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영분별 어떻게 하는가? (고전 12:1-3)

공 상희 2010. 4. 25. 06:54

영분별 어떻게 하는가? (고전 12:1-3)

 

 

 

이 시간에는 “영분별 어떻게 하는가?”라는 제목입니다. 영적생활에서 오직 성령의 이끌받는 생활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지고 풍성한 은혜와 은사 가운데 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5:16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어떻게 영분별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 것인가? 영분별하면서 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악령의 역사를 성령으로 오해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분별 못하고 잘못 받으면 패가망신입니다. 교회에도 큰 손해를 끼칩니다. 영을 잘 받아야 합니다. 바른 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탄이 틈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대답해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다가 또 한 순간에 악령의 영향을 받아서 딴소리를 하여 예수님에게서 사탄아 물러가라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만큼 영적 세계는 치열한 각축전입니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영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끌림의 방향을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2절에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성령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성령이나 악령이나 우리를 끄는 일을 합니다. 즉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 영이 어떤 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 내가 받은 영, 혹은 지금 내게 역사하는 영이 어떤 영인가 아는 가장 정확한 것은 그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마7:20에 예수님께서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셨습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6:43) 하셨습니다.


나를 어디로 끄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영적으로 아름답다면 성령이지만 죄악에 비틀거리고 방황한다면 악령입니다. 즉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나를 정결하게 하고 나를 충성하게 하고 나를 단정하게 하고 나를 온전케 하는지 아니면 불신앙과 세속의 열매를 맺게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적 상태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라는 문구에는 그 때 영적 상태는 어떠했느냐는 의미입니다. 그 때는 내가 악신을 받았든 안 받았든 다 악의 영 아래 있었습니다. 엡2:2을 보면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엡2:3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도 몰랐고 하나님을 멀리했으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사람들은 자기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그런지조차 모르고 그게 옳은 줄 알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열매들이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냥 사람으로 보지 말고 영으로 보세요. 비방 잘하면 비방의 영이 있구나. 교만하면 교만의 영이 있구나. 음란하면 그런 영이 있구나. 그렇게 봐야 할 이유는 그렇게 봐야 해결법이 보입니다. 그 영만 쫓아내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영적으로 싸워야지 달리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3절에 “그러므로”란 성령께서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런데 악령과는 달리 선하고 좋은 곳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끄십니다. 예수님께로 이끄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진리 가운데로 이끄십니다.


2.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에 대하여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보아 그 영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저주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이 아들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사울일 때 예수를 미워하고 믿는 자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달리 말하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일2:22-23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성만이 아니라 무죄하신 인성도 아울러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일4:2-3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나의 왕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예수를 주로 삼고 그 앞에 절대 복종하고 그를 찬양하며 그를 위해 살게 됩니다. 결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며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를 대단한 대상에 끼워 넣는 그런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 체험한 사람은 주님에 대한 고백이 분명하고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나타내는 마음이 어떠한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요16:13-14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가 아니면 다 악의 영입니다. 예수 이름보다 문선명 이만희 박태선 정명석 이재록 이런 사람 이름이 더 요란하면 그건 아니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이적을 행하고 돈이 많고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성령의 영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증거하고 높이는 영이 성령이십니다.


3. 겸손의 척도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기나 사람을 높이는 것 악령이 틈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바울을 높입니다. 행16:16-18에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필요 이상 높일 때 바울은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높여주면 좋아합니다. 영적으로 예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그것이 고통스럽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 위치를 이탈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 이것은 사람의 그늘에 예수님이 가려 보이지 않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자신을 나타내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더 사랑한다면 악의 영이 틈탄 것입니다.


4. 핍박으로 그 영을 알 수 있습니다.


벧전 3:14-15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어떤 영을 받았는지 제재를 가해보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아직 때가 아닌가 보구나 하면서 조용히 하나님께서 주실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합니다. 말씀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를 주로 삼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악령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화를 냅니다.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바탕이 다 나옵니다. 날마다 저주를 퍼부어 댑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영이 어린 경우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다 함은 아직 육체 가운데 있다는 뜻이니 아직 악령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고전3:1). 어떻든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으로 자기 영을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끌림을 받는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한지, 나는 사라지고 예수만 위하시는지, 얼마나 겸손한지, 얼마나 거룩한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넘어지고 죄 중에 방황하고 있다면 영의 문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살펴보십시다. 나의 삶에 오직 예수만 높이고 예수만 믿고 예수만 사랑하고 겸손하고 감사하는지 살펴보십시다. 우리 모두 영적 분별력 가지고 잘못된 것을 물리치고 성령의 끌리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