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사람/시편 1 편
2011년도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옆에 그리고 앞 뒤에 계신 분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모든 가정에 새해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복 받으라고 인사들을 하셨는데 새해 복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 복있는 사람일까요?
I.악에서 떠나는 생활입니다
1.'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본문 1절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악인들의 꾀'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악인이 의인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세상은 자연 '악인의 논리'에 의해 지배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이리 천지입니다.
곧 '악인의 꾀'를 좇아서 사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인 성도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같이 순결'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양들이 양이기를 포기하고 이리로 변합니다.
오히려 이리보다 더 강한 이리가 되어 이리를 잡아먹고 삽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장로님 한 분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몇 년간 같이 사역을 했습니다.
이 분이 어느날 TV에 나왔습니다.
그 유명한 진승현 게이트의 주역이었습니다.
그 회사의 전무였습니다.
정부에서 한창 IT벤처 사업을 육성할 때 장부를 조작하고 주가를 조작하여 수백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습니다.
해외 도피했다가 압송 당하는 장면이 TV에 나왔습니다.
'악인의 꾀'가 좋아보여 그 길로 간 것입니다.
양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이리로 변한 것입니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오늘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챤들이 '악인의 꾀'를 좇아서 사업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 버는 그리스챤들 참 많습니다.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사치하고 방종하고 타락해 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개탄해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도들로 '악인의 꾀'를 좇아 번성하고 있는 세속의 문화나 가치관이 좋아보여 생각도 없이 따라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권사님이 5000만원짜리 밍크 코트를 사 입은 것이 사회 지탄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내 돈 내가 벌어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성도는 말해서는 안되지요.
그런 삶의 방식은 '악인의 꾀'를 좇아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자유를 즐깁니다.
그러나 사치와 방종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어떤 교인이 80만원짜리 잠옷을 사서 입으면서 구역 예배때 구역식구들에게 자랑을 한다면 그 교인은 여전히 '악인의 꾀'를 좇아서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몇 백만원짜리 진주 목걸이 샀다고 교회에서 자랑하는 것은 '악인이 꾀'를 좆는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2.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본문에, "복있는 사람은...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꾀"가 좋아져 보일 때, "악인이 가는 길"이 부러워 보일 때 사람은 그 길로 갑니다.
곧 '악인의 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달 코친에서 있었던 선교사 대회에 갔을 때 농업 전문가와 함께 인도 농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에는 나무 꽃이나 열매를 파 먹는 해충이 늘 말썽입니다.
그런데 그 해충을 잡는 방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나무 밑에 물그릇을 놓여 있었는데 그 물에다 약간의 술을 타서 놓았더라구요.
농장직원이 하는 말이 해충이 술 냄새를 맡고는 술을 마신답니다.
약간 취해 기분이 좋으면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완전히 갈 때까지 마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의 삶이 이렇습니다.
영혼이 마비될 때까지 죄를 먹고 마십니다.
세상 사는 낙이 다른데 있는게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있습니다.
자기의 야망과 쾌락에 충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삶은 확실한 재미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때까지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도 확실하게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3.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본문에,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오만'이란 뜻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롱하고 멸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악인이 세 단계를 거쳐 완전한 악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첫째가 '악인의 꾀'를 좇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가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세 동사, '좇다' '서다' '앉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악인의 꾀'가 좋아 보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 '악인의 꾀'가 좋아져 보여 서서 실행해 보는 것입니다.
그 행동이 발전하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아예 퍼질러 앉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내가 무슨 일을 짖을 한들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이 단계가 완전히 성숙된 악인의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어떤 말도 서슴없이 하고, 어떤 행동도 개의치 않습니다.
오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완전한 악인을 대하시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어느날 참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불어버립니다.
태풍에 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듯이 악인의 말로는 그렇습니다.
II.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본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운 것일까요?
성경의 기록 목적은 예수를 믿게 하고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주는 책은 생경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속에 생명이 흘러 넘치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면 영생을 얻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1월 5월까지 성경 1독 하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8장씩 읽으면 5월달까지 일독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조용하게 10분만 읽으면 벌써 성령께서 심령에 감동을 주시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감동이 옵니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회개가 나오고, 감사가 터집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대하게 되면 즐거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읽히면 보약을 몇 첩 달여 먹이는 것보다 낫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7-17절에,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학생 여러분 5월말까지 1독을 하도록 하세요.
생각이 변하고, 성격이 변하고, 행동이 변합니다.
성경은 축복의 보고(寶庫)입니다.
성경은 신자에게 주어질 수없이 많은 축복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영감이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알지 못했던 위대한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수술환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좋은 의사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환자에게 있어서 마취하는 게 중요해요.
마취 안하고 여러분 한 번 수술 한번 해보세요. 그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얼마나 고통을 느끼면서 수술을 받겠느냐 그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고마운 마취제를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심슨(Symson)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명한 마취제 클로로포름(chlorform)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술 받는 환자들이 크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이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고 수술 받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그것이 늘 자신의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깜짝 놀랄만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수술하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심슨은 그 말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취제를 처음 사용하셨구나.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마취 수술을 행하셨다면 이 세상 어디엔가 분명히 이 마취제 성분을 가진 피조물이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고는 곧 연구에 몰두하
게 되었고 노력하고 연구해서 발견해낸 것이 바로 클로로포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놀라운 영감이 우리에게 솟아납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사업가가 되시기를 원합니까?
사업가의 경영 원리를 배우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여기에 여러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사업가의 경영원리가 다 담겨저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이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놀라운 영감을 예술적인 영감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과학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위대한 업적을 남기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이 말씀의 은혜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복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시편 19편에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꿀처럼 달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답니다.
영생을 주고, 지혜를 주고,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영감을 주고.....
그래서 무슨 말씀이든지 말씀에 순종해 삽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꿀처럼 맛있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달지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해라, 주일 성수해라, 선교해라, 봉사해라....
이런 말씀들이 달지가 않습니다.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말씀이 달기까지 영적 건강을 회복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II.형통한 삶입니다
본문 3 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라"고 했습니다.
본시가 쓰여진 곳은 광야와 사막이 펼쳐져 있는 팔레스틴 지방입니다.
저는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속에 있는 오아시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막이란 그렇게 적막하고 두려울 수가 없습니다.
한 낮인데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곳에는 시내가 흘렀습니다.
야자수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죽은 사막을 보다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것을 당장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있는 사람의 삶이 바로 이렇습니다.
형통한 사람을 만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나듯이 시원합니다.
그 사람을 생각만해도 시원합니다.
말도 시원하게 하고, 행동도 시원하게 합니다.
시냇가에 심기워진 나무처럼 과실을 맺습니다.
여기 '심은 나무'는 '옮겨진 나무', '이식된 나무'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심은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본문에서 의인이요(5,6절), 복있는 자(1절)입니다.
이식된 나무는 바로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얻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엡1:7).
신자는 죄와 사망의 황무지에서 생명의 시냇가로 이식되어진 나무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결코 목마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말씀을 즐거워하는 의인의 형통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이식되어져 있으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의 물로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 92편 12-15절에서도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여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본문 3절에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잎사귀'는 신앙 생활을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외적인 생활의 번성을 말합니다.
잘 됩니다.
가정이 잘 됩니다.
자녀들이 잘 됩니다.
직장과 사업이 잘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됩니다.
그래서 그의 잎이 가뭄이 와도 청청한 빛을 내고 환난과 핍박과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신앙의 색깔이 변함이 없는 성도가 됩니다.
실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IV.심판 때에 구원을 얻습니다
본시는 악인과 의인의 삶을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왜 악인의 삶을 좇습니까?
그 삶이 좋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왜 의인의 삶을 좇습니까?
그 길이 영생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한떼의 기러기들이 삼삼 오오 열을 지어 먼 북녘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곳을 지날 무렴, 저아래 조용한 농가에서 한떼의 거위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으며, 또 몇마리는 먹이통에 머리를 박고 열심히 먹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늘을 나르던 기러기 중 한 마리가 이 광경을 복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여서 이렇게 먼 거리를 날아가 겨울을 지내고 오느니 차라리 저 아래서 저 거위들과 한철을 편하게 지내다가 기러기들이 다시 이 위를 날아갈 때 그들틈에 끼여 들리라 생각하고 슬그머니 거위들 틈에 내려앉았습니다.
이 때부터 기러기는 편안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밤에는 안전한 잠자리가 있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이제는 먹이를 위해서 수고하지 않아도 되었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료 기러기들이 삼삼오오 열을 지어 머리위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 대열에 끼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힘껏 날개를 치며 위로 솟구쳐 올랐으나 이게 웬일인지 가볍게 창공으로 솟구칠 줄 알았던 몸이 오르는가 하더니 그대로 땅에 나뒹굴어 버렸습니다.
이상히 생각하고 다시 힘껏 몸을 솟구쳐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일한 하루 하루의 생활은 기러기의 몸과 날개에 기름이 엉키게 되었고 창공을 날으기에는 너무나 몸이 비둔해져 있었습니다.
이미 한 마리의 기러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위가 되어버렸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압니다.
그래서 늘 체질을 천국시민의 체질로 만들어 놓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아 살지 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 복있는 사람은 그래서 심판 때에 상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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