  코끼리를 산채로 잡는 사냥법입니다. 먼저 코끼리를 정글로부터 유인하여 미리 만들어 놓은 우리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코끼리의 발목에 든든한 쇠사슬을 매어 놓고 한 끝은 튼튼하고 굵은 나무기둥에 묶어 놓습니다. 그후 우리를 치우면 야생의 코끼리는 정글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발목에 묶인 쇠사슬 때문에 몇발작 걷다가는 저지를 당합니다. 처음에 코끼리는 쇠사슬로부터 놓여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있는 힘을 다 동원해 보지만 계속 실패를 하게 되고 결국엔 체념하며 비록 코끼리가 끊고 도망갈 수 있을 정도의 기둥과 줄에 묶어놔도 조금만 줄이 팽팽해지면 힘쓰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대로 줄을 잡아당겨 코끼리를 훈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체념은 소망을 포기하는 행동이며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입니다. 처음의 고통이나 고난이 비록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믿음과 소망을 갖고 기다리며 노력하면 결국에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모본
  저는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간첩”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날 귀찮은 손님이 찾아와서 “주인 양반 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찍 나가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광경을 아이가 봤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어, 저럴 때 저렇게 거짓말을 하시는구나.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데도 안 계시다고 하는구나. 거짓말을 해도 되는구나.' 그래서 거짓말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화로 옆집 부인 흉을 봅니다. “우리 옆집 새댁은 어른을 봐도 인사는 커녕 본 척도 안해요.” 아이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 전화로는 저렇게 남을 흉보는 것이구나.' 부모의 사소한 행동을 모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면 아이는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 아빠, 엄마는 안 그러시면서 흉보는 것이 사랑하는 건가 뭐'라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자녀 앞에서 위선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모른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똑똑합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 첫째는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십시오.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당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많은 아버지들은 “교회 가서 손해볼 것 없으니까 애들이나 데리고 가. 나는 안갈래”합니다. 그것이 무슨 본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믿음의 모험
  얼마 전 워싱톤에 있는 조폐공사에 한 관광팀이 도착하여 녹인 주물을 동전의 모형에 부어넣는 과정을 견학하였다. 직
 공은 한 남자에게 이렇게 제의하였다. "선생님, 당신이 손을 물에 대고 있으면 제가 이 주물을 붓겠읍니다. 그래도 손
 이 화상을 안입게 되지요. 한 번 시험해 보실까요?" 그랬더니 "천만예요, 그러나 당신 말은 그대로 믿겠읍니다"라고 그
 남자는 대답하였다. 그 때 그의 아내가 왔으므로 직공은 그녀에게 같은 제의를 했다. "네, 좋아요"라고 그녀는 선뜻 동의하였다. 실험이 안전하게 끝나자 그 직공은 남편되는 사람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를 믿는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사모님은 저를 신뢰하셨답니다." 아내는 직공의 말과 기술을 믿고 대담하게 모험을 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믿음은 어디로 인도되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제물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이 이삭을 원하시며 '어떻게'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루실 것인지를 몰랐다. 모험적인 그의 믿음이 그로 하여금 신실한 자의 아비가 되게 하였다.

 믿음의 비교
  5월달에 우리 나라에 들어온 둘로스라고 하는 선교선이 있습니다. 350명의 선교사들을 태우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선교를 하는 배입니다. 작년 8월10일 토요일에 텝리핀 잠보앙가라고 하는 곳에 선교사들이 내려서 전도집회를 했습니다. 그때 회교도인 젊은이가 나타나서 수류탄을 던져서 선교사 두 명이 즉사하고 32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죽은 선교사는 스웨덴 출신인 18세의 소피아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19세의 카렌이란 아가씨인데 뉴질랜드에서 왔습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죽은 것입니다. 자기 자녀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배에다 전보를 쳤습니다. 뭐라고 쳤는지 아쁠니까? “우리는 이 비참한 일에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 내용을 직접 읽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이처럼 대범할 수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교한 것입니다. 자기 딸이 죽은 것하고 장차 주님께서 약속한 영광하고 비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딸이 피지 못하고 꺾였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당한 것이니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비교를 한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딸을 잃은 슬픔을 가누기 어려웠겠지만 이 슬픔은 장차 주님께서 나타나실때 주실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더 복음을 열심히 전하시오”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물
주여 제게 믿음을 주소서
매일 매일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평온한 마음을 주시고
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손을 붙잡아 주소서
모든 것 가운데서
당신을 찾을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을 주소서
주께서 원하시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순전한 영혼을 주소서
미래는 주께서 주신 선물
주의 사랑을 믿기에
두려움 없이 그 앞으로 나아갑니다
-영국 시인 J.옥스남의 '믿음'-


믿음의 연단
  뮬러의 기도로 운영하는 사업이 외관상으로 화려한 것 같으나 실은 믿음의 연단 속에서 맺어진 결실이었다. 어떤 때는 육 년을 연달아 극한 믿음의 시련을 견뎌야만 했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아침끼니를 이어주어야겠는데 양식이 떨어져 버렸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굶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뮬러는 아이들 전부를 빈 식탁 둘레에다 않혀놓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주시니 감사 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으나 식탁 위엔 빵조각 하나 얹혀져 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대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힘겹게 들어서는 사람은 빵이며 고기를 잔뜩 바구니에 담아가지고 가까스로 들어오는 이웃 음식점 사람이었다. "어젯밤까지 손님을 다 치르고도 남은 것들을 주체할 데가 없어 고아원으로 끌고 온 것이다"고 했다. "믿음을 강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의 연단뿐이다."는 것은 뮬러가 늘 즐겨 쓰는 말이었다. 믿음의 연단이 아니고는 참 믿음, 거짓 믿음을 분간할 수 없다. 믿음이 참 믿음으로 나타나기는 연단을 통해서 뿐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을 연단 하신다. 연단 뒤에 오는 축복은 너무나 광명스럽고 놀라워서 말을 못 한다.

믿음의 열매
 1955년 미국에서 흑인가수로는 처음 메트로폴리탄에 출연, 영감있는 노래로 관중을 사로잡은 여가수가 있었다.
 마리아 앤더슨. 그녀의 대표적인 곡은 '그 누가 나의 괴로움 알며'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종과 피부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불행한 날을 보냈다. 그러나 기독신앙은 모든 고난을 이기고 더욱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게 했다.
 "내 괴로움을 아무도 모르나 오직 주님은 아신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하며 현실을 극복했다. 주님이 내 괴로움을 아신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믿음의 열매
 1811년 영국의 바드게이트라는 한 지방, 조그만 빵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주위 사람들은 이 소년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의학자'라는 칭송을 받은 인물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심프슨.
 현대의학의 시금석이 된 마취제를 발견한 주인공이다.
 그는 앞날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힘든 현실을 극복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그와 함께하신 것이다.

믿음의 위력
 오래 전 평안북도 정주에 살던 가난한 농부가 열병을 앓앗다. 이웃에 살던 크리스천이 이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라며 전도했다.
 '나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완강히 거부했던 농부는 나중에 외국인 선교사의 방문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 농부의 열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유익한 일'이 후세에 나타났다.
 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복음 안에서 성장, 1946년 지금의 연세대 초대 총장이 된 것이다. 백낙준 박사 이야기다.

믿음의 응답
 두려움이 많은 세상이다. 불행이나 고통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쑥 우리에게 찾아와 삶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영원한 약속」인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55:22).외국에서는 이런 글귀가 적힌 액자를 현관 입구에 걸어놓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불안이 노크할 때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가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믿음의잔
  믿음은 두 가지 요소, 즉 믿는 것과 신뢰하는 것으로 이루져 있습니다. 당신은 은행이 당신을 위해 당신의 돈을 보관할 수 있다고 믿지만 당신의 돈을 은행에 맡길 때까지는 은행에 대한 믿음을 행사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차가 당신을 어떤 곳에 태워다 줄 수 있다고 믿지만 당신이 기차를 타고 그것이 당신을 목적지에 데려다 줄 것을 신뢰할 때에만 기차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그의 모든 전투 때마다. 그를 따라다닌 좋은 의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를 질투한 어떤 사람이 그를 없애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의사가 어느 날 아침 알렉산더 대왕의 컵에 독약을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 의사를 당장 처형시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 식사 때 알렉산더 대왕은 그 편지를 모인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자기가 의사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컵을 집어 그 안에 든 것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의사를 믿고 그 의사를 신뢰하였습니다. 복음은 그처럼 단순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은 그의 영혼과 영원한 행복을 걸고 예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믿음의 전도는 영원하다
 스펄전(1834-1892)은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중전도자.
 어느 날 스펄전이 택시를 탔을 때 기사가 "손님. 아주 오래 전에 손님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군요."
 스펄전의 말에 기사는 주머니에서 빛바랜 신약성경을 꺼내며 정중히 말했다.
 "10여년 전이었으니 기억하시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때 손님께서 이 조그마한 성경을 주시며 읽어보라고 하셨지요. 저는 이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믿음의 축복
 이스라엘 우화.
 창조주께서 처음 새들에게 날개를 주셨을 때 새들은 그것이 '창공을 나는 특혜'인 줄 모르고 "뭐 이런 것을 달아주셔서 다니기 불편하게 만드셨습니까?"라고 불평했다.
 "그것은 날개다. 힘껏 펼쳐 보아라."
 창조주께서 말씀하셨지만 새들은 불평만 하고 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 용감한 독수리가 높은 곳에 올라가 힘껏 날개를 펼쳤다.
 이렇게 최초의 비상은 섭리에 따른 믿음에서 이루어졌다. '고통의 짐'을 '은혜의 날개'로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 복을 얻는다.


믿음의 행보
  한 세균학 검사실에서 3백여 종류의 우유 견본 검사 의뢰가 들어왔는데 조수가 교수에게 일이 벅차겠다고 걱정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한 번에 하나씩만 하면 벅차지 않아”라고 말했다. 이 평범한 말 가운데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산더미 같은 일생의 과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다가 부담이 되어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하고 해보면 쉽게 풀리는 것을 기억하고 꾸준히 끝까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오게 된다. 하루 한 시간씩 집중적으로 성경을 일생 동안 공부하면 신학자가 될 수 있고 하루에 한 사람 전도하면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다. 거북이처럼 걸어가야 한다. 신앙은 인내이기 때문이다. 욥은 졸지에 재산을 잃고 자녀도 건강도 그리고 아내도 잃고 친구의 공격을 받았지만 믿음의 행보를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면 후 일에 보람을 지닐 수 있다. “보라! 난 이겨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패배가 싫으면 아예 시합을 말아야 되듯 고통과 패배가 없는 삶을 원한다면 차라리 삶을 포기해야 한다. 주검은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고통, 패배, 고난, 슬픔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지금 탕자를 찾고 계신다. 머리에 과학의 모자를 쓰고 허리에 이성의 칼을 차고 등에는 재물의 배낭을 메고 손에는 쾌락의 지팡이를 짚고 사는 현대의 탕자를 부르고 있다. 하루에 한 발자국만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믿음이 슬픔을 덜어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나는 절친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의 동료 목사인 그는 방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발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망 통지서를 받은 터였다. 그 아들도 목사가 되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충분한 성직자의 자질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그와 내가 침묵 속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 그는 차분하고 사랑스럽게 아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 했다. "나는 한탄하거나 하나님께 반항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 아들은 가 버렸다오. 언젠가는 그 애를 다시 만날 수가 있겠지요. 한 가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그 아이가 여기 없기 때문에, 내 몫의 목사직뿐만 아니라 아들 몫까지 두 몫의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할 작정입니다." 그는 이 불가피한 사건을 용기있게 받아들였으며 그를 좌절시키는 힘과 싸워서 승리한 것이다. 우리가 슬픔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지닌 믿음의 크기에 따라 그 슬픔을 유발하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존 수더랜드 보낼]


믿음이 지켜지는 좋은 세상
 터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날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을 때 한 가난한 여인이 왕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제가 잠든 사이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물건을 생각하면 잠들지 말았어야지. 어찌 잠들었는가?"
 왕이 묻자 여인은 "저는 폐하를 믿고 편히 잠들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늘 깨어 백성을 보살펴 주시리리라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이 '믿음의 여인'에게 큰 상을 내렸다. 하나님을 이처럼 믿고, 서로가 서로를 이처럼 믿는다면 '좋은 세상'이 될 텐데….

믿음이라는 줄
 한 소년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연이 너무 높이 올라가는 바람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타래에 묶인 실이 곧바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연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소년을 쳐다보며 "연이 어디 있는지 안 보이는구나. 너는 아니?"라고 물었다.
소년이 대답했다. "그럼요. 이 줄을 잡아보세요. 팽팽하잖아요. 연은 보이지 않지만 제 머리 위쪽에서 푸른 하늘을 날고 있어요. 줄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키시고 복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안다. 우리의 '연줄'은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 있고 사랑 없는 것이
  바리새교인이란 반드시 위선자는 아니었다. 모범적 바리새인이란 믿음있고, 사랑없는 자였다. 그들은 말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면 구원될 것이다 라고.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구원되리라고. 예수님과 바리새인과의 충돌은 사랑과 믿음과의 충돌이었다. 보다 좁은 믿음이, 보다 넓은 사랑의 우선권을 인정할 수 없어 이것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양자가 한가지로 하나님께 쓰이려했다. 바리새인은 믿음으로써, 예수님은 사랑으로써 그러므로 저 신성한 비극이 있었던 것이다.

믿음 표
  이런 얘기가 있읍니다. 어떤 교우가 꿈에 새 예루살렘성에 가 보게 되었읍니다. 높은 시온산 꼭대기는 새 예루살렘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가지 각색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성이었읍니다.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왔구나.” 한 걸움 두 걸음 점점 올라가 보니 큰 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 하나로 된 문이었읍니다. “야.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왔구나”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읍니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곧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 그러니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표 가지가 왔느냐.” 이 분이 “네. 가져왔읍니다”하며 안주머니를 만져 보니 믿음표가 없어졌단 말입니다. 옆 주머니를 보니 거기도 없단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믿음표는 없었읍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읍니다.” 그러자 장사꾼이었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읍니다. “나에게는 믿음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갈 수 없읍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것은 안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표가 있어야지.” “그런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읍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읍니까.” 베드로 사도가 하는 말이 “아니. 장로 십여년이나 믿음 없이 했으면 말썽꾸러기였겠구먼.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읍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분입니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더랍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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