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더하소서 (눅17:5-10) 오늘은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 기도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르짖었던 간절한 간구의 제목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믿음을 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약 네 가지 이유였습니다. 1. 첫째는,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앞의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불신의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가를 깨달았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해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뜨거운 지옥불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부요하든지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를 했습니다. 이것은 왕의 친족이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는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데 몸은 어찌나 상하고 터졌든지 그 헌데를 개들이 와서 핥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으나 부자는 지옥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물 한 방울만 달라고 간구했지만 지옥은 그것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민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하면서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건너 가고자 하여도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도 거기서도 건너갈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마지막의 소원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은 나사로를 살려 보내어 세상에 있는 내 형제 다섯이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그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지옥이란 이렇게 끝없이 타오르는 곳입니다. 믿지 않으면 누구든 그곳에 가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지옥이 어떤 곳인지 깨닫는다면 주님을 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주님께 믿음을 간구했습니다. 참으로 지옥의 실상을 깨달은다면 자신의 믿음만이 아니라 기족과 이웃을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그 다음 제자들이 믿음을 간구한 것은, 남을 실족시키는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17장 1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들 스스로 실족하여 주님을 찾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여 그들이 실족하여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신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부지 중에라도 남을 실족시킬 수가 있다는 가능성을 말씀하신 이 사실에서 우리는 오로지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나의 믿음이 없어 잘못된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혹은 나의 순간적인 잘못이 영원히 후회할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맘에 맞지 않다고 어떤 이는 교인들에게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심방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지어서는 안될 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최근 교계에 분열되었던 장로교 중에서 약 아홉 개의 교단이 연합을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이 되는데 이렇게 연합하게된 가장 큰 이유는 노 원로들의 간곡한 소원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원로들이 된 노 정치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텐데 그것을 생각하니 두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분열했지만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하고 너무나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언하기를 조건없이 합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 설 것이며 우리 역시 그 분들과 동일한 마음입니다. 믿음 없이 순간적인 감정과 혈기로 행한 우리 실수로 인해 소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 당했다면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 어린양이라도 신앙을 포기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면 저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 하신 말씀은 그 실족자가 받을 결과가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셋째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의 일이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일은 믿음 없이도 가능하지만 주의 일 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 일터는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 말씀하신대로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갖은 사단의 방해 속에서 수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평탄해도 해야 하고 고통이 있어도 해야 합니다. 우는 송아지를 두고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소와 같이 가슴이 찢어져도 해야 하는 것이 주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 만큼 희생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가족 생각한다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믿음이 있어야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희생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보고 일해야지 물질보고 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돈 있다고 봉사하는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약2:6에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간다고 했습니다. 믿음 없으면 부자라고 일하지 않고 도리어 사역에 걸림돌이 됩니다. 또 제자들이 한 아버지의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믿음 없어 얼마나 고민했습니까? 그 때 주님께서는 너희가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예고하시는 데도 정권 다툼을 한 것도 믿음이 없어서이고, 예수님이 잡히실 때 제자들이 도망친 것도 믿음이 없어서였습니다. 히11:6의 말씀대로 믿음이 없으면 정말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4. 마지막 믿음이 필요한 것은, 내가 실족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7-10에 주님께서 들려주신 무익한 종의 비유의 중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의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도 교만하게 된다면 일하고도 버림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붙들고 끝까지 겸손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두려워 한 것처럼 남은 구원하고도 자신은 주님께 버림을 받는다면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마땅히 한 것 뿐입니다’ 이렇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주님이 하신 일을 내가 했다고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영광이 돌아오게 된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어서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대개 곳곳의 치열한 분쟁이 이런 기득권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공로 많으니 내가 주도해야 하고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알고보면 믿음은 주님에게 주님 자리를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내가 앉지 않고 주님께 양보함이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이 주님의 자리에는 전적으로 주님만을 앉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할 뿐 아니라 성령이 나를 지배하실 수 있도록 부르짖으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원하고 원해야 주님께서 비로소 그를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지배하소서 나를 지배하소서 밤낮 부르짖어야 지배하시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강제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 받으려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은 리더쉽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그 자리를 비워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간절히 주님의 권세를 받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때 주님은 그 비워준 만큼 일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큰 자에게는 크게 역사하시고 적은 자에게는 적게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교회의 리더쉽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달라서 누구를 압제하거나 군림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남의 권리를 차지하지 않고 그 권리를 돌려주므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윗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강하게 밀어주므로 진정한 리더쉽은 이루어집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도 그 일을 마리아가 담당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모두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믿음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백부장도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실족 당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결국은 내가 실족 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익한 종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당시에 종은 오로지 섬김만이 그의 할 일이었습니다. 종일 나가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띠 띠고 먹을 것을 예비하고 주인의 수종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종이 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당연한 일입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이 당연한 일을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 가지고 온전히 주님이 인정하실 겸손의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상의 중요한 네 가지, 그 중에 한 가지라도 잘못되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을 깨달은 제자들은 주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만약 한 가지라도 잘못된다면 그것은 믿음을 버리는 일이 됩니다. 믿음을 버리면 죽습니다. 믿음이란 생명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문제들은 결코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요 저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믿음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지옥갑니다. 믿음이 없으면 남을 실족케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충성을 다하고도 교만하여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성도들과 이 민족과 인류의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부르짖음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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