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억지로 진 십자가 (막15:21-34)

공 상희 2010. 9. 10. 17:08
억지로 진 십자가 (막15:21-34)
(요약)

시몬이 진 십자가는 알지 못하고 진 억지의 십자가이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강도의 십자가가 아니요
주님의 죄인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였다.
인류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본 사람은 시몬 외엔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십자가를 진 후 시몬의 가정은 온통
주의 일에 감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남기신 전도와 교회를 위한 사랑의 십자가가 있다.
억지로도 좋지만 기쁨으로 질 때 시몬과 같이 참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시몬이 진 십자가 (막15:20-23)

이 시간에 “시몬이 진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때를 기점으로 세 종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두 번째는 강도 두 사람이 진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자기 죄에 대해 벌 받는 형벌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십자가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입니다. 그는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유대인들의 절기 유월절을 앞둔 때로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득할 때 사람들에게 휩쓸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죄수들을 구경하던 시몬은 뜻하지 않게 주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사람의 키보다 3배나 크고 무거운데 죄인은 자기가 달려 죽을 그 십자가를 형장까지 매고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지시지 못하고 걸어가시다가 쓰러지시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그 때 마침 로마군병이 시골로서 올라온 시몬이란 사람을 발견하고는 강제로 대신 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그 지기 싫은 그 십자가를 갈보리 산까지 땀을 줄줄 흘리며 사람들의 오해와 조롱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지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시몬의 십자가인데 이 십자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진리를 교훈해 줍니다.

1. 시몬의 십자가는 선택받은 귀한 십자가였습니다

본문 21절에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시몬에게 찾아온 이 십자가가 보통 십자가입니까? 예수님 외에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 시몬만이 질 수 있었던 십자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본문에 “그를 억지로”라고 한 것을 보아 그는 정말 지고 싶은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라도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성경에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다”(신 21:23,갈3:13) 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구레네가 지금의 리비아 트리폴리로 추측되듯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거리에서 온 즉 구레네 시몬은 자기가 진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인 줄 전혀 알지 못한 상황에서 그 십자가를 어떻게 자원하여 기쁨으로 질 수가 있겠습니까? “참 기분 나쁜 날이다” 이것이 그의 소감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생활에서 지고 싶지 않은데도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불신자일 때 정말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은데 무슨 연유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혹은 새벽에 단잠을 깨고 기도생활하기 싫은데 무슨 일이 생겨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혹은 원하지 않았는데 큰 임무를 맡아 힘쓰지 않을 수가 없는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억지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이니 만큼 더 힘들고 부끄럽게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셔서 구원과 영생과 능력과 복을 주시기 위한 특별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어릴 때 아무 것도 모른 때이기 때문에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너희들 교회 안 나가면 굶어 죽겠다고 사흘을 드러누우셔서 정말 억지로 교회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은 귀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찌 신앙생활 안 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실 때는 숨조차 쉬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참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기도를 배우고 이것 때문에 인내를 배우고 이것 때문에 사랑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시몬의 처음 생각처럼 재수가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 속에서 되어진 일임을 기억하시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시몬이 진 십자가는 죄를 청산하는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요1:29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했습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은 자기가 진 십자가가 인류의 죄 즉 시몬 자기의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즉 이 십자가는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지지 못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시몬이 지고 가시는 길에 잠시 대신 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십자가가 보통 십자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만일 알았더라면 아무리 무거워도 감사 감격하며 눈물로 십자가를 졌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귀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는 아니지만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예수님께서 남기신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골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면 귀하지 않는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구별한다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 및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일입니다. 단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되 억지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다가 복 받은 사람이 순천 순동교회 박병선 집사입니다. 최근 국민일보에서 간증이 연재되었는데 박집사는 일생 예수 믿는 사람 핍박만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아내에게 끌려서 처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 나온 날 새로 신축한 교회 빈자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목사님께 자기가 이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곧 후회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다음 날부터 날마다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원에 출마한 선거운동을 뒷전으로 두고 전도에 몰두했는데 그렇게 쉬울 것만 같던 전도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잘 따르던 사람들도 신앙만큼은 호락호락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라도 끝까지 전도한 결과 1년 만에 무려 700명을 전도했습니다.

자신도 끌려나오다시피 나온 교회인데 빈자리까지 채우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억지로 진 십자가입니까? 그러나 억지로라도 십자가 졌더니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압도적으로 순천시의회 의원이 되게 해주시고 20여 가지나 여러 큰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 한국 의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을 했는데 순천시의원들을 2명 제외하고 다 전도한 후에 기독교 성시로 의회에서 가결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나온 초신자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억지로 지는 십자가일지라도 그 속에 참으로 귀한 것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쁨으로 한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3. 시몬의 십자가는 구원과 영광의 가정을 만든 십자가였습니다.

롬16:13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하면서 구레네 시몬의 아내와 그 아들 루포에게 문안하라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합니다. 주의 종에게 이만큼 잘했다는 것 우리는 그것 하나로도 그 가정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가를 볼 수 있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아들 루포까지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에게나 공적인 편지에서 내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은 그 가정의 놀라운 헌신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막15:21에 루포보다 알렉산더가 앞에 있는 것을 보아 다른 아들 알렉산더까지도 귀한 일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다 나섰습니다. 이들이 그만큼 헌신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은혜를 받았음을 반증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였지만 이 십자가가 시몬의 가정에 참으로 영광스런 큰 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얼마나 복 받은 가정인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신앙인과 불신앙인들을 대상으로 통계수치를 내어봤습니다. 위원회는 이 조사를 위해 두 사람의 표본 모델을 선정했는데 한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 설립자요 보수신학자인 에드워즈 요나단 목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뉴욕에서 살롱 술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무신론자 마크스 슐츠였습니다. 위원회에서는 이 두 사람의 후손들을 5대에 이르도록 면밀하게 확인하고 그 개개의 인적 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통계를 추출했습니다.

그 결과 에드워즈 요나단 목사의 5대에 걸친 후손들은 모두 896명이었고, 그 중 선교사와 목사가 116명, 교육자가 86명이었으며, 이들 교육자 중에는 총장이 3명, 학장이 66명이나 되었으며, 그밖에도 부통령이 1명, 상원의원이 4명, 문학가 및 문필가가 75명, 발명가가 21명, 사업가가 73명, 그리고 장로와 집사가 286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크스 슐츠의 5대 후손들은 모두 1,062명이나 되었지만 변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평균 교도소 생활 5년 정도 한 사람이 96명, 정신병자 및 알코올 중독자가 58명, 창녀가 65명, 정부보조 받는 극빈자가 286명, 불학무식한 자가 460명이나 되었고, 이들이 사고를 쳐서 연방정부의 예산을 낭비한 금액이 무려 1억5천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이 명약관화한 비교 통계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는 반드시 자손 대대에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레네 시몬이 알지 못했을 때는 억지였지만 나중에 그 십자가가 바로 자기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을 깨닫고는 자기는 물론 아내와 자손들까지 모두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남기신 십자가인 줄 알면서도 기쁨으로 지지 않는다면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복입니다. 사명 역시 그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레네 시몬과 같이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신앙과 사명의 광장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그 복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주님이 남기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